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잡았다
객잔 최상층의 특실.
당분간 당지연이 머물기로 한 방이다.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당지연.
하무백은 자신의 내공으로 그 기운을 살살 건드려, 독 기운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자신의 혀에 모인 독 기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루 내지 이틀이라고 했었지? 이 정도면 하루 정도겠네.'
객잔에 도착했을 때 식사는 배불리 마쳤다.
용변도 마쳤고.
이 정도면 하루 꼬박 아무것도 안 하고 혀의 독 기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 독은 신기한 녀석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전신을 골고루 순환하는 선천진기.
그것을 아주 미세하게 야금야금 흡수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흡수한 선천진기를 기반으로 독 기운이 조금씩 커졌다.
과연 하무백의 말대로 좁쌀만큼 커졌고, 점점 더 커지더니 이윽고 쌀알 크기만 해졌다.
그 순간.
미칠 듯한 충동이 뇌리를 지배했다.
"오리구이······."
당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온통 오리구이 생각이었다. 당장 먹고 싶다는 극심한 갈증.
'이것이구나.'
당지연은 침상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을 벗었다.
사라락. 사라락.
옷자락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해가 중천인 시간.
다시 점심때쯤인 듯했다.
그러니 딱 하루가 걸린 셈이다.
하지만 창문은 꼭 닫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에 방은 어두웠다.
방문도 단단히 잠겨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나신이 된 당지연.
어두운 방 안에서 오직 그녀만이 홀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침상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천천히 자하만화독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단전에서 내공이 천천히 흘러나와 사지백해로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인 내공이 혀에 이르러 쌀알만 한 독 기운과 만났다 싶은 순간.
그 독 기운을 완벽하게 둘러쌌다.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것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
여기부터는 당지연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하만화독공의 기운이 천천히 온몸의 혈맥을 휘돌았다.
그렇게 몇 주천을 했을까.
독 기운을 감싼 내공이 한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간 경험이 몇 번 있었던 당지연이었기에 그 내공의 종착지를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발바닥. 용천혈.'
서서히 움직이던 내공이 용천혈에 이르자 천천히 몸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게 흘러나온 기운을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조심스레 띄웠다.
그리고는 항시 가지고 다니는 작은 유리병을 옷가지 사이에서 꺼냈고.
마개를 열고 허공에 띄워 놓은 독 기운을 병 속에 넣었다.
한 방울의 액체로 화해 병에 떨어지는 독 기운.
마개를 닫고 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
독 기운을 배출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오리구이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신기한 독이긴 한데··· 너무 적어."
그랬다.
겨우 한 방울.
이 양은 몇 가지 실험만 하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 방울씩 모으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차라리 그곳에서 음식을 싸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은 허락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 손에 넣은 것부터 알아봐야지."
당지연은 객실 한 곳에 놓인 짐을 풀었다.
그곳에서 갖가지 유리병과 시약들이 나왔다.
당지연은 신중한 얼굴로 독 기운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
슬슬 배가 출출해 질 때였다.
그 즈음 당지연이 맹룡대의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됐어?"
당진산이 가장 먼저 물었다.
"독 기운은 추출해 냈어. 한 방울. 몇 가지 실험을 해봤는데······."
하무백을 비롯한 생도들의 시선이 그녀의 입으로 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내지 못했어. 왜 그런 충동이 일어나는지."
"앵속 같은 것과는 다른 것이오?"
하무백이 조 숙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당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의심을 안 한 것은 아닌데, 그런 마약과는 달라요. 앵속이었다면 맛을 없애 무미로 만들었다고 해도 먹자마자 그 기운을 알았을 거예요."
납득할 수밖에 없는 설명이다.
티끌만 한 기운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어떠한 변화도 감지할 수 없었으니.
"아무래도 특정 독과 특정 독공의 조합 같아요. 그런데··· 이런 특성을 가진 독공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독이 더 필요하겠군요."
하무백의 말에 당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방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부탁드릴 일도 있어요."
당지연의 말에 하무백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내공으로 독 기운을 자극해서 빨리 크기를 키웠다고 하신 거. 다른 사람에게도 가능할까요?"
본인의 몸 안에서 내공을 운용하는 것과 타인의 몸 안에서 운용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난이도가 몇 배는 어려워진다.
당지연은 그것을 묻고 있었다.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왜 그러시오?"
"독 기운을 추출할 수 있을 만큼 커지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요. 기운이 커지기만 하루를 기다렸으니."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해줄 수 있을 듯하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그렇게 그날 저녁도 정해졌다.
세 사람은 다시 월룡객잔으로 향했다.
각자 음식을 먹고 돌아온 후, 하무백은 당지연의 등에 손을 대고는 내공을 운용했다.
그렇게 독 기운을 쌀알 크기로 키워주고, 하무백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당지연은 음식 충동을 이겨내고, 자신의 객실로 들어가 독 기운을 추출했다.
"이러면 하루에 세 방울 정도 모을 수 있으려나?"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월룡각에서 해결했다.
그들의 특이한 행보는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단안상단도 세 사람을 주시했고, 개방의 시선도 그들에게 따라 붙었다.
***
"흐음. 거지들의 감시가 좀 느슨해졌군. 이거 고마워해야 하나?"
형의천이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독안이 빛났다.
자신 역시 알아볼 만큼은 알아보았으니, 슬슬 움직여야 했다.
벽력개가 무창에 있는 것이 걸렸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이 직접 움직일 것이 아니었기에.
상단의 수하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교에서 움직여 줄 터이니.'
애초에 교와의 거래였다.
자신은 익히지 못하는 세가의 무공.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교에서도 하무백이 있는 무창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으나.
어쩌겠는가.
십 년이 다 되도록 구하지를 못하고 있으니.
더군다나 자신은 교의 잠혼독의 개발까지 맡아 하고 있지 않은가.
허무호연심결(虛無治然心決).
팔십 일식은하환상검법(八十一式銀河幻像劍法).
단목세가의 비전 중의 비전 무공이다.
세가의 역사 속에서도 대성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성한 이들은 천하제일로 불렸다.
대성만 한다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 무공.
애초에 단목세가주의 조카딸과 결혼한 이유도 그 무공을 얻기 위해서였다.
외인에 방계인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 거란 것은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자질이라면 그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당시 단목세가주였던 단목천승.
그는 자신의 재능에 기꺼워 하며 자신을 아꼈다.
외인에 방계인 자신에게 단목세가의 절기를 아낌없이 베풀었다.
저 두 개만 빼고.
은하유성검을 대성하고, 일원호연심법을 극성에 이르도록 익혔음에도 단목천승은 아직 때가 아니라 했다.
성정을 더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빠른 길을 택했다.
혈교와 손을 잡은 것이다.
비급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았다.
위치를 알 수 없는 단목세가의 비고, 그곳.
"벽력개만 아니었어도······."
그럴 줄 알고 그를 다른 곳으로 꾀어냈었는데.
최후의 순간 나타난 벽력개 때문에 그는 단목천승에게 비고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도망쳐야 했다.
분노한 벽력개는 무서웠으니.
그래서 스스로 한쪽 눈을 파냈다.
그리고 목에도 상처를 냈다. 목소리를 바꾸기 위해.
인상을 알아보지 못하게 일부러 살을 찌웠다.
이름도 바꿨다.
그렇게 개방 거지새끼들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한 번만 손을 잡고 관계를 끝내려던 혈교에 들어갔다.
개방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야 했고, 비고의 위치를 얻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혈공을 익히지는 않았다.
그러면 허무호연심결을 익힐 수가 없으니.
대신 스스로의 내공에 금제를 가했다.
혹시라도 모를 누군가가 단목세가의 내공을 알아볼 것을 대비해서.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사는 것 자체가 너무 답답하고 괴로웠다.
초절정의 무공으로 천하를 오시하던 자신이, 이제는 뒤룩뒤룩 살찐 돼지가 되어 계단조차 마음대로 오르지 못하는 신세였으니.
물론 내공의 금제를 풀면 된다.
허나 그럴 수가 없었다.
개방 놈들의 눈은 매서웠으니까.
***
"흐음. 무창이라. 내키지 않는걸."
노인이 인상을 쓰고는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하무백 그 괴물이 따리를 틀고 있는 곳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이니.
허나 그놈의 요구였다.
혈교 부흥의 첫 번째 열쇠가 될 물건, 잠혼독.
혈교의 비서에만 일부 남아있고, 제작법 대부분이 소실된 비전 중의 비전.
그것을 재현해 내는 일을 맡은 이가 형의천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을 하고 있는 참이다.
기실 이전에 한창 정파와 전쟁을 치르던 중 놈과 계약한 것이 남아 있었다.
그놈 덕에 정파의 한 축이던 단목세가를 멸문시켰다.
그런데 약속했던 대가를 아직 주지 못했다.
이번의 그의 요구도 그 대가에 관한 것이었으니.
하무백을 이유로 마냥 거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하무백 놈은 혈공과 마공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노인은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하오문에 있던 십로가 결국 그 괴물에게 걸려서 소식이 끊겼으니.
죽었음이 틀림없다.
무창에 섣불리 들어 갔다가는 자신 역시 그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쯧. 그놈들을 써야하나?"
혈공이되 혈공이 아닌 무공.
지난 전쟁의 패배 이후 은밀히 숨어서 절치부심하며 만든 무공이다.
혈교가 사라진 세상에서 혈교도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무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무공을 창안하는 데도 형의천, 그의 도움이 컸다.
무공에 대한 재능만큼은 무서우리만큼 뛰어난 이였다.
결국 노인은 진혈공(眞血功)이라 이름 붙인 새로운 혈공을 익힌 이들 스물을 무창에 들여보낼 수 밖에 없었다.
무창성의 성문이 닫히기 직전.
삼삼오오 짝을 지은 이들이 성문을 들어섰다.
그들은 각기 다른 길로 흩어졌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곳의 담장을 넘기로 약조하고.
***
어둠이 내릴 즈음.
하설란의 기감 수련이 시작된다.
아무래도 움직임이 많은 낮보다는 조용한 밤에 기감 하나하나를 파악하는 것이 헷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밤의 기감에 익숙해지면, 낮의 기감으로 단계를 올릴 생각이었다.
하설란의 기감이 무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어둠이 내린 무창은 늘 그렇듯이 고요했다.
월룡객잔과 월룡루 주변은 여전히 사람이 북적거렸다.
독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곳을 더욱 유심히 살폈으나, 독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낮보다 움직임이 적다뿐이지, 밤에도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오늘은 좀 많은 것 같은데.'
전날에 비해 숫자가 조금 늘었다.
단안상단이 무창에 들어온 후 숫자가 한번 늘었었다.
그런데 오늘 또 늘었다.
사실 밤에는 늘 움직이는 사람만 움직인다.
취객이나 유객을 제외하면, 보통은 직업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기에.
새로이 나타난 스무 개의 기척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여기저기 어지러이 움직이는 듯했지만.
삼삼오오 나뉘어 움직이는 스무 개의 기척은 묘하게 한곳을 향하는 듯했다.
하설란이 두 눈을 뜨고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설란."
가부좌를 틀고 내공 수련 중이던 연하민이 갑작스러운 하설란의 행동에 물음을 던졌다.
"오라버니에게 가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