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저 사람은?
하무백은 일단 폭포를 찾았다.
이렇게 냄새가 나는 상태로 다닐 수는 없었다.
개방의 거지가 아니고서야.
수련을 마치면 땀을 씻기 위해 가끔 들리는 폭포였다.
작은 소가 형성되어 있어 몸을 씻기에 아주 좋았다. 적당히 깊은 산이었기에 인적도 드물었고.
한참 씻으니 몸에 살짝 배었던 냄새는 모두 사라졌다.
"옷이 문제로군."
어떻게 해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하무백의 표정이 난감하게 변했다.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기에, 홀가분하게 몸만 나왔던 상황.
갈아입을 옷 따위가 있을 턱이 없었다.
"어쩔 수 없나?"
하무백은 삼매진화를 일으켜 냄새나는 옷을 모두 태워버렸다.
태워버린 독기였다 하나, 아직 독성이 남아 있을 수도 있기에.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독기의 상극은 화기였으니.
이제 완전한 나신의 하무백만이 남았다.
"어떻게 한다······. 이 꼴로 돌아다닐 수는 없는데."
하무백이 주변을 살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쓸 게 없으니 기껏해야 칡덩굴 같은 걸로 칭칭 감는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았다.
그 꼴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더 생각하니 문득 한설빙이 펼치는 빙혼문쇄진이 떠올랐다. 서리안개로 주변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는.
"뭐, 뭐든 가리기만 하면 되니까. 한번 해보지."
한설빙이 운용했던 빙공의 경로와 빙혼문쇄진의 기운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내공을 움직였다.
우우웅.
그러자.
하무백 주변으로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나타나 그를 완전히 가렸다.
한설빙이 봤다면 말도 안 된다고 절규했을 능력을, 하무백은 그저 자신의 나신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네."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하무백.
"그래도 눈에 안 띄는 것에 제일 좋으니, 정말 쉬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달려야겠군."
팡!
땅을 박찬 하무백이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 달렸다.
무공을 익힌 이래로 가장 빠른 속도였다.
정말로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달렸다.
목적지는 교룡관 자신의 숙소.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누구도 자신을 볼 수 없을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야 했다.
무창은 이른 아침 때아닌 질풍이 불었다.
하무백은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서 깔끔한 새 옷을 꺼내 입을 수 있었다.
"옷도 좀 사야겠군."
애초에 단출한 짐을 가지고 왔던 터.
옷이 몇 벌 남지 않았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적당히 장만해야겠다 생각하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하무백이 가장 늦었다.
당지연과 한설빙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눈 아래 피부가 검게 물든 당지연.
보나 마나 어제도 밤을 샌 것이다.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하무백의 물음에 당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액체화된 독에서 어떠한 혈독공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저는 찾았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한설빙과 당지연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어떻게······."
"정말요!!"
믿을 수 없다는 당지연과 깜짝 놀라는 한설빙.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수련하던 생도들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월룡객잔의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일 터. 자연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독이더군요."
하무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간밤의 일을 천천히 풀어냈다.
"그, 그 정도로 먹으면··· 그렇게 된다고요?"
당진산이 마른침을 삼키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겪는 아찔한 경험이었다."
하무백의 말.
그러고 보니 만천금쇄폭뢰 때도 죽을 뻔했었다.
최근 이런 경험을 두 번이나 하게 되다니.
그것도 한 번은 마교, 한 번은 혈교 때문이라.
역시 완전히 뿌리를 뽑아야 할 놈들이다.
바퀴벌레보다 지독하고 잡초보다 질긴 놈들이라 과연 그것이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흙도 그냥 그대로 퍼먹고 싶었다면 정말 뭐든지 눈앞에 있는 것은 다 먹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사람이라도······."
당진산은 기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하무백이 그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뭐라고 했지?"
깜짝 놀란 당진산.
"그, 그, 그, 흙도 그냥 그대로······."
"아니, 마지막에."
"그게 사람이라도······."
하무백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식강시라는 존재.
당진산의 말에서 그 존재의 위험성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신이 그 독의 지독한 충동을 겪어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설령 그것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먹으려 덤벼들지 몰랐다.
그야말로 심령을 제압하려 만든 독이었으니.
"그래서 할아버지가 제일 지독한 독이라 하신 거구나."
당지연이 중얼거렸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당자청이 거기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고서를 쓴 고인 역시 그래서 혈독공의 비서를 없애버렸을 터.
그야말로 천리와 인륜을 거스르는 독이었음이니.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독이었다.
"이 독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면······."
"강호가 큰 혼란에 휩싸이겠네요."
하무백의 중얼거림에 당지연이 대꾸했다.
"응?"
그러다 갑자기 하무백이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썹이 꿈틀하는 순간.
"크아아아악!!!"
"꺄악!!!"
커다란 비명이 멀리서 울려 퍼졌다.
하무백이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한설빙이 그 뒤를 따랐고 이어서 당지연이 몸을 날렸다.
맹룡대 생도들 역시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산월마림에서 익혔던 경공을 전력으로 펼쳐 하무백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의 참상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크아아악!"
한 사내가 하무백에게 목줄이 잡힌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서는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뒤집혀 있었고.
이빨과 입 주위는 붉은 피로 흥건했다.
"으으으······."
"아으······."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
그들의 팔과 다리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한 채 살점이 뜯어져 있었다.
물어뜯긴 곳에서는 쉼 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이게 대체······."
백리평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주변의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그때 연하민이 하무백에게 붙잡힌 이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동정십걸이라던 파락호들 중에 분명······."
땅을 기면서 닭튀김을 달라고 울부짖던 이였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월룡객잔의 음식을 먹었던 모양.
"삼형! 정신 차리시오!"
"아우! 제발!"
그때 허벅지와 팔을 뜯긴 두 남자가 간절한 얼굴로 외쳤다.
저들의 안면도 낯이 익었다.
순서를 무시하려던 동정십걸. 그들 중 두 사람이었다.
하설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무백은 목줄을 쥔 채 무극여의심법의 내공을 붙잡힌 남자의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독기가 반항했으나 이내 길을 열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버둥거림이 멈췄다.
입도 다물고 눈도 감은 채 축 늘어졌다.
허나 하무백은 여전히 그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역시. 머리를 완전히 먹혔군.'
독기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혀에서 시작된 독기의 꼬리가 뇌에 침범해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완전히 먹어 치운 것.
이렇게 되면 방법이 없었다.
독기를 태우면 이 자의 뇌가 모두 타버린다.
정량 식사만으로 독에 중독되어 발현되는 이가 나타났다.
이 자가 특히나 심하게 음식을 탐하긴 했지만, 이런 이가 한둘이 아닐 터.
"아무래도 해독제가 필요할 듯하네요."
하무백이 당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자는요?"
"독이 뇌수에 가득 찼어요. 방법이 없습니다."
하무백의 말에 당지연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제가 좀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이냐!"
그때 팔의 상처를 지혈하던 사내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하무백이 서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그 모습을 보고 동생이라 하고 있는 건가?"
하무백이 도착했을 때.
독에 잠식된 사내는 이 남자의 팔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 그래도······."
하무백의 기세에 남자는 주춤거렸다.
"이미 극악한 독에 완전히 중독되어서 가망이 없는 상태다. 이대로 놓아주면 다시 그렇게 달려들 거야."
"지, 지금은!"
"내가 내공으로 억누르고 있지. 이 손을 놓는 순간 아까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하무백의 말에 사내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어. 선유곡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이어진 하무백의 말.
이윽고.
사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알겠소. 부디 편안히 해주시오."
수긍했다.
그럴 수밖에.
동정십걸, 아니 이제 동정구걸이 될 그들은 이 사내의 모습을 모두 목도했음이니.
거기에 두 사람은 이렇게 당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괴물, 아니 악귀려나.
사람을 악귀로 만드는 독이 있다니 무서운 세상이다.
동정구걸이 물러나려는 찰나, 하무백이 눈짓을 했고.
한설빙이 그들을 막았다.
"무, 무슨 짓이오!"
"일단 당신들도 독에 중독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특히 이놈에게 물린 두 사람."
사강시는 이빨의 강시독으로 사람을 물어뜯어 사강시로 만든다.
이 식강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에 그들을 붙잡은 것이다.
그사이 도망쳤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와 모여들었다.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자리를 좀 옮겨야겠어."
하무백의 말에 한설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도 구경만 하지 말고 좀 도와라."
하무백의 고갯짓에 생도들은 동정구걸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섰다.
남는 세 명은 한설빙과 당지연이 맡았다.
"잘 따라와라."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하무백이 땅을 가볍게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 뒤를 생도들과 한설빙이 따랐다.
물론 맡은 동정구걸의 뒷덜미를 잡고서는.
하설란이 조금 힘겨워 보였으나, 한설빙이 도와주어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무창을 벗어난 허허벌판에 도착했다.
동정구걸을 내려놓았다.
주변을 둘러본 한설빙은 품에서 쇠막대를 꺼내 바로 진법을 펼쳤다.
빙혼문쇄진의 서리안개가 주변을 완벽히 장악했다.
"이건?"
당지연은 빙혼문쇄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독뿐만이 아니라 강호의 여러 가지에 대해 나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진법이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이놈부터 살펴봅시다."
아까 하려다 못 한 것.
하무백의 말에 당지연이 이미 식강시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내의 맥문을 잡고 내부를 살폈다.
이내 고개를 젓는 당지연.
"하 교관님 말씀대로네요. 뇌는 물론이고 골수까지 이미 독기가 완벽하게 장악했어요. 사람이 아니네요."
그러더니 품에서 작은 단도와 작은 자기병을 꺼냈다.
그리고 사내의 팔을 그대로 그어서는 자기병에 피를 받았다.
"준비한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놈을 계속 제압해 두실 수 있을까요?"
당지연의 물음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러면 도구들을 좀 챙겨와야겠어요."
당지연의 말에 한설빙이 그녀를 진 밖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하무백은.
콱. 콰직. 콰지직.
"크어어억. 크억. 크어."
식강시의 어깨, 팔꿈치, 고관절, 무릎을 박살 냈다.
그리고는 적당히 던졌다.
땅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사내.
그러나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목을 세차게 내저으며 무언가를 갈구하듯 계속 입을 벌릴 뿐.
저 상태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먹으려고만 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동정구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었다.
"너희도 저렇게 되고 싶진 않겠지?"
하무백의 물음에 세차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홉 사람.
하무백이 손을 까딱하자 군말 없이 다가왔다.
그런 그들의 맥문을 쥐고 한 명, 한 명 내부를 살폈다.
여덟 사람은 혀 아래에 독 기운이 쌀알 크기 이상으로 뭉쳐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은?"
하무백의 물음에 여덟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한 시진쯤 전에 월룡객잔을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충동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곳의 독이 든 요리를 먹었으니.
다만 한 사람.
"그, 저, 만두가······."
하무백이 그의 맥문을 쥐었다.
마지막 남았던 이.
눈살을 찌푸리는 하무백.
복숭아 씨앗 반 개만 한 크기의 독 기운이 뭉쳐서는 꼬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는 그날 두 번째로 음식을 갈구했던 이였다.
"넌 좀 괴로울 거다."
하무백의 내공이 순식간에 그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가 혀 아래의 독 기운을 태웠다.
"크아아아악!!!"
거침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