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68화 (168/312)

168화. 경치 좋군

말을 달리고 달렸다.

정말로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그럼에도 먼저 출발했다는 놈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종남산을 떠나 무창으로 갈 때는 그래도 여유를 두고 움직였는데.

종남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강행군도 이런 강행군이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에게 말도 없이 하루 먼저 떠난 놈들을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무리 두 사람만 움직인다 하더라도 이렇게 빠를 수가 있는가.

종남의 일행은 중간 중간 경유지에서 계속해서 말을 바꿔 타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무 말이나 탄 것도 아니다. 마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말들을 골라 달렸다.

그런데 꽁무니도 잡지 못하다니.

그놈들이 경공의 신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새 종남산의 자락이 보이고 있는데도 앞서 간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보다 그 버러지들이 먼저 도착한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도 없는 거다."

주시운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이은 강행군에 초췌하고 지저분한 몰골.

그럼에도 두 눈은 분노와 살기로 번들거렸다.

백리평과 하무백이 자신들보다 종남에 먼저 도착하는 것만은 막아야했기에.

그렇게 전력으로 산을 올라 종남의 정문을 지났다.

조용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주시운을 비롯한 그 일행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백리평이 먼저 도착했다면 절대 이럴 리가 없었으니.

"어? 대사형 오셨습니까!"

그때 막 근처를 지나가던 종남팔검 중 칠검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백리평 그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일행을 살피며 묻는 칠검.

당연했다.

정말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온 대사형과 종남팔검의 세 사람. 이들이 무척 서둘러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유야 장문인이 최대한 빨리 백리평을 데리고 오라 했으니, 그 명에 충실하기 위함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백리평을 찾을 수밖에.

일단 함께 있지 않았으니까.

"혹여, 벌써 장문인께 찾아간 겁니까?"

계속된 칠검의 물음에 주시운과 종남팔검의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칠검의 저 반응.

백리평은 아직 종남에 오지 않았다.

그럴 수가.

자신들은 육로로 오는 관도를 최대의 속도로 달려왔다.

자신들보다 하루 먼저 출발하여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분명 중간에 따라잡았어야 할 일.'

그런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니.

"설마······ 수로?"

그때 삼검 반적풍이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들은 시일이 많이 걸려 택하지 않은 길이다.

강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었으니.

뿌드득.

반적풍의 중얼거림을 들은 주시운이 이를 갈았다.

틀림없이 그랬다.

그게 아니고는 자신들이 그 뒤를 잡지 못할 이유가 없었으니.

"이 개잡놈의 새끼들이······."

으르렁거 리는 주시운.

칠검만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종남산 아래 제법 큰 규모의 마을.

종남파 때문에 생긴 마을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소중산이 그 마을에서 제일 큰 주루를 찾았다.

허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여기야. 클클클."

주루의 담벼락 한 곳.

늙은 거지 하나가 듬성듬성한 누런 이를 드러내고는 웃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소중산은 반가운 기색을 띠며 거지에게 다가갔다.

"그러게. 연락을 받고 반가워 이렇게 찾아왔어."

거지 노인의 말에 소중산이 빙그레 웃었다.

설마 종남산까지 찾아올 거라 예상 못 했으니.

"그럼 안으로 들어갈까?"

소중산의 말에 거지는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거지가 들어가면 민폐지. 따라와."

그러면서 앞장서는 거지.

마을 밖 허름한 관제묘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등에 메고 있는 낡은 거적때기 자루를 풀자 안에서 술병과 식은 오리 구이가 나왔다.

"이거면 충분하지."

거지의 말에 소중산이 마주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 그간 어찌 지냈나?"

"어찌 지내긴. 거지답게 구걸하며 천하를 쏘다녔지."

"이제 장로쯤 되면 한 곳에 진득하니 있는 게 좋지 않은가?"

소중산의 물음에 거지는 피식 웃었다.

개방 장로, 풍개(風丐).

눈앞에 있는 소중산의 죽마고우였다.

"역마살을 타고난 걸 어쩌겠나. 그래도 그 덕에 마침 근처에 있었으니 이리 빨리 오지 않았는가?"

"어디에 있었기에?"

"장안."

정말로 지척이었다.

바람처럼 천하를 떠도는 이 친구가 그곳에는 어쩐 일이었을까.

번화한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친구인데.

"무슨 일로."

"뭐,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최소한 장로 한 사람은 가봐야 할."

소중산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제법 큰일인데, 종남산 지척에서 그런 일이 있던 걸 몰랐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너야말로 무슨 일이야?"

풍개의 물음에 소중산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하무백. 그 무인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

막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풍개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누구라고?"

"하무백. 현재 교룡관 맹룡대 교관이야. 지난 두 번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하무백. 그 사람."

이어진 대답에 풍개는 마시던 잔을 내려놓았다.

"그 인간은 왜?"

풍개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흐음."

소중산은 잠시 고민했다.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사문의 치부일지도 모를 일까지 말해야 한다.

그것도 개방의 장로에게.

풍개는 친구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종남과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종남의 집법원주이니, 함부로 사문의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하리라.

"늦었을지 모르겠는데. 그 인간이랑은 엮이지 마라."

풍개가 짧게 조언했다.

"혹시라도 엮였으면 무조건 사과하고 납작 엎드려."

이어진 말에 소중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가 지나치다 생각한 것이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우리 방주님 의견이야. 실제로 그대로 행할 분이고."

그 말에 소중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 정도인가?"

"그 이상이야. 절대 엮이지 마."

풍개의 말에 소중산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떠올랐다.

"고, 고마워. 내 급히 가봐야겠어."

그리고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경공을 펼쳐 부리나케 사라졌다.

"흐음. 하무백과 종남이라······."

들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역마살이 끼었다 하지만, 그는 개방도.

게다가 하무백의 일이라면.

"애들 좀 풀어야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풍개.

자리를 정리한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경치 좋군."

하무백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종남산의 한 자락에 올라 풍광을 보고 있노라니, 절경이었다.

그 곁에는 착잡한 얼굴의 백리평이 있었다.

장강삼협에서 이곳까지는 육로로 이동했다.

느긋하게.

정말 유람이라도 나온 양.

그 사이 무공 수련이나 가르침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여유로운 여정을 즐길 뿐.

그럴수록 백리평의 속은 타들어갔다.

이 교관님은 대체 왜 이럴까.

그렇게 종남산에 도착한 것이 어제건만.

바로 종남파로 향한 것도 아니다.

경치 좋은 곳 좀 둘러보자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저, 교관님. 종남파에는 언제 가실······."

조심스레 묻는 백리평.

"응? 가기 싫은 거 아니었나?"

하무백의 물음.

"저, 그래도 사백 일행은 도착해도 진작 도착했을 시간인지라······. 그··· 비무가······."

"비무를 정확히 언제 한다고 시일을 정한 게 아니잖아."

백리평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이었기에.

그 문서의 작성을 모두 지켜보지 않았던가.

세세하고 중요한 것을 다 적어 넣은 것 같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었던 것이다.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종남파에서 비무를 치른다고 했지, 언제 치른다고 안 했으니.

"뭐, 슬슬 가볼까? 이 정도면 적당히 약도 올랐을 것이고. 나도 빨리 돌아가서 쉬어야 하니. 쉬라고 있는 휴관기인데 너무 바쁘네."

하무백이 몸을 돌렸다.

백리평은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하무백이 중얼거린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설마 이렇게 느긋하게 움직인 것이 사백의 화를 더욱 돋우기 위함이었다니.

"그보다. 아직도 걱정인 게냐?"

백리평은 종남산에 도착한 이후로 줄곧 어두운 얼굴이었다.

"······."

백리평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시운. 그의 실력이 어떤지는 너도 느꼈을 텐데?"

그 말대로다.

분명히 느꼈다. 절대 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생겼다.

"교관님의 눈과 팔이 걸렸습니다."

백리평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이기면 된다."

"그게 그렇게······."

무어라 항변하려던 백리평이 입을 닫았다.

말해봐야 저 교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는 탓이다.

"후우."

한숨을 내쉰 하무백이 걸음을 멈췄다.

마침 적당한 공터.

그가 몸을 돌려 백리평을 바라보았다.

"어떠냐?"

"네?"

하무백의 물음에 백리평이 되물었다. 대체 무엇이 어떠냐는 것인지.

"지금 내가 네 상대로 어떤 것 같으냐?"

"당연히 상대도 안 돠···."

백리평의 말이 멈췄다.

하무백의 기세가 달라져 있었다.

저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

"어떠냐?"

다시 묻는 하무백.

"그, 그것이······."

"할 만해 보이지?"

백리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 것 같냐?"

"아닙니다."

사실이다. 저 정도의 교관님이라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교룡관에서 만났던 주시운 놈 정도의 실력으로 맞춘 기세다."

하무백의 말에 백리평이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런 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에.

"검을 뽑아라. 덤벼."

하무백의 말에 백리평은 홀린 듯 검을 뽑아 들고 하무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이것은······!?!'

이각 후.

백리평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직도 걱정이냐?"

너무도 멀끔한 모습의 하무백이 물었다.

"네."

그럼에도 백리평의 대답은 변화가 없었다.

그 대답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대답은 그러했지만, 눈빛이 달라져 있었기에.

"됐다. 내려가서 객잔에서 하루 묵고 종남파로 가자."

종남산 아래의 마을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하무백과 백리평은 종남의 정문 앞에 섰다.

정문을 지키던 이대제자가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기별을 넣었다.

곧 종남파가 소란스러워졌다.

"이, 이, 좆만 한 놈들이······."

가장 앞으로 튀어나온 이는 주시운이었다.

하무백의 의도대로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그냥 봐도 육로로 죽어라 달려서 온 듯했다.

시일이 좀 지났기에 멀끔한 모습이었지만, 저 독 오른 모습을 보니 안 봐도 뻔했다.

"거, 명문정파의 대제자라는 놈이 입이 상스럽네."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주변에 모인 이들은 종남의 제자들. 하무백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다수였다.

"대종남을 그렇게 무시하다니. 간이 배 밖에 나온 놈이로구나."

그때 들린 칼칼한 음성.

종남의 제자들이 좌우로 비켜서며 장문인 주재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백리평이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했다.

이곳은 종남파였고, 자신은 종남의 제자였으며, 눈앞에 종남의 장문인이 있었다.

당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무백은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장문인은 무슨······."

작은 중얼거림.

그러나 주재승은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근본도 없는 미천한 새끼가."

그 말에 하무백은 피식 웃었다.

재미있었다.

그래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면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이가 한 사람씩은 있었다.

그런데 종남에는 없었다.

지난 전쟁에서 대부분 죽은 탓이다.

뭐, 그래서 자신의 수작에 이렇게 쉽게 넘어온 것이겠지만.

'백리 영감.'

하무백은 백리단을 떠올렸다.

서로 등을 맡겼던 전우를.

하필 그가 멀리 떨어진 전장으로 떠났던 터라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근처에 있었다면 그렇게 전사하게 두지 않았을 테지.

떠나기 전날.

백리단은 하무백에게 딱 한마디를 건넸다.

'종남. 종남 좀 부탁하네.'

그것이 백리단이 하무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아들 내외를 먼저 떠나보내고, 손자 하나가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만남에서 손자에 대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종남을 부탁했을 뿐.

무엇을 부탁한다는 것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날 것이었으면 좀 제대로 말해 주던가.'

하무백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뭐, 귀찮은 서론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비무는 언제 할 거야?"

하무백이 주재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저 건방진!!"

"근본 없는 놈 같으니!!"

하무백의 언행에 분노한 얼굴로 발작하는 이들이 있었다.

감히 대종남의 장문인에게 저딴 언사를 내뱉다니.

하무백은 그런 이들의 반응에 하등 신경 쓰지 않고 주재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주재승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고작 교룡관의 교관 따위가 이렇게 나오는 데에 대한 분노였다.

주재승의 시선이 백리평에게로 향했다.

"지금 바로 하지."

살기 어린 대답이다.

백리평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이미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좋군."

하무백이 다시 한번 웃었다.

헌데 그 웃음에도 살기가 가득했다.

"모두 대연무장으로 간다!"

주재승의 외침에 종남의 제자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하무백 역시 함께 걸음을 옮겼다.

백리평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이윽고 도착한 대연무장.

주시운이 검을 들고 연무장 가운데에 섰다.

"나와라."

주시운의 외침에 백리평은 하무백을 잠시 쳐다본 후 걸음을 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