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빨리빨리 움직여라
하무백은 하늘을 응시했다.
푸드드드드득.
잠시 후 하늘 높은 곳 수많은 새들이 날아가는 것이 작은 점으로 보였다.
하무백의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검을 날렸다.
쌔에에에엑!
강기를 머금고 높이 높이 날아가는 검.
하무백은 가만히 그 검을 응시했다.
시선을 따라 하무백의 검은 하늘에서 춤을 추었다.
"헉··· 이, 이기어검······."
내공으로 안력을 최대한도로 올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우명이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검의 경지의 끝이라 칭해지는 단계.
이기어검.
그것이 지금 저 하늘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검에 따라 전서구와 전서응이 후두두둑 떨어졌다.
하무백의 앞에 떨어진 새들은 대략 이십여 마리.
나머지 전서구와 전서응들을 놓친 것에 하무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떨어진 새들의 다리에 묶인 것들을 수거했다.
다행히 독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고, 전부 전서였다.
그러나 전서를 본 당지연과 맹룡대 생도들의 얼굴에 망연자실함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암어였으니.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하무백과 한설빙은 오히려 전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한껏 찌푸려 들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은 또 달랐으니.
"역시 혈교로군."
"그렇네요."
그 말에 생도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획 돌아섰다.
아직 다른 이들에게 혈교의 독에 대해 말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독의 지독함을 설명했을 뿐, 혈교에서 만든 것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무창에서 사달이 벌어졌으니.
"혀, 혈교라고요?"
"히이익!"
그리고 그 말에 놀란 이들이 또 있었다.
동정구걸.
그들도 눈치는 있었다.
하무백이 내공을 이용해 몸 안에 잠재해 있던 독을 태워준 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이 먹었던 월룡객잔의 음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금은 직감하고 있었다.
월룡객잔의 요리를 먹고 나서 보였던 이상한 충동. 월룡장에서 날린 전서구와 전서응.
그리고 혈교.
"으, 으, 우웩! 우웩!"
그들 중 한 명이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도 월룡객잔의 요리를 먹지 않았던가.
이제 독이 모두 해독되었음은 중요치 않았다.
혈교가 수작을 부린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한 명이 시작하니 다른 이들 역시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뱃속의 모든 것을 게워 내겠다는 듯.
"대, 대체 우리가 뭘 먹은 겁니까?"
동정구걸들 중 대형으로 보이는 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사지가 망가진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의동생에게로 향해 있었다.
부디 편안하게 해달라고 했건만 저런 모습이라니.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라."
하무백은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전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혈교의 암어.
거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이 전서에 쓰인 것은 다행이랄지 하무백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전쟁을 거치면서 혈교와 마교의 암어 몇 가지를 익혀두었기에.
그리고 머릿속에서 혈교의 암어를 조합하면서 내용을 확인하니
"이 미친 새끼들이!!!"
하무백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독의 분석을 부탁합니다."
당지연에게 다급히 말하고는 하무백이 몸을 훌쩍 날렸다.
정말 전력을 다했다.
"무, 무슨 일인가요?"
당지연이 급히 되물었다. 생도들의 눈에도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러나 하무백은 대답할 시간도 없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아있는 이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한설빙에게로 향했다.
한설빙은 부들부들 떨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미, 미친놈들이······."
하무백은 정말 전력으로 무창을 향해 달렸다.
이제 한시가 급했다.
찰나의 순간에 무창이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잠혼독."
전서에 나와 있는 이 독의 명칭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무창에 살포한다고 했다.
무려 오백 명을 중독시킬 수 있는 분량을.
막아야 했다.
일단 중독되어서 식강시가 되면 되돌릴 수 없었다.
살포하기 전에 무조건 막아야 했다.
하무백은 기감을 최대로 펼쳤다.
월룡객잔과 월룡장의 움직임을 세세히 살폈다.
전서구와 전서응이 날아오른 이후의 움직임.
그들은 과연 바빴다.
수상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독을 빼돌리려는 자들.'
오백 명을 중독시킬 수 있는 분량의 잠혼독을 본교로 보내겠다고 했으니.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무창을 향해 움직이려는 이들.
그 숫자는 열 명.
잠혼독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바로 잠혼독이 살포되는 것을 막는 것.
이미 월룡객잔과 월룡루의 요리들로 인해, 무창 사람들 대다수의 몸에 많든 적든 잠혼독의 일부가 잠재해 있는 상황.
거기에 제대로 정제된 잠혼독이 뿌려진다면.
오백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식강시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 죄 없는 일반 민초들이.
'이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
하무백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 새끼들은 항상 그랬다.
강호인도, 일반 민초도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이렇게 무참하게 희생시켰다.
하무백의 신형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
벽력개는 선두에서 치달렸다.
무창 인근에 있는 개방의 거지들을 모두 모으니 그 숫자가 이백이 넘었다.
이들 중 무공의 경지가 어느 수준 이상인 이들의 수가 백.
벽력개는 지금 그 백 명의 거지를 이끌고 월룡장을 향해 달렸다.
"네 이놈!!! 광회천!!!!"
분노가 가득한 사자후가 월룡장의 담을 넘어서는 벽력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침입자다! 막아라!"
월룡장의 무사들이 그런 거지들의 앞을 막아섰다.
벽력개는 대화를 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에게 이곳은 혈교와 손잡은 배신자의 터전.
"혈교의 잔당들이다! 모두 쓸어버려라!"
벽력개가 타구봉을 휘두르며 외쳤다.
퍽! 퍼퍽!
그의 타구봉에 맞은 무사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의 손에 자비는 없었다.
벽력개는 곧장 중심의 전각을 향해 달렸다.
형의천, 아니 광회천이 저곳 최상층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탓이다.
경공을 펼쳐 단번에 뛰어올랐다.
와장창!
창을 부수고 최상층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주했다.
윤의에 앉아 있는 돼지 새끼를.
그와 벽력개의 시선이 마주쳤다.
싱긋 웃음을 짓는 형의천.
"왔군."
"이 육시랄 새끼."
벽력개의 음성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여기에 있을 때가 아닐 텐데?"
형의천의 물음.
그는 이제 곧 자신의 수하들이 무창에 잠혼독을 뿌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광회천! 네놈을 죽여버리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야."
타구봉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크크. 여전하군. 하찮은 것에 신경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는 그 성정."
"네 이놈!"
형의천, 아니 광회천의 조롱에 벽력개의 타구봉이 날아들었다.
콰지직!
광회천의 앉아 있던 윤의가 박살이 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 광회천은 없었다.
"후후. 딱 좋을 때 왔어. 마침 금제를 모두 푼 참이거든."
조금 떨어진 곳.
광회천이 더욱 진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육중한 몸이건만 움직임이 가볍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주먹이 벽력개를 향해 날아들었다.
벽력개가 타구봉을 휘둘러 그 주먹을 막았다.
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파가 전해졌다.
벽력개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자신의 타구봉과 동수를 이뤘다.
광회천.
이놈이 무공의 천재이긴 했으나, 자신보다는 약했다.
그리고 무공을 숨기고 수년을 살았으니 , 그때보다 경지가 높아질 리는 없을 터.
그런데 지금 자신과 대등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큭큭. 금제가 단순한 금제만은 아니었거든."
광회천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육중한 몸이 기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살이 울룩불룩 움직이는 기괴한 모습.
"어림없다!"
벽력개는 아랑곳하지 않고 타구봉을 휘둘렀다.
그의 강기를 가득 머금은 청죽의 타구봉은 녹색으로 빛났다.
쾅! 쾅! 쾅!
연이어 터져 나오는 폭음.
광회천은 붉은빛 강기가 가득한 주먹으로 벽력개의 타구봉을 막았다.
그 와중에 그의 몸은 계속해서 변화를 보였다.
기괴하게 일그러지는가 싶던 몸은 점차 줄어들었다.
육중하던 몸이 조금씩 부피가 작아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근육질의 매끈한 몸으로 변했고.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벽력개는 취팔선보와 타구봉법을 펼치며 그런 광회천을 상대했다.
"혈교에 붙어먹더니 괴물이 되었구나!"
콰콰쾅!
사방이 박살이 났다.
"큭큭큭. 내가 괴물이 된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벽력개. 이제 곧 무창에 지옥도가 펼쳐질 터이니. 크크크. 크하하!"
***
"빨리 빨리 움직여라."
열 명의 무리 중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수하들을 재촉했다.
동 총관의 명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품에 지니고 있는 독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개방 거지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놈들을 피해서 최대한 많은 곳에 독을 뿌려야 한다."
"네."
그의 설명에 아홉 수하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독을 뿌릴 때는 반드시 입을 닫고 호흡을 멈춰서 먹거나 흡입하지 않도록 주의해라. 치사량 이상으로 흡입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아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외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무엇이든 먹기만을 갈구하는 괴물.
열 사람은 조심히 월룡장을 빠져나갔다.
최대한 개방의 거지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면서.
그런 그들의 등 뒤로 벽력개의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조금 더 지체했다면 개방도들과 맞닥뜨릴 뻔했기에.
월룡장의 움직임은 급박했으나, 무창은 평화로웠다.
괴사가 벌어지긴 했지만, 그곳은 넓은 무창에 비하면 고작 작은 한 장소에 불과한 곳.
대다수의 무창 사람들에게는 오늘도 그저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날일 뿐이다.
갑자기 수많은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진 게 조금 달랐을 뿐.
열 명의 무인들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서 움직였다.
이미 독을 뿌릴 지점 열 곳을 추려 놓은 상태.
동 총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무창 곳곳에 거지 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은 것이다.
몇몇 사람은 어쩌면 오늘 무언가 소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 명은 거지 무리를 태연한 신색으로 지나쳤다.
그리고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계속 사람들 틈으로 스며들어 은밀히 움직였고.
마침내 첫 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교룡관 정문.
이곳이 시작이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독을 살포함과 동시에 아홉 곳으로 흩어진다.
이곳에 괴사가 벌어지면서 혼란이 벌어졌을 때, 다른 아홉 곳에 동시에 독을 살포한다.
그런 계획이었다.
교룡관 정문 앞 멀지 않은 곳은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번화한 대로였다. 독을 뿌리면 그만큼 혼란이 클 것이다.
교룡관에 혼란이 생기면 정천맹 무창지부의 눈이 교룡관으로 쏠릴 것이니.
틈이 커지는 것이다.
그때 다른 아홉 곳에서 동시에 독을 뿌린다면.
그야말로 무창은 지옥이 된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한 명이 대로 옆의 건물 벽을 박차고 공중을 향해 몸을 날려 훌쩍 뛰어올랐다.
교룡관 정문의 수문위사가 '저건 웬 미친놈인가' 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때.
그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봉인을 풀고, 전력으로 사방으로 내용물을 뿌렸다.
바람이 적당했다.
사람들도 적당했다.
날이 정말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중독시키기에.
이대로라면 교룡관 내부까지 독이 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번지며, 최소 오십 명의 사람을 중독시킬 터였다.
오십 개체 이상의 괴물이 탄생하면, 그 혼란 속에 이들은 흩어져 다시 아홉 곳에 독을 뿌린다.
계획은 성공이다.
그렇게 판단하려는 찰나.
쌔에에에에엑!
어디선가 공기를 찢는 파공성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