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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87화 (187/312)

187화. 보중하십시오

무창성의 괴사에 대한 소식은 즉각적으로 벽력개에게 전해졌다.

허나 벽력개는 지금 그 소식을 받을 정신이 없었다.

그저 수하가 가져온 세 장의 초상화를 보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이게 광회천. 그리고 이게 형의천."

두 개의 초상화를 나란히 놓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둘은 전혀 상관없는 완벽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 장의 초상화의 위치를 좀 떨어뜨리고 그 사이에 한 장의 초상화를 놓았다.

화공들이 형의천의 얼굴에 가능한 변형을 준 것이다. 작은 글씨로 주석도 달려 있었다.

이리저리 변형하면 이렇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아냐, 형의천 그놈은 정말로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애꾸야. 그냥 안대로 가리기만 한 게 아닌데······."

이미 형의천에 대해서도 샅샅이 조사해둔 터.

그가 진실로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음은 몇 번을 확인했다.

"살을 찌운다. 목에 상처를 줘서 목소리를 변조한다."

주석을 차근차근 읽는 벽력개.

과연 살이 찐 것으로 인한 눈의 크기와 눈매의 변화를 보니 광회천과 형의천은 닮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형의천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한 수하들의 의견은.

"단전을 폐했거나 내공을 금제했다라······."

스스로 한쪽 눈을 망가뜨리고, 목에 상처를 입혀 목소리를 바꾼다. 그리고 내공을 없앤다.

살을 뒤룩뒤룩 찌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몸 상태로 만든다.

미친 짓이다.

하나하나가 전부 미친 짓이었다.

저 중 하나도 실행하지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저걸 모두 했다.

그러니.

"못 찾았지. 몇 번을 보고도 상상도 못 했지······."

자조가 가득한 중얼거림이다.

"형의천. 아니 광회천! 이 씹어먹을 새끼를."

벽력개의 두 눈이 번득였다.

"모두. 월룡장을 친다! 준비해라. 그리고 하 교관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벽력개가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은 바로 실행되지 못했다.

무창의 괴사를 전하러 온 수하 때문이다.

"어르신. 지금 무창에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제야 다급히 달려온 거지가 조금 전 있었던 끔찍한 일을 서둘러 이야기했다.

그 보고를 모두 들은 벽력개의 두 눈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갈가리 찢어 개밥으로 주어도 모자랄 혈교 놈들. 과연 잔악한 수작을 무창에서 벌이고 있었구나. 결국 이 모든 것이 광회천! 그놈의 수작질이다. 지금 당장 월룡장을 친다! 전력을 그곳으로 모아라!"

조금 전 명령의 반복이다.

하무백은 그 괴물을 잡아갔다고 하니, 당장 소식을 전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래도 바로 나타났다는 것을 보아, 그도 월룡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을 터.

어쨌든 지금은 자신이 먼저 친다.

개방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위해 스스로 무공을 금제하거나 폐했을 광회천.

그 덕에 이 긴 세월을 숨어 살 수 있었겠지만, 자신에게 들킨 이상 그것은 치명적인 패착이 될 터였다.

벽력개는 정말 오랜만에 청강죽으로 만든 타구봉을 손에 쥐었다.

늘 곁에 내려놓기만 했던 그의 독문병기.

여기에 묻은 혈교도와 마교도의 피가 얼마던가.

오늘은 여기에 배신자의 피를 묻힐 날이었다.

***

형의천은 아침 식사 중 수하 상인으로부터 다급한 보고를 받았다.

무창에서 괴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들은 형의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한 놈쯤 나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며칠은 빠르군.'

그러면서 한 장한의 얼굴을 떠올렸다.

체질적으로 잠혼독이 잘 받는 인간이었던가? 유독 중독 증상이 심하다고 동 총관이 보고를 올렸던 이였다.

그랬기에 굳이 형의천 자신이 직접 얼굴까지 확인하지 않았던가.

지금 보고를 한 수하 상인은 잠혼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 순수한 상인이었다.

그러니 저리 겁에 질린 얼굴로 소식을 전하면서 무창의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그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 형의천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천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개방과 하무백. 양쪽에서 이곳을 노릴 거다. 뭐, 하무백은 잠혼독에 당했을 테고.'

보고한 상인은 하무백의 얼굴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는 그 장한이 동료를 뜯어먹으려고 할 때 깜짝 놀라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으니, 하무백의 등장을 알지도 못했다.

'벽력개라면 곧 쳐들어오겠군.'

나름 벽력개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형의천이다.

그러면 슬슬 준비해야지.

"알겠네. 그러면 자네는 일단 사업체를 정리한다면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다른 행수들과 의논해보게."

"아, 알겠습니다."

상인은 다급히 대답한 후 방을 물러났다.

형의천은 시비들을 모두 물렸다. 그리고 윤의에 걸려 있는 종들 중 흑빛이 감도는 종을 꺼내 울렸다.

따라라랑. 따라라랑.

울림소리가 잘게 떨리는 것이 기이한 소리였다.

잠시 후 백발의 노인 하나가 들어왔다.

"단주님, 찾으셨습니까?"

"곧 개방에서 올 듯하네."

형의천의 말에 노인의 두 눈이 빛났다.

"수하들을 모아서 상대해 주게나, 진 총관."

형의천의 말에 진 총관이라 불린 노인의 두 눈에서 희열의 감정이 떠올랐다.

혈공을 익히지 않은 혈교도.

단안상단에 은밀히 숨어 있던, 일로가 형의천에게 붙여준 수하였다.

"알겠습니다. 냄새나는 거지새끼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도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동 총관을 좀 불러주게."

진 총관은 진득한 살기를 풍기며 물러났다.

그와 그의 수하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혈교에서는 지난 전쟁 모든 정파와 사파의 무공을 통틀어 나름 강한 것들을 선별해서 익혔으니.

물론 혈교도는 당연히 혈공을 익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일이 일인 만큼 부득이 혈공을 버리고 타 문파의 무공을 익혔다.

그래서일까?

정사 무림에 대한 적대감이 다른 혈교도들보다 더욱 크고 살기도 진했다.

자신들에게서 혈공을 앗아간 것이 그들이라 여긴 탓이다.

잠시 후 동 총관이 들어왔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는 동 총관.

"그래. 예상과 달리 너무 빨랐어. 벽력개가 냄새를 맡고 있는 시점에."

형의천에 말에 동 총관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은 분량을 모두 모아 절반은 총단에 보내고, 남은 절반은 무창에 뿌리게."

그 말에 동 총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직 미완성입니다."

그 말에 형의천이 고개를 저었다.

"완성이야. 기록에 남아 있는 그 독은··· 금령탐식혈독공을 완전히 재현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 혈공과 독공의 조합으로 비슷한 것을 만들고, 독의 배합을 바꿔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이 이상은 불가능해."

동 총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그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월룡객잔에서 실험은 주로 독의 용량에 관한 것이었으니.

"그리하면 무창에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질 겁니다."

동 총관의 말에 형의천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교는 나와 약속한 것이 있으니. 그 약속을 지키려면 그 정도 혼란은 필요해."

"대상은 어떻게 합니까?"

"일반인 오백 남은 분량의 절반이면 그 정도는 될 거야. 무창을 완전한 혼돈지경으로 만들어야 하니.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쓰고 싶지만··· 아무래도 나와 교의 인연은 오늘까지일 것 같아서 말일세."

형의천의 말에 동 총관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잠혼독의 재현을 위해 그를 모신 세월이 제법 길었기에, 그간 든 정이 적지 않았던 것.

"그간 수고 많았네. 잠혼독과 그 제조법을 지금 즉시 총단으로 보내고, 독을 뿌린 후 전부 무창을 탈출하도록 하게. 자네들 중 일부는 총단으로 돌아가야 앞으로 잠혼독을 만드는 게 더 수월하기도 할 것이고. 특히 동 총관. 자네는 꼭 총단에 무사히 돌아갔으면 좋겠군."

동 총관은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였다.

"개방 거지들이 곧 몰려올 걸세. 조심하게. 그럼 이만 나가보게나."

"보중하십시오."

동 총관은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떠났다.

이제 완전히 홀로 남은 형의천.

그는 손수 윤의의 바퀴를 움직였다.

방 가운데 자리로 온 형의천이 밖을 향해 사자후와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방음을 철저히 한 터라, 이 정도는 되어야 밖의 수하들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아무도 이 방에 들이지 마라. 설령 월룡장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네!"

문앞에 호위무사들의 대답이 들렸다.

고개를 끄덕인 형의천은 윤의의 양 팔걸이 끝을 강하게 눌렀다.

딸칵.

작은 기관음과 함께 팔걸이 끝이 꺾이면서 튀어나오는 두 개의 약이 든 함.

형의천은 두 약함을 열었다.

각각 하얀색과 검은색의 단환이 들어있었다.

"드디어 이걸 먹게 되는군."

형의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광회천으로 돌아갈 때다."

그 말과 함께 형의천은 두 단환을 동시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침과 닿자마자 액체로 화해 뒤섞여서는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전신 혈맥에 뜨거운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두 시진. 두 시진이다.'

단전에 가한 내공의 금제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 걸릴 시간이었다.

***

눈이 하얗게 까뒤집혀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사내.

독 기운을 태우는 고통을 참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반 각이 흘렀다.

하무백의 손이 그의 맥문에서 떨어졌다.

풀썩 땅에 쓰러지는 사내.

이윽고 지독한 악취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태워버린 독기의 냄새였다.

절로 인상을 찡그리게 하는 냄새.

하무백은 이미 한번 겪었기에 덤덤했다.

사내의 몰골은 처참했다.

전신 모공으로 독기의 잔해가 흘러나오는 것은 물론, 소변까지 지렸으니.

"히, 히익."

동정구걸의 남은 여덟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무백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자 그들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너희는 저 정도는 아닐 거다. 바뿌니까 빨리 와라."

그렇게 한 명, 한 명 독을 해독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하무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월룡객잔과 월룡루의 요리를 먹은 무창 사람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그들 역시 몸 안에 독 기운이 잠재해 있을 터.

자신이 이렇게 일일이 독기를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해약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하무백의 중얼거림.

"만들어 봐야죠."

그때 한설빙이 다시 데리고 들어온 당지연이 말했다.

"가능하겠소?"

"알 수 없어요. 혹시 몰라 할아버지께 급전으로 전서도 보내고 오는 길이에요."

그러면서 당지연은 등짐에서 여러 가지 기구들을 꺼냈다.

"진산."

차가운 당지연의 목소리.

"으, 응."

"도와. 나 혼자는 좀 힘들 듯하니까."

이 자리에서 그나마 독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배운 이는 그가 유일했다.

"아, 그리고 개방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어요."

당지연이 급히 무창을 다녀오면서 얻은 정보를 전해주었다.

하무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기감을 펼쳐 무창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으니.

그때 하무백의 기감에 걸리는 움직임이 있었다.

월룡장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무수한 새 떼.

전서구와 전서응들이었다.

수백 마리가 뒤섞여 날아올랐다.

저 정도 숫자의 새들을 어찌 보유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무백은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활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없었다.

"오라버니. 월룡장에서 무창 밖 열두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어요."

하설란이 다급히 말했다.

그녀 역시 기감으로 월룡장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하설란의 말에 다른 이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이한 독으로 무창을 공포와 혼란으로 물들이려 하는 월룡장에서 대체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일까.

저 수많은 새들이 날아오르는 이유는 뭘까?

혹시 저 기이한 독을 전 무림에 뿌리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목적지는?

당가는, 무당은, 종남은 괜찮을까?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결과는?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의 새를 잡을 방도가 없었다.

생도들의 얼굴에는 불안이 자리했다.

하무백도 복잡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전서응과 전서구들의 다리에 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한 마리라도 잡아봐야 할 텐데, 활과 화살이 없었다.

"어쩔 수 없군."

하무백이 검병에 손을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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