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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81화 (181/312)

181화. 이거란 말이지?

하설란은 연룡숙을 나와 교관들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었다.

짙은 어둠이 가득했지만 상관없었다.

오라버니라면 아마도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

자신 역시 오라버니의 기척을 느낄 수 있으니, 그 경지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오라버니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교관 숙소로 향하다 보니 익숙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늦은 밤에 갑자기 무슨 일이냐?"

"오라버니!"

예상대로였다.

교관 숙소로 가는 길목의 가장 어두운 곳.

그곳에서 하무백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감 수련 중에 이상한 걸 느껴서요."

하설란이 다급히 말했다.

그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설란도.

하무백이야 항상 무창 전역에 기감을 펼쳐 두고 있기에 금세 알아차렸지만.

아직 하설란에게는 무리인 일이었다.

기감의 영역은 하무백 이상으로 넓었으나, 그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해 낼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기감을 최소화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그만큼의 범위를 확장한다.

무창 전역으로 확장하는 것은 수련을 할 때뿐.

마침 그때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다.

"운뢰의 집으로 오늘 처음 기척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무림인 같은데."

하무백이 하설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느꼈구나. 안 그래도 나도 신경 써서 살피던 중이었다."

하무백의 말에 하설란이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는 뻔했다.

하무백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제 가 봐야지."

그 말에 안도의 표정이 떠오르는 하설란의 얼굴.

하무백은 그런 동생을 향해 한번 웃어주고는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하무백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단목운뢰의 집 주변에 스무 명의 사람이 모여 들었다.

각자의 용건으로 길을 지나가던 사람의 행색으로 모인 이들.

어느새 그들은 복면을 쓰고 야행복으로 갈아입었다.

짙은 어둠이 그들을 숨겨 주었기에, 단목운뢰의 집을 둘러쌀 수 있었다.

"여인 하나와 어린 아이 하나. 이렇게 둘만 있는 집이다."

스무 명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목표는 둘 모두다. 숨만 붙여서 데리고 무창을 빠져 나간다."

이어진 명령에 열아홉의 두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숨만 붙여 놓으면 되는 겁니까?"

"말을 듣고, 대답을 할 수 있어야지. 알아낼 것이 있는모양이니."

돌아온 우두머리의 대답.

"그러면······."

뒷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우두머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빨리 끝내서 시간이 남는다면, 상관없다."

서늘하던 그들의 눈빛에 또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욕정.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들.

천천히 담장을 향해 움직이려 할 때.

"뭐가 상관없는 건지, 나도 알고 싶군."

그들 사이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

"이거란 말이지?"

청년이 눈앞의 유리병을 들어 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교주님."

그 앞의 노인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잠혼독이라······."

교주라 불린 청년은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육로(六老)에게 들었던 잠혼독의 내용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독이 있었다면 지난 전쟁에서 패하지도 말았어야 했고, 자신의 할아버지 또한 그리 명을 달리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전대 혈교 교주 개홍천의 손자이자, 유일한 혈손 개세악.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곳에 숨어 살고 있는 지금, 잠혼독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신멸공이라는 것을 연구하던 십로도 죽은 듯했고.

개세악은 솔직히 혈교의 부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개세악의 복잡한 시선을 읽었음인가.

눈앞의 노인, 혈교십로 중 일로(一老)가 입을 열었다.

"잠혼독은 혈신의 비전 중의 비전이었습니다. 이미 지난 전쟁 그보다 훨씬 이전에 명맥이 끊긴 비전입니다. 잠혼독만 있었어도, 혈교가 이리 참담한 패배를 당하는 일을 없었을 것입니다."

유리병을 바라보던 개세악의 시선이 일로에게로 향했다.

"육로의 전언으로는 이게 절반 정도 완성된 것이라 했습니다. 한번 시험해 보시죠."

일로의 말에 개세악은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하지. 가보자."

개세악이 걸음을 옮겼다.

일로가 뒤에서 공손히 따랐다.

미로와 같은 통로. 한 점의 빛도 없이 횃불과 야광주로만 통로를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뇌옥이었다.

정천맹 봉마단의 무복을 입은 이들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뇌옥에 갇혀 있었다.

간수로 보이는 무인들이 냉엄한 눈빛으로 그들을 감시하다가 개세악을 보자마자 오체투지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혈신강림 혈신천하!"

개세악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일로의 지시에 간수 중 몇몇이 뇌옥에 갇힌 이들 중 네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을 이끌고 도착한 곳.

거대한 투기장 같은 곳이었다.

이곳도 천장은 바위로 막혀 있었고, 횃불로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투기장에 네 사람을 몰아넣고, 일로가 개세악에게 유리병을 건네 받았다.

"숨을 멈추십시오. 교주님."

그리고 투기장 안으로 들어선 일로가 유리병의 마개를 열고는 네 사람에게 잠혼독을 뿌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독을 흡입한 네 사람.

이미 삶을 포기한 듯 눈에 초점조차 없는 이들이었는데.

독을 흡입한 후 달라졌다.

눈빛이 돌아오는가 싶더니, 흉폭하게 변했고, 이내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했다.

그리고 네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 들었다.

이후 펼쳐진 끔찍한 모습.

개세악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쓰러진 투기장을 뒤로 하고 자신의 거처로 향하는 개세악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완성의 잠혼독이 저 정도라면··· 완성된 잠혼독이 있었다면 분명 그리 호락호락 패하지는 않았겠군."

그 중얼거림을 들었을까.

일로가 말했다.

"천하는 혈교의 발 아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혈신천하를 열 수 있었겠지요."

당당한 그의 말.

'혈신천하라······.'

혈교십로의 생존자 넷이 자신을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는 그 이유조차 몰랐다.

혈교주의 손자이자, 소교주의 아들로 호의호식하던 시절.

그는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년이었다.

그런 아이의 세상이 어느 날 깨졌다.

그날 이후로 하루하루 지옥 속에서 자랐다.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단지 할아버지가 혈교의 교주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네 노인은 늘 자신에게 혈교 부활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세뇌하듯 말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혈교가 어찌 되든.

혈교가 멸망할 때,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다.

그저 이런 곳에서 숨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짜증나고 화가 났을 뿐.

혈교가 부활해야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일로의 말.

그 말 때문에 네 노인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려 한 것뿐이었다.

애초에 혈교에서 모시는 혈신(血神)이 정말 존재한다면, 자신들이 이곳에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니까.

그러나.

개세악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런 독이 완성된다면, 어쩌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흥미가 생겼다.

더불어 자신을 이곳에 처박히게 만든 원흉.

그 원수에게 앙갚음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무백.'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인물.

그러나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일로에게 들은 이름이다.

자신의 원수이자, 혈교의 원수.

어쩌면 그놈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갑작스레 들린 물음.

자신들 가운데 누군가가 숨어 들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스무 명의 습격자들이 깜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홀로 남은 사내.

하무백.

그가 스무 명의 사내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무극명륜안을 발동한 눈.

그들의 내공의 연원을 살펴본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새끼들. 너희들 뭐냐?"

그럴 수밖에.

혈교의 혈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상적인 무공도 아니었다.

정파의 무공도, 사파의 무공도 아니었으니.

그러면 남는 것은 혈공과 마공밖에 없는데, 둘 다 아니었다.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내공을 익힌 이들.

그랬기에 수상했다.

최근 들어 겪은 바도 있었고.

"마교냐?"

하무백의 물음.

그들은 미동도 없었다.

아니, 사방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과 싸워야 할지, 아니면 원래의 목표대로 움직여야 할지, 그도 아니면 도주해야 할지.

우두머리의 머릿속은 지금 바쁘게 돌아갔다.

무창으로 들어오기 전, 명령자의 당부를 떠올린 것이다.

'하무백이라는 놈을 만나면 무조건 흩어져서 도주해라.'

그와 동시에 받아들었던 용모파기.

눈앞의 사내는 그 그림 속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혈교냐?"

그때 다시 들린 물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신.

우두머리의 입이 열렸다.

"육계다! 행하라!"

그와 동시에 그가 몸을 날렸다.

목표는 하무백.

그는 쌍검을 뽑아 하무백의 목을 노리고는 휘둘렀다.

너무도 간단히 상대의 검을 피한 하무백.

그 틈에 남은 열아홉은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모두 열아홉 방향.

하무백에게 달려든 우두머리는 미끼였다.

"이새끼가 재미있는 짓을······."

하무백의 말이 멎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든 놈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이다.

쌍검 중 자신을 향해 날아왔던 것은 하나.

다른 하나의 검은 공격을 한 놈의 오른쪽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황급히 놈에게 다가가 입을 벌렸다.

독단을 깨물었는지 입안은 이미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자신의 공격으로 하무백의 시선을 한번 돌렸다.

그리고 열아홉이 탈출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하무백의 시선을 다시 한번 돌렸다.

그 틈에 우두머리는 자결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무백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눈앞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놈을 바라보았다.

이미 죽음을 맞은 녀석.

지난 전쟁 이후 이런 상황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런 필사적인 수법을 쓰는 집단은 두 곳이 있었다.

마교와 혈교, 혈교와 마교.

"무창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군."

도주가 어렵다 판단하자마자 자결을 하는 결단이라.

그 무언가에 단목운뢰의 집안도 엮인 것 같았다.

이들이 모여서 노리던 곳이 단목운뢰의 집이었으니.

"일단 도망간 놈들부터."

열아홉 방향이다.

아무리 하무백이라도 전부 잡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릴 일이다.

게다가 쫓았을 때의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시도를 해야 했다.

하무백은 기감을 최대한 넓게 퍼뜨리고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능광만리행.

정말로 찰나의 싸움이었기에, 하무백은 경공을 최대 속력으로 펼쳤다.

잠시 후.

하무백이 쓴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졌군."

무창 밖 북서쪽의 야트막한 초원.

쓰러져 있는 시체가 하무백의 눈앞에 있었다.

이놈이 가장 멀리 온 놈이자, 마지막 놈이다.

결국 하무백은 열아홉 모두 놓쳤다.

아니, 따라잡았으나 그때는 이미 자결을 한 후였다.

찰나의 싸움에서 단 한 놈도 잡지 못했다.

결국 이놈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혈교 아니면 마교.

두 곳인 것은 확실했으나, 둘 중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단목운뢰의 집을 노린 이유도 모르는 상황.

"어르신께 여쭤보아야겠어."

이놈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개방도들의 시선을 벗어나서 단목운뢰의 집 근처에 모였으니까.

이런 수준의 무인들이 단목운뢰의 집을 노릴 이유.

아마도 벽력개라면 알고 있을 터였다.

하무백이 발을 가볍게 구르는 순간, 그 신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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