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75화 (175/312)

175화. 무슨 일이지?

검 끝이 흔들린다.

그리고 무수히 피어오르는 별들의 향연.

예전이라면 여기까지였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렇게 검에서 피어난 별들이 도도하고 장대한 움직임을 보였다.

은하수.

연무장에 은하수가 내렸다.

"우와······."

단목운뢰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히야."

당진산 역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연하민과 하설란은 두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맹룡대 연무장에서 처음으로 펼치는 천성은하검법.

무창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비급은 이미 몇 번이고 읽었다.

하무백과의 대련, 주시운과의 비무.

그렇게 직접 몸으로 겪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무수히 펼쳤던 것을 처음으로 직접 행했다.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첫 시도에서 은하수를 만들어냈다.

"제법이네."

하무백이 짧게 한마디 했다.

주우명은 검병을 꽉 쥐었다.

지난 비무에서는 백리평을 이겼지만.

다음 비무에서는 어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천성은하검법을 모두 펼쳤다.

심호흡하고 검을 갈무리했다.

맹룡대 생도들이 백리평에게 달려들었다.

"대단하네요."

한설빙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무백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 어르신의 검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녀 역시 전장에서 백리단과 함께 싸웠던 전우였으니.

"아직 한참 일러. 그 영감님에 비하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야."

냉정한 평가.

맞는 말이긴 했다.

"아직 어리잖아요."

한설빙은 백리평의 역성을 들었다.

"전장에서는 어리다고 안 봐준다."

이 또한 사실.

한설빙은 그저 입술을 삐죽였다.

백리평이 귀환하고 맹룡대의 일상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수련하고 먹고, 수련하고 먹고, 수련하고 자고.

매일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하무백은 가끔 나와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한설빙은 항시 곁에 있어 주었다.

주변 청소를 하는 위 노인도 유독 자주 보였다.

뭐, 맹룡대 칠 조와 이십 조 생도들은 위 노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그저 평범한 교룡관의 일꾼이 아닌, 자신들의 괴물 같은 교관 하무백의 사부.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

"흐음······.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일까?"

벽력개는 수하들의 보고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형의천이 무창에 들어온 지 이제 고작 열흘이다.

그런 데 단안상단의 기세는 노도와 같았다.

벌써 무창의 객잔과 주루의 일 할이 단안상단의 손에 넘어갔다.

어마어마한 자금력이었다.

객잔과 주루는 거지들이 빌어먹기에 가장 좋은 장소들.

그랬기에 개방의 거지들은 주인이 바뀐 객잔과 주루를 금세 파악했다.

새로운 주인들은 모두 단안상단의 상인들이었다.

"당최 목적을 알 수가 없으니."

벽력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왜 호북성으로 건너와서 무창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는 것일까.

뭐, 교룡관이 사파나 흑도 놈들처럼 상권을 지키겠다고 폭력을 동원할 곳은 아니다.

"무력도 상당하고 말이야."

단안상단은 무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역시 장사제일상단은 그냥 된 것이 아니었다.

그 덕에 무창에 흘러든 무림인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그렇게 유입된 이들이 단안상단의 객잔과 주루의 무사로 자리를 잡았다.

남궁화인이 단안상단을 상대한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조금씩 밀리는 양상이었다.

단안상단이 무지막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덕이었다.

"쯧."

혀를 찬 벽력개는 다른 쪽 보고를 정리했다.

십 년을 넘게 쫓고 있는 놈.

여전히 그놈의 흔적은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을 천하에 풀었다.

사해련의 영역에도 빠짐없이.

그런데도 놈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으니.

"대체 어디로 숨은 게냐. 광회천······."

단목세가의 가주, 죽마고우 단목천승.

단목천승 조카딸의 사위였다.

그러 니까 외질 손녀사위.

그리고.

단목세가를 멸문시킨 놈이었다.

혈교에 단목세가를 팔아넘긴 놈.

단목운혜가 천형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그놈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여전히 놈의 거취는 알 수가 없었고.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천하제일의 방파라는 개방에서마저 찾지 못하는 놈이었으니.

***

형의천은 수하들이 올린 보고서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읽고 있었다.

"역시 돈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하군."

무창의 객잔과 주루의 일 할을 손에 넣었다.

팔지 않겠다고 하면 더 많은 돈을 제시했다.

그래도 팔지 않겠다고 하면 다시 더 많은 돈.

그들이 팔지 않겠다고 한 것은 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충분한 돈을 안겨주면 된다.

"이렇게 천천히 무창의 객잔과 주루를 손에 넣으면 된다."

형의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서류를 모두 검토한 형의천이 창가로 둔중한 몸을 움직였다.

창밖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무창의 빈민가였다.

"저곳을 떠났다라. 후우. 오히려 잘됐군. 저곳에 있으면 거지 놈들의 시선이 걸리적거렸을 텐데 말이야."

무창의 상계를 손에 넣는 것도 중요했지만, 형의천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무창에 진출한 두 가지 이유.

"찾느라 힘들었다. 혹시라도 그사이 손에 넣었을까 걱정했고. 헌데 지난 세월 동안 빈민가에서 꼭꼭 숨어 지냈다니. 대단하구나. 여화."

형의천이 단목운뢰의 어머니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단목운뢰는 교룡관을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휴관기 동안은 집에서 교룡관을 오가는 날이 많았다.

가족들과의 시간이 소중했으니.

더군다나 새집으로 이사까지 하지 않았던가.

집으로 가는 길이 늘 즐거웠다.

그렇게 눈앞에 집이 보였다.

가는 동안 단목운뢰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늘 가던 길인데, 평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사를 했음에도 여전히 집으로 가는 길 군데군데 거지들이 있었다.

방 어르신은 어쩌다가 한번 뵙는 정도였지만.

오늘은 유독 낯선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비록 이 길로 다니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강의 주민들 안면은 익혀 두었는데.

'무슨 일이지?'

작은 의문을 떠올리며 집으로 들어서는 단목운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여전히 평화로운 나날이었으니까.

***

하무백이 인상을 찡그렸다.

장사의 상단이 무창으로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상인들의 일이야 자신이 염두에 둘 것이 아니었으니.

헌데, 지금은 꽤나 거슬렸다.

'단안상단이라 했나?'

이놈들이 정말 무창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덕분에 하무백의 기감에 걸리는 놈들이 많아졌고, 복잡해졌다.

'귀찮군.'

하설란이 무창으로 온 이후 하무백은 항시 무창 전역에 기감을 펼쳐두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그렇게 무창에 대한 파악을 마쳤었는데, 종남에 다녀온 후 모든 것이 어그러져 있었다.

상단 소속의 무인들이 무창으로 엄청나게 들어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창.

이러면 더욱 사람들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어온 놈들 중 불순한 목적을 가진 놈이 없으란 법은 없었으니까.

강호는 평화로운 듯했지만.

'혈교, 마교 놈들이 아직 남아 있다.'

하오문에도 한 놈이 숨어 있지 않았던가.

종남의 경우는 다행히 놈들의 수작질이 아니었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명문정파의 장문인과 대제자가 그런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에.

***

남궁화인이 심각한 얼굴로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단안상단이 손에 넣은 객잔과 주루의 수는 일 할이다.

그런데 가져간 매출은 대략 이 할 오 푼.

애초에 알짜만 가져간 것도 아니다.

고만고만한 객잔과 기루다.

그런데 단안상단에서 운영을 시작한 이후 그들의 매출이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건데···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쯧."

남궁화인이 혀를 찼다.

장사로 보낸 금당의 수하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이놈들의 목적을 알려면 그 본진을 살피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는 생각에 수하를 보냈건만.

"답답해서 안 되겠군."

남궁화인이 벌떡 일어났다.

직접 알아볼 요량이었다.

금당을 거쳐 아예 교룡관 밖으로 나섰다.

이왕이면 가장 잘 되는 곳으로 가겠다 마음먹은 남궁화인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그의 수신호위 두 사람이 황급히 움직였다.

그 목적지가 무창의 외곽이었기에 걸음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월룡객잔.

월룡장 바로 앞에 위치한 사 층 규모의 객잔으로, 그 넓이가 어마어마했다.

월룡장의 공사 때 함께 만든 객잔이었다.

식사 때가 지나 조용해야 할 시간이건만 월룡객잔은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일 층에 들어서니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흐음."

빈자리에 앉은 남궁화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객잔 곳곳을 살폈다.

겉보기엔 일반적인 객잔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점소이가 빠르게 찾아왔고, 접객 능력은 평범했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빼어나거나, 특별한 건 없었다.

가격 역시 적당했다.

조금 싸기는 했지만, 이 정도 가격에 일부러 외곽으로 나오는 수고를 감수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대체 왜······.'

성행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의문을 품은 채 남궁화인은 다시 돌아갔다.

다음 날.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오늘도 월룡객잔으로 향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곳에서 먹었던 소면이 생각난 까닭이다. 특별할 것 없었던 흔하디 흔한 소면이었건만.

'······이것인가?'

독.

남궁화인은 월룡객잔을 다시 방문키로 결정하고는 은침 여러 개를 챙겼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분명 음식에 무슨 수작질을 부려놓은 것.

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은밀히 은침을 음식 여기저기에 찔렀다.

그가 아무리 무공보다는 상술에 뛰어나다 하지만, 그도 남궁세가의 가솔이었다. 그것도 남궁의 성을 지닌.

그런 만큼 점소이나 숙수들의 눈을 피해 은침을 찌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결과가 의외였다.

깨끗했다.

은침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 없이 교룡관으로 돌아왔다.

"허어. 대체 왜······."

다음 날은 다행히 월룡객잔의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쯤 되니 남궁화인은 자신이 착각을 했구나 싶었다.

그저 음식에 특별한 비법이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흘 후.

다시금 월룡객잔의 음식이 미치도록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만두였다.

두 번째 방문에서 은침으로 음식을 조사하기 위해 소면에 만두를 함께 주문했었다.

남궁화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흐음."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에 잠긴 남궁화인.

그런다고 특별한 해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지켜봐야겠군."

정말 미치도록 먹고 싶었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날 월룡객잔을 찾지 않았다.

다만 담룡북각에서 만두만 세 접시를 먹어 치웠다.

정말 게걸스레 먹었다.

그 탓에 남궁화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유독 만두를 먹는 이들이 많았다.

마침 저녁 식사를 위해 담룡북각을 찾은 하무백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접시까지 먹어 치울 기세로 게걸스레 만두를 먹고 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뭐지?"

유별난 일에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했다.

"월룡객잔이라는 곳의 만두가 그렇게 기가 막히답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작소육이 담긴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조 숙수가 말했다.

"월룡객잔?"

하무백이 조 숙수에게 물었다.

"단안상단이라고 이번에 무창에 새로 들어온 상단에서 운영하는 객잔입니다. 객잔은 월룡객잔, 기루는 월룡루. 전부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네요. 뭐, 숫자를 붙여서 구분을 한다고는 하는데."

"그곳 만두가 그렇게 맛있다는가?"

하무백의 물음에 조 숙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점소이가 한번 가서 먹어봤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하거든요. 아니, 제가 만든 만두가 더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 숙수는 정말로 실력이 좋은 숙수였으니까.

"그런데, 오늘 만두 먹겠다고 월룡객잔으로 갔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만두를 찾는 이들은 사정이 있어 그곳에 못 가는 이들인 듯하고요."

조 숙수가 섭섭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상한 혀를 가진 점소이인가 보군."

"제가 모르는 비법이 있나 보지요. 그래서 다음 쉬는 날에 저도 가보려고요. 월룡장이라고, 단안상단의 상단주가 머무는 장원 앞에 있는 월룡객잔이 본점이라 하더군요."

"그래? 그럼 같이 한번 가보지. 나도 이제는 한가하니."

"좋습니다. 참, 그런데 이상한 것이. 며칠 전에는 소면이 그렇게 맛있다고 소면만 찾더군요."

조 숙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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