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소란스럽구나
정말 전력으로 달렸다.
의심 가는 놈들을 특정해서, 그놈들을 목표로 가장 빠른 속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그놈들이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한 찰나.
한 놈이 허공을 뛰어올랐고, 작은 주머니에 든 가루를 허공에 흩뿌렸다.
내공을 안력에 집중하니, 그 작은 가루의 알알이 입자 하나하나가 전부 눈에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그것들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늦었다.
······아니, 늦지 않았다.
'사람들이 흡입하기 전까지는 중독된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랐다.
어느새 하무백은 검을 날리고 있었다.
이기어검.
목표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람을 타고 허공에서 흩어지려 하는 가루를.
하무백은 집중했고.
검은 주변을 휘감아 돌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특정 범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회오리를 만들듯이.
그러자.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쳤다.
검강의 회오리가.
혈교의 무인 열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검이 홀로 빙글빙글 도는 모습에 두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 들은 파공성의 정체가 바로 저 검이었으니.
검이 홀로 저리 움직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이, 이기어검······."
열 명 중 누군가가 그것을 작게 중얼거렸다.
그들이 이기어검이 만들어 낸 검강의 회오리에 정신을 빼앗긴 찰나.
"너희 새끼들은 조금 후에 보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퍽! 퍼퍼퍽!
둔중한 충격과 함께 열 명은 모두 바닥에 널브러졌다.
"우와. 저건 뭐야?"
"신기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갑자기 나타나 빙글빙글 돌다가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검을 신기해했다.
더불어 하얗게 빛나는 회오리바람에도.
"헉. 이, 이기어검인가?"
교룡관의 수문위사들은 갑작스러운 일에 눈을 크게 떴다.
하무백은 주변이 그런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쓰러뜨린 혈교도 열 명에게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력을 최대한 집중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단 한 개의 독 가루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으로.
검을 움직였다.
회오리바람은 이제 용권풍이라 할 정도로 강해졌다.
주변의 모든 것을 발아들일 듯한 바람이었다.
실제로 바닥에 흙먼지가 일며 용권풍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 우와."
"위, 위험해!"
옷자락이 머리칼이 용권풍 쪽으로 거칠게 펄럭였다.
구경하던 이들은 기겁하고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여, 여기에 있으면 안 되겠어."
바람이 더욱 강해질 기미가 보이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빠르게 흩어졌다.
기이한 광경보다는 목숨이 중요했으니.
실제로 용권풍 주변의 나무는 당장 뽑힐 듯 휘청거리고 있지 않은가.
하무백이 허공에 손을 뻗어 올렸다.
용권풍의 압력으로 흩어지려는 잠혼독을 대부분 빨아들였지만.
이 상태로 두면 가루는 용권풍을 타고 올라, 이윽고 최정상에서는 다시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무창 전체에 잠혼독을 뿌리는 꼴이 되어 버리니.
"뚜껑을 덮어야 하겠어."
작게 중얼거린 하무백.
뻗어 올린 손에 새하얀 강기가 맺혔다.
손을 살짝 움직이자 강기가 손에서 떨어져 나와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점점 그 크기를 넓혔다.
원형의 새하얀 강기.
"가라."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리자 강기는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허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강기.
용권풍의 거센 바람에도 상관없다는 듯, 아무런 흔들림 없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하무백의 말대로 정말 뚜껑을 덮듯이 용권풍을 덮었다.
"올라가라."
그 말에 따라 엄청난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던 하무백의 검은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빙글빙글 돌면서.
용권풍은 다시 회오리로 약해졌다.
검이 떠오름에 따라 회오리의 길이가 점차 짧아졌다.
얼마 후.
검과 강기가 만나려는 순간.
하무백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넓게 펼쳐져 있던 강기가 마치 허공을 움켜쥐듯 확 오므라들며 주머니로 화했다.
그리고 검은 그대로 멈춰 천천히 하무백에게로 돌아왔다.
하무백은 날카로운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가 최선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중얼거림.
그럴 수밖에.
모든 잠혼독을 회수하지 못했다.
대략 일 할 정도의 잠혼독이 더 잘게 쪼개져 무창의 하늘로 퍼져나간 것이다.
"부디 임계치를 넘지 않기를······."
하무백이 겪은 잠혼독은 소량을 흡입한다고 바로 식강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양을 넘어서야 비로소 독이 활성화되면서 뇌를 잡아먹고 중독자를 식강시로 만든다.
하무백이 놓친 양은 극히 미량이다.
한데 모아도 겨우 다섯 명을 중독시킬 수 있을까 말까 한 양.
이것이 더 잘게 쪼개져 사방으로 흩어졌으니, 사실 그걸 흡입한다고 별일이 생길 리 없었다.
양이 턱도 없이 적었으니.
다만 월룡객잔의 음식이 문제였다.
무창에서는 그 음식으로 상당한 양의 잠혼독을 몸속에 축적한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허공의 잠혼독을 흡입하면서 임계치를 넘어버린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지만 하무백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주먹만 한 크기로 작아진 강기의 주머니가 하무백 앞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하무백이 강기의 주머니를 노려보자.
화르르륵!
주머니 안에서 강렬한 불길이 치솟았다.
삼매진화로 일으킨 불길은 모아온 잠혼독을 완전히 태워 소멸시켰다.
그리고 강기 또한 사라졌다.
"이제 이놈들 차례인가."
하무백이 혈교도들을 교룡관 안으로 옮기려 할 때.
"이제 대체 무슨 일이더냐?"
위지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무백이 만들어 낸 용권풍과 강기를 보고는 찾아온 것이다.
"사부님."
"무창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더냐?"
"일단 이놈들부터 좀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용권풍이 사라지자 하나둘 다시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꾸나."
위지군과 하무백은 허공섭물로 열 명의 무사를 들어 옮겼다.
맹룡대 칠 조의 연무장에 대강 던진 후 하무백은 그들의 품을 뒤졌다.
한 명에 한 개.
조금 전 회수한 잠혼독과 같은 양의 독주머니가 나왔다.
하무백은 그렇게 잠혼독을 모두 회수하면서 천천히 위지군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위지군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런 천인공노할 놈들을 보았나. 과연 혈교 놈들은 인간이 아니로구나······."
식강시를 만드는 독이라니.
그리고 조금 전 그 독을 허공에 흩뿌렸다니.
하무백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면 란이는 지금 한 교관과 함께 있는 것이냐?"
"네."
"소란스럽구나."
위지군이 월룡장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군요."
하무백의 시선 역시 그곳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나는 란이에게 가봐야겠구나."
"부탁드립니다."
위지군이 훌쩍 몸을 날렸다.
하무백은 바닥에 널브러진 놈들을 보았다.
"설빙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펼치는 빙혼문쇄진이 아쉬웠다.
이렇게 연무장에서 이놈들을 취조할 생각을 하니.
혹여라도 지나가던 이들이 보거나, 이들의 비명이 퍼져나가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저쪽은 벽력개 어르신이 계시니. 일단 이놈들 먼저."
취조한다고 이놈들이 뭘 알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할 터.
하무백이 혈을 두드려 한 명, 한 명 깨웠다.
***
"이놈! 어서 목을 내놓아라!"
벽력개의 타구봉이 공간을 휩쓸었다.
강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광회천은 태연한 얼굴로 그 모든 것을 피했다.
"흥. 옛날의 나와는 다르다."
광회천은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콰쾅!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의 공방은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일진일퇴.
막상막하.
벽력개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지금 그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으니. 그런 자신과 눈앞의 광회천이 거의 동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었다.
단목세가가 무너지던 날.
자신의 허약함을 얼마나 자책했던가.
그랬기에 그 뒤로도 수련을 멈춘 적이 없었다.
하릴없이 누워 동냥만 하는 듯했어도, 그는 뒤에서 늘 내공 수련이나 심상 수련을 하며 초식을 갈고 닦았다.
단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보다 최소 두 단계는 경지가 올랐다.'
자만이 아니라 냉정한 평가였다.
그런데.
그때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꽁지 빠져라 도망쳤던 놈이, 지금 자신과 막상막하로 싸우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개방의 눈을 피하겠다고 스스로 무공에 금제를 가하기까지 한 듯한데.
그리고 조금 전 그 금제를 푼 것 같은데.
어찌 수년을 무공을 금제한 이의 경지가 이토록 올라 있단 말인가.
"사술을 쓰는구나!"
그것밖에 없었다.
저것은 혈교의 사술이었다.
지난 전쟁에서도 온갖 괴이한 사술을 쓰던 혈교 아니던가.
"킥. 인정할 수 없나 보군. 하지만 이건 사술이 아니야. 내 실력이지. 뭐, 다른 대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광회천은 웃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도 속으로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응당 있어야 할 반응이 없었던 탓이다.
'지금쯤 살포했을 텐데?'
이제 절반의 독은 무창을 벗어났을 터.
그리고 절반은 무창에 흩뿌려져 이제 곳곳에 혼란이 일어나야 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개방은 광회천 자신보다는 무창의 안정에 신경을 쓸 터.
그 틈에 목적을 이루러 가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수하들에 대한 굳건한 그의 믿음이 조금 흔들렸다.
"놈!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벽력개의 옷이 터질 듯 부풀었다.
타구봉에 어린 검강은 더 이상 진해질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해졌다.
취팔선보로 순식간에 신형이 늘어난 벽력개가 공간을 격하고 광회천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여덟 곳에서 날아드는 타구봉.
광회천은 붉은 강기를 가득 머금은 주먹을 휘둘러 모든 타구봉을 쳐냈다.
"크흑."
내공에는 자신이 있었건만, 방금 격돌로 손해를 본 것은 오히려 벽력개였다.
그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광회천도 두 눈을 찡그렸다.
'여전히 괴물 같은 거지 영감이다. 축적된 내공의 절반이 사라졌다.'
이곳에서 벽력개와 계속 싸우면서 허비할 시간이 이제는 없었다.
수하들이 무창에 잠혼독을 뿌려 식강시들이 나타나면 자연스레 물러날 것이라 여겼건만.
'문제가 생긴 건가.'
그렇다면 여기서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잠혼독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었으니, 또 다른 목적까지 이루고 무창을 떠나야 했다.
수년간의 금제.
내공이 없다 하나 그의 경지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광회천이 마냥 정체를 숨기는 데만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는 중단전을 열어 항시 심상 속에서 수련했다.
또한 마냥 내공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었다.
금제된 기간 동안 내공이 차곡차곡 쌓였다.
금제가 풀린 순간.
그동안 쌓인 내공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그랬기에 벽력개의 내공에 밀리지 않고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제 절반만 남았다.
'여기서 벽력개를 떨친다.'
남은 내공의 절반을 다시 사용했다.
시벌겋게 물드는 강기.
광회천은 몸을 날려 벽력개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폭풍같이 몰아치는 광회천의 주먹.
조금 전의 격돌에서 벽력개가 손해만 본 것이 아니다. 작지만 내상도 입었다.
그것을 수습하기 전에 광회천이 다시 몰아쳤다.
덕분에 이어진 폭풍 같은 공격에 벽력개가 연신 뒤로 물러섰다.
조금 전 막상막하의 공방을 치루던 때와 다른 양상.
그렇게 물러서던 벽력개가 방의 중간에 자리하자.
"타핫!"
광회천은 커다란 강기를 날리고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이놈!"
벽력개는 타구봉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강기를 부쉈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충격파가 퍼질 때.
"그럼 잘 가라."
나직한 광회천의 한마디.
"뭐라?"
콰직.
광회천이 벽의 한 곳에 주먹을 박아넣었고.
그와 동시에.
콰르르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전각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