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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84화 (184/312)

184화. 어렵네

어두운 밤.

관제묘에서 개방도들에게 명령을 내린 벽력개가 단목가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무백은 이미 돌아간 뒤였다.

"당분간은 이곳이 내 집이겠구만."

어느 집 담장 앞에 거적을 깔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누더기 진 천을 덮고 적당한 짚 뭉치를 만들어 베고 누웠다.

하늘의 별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어두운 얼굴로 별을 보던 벽력개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기감을 단목가 주변에 펼쳐둔 채로.

다음 날 아침.

주변에 활기가 가득했다.

"하암."

하품하며 눈을 뜨고 발견한 거적 앞에 동전 몇 문.

본격적으로 동냥도 하지 않고 그저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인데, 벌써 이렇다니.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 덕분에 거리는 생동감이 넘쳤다.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벽력개.

깨진 바가지로 먹을 것을 동냥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자니.

노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등짐장사들도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단목가 주변의 거리에 작은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곳이 아니었다.

조용한 거리였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형성된 시장.

[이 노점상들 어디서 온 이들인지 살펴라.]

벽력개는 순간적으로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주변에서 동냥하는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노점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거리였으니.

그런데 노점이 들어섰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후가 반대였다.

보통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노점이 들어서기 마련인데.

'광회천. 네놈 짓이더냐?'

광회천.

그놈이 단안상단에 숨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이 모습이 더욱 기이하게 보였다.

단안상단을 이용해 광회천이 수작을 부린 것으로 보인 것이다.

단목가를 감시하기 위해 상인을 동원한 것.

어쩌면 노점에서 물건을 사는 저 아낙네 또한 광회천이 단목가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나를 의심하기 시작하니 단목가 주변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당분간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듯했다.

해가 떠올라 벽력개가 자리한 곳에도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철이었다면 그늘을 찾아 피했겠지만, 지금은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

오히려 따뜻하니 딱 좋았다.

"클클. 자리를 잘 잡았어."

그렇게 웃음 지으며 동냥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찬밥에 온갖 음식이 뒤섞여 있었다.

노점상이 많아지니 음식 장사하는 이들도 모여들고, 덕분에 동냥 바가지가 아주 풍족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은 벽력개는 손으로 그것들을 천천히 퍼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기감은 날카롭게 곳곳의 노점상들을 살폈다.

***

형의천은 윤의에 앉아 창문을 통해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간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점으로만 보이는 단목가 주변의 모습.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형의천의 손에는 작은 기물이 들려 있었으니.

서역에서 들어온 물건이었다.

멀리 있는 사물을 확대해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물, 천리경.

이 기물 덕에 내공을 금제했음에도 형의천은 단목가의 상황을 대강 살필 수 있었다.

내공으로 안력을 키워 살피는 것만 못해도 말이다.

금제한 하단전의 내공 대신 중단전의 내공을 끌어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젯밤의 여파로 여전히 심장 어름이 욱신거렸으니.

"역시 경계가 심해졌군."

단목일가의 집 근처 곳곳에 거지들이 자리를 잡고 동냥하고 있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얼굴도 있었다.

벽력개.

그때.

최후의 순간 나타나 자신을 패퇴시켰던 인물.

자신을 형의천으로 살게 만든 인물.

어젯밤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건만.

실패했다.

하무백.

그놈 때문에.

천리경을 내려놓은 형의천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여도 커다란 배 때문에 그 아래로는 보이지가 않는다.

정말 둔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한때 자신이 경멸하기까지 했던 모습.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어야 한다니.

"어쩌면 금제를 풀어야 할지도······."

아니, 이제는 금제를 풀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전에 우선.

잠혼독을 사용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룡객잔과 월룡루에서 유의미한 자료들을 모으고 있었기에.

오늘은 일단 잠혼독을 좀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았다.

***

당지연의 고운 이마가 찡그려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 분석했으나, 독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독인 것은 분명했으나.

그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음식 충동을 일으키는 중독성의 독.

어떤 것이 중독을 일으키는지, 어떤 것이 충동을 일으키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어렵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야."

이 독에 들어간 몇 가지 약재를 찾기는 했다. 하지만 전부 그저 그런 것들이었다.

별것 아닌 독들.

정작 핵심적인 것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일단 오늘 아침부터 먹어야지."

당지연은 채비를 하고 객잔을 나섰다.

이 정체불명의 독을 얻기 위해서는 월룡객잔에서 식사를 해야 했으니.

기껏 좋은 객잔의 특실을 잡아놓고, 정작 식사는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니.

당지연은 일단 교룡관의 맹룡대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무백과 한설빙을 만나 월룡객잔에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연무장에 도착하니 동생 놈이 열심히 수련 중이었다.

저놈이 저렇게 사람이 되다니.

이건 그녀로서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저놈을 맹룡대에 보내겠다 했을 때 자신은 반대했었다.

어차피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분명 저 상태로 이 년 뒤 산월마림에 가서 개죽음당할 것이라고.

물론 아버지가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당가의 힘을 사용해야 했으니, 쓸데없는 낭비라 생각한 것이다.

'내가 틀렸네.'

당지연이 피식 웃었다.

그녀가 틀리게 된 원인.

동생 놈의 교관인 하무백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성과는 좀 있습니까?"

하무백의 물음에 당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하무백.

[혹시 혈교의 독도 알고 있습니까?]

그와 동시에 그녀의 귀에 들린 전음.

당지연의 몸이 흠칫 굳었다.

혈교의 독이라니.

갑자기.

그게 왜?

그런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하무백을 바라보는 당지연.

그때 한설빙도 당도했다.

모여서 월룡객잔으로 향하는 것이 이제 이들의 일과나 다름없었기에, 생도들은 힐끔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혈교가 연관된 것 같습니다."

월룡객잔으로 향하며 하무백이 나직이 말했다.

"혈교가요?"

"어젯밤 혈교 놈들 스물이 무창에 숨어들었습니다. 다 잡긴 했지만, 전부 자결을 해서."

하무백이 아쉽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대단하네요. 교관님이 자결을 막지 못했다니."

한설빙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럴 줄은 몰랐다."

하무백의 음성에는 짜증이 실려 있었다.

그중 한 놈만 잡았어도 무언가 더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만으로 혈교와 독이 관련이 있다 할 수 있을까요?'

당지연이 물었다.

"단안상단에 혈교와 내통한 놈이 숨어 있다고 하더군요. 개방에서."

돌아온 하무백의 대답에 당지연은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혈교라······."

기억을 뒤졌다.

특정 독과 특정 독공의 조합까지는 추측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상황.

특정 독공의 후보 중 혈교의 혈공은 빠져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배제한 탓이다.

곰곰이 기억을 뒤지던 당지연.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녀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설마··· 그걸······."

무언가를 떠올린 듯했다.

하무백과 한설빙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저잣거리 가운데 세 사람이 우뚝 선 채 멈췄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죠."

그리 말한 당지연이 근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다루로 들어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은 세 사람.

"기막을 쳤으니, 우리 말을 들을 사람은 없을 거요."

하무백의 말에 당지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가요?"

한설빙이 물었다.

당지연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탓이다.

"아직은 추측이에요. 저도 할아버지께 듣기만 한 거라······."

전대 사천당가주.

독황(毒皇) 당자청.

독에 관해서라면 만박 무불통지라는 인물이다.

정사의 독을 가리지 않고 독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금령탐식혈독공(金靈貪食血毒功)

당지연이 나직이 말했다.

명칭부터 무언가 섬뜩했다.

탐식이라.

"무공이나 독공이라기보다는 술법에 가까운··· 그런 독공이라고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것이라고."

당지연의 안색이 어두웠다.

"처음 듣는 혈공이군요."

하무백의 기세가 무거워졌다.

"그럴 수밖에요. 혈교에서도 실전되었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께."

그 말에 하무백과 한설빙의 두 눈의 의문이 서렸다.

혈교에서도 실전된 독공을 어찌 당자청이 알고 있는지.

그리고 혈교에서 그것이 실전되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 의문을 읽은 것인지 당지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천하에 존재하는 독에 관한 서적과 문헌은 모두 모으신 분이신지라······. 어느 고인의 회고록 같은 것에 나와 있던 내용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사실 할아버지도 반신반의하는 것이었죠."

하무백과 한설빙은 당지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저도 할아버지께 옛날이야기 듣듯이 들은 거예요. 제가 여쭤본 적이 있거든요.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독은 무엇인지."

그때 들은 이야기라면, 아마도 금령탐식혈독공이라는 것이 그 끔찍한 독과도 관련이 있을 터.

어쩌면 자신들이 월룡객잔에서 먹었던 독이 그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식'이라는 말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였다.

월룡객잔의 음식을 먹은 이들이 보인 행동, 그것을 두 글자로 정의한다면 그야말로 탐식이었으니.

"혈교의 강시는 아시죠?"

하무백과 한설빙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이 어찌 그것을 모를까.

정말 지겹도록 겪었는데.

"강시를 만드는 혈공이 있다는 것도 아실 테고요."

그 말에 두 사람은 의외라는 시선으로 당지연을 바라보았다. 어찌 그녀가 그 사실을 알고 있냐는 듯.

"사강시의 이빨에 있는 강시독은 멀쩡한 사람도 강시로 만들죠."

당지연은 혈교의 강시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었다.

"독의 명칭은 몰라요. 다만, 금령탐식혈독공을 이용해 만든 독은 멀쩡한 사람을 강시로 만들고, 그 강시는 끊임없이 모든 것을 먹으려 한다고 했어요. 식강시(食僵屍)라는."

"아무튼 혈교 이 새끼들은······."

하무백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 새끼들은 강시에 미친 놈들인가?

무창에 들어와서 하는 짓이 강시를 만드는 독을 실험하는 것이라니.

거기에 더해 단목세가를 멸문에 이르게 한 배신자 새끼도 섞여 들어와 있었다.

하무백의 몸에서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설빙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갑작스러운 하무백의 모습에 긴장한 것은 당지연 역시 마찬가지.

그녀가 서둘러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 혈공은 사라졌어요."

그 말에 하무백의 살기가 뚝 끊겼다.

이어서 다시 한번 의문 가득한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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