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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73화 (173/312)

173화. 전 죽지 않을 겁니다

얼굴 반쪽을 붕대로 칭칭 감은 주시운이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 종패진이 황급히 원로원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유는 뻔했다.

장문인이 이 꼴이니.

"크윽."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그만 가시지요. 사형."

곁에 있는 남화룡.

그는 죄인이자 죄인에 대한 감시자였다.

비무에 대한 조건을 협의할 때 그 자리에 있었기에, 그 또한 집법원에서 죄를 물을 예정이었다.

주시운은 붕대에 감겨 고정된 왼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알겠다."

그는 짧게 답하고 몸을 돌렸다. 남화룡의 감시 하에 다시 뇌옥으로 향했다.

***

종남은 바쁘게 움직였다.

장문인의 처참한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날 틈도 없이, 장문인에게 광증(狂症)이 생겼으니.

장문인은 더 이상 장문인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종패진이 원로원으로 돌아간 지 하루가 되지 않아 원로들이 종남에 도착했다.

종남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원로원.

그곳에서 또 더 깊숙한 곳곳에 흩어져서 지내는 원로들.

그렇게 급한 연락을 받고 모인 이가 모두 열이었다.

현재 종남에 생존해 있는 원로는 모두 열다섯.

그 중 삼분지 이가 모인 것이다.

소중산은 바빠졌다.

집법원주인 탓이다.

장문인의 폭주를 막기 위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이들을 찾던 것도 무색하게.

장문인이 바뀌게 되어 버렸다.

그것도 외부에서 온 한 남자 때문에.

대체 어떻게 두들겨 패면 사람이 광증이 생긴단 말인가.

'끔찍하긴 했지.'

문득 비무 때 하무백이 주재승을 두들겨 패던 장면을 떠올렸다.

살짝 몸이 떨렸다.

자신 역시 그렇게 맞으면 광증이 생길 것도 같았다.

'새로운 장문인만큼은 부디······.'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수는 없었다.

이번만큼은 철저히 검증해, 종남의 장문인다운 장문인이 나와야 했다.

***

백리평이 장강의 도도한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남을 떠난 지, 이틀.

다시 장강삼협으로 와서 배에 올랐다.

물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배는 과연 올 때와는 다르게 제법 빨랐다.

"전부 생각해두셨던 겁니까?"

백리평이 난간에 기대어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하무백에게 물었다.

"뭘?"

"장문인의 광증이요."

하무백과 백리평이 종남을 떠나던 날.

주재승의 광증에 대해 종패진이 알려주었다.

그도 조금 전에 확인했다며.

주먹을 보면 발작을 하는 광증이라니.

"언제였더라······. 내가 정말 눈 돌아가서 뒤지게 팼던 놈이 하나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다음에 보니까 미쳐 있더라고."

몸을 돌려 강물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하는 하무백.

"그때 처음 알았다. 뒤지게 패면 사람이 미치기도 한다는 걸."

"······."

백리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상대로 의도적으로 장문인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태사조님과의 비무는······."

"너도 한번 겪었잖아. 기세를 조절하는 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나는 되더라고. 설빙도 되고. 그렇게 어렵지 않아."

대화를 하면 할수록 백리평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보다. 너 진짜 괜찮은 거냐? 그냥 퇴관해서 종남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그 집법원주라는 양반도 그리 말했고."

종남을 떠나기 전.

소중산이 백리평에게 제안했었다.

주재승으로 인해 있었던 일을 사과하면서, 그만 종남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떠냐고.

주재승이 돌아오라 명령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주재승은 백리평을 망가뜨리기 위해 오라한 것이고, 소중산은 백리평을 더욱 크게 키우기 위해 돌아오라한 것이고.

"맹룡대가 좋습니다."

"산월마림은?"

"전 죽지 않을 겁니다."

결연한 한마디.

하무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맹룡대 칠 조와 이십 조는 매일같이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휴관기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

연무장에 모인 여섯 생도는 저마다 열심히 수련을 했고, 한설빙이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교관님."

그때 당진산이 한설빙에게 은근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뭐?"

당진산은 땀에 흠뻑 젖어 수련 사이사이 잠시 쉬는 때에 그녀를 찾아왔다.

"하 교관님이요."

"응?"

"얼마나 강한 건가요?"

"그건 왜?"

"아니, 지난번에 종남이··· 좆된 거라고 하셔서······."

아무리 그래도 구파일방 중 한 곳인 종남인데.

그런 표현이라니.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질문을 했던 연하민도 한동안 멍한 얼굴로 있지 않았던가.

"그 인간이 얼마나 강한 지는 나도 좀 알고 싶네······."

한설빙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도 몰랐다.

지난번, 만천금쇄폭뢰에 당한 후 더 강해졌으니 정말로 얼마나 강한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문파 하나랑은······."

당진산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설빙은 그저 피식 웃었다.

"뭐, 겪어 보기 전에는 그게 당연해. 한 가지. 그 인간이 한번 눈이 뒤집힌 적이 있는데······."

"아, 그건 저희도 봤습니다."

당진산이 말했다.

"응?"

"그 팽군호 놈이 설란을 희롱했을 때······."

당진산은 그때 팽군호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그때?"

한설빙도 기억난다는 듯 말했다.

하무백이 한창 팽군호를 조지고 있을 때 조금 늦게 그 자리에 도착했었다.

"그때 하 교관님 많이 참은 거야. 설란이 있었잖아."

그 말에 여섯 생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로 깜짝 놀랐다는 듯.

그게 많이 참은 거라고?

그럼 안 참으면?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무참히 팰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지. 하 교관님께 두들겨 맞은 상대가······."

한설빙이 말을 끌자 생도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하설란을 힐끗 보았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

여섯 생도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그 다음 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미쳤어."

"네?"

당진산이 대표로 되물었다.

"말 그대로 두들겨 맞은 새끼가 미쳐 버렸다고."

그리 말하는 한설빙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 나왔다.

그 새끼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갑작스러운 살기에 생도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아, 미안. 그 빌어먹을 새끼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그만······."

대체 어떤 놈이기에.

하무백은 상대가 미쳐 버릴 정도로 두들겨 패고, 한설빙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살기를 흘릴까.

당진산은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못했다.

한설빙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그 이상은 묻지 말라 하고 있었으므로.

당진산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고.

"그럼 수련 계속하도록 해."

그 말을 남기고 한설빙은 연무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작 돈 몇 푼과 무공 하나에, 혈교에 동료를 팔았던 좆같은 씹새끼.

그 새끼 때문에 동료들 절반이 죽어 나갔다.

하무백이 눈 돌아갈 만했다.

죽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이라는 건 그 새끼에게 너무도 관대한 처벌이었으니까.

두들겨 맞은 걸로 정신이 나가서 미쳐버릴 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하무백은 그 새끼를 그냥 두지 않았다.

며칠을 두들겨 팼다.

미쳐서 벌벌 떨고, 헛소리를 하고, 똥오줌을 지르는 놈을 상대로.

패고 또 팼다.

그놈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하무백에게 맞아 죽었다.

아니, 호천단에게 맞아 죽었다.

그놈을 팬 건 하무백만이 아니었으니.

한설빙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갑자기 그때 그놈을 팼던 주먹의 감촉이 떠올랐다.

'더럽고 찝찝하네. 씻어야 겠다.'

아직 낮이었건만 한설빙은 교관 숙소의 목욕장을 찾았다.

이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기 위해.

***

공손단경은 천목각의 정보원에게서 들려 온 보고서를 살폈다.

"결국 이렇게 되었나?"

종남파의 일이 일단락된 듯했다.

장문인이 광증에 걸리는 것으로.

"죽이지는 않았군.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다행이긴 했다.

피가 흐르지 않고 종남의 장문인이 바뀌게 되었으니.

하무백이 날뛴 것 치고는 정말로 별 탈 없이 일이 끝난 것이다.

"종남에 가지 않기를 잘 했어."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하무백이 날뛸 것을 대비해서 종남으로 가야 하나 하고.

그 인간이 작정하고 날뛰었다면, 종남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백리평이라는 아이.

그 아이가 함께 있었기에 하무백이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고.

자신은 정천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옳은 판단이었다.

종남의 원로원이 나섰다 하니, 굳이 공손단경이 끼어들 일도 없었다.

"새로운 장문인이 복수하겠다고 설치는 머저리만 아니면 되겠군."

공손단경은 그렇게 종남의 일을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

"이렇게 하면 되겠는가?"

종패진이 아홉 원로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열 명의 원로의 의견이 일치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직접 정한 장문인이었다.

그때는 경황 중이었기에, 장로원에서 백리단 다음 서열의 인물을 장문인으로 삼았다.

당시 장로들 중 장문인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나선 이도 주재승 하나뿐이기도 했고.

아홉이 남았던 장로들 중 주재승을 포함해 다섯 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의견이 갈리기는 했지만, 다수가 주재승 쪽이었으니.

그런데 주재승이 사고를 쳤다.

심지어 광증에 걸려 폐인이 되었다.

다시 장로들에게 장문인의 선출을 맡길 수가 없었다.

해서 원로원의 원로들이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선출한 장문인은.

"네? 제가 장문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종패진의 호출에 급한 업무를 미뤄두고 찾아온 소중산은 깜짝 놀랐다.

집법원의 원주로서 새로운 장문인을 선출하는 과정에 대한 법도와 이후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건만.

자신이 장문인이라니.

"저는 사형을 막지 못한 죄인입니다. 이번 일이 다 정리되는 대로 집법원주 자리에서 물러나 죄를 청하려 하였습니다."

소중산은 고사했다.

하무백의 질책.

대부분이 그의 폐부를 찌르는 사실이었기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장문인을 맡으라니.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중산. 재승이 놈이 폭주할 때, 그놈을 막으려 했던 이는 네가 유일했더구나."

주재승은 이미 장문인 직이 박탈되었다.

광증으로 인한 직무 수행 불가가 이유였다. 그래서 현재 종남의 장문인은 공석인 상태.

종패진이 주재승과 소중산을 편히 칭하는 이유기도 했다.

"집법원주로서 할 일이었습니다."

"그 할 일이 집법원주에게만 있었을까. 다른 놈들은 다 입을 닫고 있었어. 눈을 돌리고. 그러니 평이 그 아이가 맹룡대에 가 있는 게지. 쯧."

종패진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소중산이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죽으러 가는 길인 맹룡대 행.

집법원주로서 그것을 막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이 그 아이가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지?"

종패진의 물음에 소중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평이 떠나기 전, 종남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의지가 확고한 눈으로 맹룡대에 있겠다 하였으니.

사실 맹룡대에 있겠다고 하는 그 아이를 억지로 종남으로 데려오려다가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주재승의 헛된 욕심이, 그를 파멸시킨 것이다.

"아무튼 우리 열 명의 의견은 현재 종남에 믿을 사람이 너 하나라는 거다."

종패진이 단정하듯 말했다.

그리고 고색창연한 검 한 자루를 소중산의 앞에 놓았다.

금학청검(金鶴靑劍).

푸른 검신에 금색의 학이 상감되어 있는 검이다.

검신에 황금을 상감기법으로 넣었기에 실전에서 쓰기에는 약했다.

그럼에도 종남에서는 가장 지고한 검이다.

종남파의 장문영부였기에.

집법원주인 소중산을 두 번이나 찍어 누른, 지고한 권위를 가진 장문영부.

그것이 지금 소중산의 눈앞에 있었다.

"우리는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갈 생각이다."

그 말이 신호였을까.

열 명의 원로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 사숙들."

소중산이 당황해서 함께 일어났다.

그러나 원로들은 고개를 젓고는 하나둘 문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나서는 이는 종패진.

그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 혹여나 하무백. 그 자에게 앙갚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머저리가 있거들랑 그놈을 내치십시오, 장문인. 그는 우리가 감히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닙니다."

마지막 당부.

종패진은 이미 소중산을 장문인으로 대하고 있었다.

허리를 꾸벅 숙인 종패진이 문을 나서고 이곳에는 소중산만이 남았다.

한참을 갈등하던 소중산.

천천히 손을 뻗어 금학청검을 쥐었다.

결국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렇게 금학청검을 쥐고 문을 나섰을 때, 종패진의 언질에 모여든 종남의 제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새로운 장문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함성.

종남이 새로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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