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77화 (177/312)

177화. 어서들 드시지요

가까이 다가온 그들의 얼굴은 험상궂기 그지없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칼자국과 흉터가 있는 이들.

그 험악한 모습에 하설란이 슬쩍 한설빙 뒤로 몸을 숨겼다.

"비켜 비켜! 급하다고!"

그들은 줄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그리곤 입구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맹룡대 생도들을 무시하고 곧장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어······."

단목운뢰가 그 모습에 막 무어라 하며 했지만, 당진산이 막았다.

단목운뢰의 의문 섞인 시선이 당진산에게 향했다.

"그냥 둬. 여기 보통 객잔 아니야."

당진산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안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동정십걸 님들이 행차하셨는데 어서 자리를 만들지 않고 뭐 하는 거냐!!!"

"빨리 닭튀김을 내놔!"

"나는 만두다! 만두!!"

안하무인의 고함.

딱 열 명이 몰려 들어갔는데, 동정십걸이라니.

"흔하디흔한 흑도 건달들이네."

당진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런 흑도 건달들은 번화한 도성이라면 어디든 있었다.

성도에도 제법 많았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라, 도무지 박멸이 되지 않았다.

'아, 혈교나 마교 세력권에는 없었다고 했던가?'

문득 지난 전쟁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진산이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안쪽의 소란이 더욱 커지나 싶더니.

"헉."

"아악!"

"뭐, 뭐냐. 억!"

비명과 신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열 명의 거한이 밖으로 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다섯 명의 무인과 한 명의 중년인이 나왔다.

"본 객잔의 음식을 먹고 싶으면 차례를 지키셔야 합니다."

중년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놈들이 감히 우리 동정십걸을 이리 대하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이가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중년인의 얼굴에 작은 조소가 어리나 싶더니 옆의 무인에게 눈짓했다.

무언의 명령에 무인 다섯이 자칭 동정십걸이라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고, 허리에는 검이 있었다.

동정십걸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무인들을 보고 주춤주춤 물러나는가 싶더니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하지만 모두가 달아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오히려 다시 객잔 쪽을 향해 다가갔다.

"만두, 만두가 먹고 싶다고··· 마, 만두!!"

정말로 애절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인들의 처절한 응징뿐이었다.

다른 한 사람도 마찬가지.

그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처절하게 객잔 쪽으로 움직였다. 바닥을 박박 기면서.

"다, 다, 닭튀김을 줘··· 제발··· 그게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어찌 보면 섬뜩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피를 흘리면서, 두들겨 맞으며 기어가면서도 오직 음식만을 찾다니.

잠시 후, 무인들에 의해 소란은 정리가 되었다.

중년인의 시선이 맹룡대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월룡객잔의 총관 동계릉이라 합니다. 손님들의 자리가 곧 준비될 듯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럼."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객잔 안으로 들어가는 총관.

단목운뢰는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았다.

"전에 왔을 때도 저런 놈들이 둘 정도 있었는데, 저렇게 처리해버리더라고."

당진산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만두고, 어떤 닭튀김이길래 사람이 저렇게 미치는 거지?"

연하민이 살짝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들 같은 심정이었다. 그랬기에 월룡객잔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흐음."

하무백이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며 갸웃거렸다.

"뭔가 좀 찝찝한데······."

이렇다 할 것이 기감에 걸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갑자기 이런 객잔이 무창 곳곳에 생겼다는 것이 무언가 수상했다.

잠시 후 별다른 소란이 없을 것 같자, 하무백은 내부를 관조했다.

아직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하무백은 일각마다 내부를 살폈다.

사람이 한 음식이 미친 듯이 먹고 싶어진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중독.'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음식에서 독이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은침으로 은밀히 찔렀을 때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에.

그래도 중독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니, 필시 내부에서 무언가 반응이 있을 터였다.

하무백은 계속해서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처음엔 별다른 게 없었다.

'응?'

그런데 별안간 혀 부근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집중해서 살피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의.

티끌처럼 작은 기운이었다.

일각마다 살폈기에 겨우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던 것이다.

'뭐지?'

하무백은 자신의 내공을 움직여 그 기운을 조심스레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기운이 내공 중 일부를 먹어서 크기가 조금 더 커졌다.

천천히 그 과정을 반복해서.

좁쌀 정도로 커졌다 싶은 순간.

혀에서 맛이 느껴졌다. 점심때 먹었던 음식들의 맛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실제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머리를 맹렬히 자극했다.

'이것이군.'

정말로 당장 들어가서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니까.

하무백은 충동을 견디며 계속해서 그 기운을 내공으로 건드렸다.

좁쌀에서 쌀알 정도까지 커지니, 충동을 억제하기 몹시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운은 일정 크기 이상 커지지 않고 스스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충동도 사라졌다.

그 반응에 하무백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사람마다 가진 내공도 다르고 기운도 다르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충동을 느꼈다는 것을 보면, 이 독은 순수하게 사람의 선천진기를 먹는 것인지도 몰랐다.

분명한 것은 월룡객잔, 저곳에서 음식에 무슨 수작을 부려 놓았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장사를 위해 이렇게 복잡하고 은밀한 수작을 부렸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확인을 마친 순간 하무백은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맹룡대 생도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그 아이가 왔단 말이지?"

말을 할 때마다 투실투실한 볼살이 흔들렸다.

단안상단의 단주, 형의천은 수하의 보고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방 창가에서 바로 보이는 월룡객잔.

지금 저곳에 단목가의 아이가 와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곧 움직여 볼 생각이었는데.

무거운 몸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형의천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태산만 한 배만 보일 뿐이다.

그의 두 눈에 짜증이 어렸다.

"빌어먹을 거지새끼들 때문에······."

형의천의 중얼거림. 수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그저 그렇게만 있었다.

"잠혼독(潛魂毒)의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만. 대부분이 일반 민초들인지라, 무림인들에게 적절한 배합 비율과 용량을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형의천에 물음에 수하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상관없다. 우리가 무창의 상권을 장악해 나가면, 무림인들도 월룡객잔과 기루를 찾을 터. 괜히 무창에 온 게 아니지 않느냐."

교룡관이 자리한 무창은 도시 규모도 컸지만, 그만큼 무림인들도 많았다.

장사(長沙)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네."

수하는 짧게 답했다.

"무창 상계는 얼마나 장악했지?"

"금룡상단 소속의 객잔과 기루는 일 할 오 푼 정도 장악했습니다."

"그러면 객잔과 기루는 멈추고 표국 쪽도 알아보도록."

"네."

형의천은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의 끝에는 단목운뢰의 집이 있는 곳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강한 열망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 비고의 열쇠는 여화가 쥐고 있을 것이다. 샅샅이 뒤졌는데 나오지 않았으니······.'

이제는 단안상단의 장원이 들어선 장사의 단목세가의 터.

그곳을 은밀히 뒤진 세월이 얼마였던가.

개방의 시선도 피하기 위해 상단을 일으켜 아예 그 땅을 모두 매입하기까지 해서.

그 정성에 대한 보답을 받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동 총관에게 전해. 그 아이에게 신경 좀 써주라고."

***

커다란 원탁은 한설빙과 맹룡대 생도 일곱이 모두 앉고도 여유가 있었다.

이 정도 자리를 마련하느라 시간이 더 걸린 듯했다.

일행이 모두 앉은 후.

점소이들이 쉬지 않고 접시를 날랐다.

그 커다란 원탁을 빠짐없이 빼곡히 채우는 음식들.

그 모습에 생도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로서는 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다.

한설빙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원탁 위를 바라보았다.

"하아. 사천당가의 직계다운 씀씀이네. 그러니까 이걸 전부 당진산 네가 시킨 거란 말이지?"

한설빙의 물음에 당진산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마, 많이 주문한 것은 맞는데··· 몇 가지는 제가 주문한 게 아니에요."

기실 당진산도 조금 당황한 듯했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몇 가지 요리는 그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시키고 싶었으나 몇 가지 제약 사항 때문에 시키지는 못했다.

당장 한 가운데서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불도장만 하더라도, 요리하는 데 시간이 하루가 꼬박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뿐이랴.

동파육도 있었다.

아까 주문하려 한 음식인데, 준비해 둔 재료가 모두 소진됐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있으니.

솔직히 당진산도 얼떨떨했다.

"입구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을 사과드리려 제가 신경을 좀 썼습니다. 그러니 부디 맛있게 즐겨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총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그러니까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 저거, 저거는······."

당진산이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요리를 모두 가리켰다.

"네. 제가 사과의 의미로 대접해 드리는 것이니, 부담 없이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공짜란 소리였다.

하나같이 비싸기 그지없는 요리들.

이곳의 요리가 하나같이 평범한 맛이라고는 하나, 저것들은 그 평범한 맛만 나더라도 그야말로 고급 요리들이었다.

당진산의 두 눈이 빛났다.

"어서들 드시지요."

동 총관의 말에 당진산이 젓가락을 들려다가 멈칫했다.

"아, 교관님부터 드시지요."

그 말에 생도들의 시선이 한설빙에게 향했다.

어서 드시라는 눈빛이다.

그녀가 먹어야 자신들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간절함.

"이것, 참."

고급스러운 요리가 많이 나와서 놀라기는 했지만, 한설빙이 이 정도는 사줄 능력은 있었다.

그간 모아온 돈도 제법이었으니.

예상을 벗어난 수준에 살짝 놀랐었을 뿐이다.

생도들의 재촉 어린 눈빛에 한설빙이 젓가락을 들었다.

그녀의 젓가락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동파육이었다.

사실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음식이었다.

젓가락이 동파육의 고기를 누르자 부드럽게 갈라지면서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대로 한 점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생도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찰나.

턱.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손이 한설빙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동 총관은 깜짝 놀랐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사람 하나가 불쑥 나타난 탓이다.

"총관이라 하셨소? 미안한 일인데, 이 일행들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이 음식들 좀 싸주실 수 있겠소?"

그리고 동 총관의 귀에 들리는 말소리.

안 될 말을 하고 있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희 객잔을 음식을 따로 싸드리지 않습니다. 객잔 내에서만 드셔야 합니다. 헌데 누구신지··· 이 손님들과 일행이십니까?"

그제야 생도들이 정신을 차렸다.

"하 교관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진산이 원망 어린 얼굴로 말했다.

"말한 대로다. 모두 따라와라."

단호한 말.

그 기세를 느꼈음인가. 생도들은 별다른 말 없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무백은 품에서 금자를 꺼내 동 총관에게 건넸다.

"애써 준비한 음식인데 미안하게 됐소."

갑작스러운 상황에 총관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사이 하무백은 일행을 이끌고 객잔을 떠났다.

하무백의 뒤를 따르며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객잔을 쳐다보는 생도들.

하무백인들 어찌 그 기색을 모를까.

해서 그들을 이끌고 한 곳으로 향했다.

점심때 조 숙수에게 들은 객잔 중 하나였다.

"어어······."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데리고 나온 하무백이 향한 곳이 객잔이라니.

"저, 이곳에 오실 거였으면 아까 거기서 그냥 먹는 게······."

당진산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음식부터 시켜라. 진산. 아까 거기에 있던 거 전부 시켜도 된다."

하무백의 말에 당진산은 일단 음식을 주문했다. 불도장은 별 기대 없이 꺼내 봤는데, 마침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넓은 식탁이 금세 음식으로 가득 찼다.

"일단 먹자."

하무백의 말에 다들 젓가락을 들었다.

하무백은 이미 가까운 곳에 있는 불도장을 덜어서 먹고 있었고.

한설빙도 어느새 동파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생도들도 젓가락을 움직였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씩 집어 입에 가져가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마, 마, 맛있어!"

"어떻게 이런 맛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

하설란은 활짝 웃으며 오물오물 음식을 씹고 있었다. 젓가락은 연신 음식을 향해 움직였다.

"히야. 여기 장난 아닌데요? 담룡북각만 주구장창 가시는 교관님이 이런 곳을 어찌 아셨데요?"

당진산이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월룡객잔의 음식을 먹지 못한 아쉬움 따위는 사라지는 맛이었다.

"저의 맛집 목록에도 없는 객잔인데요, 여긴."

사실 이곳은 외양이 그리 맛있어 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요리라니.

"뭐, 나름의 방법이 있다."

하무백이 음식을 한 점 입으로 가져가면서 담담히 말했다.

솔직히 하무백도 침착한 척하고 있어서 그렇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이런 맛의 음식이라니.

당진산 녀석이 가끔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는 행동이 살짝 이해되려 했다.

상당히 즐거웠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한 하무백이 입을 열었다.

"월룡객잔이나 월룡루. 그곳 음식은 먹지 마라. 앞으로. 절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오늘 점심때, 나도 그곳에서 식사했었는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있는 듯했다. 아마도 독(毒)의한 종류 같은데······."

이어진 말에 생도들의 젓가락이 멈췄다.

독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