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74화 (174/312)

174화. 그런 일이 가능한가?

독안의 애꾸.

거대한 몸집.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

그나마 겨울인 덕에 땀이 좀 줄었다.

뒤룩뒤룩 찐 살 때문에 추위를 덜 타서 옷은 좀 얇게 입었다.

마차의 창문도 다 열어, 찬바람으로 몸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호남성 장사(長沙).

그곳의 제일상단인 단안상단(單眼商團)의 상단주, 형의천.

그가 상단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무창에 입성했다.

수많은 수하와 상인들을 이끌고.

그가 자리 잡은 곳은 무창 외곽의 월룡장(月龍莊)이라는 거대한 장원이었다.

이미 일 년 전부터 공사를 시작해 얼마 전에야 완공된 곳으로, 단안상단의 무창지부로 삼을 목적이었다.

월룡장의 중심, 가장 크고 화려한 전각의 최상층에 위치한 방에 형의천이 자리했다.

돈이란 돈을 모두 투자해서 지은 전각이다.

월룡각.

비대하고 무거운 그의 몸을 최상층까지 올리기 위해, 기관장치까지 설치했다.

우마의 힘을 이용해 오르고 내리는 승강기관장치.

그 덕에 형의천은 최상층에 올라 무창의 경관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

무창에서 이곳 월룡각보다 높은 곳은 몇 되지 않았다.

그중 하나, 교룡관 관주각이 멀리 보였다.

"드디어 찾았어. 참 힘들었지. 어찌 그리 꽁꽁 숨었는지. 큭."

스산하고 거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척이나 불쾌한 목소리였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음성.

절대 그냥 타고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이나 성대를 다쳤을 때나 날 법한 그런 음성이었다.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장원 주위를 얼쩡거리는 거지들 때문이다.

"여기도 거지 새끼들이 많군. 아니, 당연한 건가? 벽력개 그 영감이 여기 있을 테니."

단안상단은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제일의 상단이다.

그뿐일까, 호남성 사대 상단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곳의 상단주가 무창에 직접 행차했다.

자연스레 개방 거지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의미로 개방 거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배가 무창에 당도했다.

하무백과 백리평이 배에서 내리는데, 선착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무슨 일일까요?"

백리평이 궁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 말이 많아졌다."

하무백의 한마디에 백리평은 그저 빙긋 웃었다.

맹룡대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말이 많아졌다.

당시를 떠올리면, 칠 조 생도 중 그나마 말이 많았던 이는 당진산 하나.

그때를 생각하면 생도들 모두 많이 밝아져 있었다.

다들 심각한 얼굴들로 모여있었으니.

물론 하무백도 그랬고.

지금은 그의 얼굴 또한 많이 부드러워졌다.

"교관님도 그렇습니다."

백리평이 웃음 뒤 그리 대꾸했다.

그의 대답에 하무백도 피식 웃었다.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음인지.

'어떤 놈 머리에서 나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해야겠군.'

정천맹 본맹에서 하무백을 좌천시키기 위해 행한 교룡관으로의 발령.

하무백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가족과 함께 하게 되었으며, 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발을 디뎠으니.

게다가 여유도 넘쳤고.

나쁠 것이 하나 없었다.

짜증 나는 정천맹 장로 놈들과 부딪히지도 않고 말이다.

'아, 그래도 귀찮은 일은 종종 일어나긴 하네.'

지금도 그 귀찮은 일을 처리하고 막 무창으로 돌아온 참이 아니던가.

하무백이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백리평이 주변 상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장강의 줄기인 만큼 선착장에는 상인들이 넘쳐났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 근심이 내리고 분위기가 어수선했기에, 선착장의 기운 또한 그렇게 느껴진 것이다.

"장사제일상단이 무창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모양이라네요. 상단주가 오늘 무창에 들어왔다고."

"나도 들었다."

백리평의 말에 하무백이 짧게 말했다.

그가 들을 수 있는 걸 하무백이 듣지 못할 리 없었으니.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서요. 헌데, 호남성의 상단이 굳이 왜 호북성 무창으로 왔는지 의아하네요."

상인들도 그 문제 때문에 어두운 얼굴로 설왕설래 중이었다.

무창은 장강변에 위치한 대도시로, 상거래가 활발했지만 딱히 거대 상단이 자리하지는 않은 탓이다.

자리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고.

그러던 차에 장사의 거대 상단이 무창으로 치고 들어왔으니.

"진산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하무백이 걸음을 옮기며 툭 내뱉었다.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너는 그것보다는 지금 품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할 텐데?"

하무백의 말에 백리평이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아주 소중히.

종남을 떠나기 전날.

종패진이 백리평을 찾아왔었다.

그리고 건넨 비급.

천성은하검법의 비급이었다. 그것도 종패진이 그간의 수련에서 깨달은 바를 주석으로 달아놓은 비급.

직접 가르치지 못하는 만큼,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다고 했었다.

이대제자 중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만 입문이 허락되는 천성은하검법.

백리평은 주재승의 견제에 익히지를 못했다. 그리고 맹룡대로 내쳐졌다.

종패진이 천성은하검법을 내밀었을 때의 그 감격을.

백리평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천성은하검법은 천성은하검법이다.

백리평이 천성검법을 갈고 닦아 그 한계를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였다고는 하나.

비무에서 천성은하검법을 운용하는 주시운을 겨우겨우 이기지 않았던가.

정말 힘든 사투였다.

그 검법의 비급이 손에 들어왔다.

무창으로 오는 배에서 백리평은 비급을 읽고 또 읽었다.

주석도 읽고 또 읽었다.

빨리 교룡관으로 돌아가 수련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던 것이 선착장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잠시 관심을 빼앗겼을 뿐.

하무백이 비급의 존재를 상기시키자 백리평의 두 눈이 다시금 열정으로 타올랐다.

천성은하검법.

어서 익히고 싶었다.

***

벽력개 방호군이 인상을 찡그렸다.

장원 공사를 할 때부터 장사의 상단이 무창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일 년 동안 그렇게 큰 규모로 공사를 했으니.

해서 장사에 사람을 보내기도 했었고.

그들이 갑자기 무창에 진출할 이유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북성으로 진출하는 것보다는 호남성에서 세력을 더 크게 넓히는 것이 쉬운 일이었으니.

사실 호북성의 상계는 복잡했다.

거대 상단이 없는 대신 거대 문파들이 자리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탓이다.

무당산의 무당.

도가 문파로 고고한 도인일 것 같으나, 그들도 사람이다.

먹고 살자면 당연히 돈이 필요한바.

속가 제자들을 통해 호북성 상계의 오분지 일을 차지하고 있었다.

융중산의 제갈세가.

오대세가 중 한 곳으로, 무가이지만 동시에 문에도 강한 세가.

아니, 무림세가답지 않게 오히려 문으로 더 유명한 가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갈무후의 후손들이었으니.

그만큼 그들은 상재에도 밝아 호북성 상계의 오분지 이를 장악하고 있었다.

의창의 연씨세가.

현재 오대세가 중 가장 강성한 세력을 자랑한다.

그런 세력의 기반은 결국 금력이 있어야 하는 바, 그들도 호북성 상계의 오분지 일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은 오분지 일.

그것은 교룡관의 몫이었다.

정천맹 무공학관의 역할을 하자면 많은 돈이 들어가기 마련.

그것을 정천맹에서 온전히 지원할 수 없었다.

교룡관이 무창에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장강과 한수가 합쳐지는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상업의 요충지이기도 했으니.

호남성은 달랐다.

넓은 평야와 장강과 동정호.

풍요로운 땅인 반면에 거대 문파가 없었다.

형산 이남 지역은 사해련의 세력권이었지만, 그 북쪽 지역만 해도 대단했다.

그곳에 자리한 거대 문파는 선유곡이 유일했음이니.

본디 장사에 거대 문파가 하나 있기는 했다.

단목세가.

혈교와의 전쟁 때 멸문한 후, 그 자리를 차지한 문파가 없었다.

그저 군소 방파들이 여럿 들어섰을 뿐.

덕분에 수많은 상단들이 호남성에서는 각축을 벌였고, 네 개의 상단이 호남 상계를 장악했다.

그중 장사의 상계를 장악한 단안상단이 무창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러니 교룡관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이 지내오던 상인들이 긴장하는 것이다.

개방 역시 그들의 의도를 궁금히 여기는 것이고.

***

팽도율은 갑자기 찾아온 교룡관 금당의 당주 남궁화인을 맞이했다.

금당은 교룡관의 재정을 책임지는 곳.

정천맹에서 내려오는 예산을 이용, 직접 상단을 운영해서 무창의 상계를 장악한 곳이기도 했다.

금룡상단.

금당의 당주가 곧 상단주인, 금당에서 운영하는 상단이었다.

무창 상계를 장악한 곳이기도 했다.

남궁세가주의 육촌 동생인 남궁화인은 무재보다는 상재가 뛰어나, 교룡관의 금당주를 맡고 있었다.

팽도율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무슨 일인가?"

"형의천이 무창에 들어왔습니다."

"응?"

남궁화인의 말에 팽도율은 기억을 더듬었다. 들은 적이 있었는데, 쉬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 년 전 남궁화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났다.

"그 장원을 짓는다던 상단의 상단주 말인가?"

"네. 월룡장원, 단안상단의 단주 형의천입니다."

남궁화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 심각한 일인가?"

팽도율의 물음에 남궁화인이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룡상단이 장악한 무창 상권의 이 할만 넘어가도 교룡관 예산에 구멍이 날 수 있습니다."

돌아온 대답에 팽도율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

팽도율이 교룡관 생도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던 이유가 남궁화인의 금당이다.

그가 충분한 돈을 벌어 예산을 확보해주니.

가뜩이나 올해 예산은 더 늘릴 생각이었다.

제갈명이 본인의 돈을 털어 맹룡대 수료생들에게 제공해주는 방패.

그것을 교룡관에서 준비해 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더 상등품의 방패로.

그렇잖아도 그 문제로 남궁화인과 상의하려 했는데, 대뜸 나오는 소리가 예산확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니.

"허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팽도율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대책을 세워야지요. 단안상단이 무창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갑자기 나타나 장사의 상계를 장악한 곳인지라, 쉽지 않겠습니다만."

단안상단은 그야말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상단이었다.

본디 호남성의 상계는 세 개의 상단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장해서는 장사의 상계를 먹어 치워 버렸다.

그런 만큼 남궁화인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상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팽도율도 알고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인물입니다. 수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개방도 주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흠. 일단은 우리도 주시하고 있어야겠군."

"네. 그래서 말인데, 전반기 예산이 좀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남궁화인이 팽도율을 찾은 진짜 용건을 꺼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단안상단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면 일단 융통할 수 있는 돈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남궁화인이 몸을 일으켜 관주실을 나갔다.

팽도율은 허망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방패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

연무장에 백리평이 돌아왔다.

생도들이 반가이 백리평을 맞았다. 종남으로 돌아가야 한다 했는데, 무사히 교룡관으로 돌아왔으니.

"그런데 이게 좋은 일인가? 내년에 산월마림으로 가는 건데?"

당진산의 물음.

그러나 백리평은 웃었다. 이곳이 가장 마음이 편했기에.

"가야지. 그리고 살아 돌아올 거니까."

그 대답에 당진산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우리가 그곳에서 죽지 않으면 될 일이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며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당진산이 백리평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래서, 교관님은 어땠어? 한 교관님에게 듣자 하니, 사람이 미칠 때까지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하던데?"

그 물음에 백리평이 흠칫했다.

장문인이 광증에 걸렸으니.

"뭐, 그냥저냥······."

그렇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당진산. 네가 한번 그렇게 맞아볼 테냐?"

그때 들린 하무백의 목소리.

"아, 어서 수련해야죠."

당진산은 잽싸게 움직여 삼재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