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82화 (182/312)

182화. 그놈 짓인가

벽력개의 위치를 찾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무창 전체가 하무백의 기감 아래에 있으니, 그의 기척을 찾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항시 단목운뢰의 집 근처에 머물던 그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무창 외곽의 관제묘.

그곳에서 벽력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여러 사람의 기척도 함께였다.

오래되고 낡은 관제묘는 보통 개방도들의 집결지였다.

'거지들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싶더니.'

하필이면 벽력개가 잠시 자리를 비워, 단목운뢰의 집에 대한 개방의 보호가 느슨해진 틈.

그들은 어찌 이렇게 절묘한 순간을 노려서 모일 수 있었을까.

혈교인지 마교인지 모를 놈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하무백의 기감은 항시 무창 전체를 지켜보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하설란의 기감 수련까지 이뤄지고 있었으니.

벽력개와 개방의 보호가 허술해졌다 해서, 단목운뢰의 집이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었다.

'놈들은 그것을 몰랐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하무백은 점점 관제묘에 가까워졌다.

***

"하무백이라는 놈인가."

형의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개방의 움직임이 무창 외곽 쪽으로 빠지는 것을 확인하고 오늘 일을 시행하도록 은밀히 지시했건만.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나버렸다.

부하 스무 명의 기척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거대한 기운.

형의천이 피곤한 얼굴로 윤의(輪橋) 뒤로 고개를 젖혔다.

하단전의 내공을 금제한 탓에, 기감으로 기척을 읽는 것은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일이 일이었던 만큼 형의천은 전력을 다해 기감을 펼쳐 상황을 살폈다.

중단전만을 이용했기에, 기감을 펼칠 수는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그 덕에 피로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한 것이다.

혈교제일대적.

소휘웅이 아니라 하무백이란 자라고 했다.

과연 그런 평가를 받을 만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이들 스물을 순식간에 처리했으니.

기감으로 느낀 그들의 기척으로 보아, 아무래도 육계를 시행해 대부분 자결한 것일 테지만.

열아홉 곳으로 흩어진 이들을 모두 순식간에 따라잡은 그 엄청난 속도는······.

"무창.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픈 곳이군. 여화, 용케도 이런 곳에 숨었어."

형의천이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하단전이 있는 곳.

어쩌면 금제를 풀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흐음······."

갑자기 느껴지는 두통에 형의천은 짧은 신음을 흘리고는 윤의 옆에 걸어둔 종을 세차게 흔들었다.

딸랑딸랑.

귀를 자극하는 종소리가 울리자 방문이 열리며 시종과 시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피곤하다. 일단 침상으로 옮겨라."

형의천의 명령에 시비 두 사람이 윤의의 등받이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힘껏 밀었다.

바퀴가 천천히 돌아가며 윤의가 움직였다.

침상 옆으로 윤의를 옮기자 시종 네 사람이 형의천을 안아 들어 그를 침상으로 옮겼다.

침상에 등을 기대고 누운 형의천이 물끄러미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여섯 사람.

"오늘은 너와 너로 하지."

형의천이 가리킨 두 사람만 고개를 숙이고 남고 나머지는 모두 방을 나갔다.

등잔의 불을 끄고 시녀 두 사람이 옷을 벗었다.

사라락. 사라락.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울린 후.

나삼 침의만을 걸친 두 여인이 침상으로 올라가 형의천의 옷을 벗긴 후 그의 품에 안겼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 아래, 달짝한 신음만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

"월룡루에 기녀를 품으러 가는 사람보다 그곳의 요리를 먹으러 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벽력개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어르신. 그런데 기녀 없이 요리만 먹을 수는 없는 곳인지라······. 게다가 요리를 먹고 나면 대부분 음심이 동하는지 꼭 기녀를 끼고 있습니다."

한 거지의 보고에 벽력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월룡객잔과 월룡루의 음식에 무슨 수작을 부렸다고는 예상이 갔다.

헌데 방금 이야기를 들으니, 이건 요리에 음약까지 섞어 둔 것 같지 않은가.

"흑도나 사파 놈들이나 할 짓을······."

벽력개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월룡객잔에 방문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요리를 먹은 이들의 중독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어떤 이는 삼시세끼를 모두 월룡객잔에서 먹지 않으면 버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거지의 보고.

이 정도면 사람들도 이상한 것을 눈치챌 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월룡객잔은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어르신도 월룡객잔 때문에 골치가 아픈 모양이군요."

그때 갑자기 들린 익숙한 목소리.

벽력개는 당황하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을 아는 탓이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하 교관이 이 누추한 곳에는 어인 일인가?"

벽력개가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뭣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하무백이 벽력개 맞은편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벽력개가 눈짓으로 수하들을 모두 물렸다.

거지들 역시 하무백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빠른 속도로 관제묘 밖으로 사라졌다.

하무백이 자신과 벽력개가 있는 공간에 기막을 둘러쳤다.

"무얼 물어보려는 겐가? 혹시 월룡객잔에 관한 일인가? 자네도 다녀갔다 들었네만."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단목세가에 대한 겁니다."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에 벽력개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갑자기 단목세가는 왜.

혹시.

"운뢰의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조금 전에 스무 놈 정도가 담을 넘으려 했죠."

돌아온 대답에 벽력개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어떤 육시할 놈들이!!"

벽력개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그의 몸에서 무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벽력개의 몸이 잘게 떨렸다.

하필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사달이라니.

마치 노린 것 같지 않은가.

가뜩이나 단안상단 녀석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벽력개가 흠칫했다.

단안상단으로 개방을 정신없게 만들고 그 틈에 단목운뢰의 집에 습격자가 나타났다.

어쩌면 정말 노린 것일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광회천이라면 이런 수를 쓸 수 있으니.

단목세가의 멸문도 결국은 놈의 그런 수에 놀아난 것 때문 아니던가.

"광회천. 그놈 짓인가······."

벽력개가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잘 처리했으니까, 일단 앉으셔서 저도 알아듣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만."

하무백이 그런 벽력개를 향해 말했다. 그 말에 신색을 회복한 벽력개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흥분했군. 그리고 고맙네. 내가 신경을 못 쓴 사이에 단목가를 지켜줘서."

"뭐, 별일은 아니었어요. 운뢰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놈들이 습격할 이유가 있는 겁니까?"

"습격한 놈들은 어떤 놈들이었나?"

하무백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 벽력개.

그럴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무백도 순순히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모두 잡히기 전에 자결했으니. 다만 둘 중 하나겠지요. 혈교 아니면 마교."

벽력개가 인상을 썼다.

"혈교일 걸세."

단정하는 벽력개.

"음. 그럼 혈교 놈들이 혈공에 무슨 수작을 부린 모양입니다. 혈공이 느껴지지 않는 녀석들이었거든요."

하무백은 벽력개의 단언을 믿었다. 현재 시점에서 그는 단목세가의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였으니까.

"전에 이야기했었지? 단목세가에는 만일을 대비한 비고가 있다고."

하무백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단목운혜의 병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벽력개가 저간의 사정을 간단히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단목세가 최강의 비전 무공 역시 그 비고에 있다네. 그 비고를 노리는 빌어먹을 새끼가 있고."

"광회천이라는 놈인 모양이군요."

"맞네. 오체분시를 몇 번을 해도 부족할 새끼지."

벽력개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고작 무공을 얻겠다고 세가를 배신하여 멸문케 했으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천승이의 조카사위였던 새끼일세. 혈교와 손을 잡고 배신을 했던 놈이니. 지금 단목가를 노린다면 그놈과 혈교밖에 없지."

하무백은 벽력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중원 천하를 샅샅이 뒤져도 꼬리조차 잡지를 못했는데. 이렇게 그 흔적이 나타났으니. 그야말로 등하불명이로군. 아무래도 단안상단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야."

벽력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수밖에.

단안상단은 장사에 자리한 상단이다.

그리고 단목세가의 근거지 역시 장사.

배신자 새끼가 장사에 숨어 있었다는 생각에 벽력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가장 샅샅이 뒤진 곳이 장사 아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단안상단이 수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의 본단 장원이 자리한 곳이 단목세가의 터였으니.

하지만 단주인 형의천을 떠올린 그는 이내 자신의 가정을 부정했다.

외모와 목소리가 전혀 다른데다가, 형의천에게 내공이란 없었으니까.

적어도 그가 단목세가 최고의 무공 천재였던 광회천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놈이 이제 비고를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그동안 움막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지내오던 이들 아닌가. 그런 집안을 스무 명이나 되는 무인이 노릴 이유라고는······. 아무래도 나보다 여화가 훨씬 현명했구만 그래. 여화는 아직도 광회천 그놈을 경계하고 있는 거였어."

벽력개가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그렇게 도와준다 해도 한사코 거부하고 빈민가의 움막에서 살던 여화였다.

이유가 있었다.

벽력개가 광회천을 찾지 못했듯이, 광회천 또한 단목가를 찾지 못했으리라.

벽력개는 그리 생각했다.

"그러면 비고를 찾지 않은 것도······."

하무백의 말에 벽력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겠지. 기껏 무창에 자리를 잡았으면서도 찾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군."

하무백이 벽력개를 쳐다보았다.

"기막은 펼쳤겠지?"

"거지들을 물린 순간부터 줄곧 펼치고 있었습니다."

"비고가 이곳 무창에 있다네. 물론 나는 위치만 알고 있을 뿐이지. 열쇠의 소재는 여화만 알고 있어."

[그 비고의 위치는······.]

이어서 벽력개가 전음으로 전해주는 비고의 위치.

하무백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벽력개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 사실을 왜 자신에게 알려주냐는 의문의 눈빛.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지 않은가. 해서 믿을 수 있는 이에게 전해 놓은 걸세."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죠. 그리고, 제가 먹고 튀면 어쩌려고 그리 쉬이 믿는 겁니까?"

하무백의 말에 벽력개가 웃었다.

"클클클. 이 세상에 자네가 욕심을 낼 무공이 있을까. 그리고 아까 자네도 말하지 않았던가. 운뢰를 가르치고 있다고."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광회천. 그놈은 보통 놈이 아니야. 천승이의 평가를 빌리자면, 단목세가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니.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말일세."

"흠.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무공인가 보군요?"

"단목세가에서 천하제일인을 탄생시켰던 무공일세."

무림사에 딱히 관심이 없는 하무백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천하제일인을 탄생시킨 무공이라 한들, 익히는 이가 중요했음이니.

"아무튼 결국 혈교 놈들이란 거로군요."

하무백의 두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지난번의 마교 놈들에 이어 이번에는 혈교다.

무창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건만 놈들이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하무백은 무창 전체에 펼쳐 둔 기감에 조금 더 집중했다.

광회천이라는 놈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단목세가의 무공을 익혔으나, 혈교에 붙은 놈.'

단목세가는 이미 멸문한 세가였기에, 그 무공도 실전되었다.

적자인 단목운뢰마저 가전무공을 모르고 있음이니.

그래도 하무백은 지난 전쟁에서 단목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한 적이 있어, 그 내공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이제 무창에 단목세가의 내공을 익힌 놈이 있는지만 찾으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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