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76화 (176/312)

176화. 내일입니다

"신기한 객잔이네. 갑자기 나도 궁금해졌어. 다음 쉬는 날이 언젠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요리가 소면이었다가, 만두였다가.

하무백도 호기심이 동했다.

조 숙수는 하무백의 물음에 빙그레 웃었다.

"내일입니다."

"잘됐군. 그럼 내일 점심이나 함께 하지."

"좋습니다."

하무백은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담룡북각을 떠났다.

이미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해가 조금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겨울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깜깜했다.

하무백은 그 길로 숙소로 가서 잠을 청했다.

자정이 지난 깊은 밤과 새벽 사이에 깨서 홀로 수련을 마친 하무백.

이것이 교룡관에서의 하무백의 일과였다.

수련 후 다시 잠시 눈을 붙이고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하무백은 남들이 자는 시간에 수련했기에.

사람들이 깨어있는 시간에는 늘 잠을 청하고 있는 게으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당진산은 역시나 맹룡대 칠 조의 소식통이었다.

오전 수련 사이 쉬는 시간.

어디서 듣고 왔는지 그는 월룡객잔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풀어내고 있었다.

바위에 비스듬히 누워 두 눈을 감고 있는 하무백은 낮잠을 자는듯한 모습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성도의 유명한 객잔과 주루를 다 다녀봤는데, 그곳 같이 신기한 곳은 처음이었다니까."

당진산의 말에 여섯 생도의 시선이 모였다.

사실 식도락이라 할 정도로 유명한 객잔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이는 이들 중 당진산이 유일했다.

그러니 자연히 그의 말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맛은 평범해. 진짜 평범해. 특출날 게 없어. 담룡각 음식이나 도긴개긴이야. 아니, 운뢰의 어머니께서 해주는 음식이 훨씬 맛있었다."

당진산의 말에 단목운뢰의 입가에 보일 듯 말듯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말이야. 먹고 나서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미칠 듯이 먹고 싶어진다니까. 난 닭구이였어. 거지닭."

당진산의 말에 주우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그거 고급 요리 아니야?"

당진산이 흠칫했다.

거지들이 훔친 닭을 진흙을 발라 구워 먹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인 거지닭.

그러나 실제로는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이름 그대로 연잎에 싸서 흙을 발라 구우면 홀라당 태워 먹기에 십상인,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한 요리였다.

만약 다른 생도가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던 걸 알았다면 당진산은 분명 놀렸을 텐데.

그를 제외한 여섯 생도는 그런 장난기가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당진산은 더욱 무안했다.

주우명은 순수한 궁금증에서 고급 요리가 아니냐 물었건만.

괜히 혼자서 그런 고급 요리를 먹으러 갔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한 것이다.

"그래서. 미칠 듯이 먹고 싶어지는 느낌은 어떤 거였는데?"

연하민의 물음.

그것이 잠깐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를 바꿨다.

"그게··· 그냥 말 그대로? 계속 생각나. 계속 입 안에 군침이 돌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래서 그랬구나."

단목운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당진산이 도통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백리평의 물음.

"음··· 어제부터 좀 괜찮더라고."

"신기한 일이네."

하설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그 덕에 지금 그 단안상단에서 세운 객잔들은 전부 대박이 났어. 가장 잘되는 곳은 역시나 월룡장 앞의 월룡객잔이고."

당진산의 설명에 생도들은 '별일이 다 있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 모습이 답답한 듯 당진산이 가슴을 쳤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이건."

영문을 몰라 하는 생도들.

"월룡객잔이 잘되면 잘될수록. 무창의 상권을 먹은 금룡상단의 입지가 줄어들어."

당진산의 설명에 백리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창은 그냥 중소상단들이 적당히 상권을 차지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선착장 상인들의 대화를 떠올린 것이다.

"그 중소상단들 대부분의 전주가 금룡상단이야. 완전히 다 먹은 건 아니고. 보통 지분의 오 할에서 육 할이 금룡상단의 것이지."

생도들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당진산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무림인이자, 무인이다.

당연히 상계의 일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는데, 당진산은 이토록 자세히 알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금룡상단의 입지가 줄어드는 게 문제가 되는 거야? 네 말대로면 상단끼리 경쟁이 붙어서 오히려 우리에게는 나은 것 아닌가?"

핵심을 찌르는 연하민의 물음.

당진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은 지적이야.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지. 아니, 무창 사람들에게도 당장은 그럴 거야. 다만, 우리는 달라."

"우리?"

"정확히는 교룡관."

당진산의 이야기에 하무백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었다.

"금룡상단의 단주가 교룡관 금당의 남궁화인 당주님이야. 즉, 금룡상단은 교룡관에서 운영하는 상단이란 뜻이지."

언제 온 것일까?

한설빙이 말했다.

그 말에 다들 놀란 얼굴을 했다.

설마 교룡관에서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금룡상단의 수입이 곧 교룡관의 예산이다 보니, 진산의 말대로 우리가 곤란해질 수 있어."

한설빙의 말에 생도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월봉 같은 것도요?"

단목운뢰가 조심스레 물었다.

"맹룡대의 월봉은 건드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당장 내 월봉이 걱정이네?"

한설빙의 대답에 단목운뢰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그에게 월봉은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담룡각 식사의 질이 예전처럼 될지도 모를 일이지."

작년 삼 월.

하무백이 담룡각을 뒤집어엎은 이래로 늘 양질의 식사가 제공되고 있었다.

당진산이 한 말에 낙우진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그의 낙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기에.

"그래서 말인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 알아보려고. 오늘 저녁에 가볼까 하는데. 같이 갈 사람?"

당진산이 여섯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만, 월룡객잔의 음식값이 문제.

낙우진과 단목운뢰가 특히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한설빙이 팔짱을 끼고는 그 모습을 보더니.

"휴관기에도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하니. 오늘 저녁은 회식이나 하자. 내가 살게."

갑자기 끼어든 그녀.

일곱 생도의 시선에 일제히 그녀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당진산.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골라도 되는 거죠?"

그의 장난기 가득한 물음에 한설빙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교관 월봉 얼마 안 된다만. 뭐, 오늘만 특별히 봐주지."

"야호!"

당진산의 입에서 기쁨의 함성이 터졌고, 다른 생도들 역시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특히나 단목운뢰와 낙우진, 하설란의 얼굴이 밝았다.

"자, 그럼 수련 계속해야지?"

한설빙의 말에 일곱 생도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다시금 수련 삼매경에 빠졌다.

왠지 움직임에 더욱 힘이 실린 듯한 모습이다.

'소면, 만두, 그리고 거지닭이라······.'

조 숙수의 이야기와 당진산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로 음식이 대중없었다.

하무백 역시 직접 가서 먹고 경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무백은 살짝 선잠을 청했고, 점심때가 다가올 무렵 두 눈을 떴다.

"끄응."

기지개를 켜고 바위에서 내려왔다.

하무백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단연 하설란이었다.

수련하는 모습이 부쩍 활기찼다.

그 변화가 언제부터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한설빙이 회식을 하자고 한 이후부터다.

지금도 입가에 미소까지 걸린 채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녀석.'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그러고 보니 너무 무심했다.

무창에 와서 설란을 데리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으러 다닌 적이 있나 생각해보니 없었다.

'빵점짜리 오라비로군, 나는. 너무 무심했어.'

생도들의 사정에 휘말려 그 일을 해결해 주러 동분서주하기만 했지, 정작 설란은 별로 챙기지를 못했다는 자책.

'지금부터라도 신경을 좀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담룡북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 숙수를 만나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월룡객잔으로 가는 길.

하무백은 조 숙수에게 무창에서 가볼 만한 객잔이나 명소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숙수인 그가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그 생각은 정확했다.

월룡객잔으로 가는 내내 조 숙수의 입이 멈출 줄을 몰랐으니까.

하무백은 그 많은 이야기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에 꼭꼭 담아두었다.

모두 설란과 한 번씩 가 봐야 겠다 생각하면서.

그 사이 월룡객잔에 도착했다.

인산인해였다.

문밖에 길게 늘어선 줄.

그야말로 대박이 난 객잔의 모습이었다.

"조금 기다려야겠군요."

조 숙수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줄의 가장 끝 쪽에 가서 섰다.

'별일 없겠지?'

하무백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생각했다.

보통 이렇게 복잡한 객잔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까지 하면 꼭 시비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줄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일 각쯤 기다리니, 줄의 사분지 일이 줄어 들었다.

물론 하무백 뒤로는 줄어든 것보다 더 긴 줄이 늘어섰지만.

"좀 일찍 올걸 그랬나 봅니다."

조 숙수가 무안한 듯 말했다.

"좀 늦게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것도 색다른 경험이네."

하무백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서야 객잔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복잡해서는 거지닭 같은 요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것 같았다.

'진산 녀석 이야기 때문에 먹고 싶었는데.'

두 사람은 빨리 나오면서도, 종류가 각기 다른 요리 세 가지를 시켰다.

오리구이 반 마리, 소채볶음, 우육면이었다.

과연 들은 대로였다.

특별히 뛰어난 맛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맛.

"자네 음식이 훨씬 맛있군."

"과찬이십니다."

조 숙수가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솔직한 평가야. 자네는 어떤가?"

조 숙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것은 없는 듯합니다. 모두 딱 기본 정도만 하게 만들었군요."

조 숙수의 나이가 이십 대 후반이라 하지만, 그는 열둘부터 객잔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십오 년이 넘는 경력을 지닌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만 훔쳐 배웠겠지만.

그의 실력은 젊은 나이 이상으로 뛰어났다.

담룡북각에 있기에는 아까운 실력.

하무백이 미식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간 먹어온 음식을 바탕으로 평가하자면 그랬다.

음식은 빠르게 사라졌다.

맛은 평범했는데, 젓가락이 계속 갔던 탓이다.

하무백도, 조 숙수도 그 사실을 느꼈다.

"신기한 일이로군."

"그러게 말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린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음식은 깨끗이 비운 터.

잔뜩 서 있는 줄을 보았으니,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월룡객잔을 나와서 교룡관으로 돌아왔다.

하무백은 숙소 침상에서 뒹굴거리다가, 생도들의 기척이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점심 때 봤던 그 긴 줄이 걸렸다.

저녁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터.

괜한 시비가 생길 수도 있었다.

'설빙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설란이 관여될 문제였기에 하무백도 조용히 움직였다.

***

당진산의 재촉에 생도들과 한설빙은 빨리 움직였다.

본격적인 저녁 시간이 되려면 아직 반 시진은 남은 시간.

하늘도 여전히 밝았다.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단목운뢰의 물음에 당진산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소리. 거기 이제는 줄 서서 먹어야 한다 하더라고. 시간 맞춰 가면 이 추운 겨울 저녁에 밖에서 얼마나 서 있어야 할지 모를 일이야."

걸음을 재촉하며 당진산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경공이라도 펼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거라면··· 이미 늦은 것 같아."

하설란의 말에 당진산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거기까지 느낄 수 있는 거야?"

함께 수련을 하면서 하설란의 기감 능력에 대해 대강은 알게 된 칠 조 생도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월룡객잔까지라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느껴져서."

하설란이 짧게 답했다.

그렇게 도착한 월룡객잔.

당진산, 그리고 하설란의 말대로였다.

식당 앞으로 짧은 줄이 있었다.

"벌써?"

당진산이 인상을 썼다.

이 정도 시간이면 줄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보다 월룡객잔이 더 잘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행이 줄을 서게 하고 당진산은 입구로 향했다.

"거, 뭐요. 뒤로 가서 줄부터 안 서고."

줄 가장 앞에 있는 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 뒤에 일행들이 있습니다. 요리가 시간이 좀 걸릴 듯하여 미리 주문하려고요."

그리 대답한 당진산은 점소이를 불러 미리 요리명을 잔뜩 말하며 주문을 마치고는 줄로 돌아왔다.

"뭐, 뭘 그렇게 시킨 거야?"

낙우진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전부 비싸고 좋은 걸로만 시켰지. 이 성도화화공자의 입맛으로 검증된 것들로. 뭐, 여기라면 고만고만할 것 같긴 하지만."

당진산이 지난번 이곳에서 거지닭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맛은 정말로 평범했으니까.

이곳의 음식이 무서운 것은 먹고 난 다음이다.

먹고 나서 하루 정도 지났을 때 미친 듯이 생각나는 그 중독성.

그게 무서운 것이었다.

줄이 짧았기에 오래지 않아 맹룡대 생도들의 차례가 되었다.

그때.

시벌건 얼굴의 거한들이 월룡객잔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의 얼굴은 몹시도 다급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