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191화 (191/312)

191화. 싱겁군

"하무백······."

광회천이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네놈이 광회천이겠지?"

하무백이 마주보며 말했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 그렇게 음식을 처먹었으면 분명 잠혼독이 발현 되었을 텐데······."

피식 웃는 하무백.

저벅.

하무백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자리한 곳은 여화와 단목운혜의 앞.

두 사람을 등지고 광회천을 마주하며 섰다.

"단목세가의 비고를 노리고 이곳에 온 건가?"

"네놈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냐?"

하무백의 물음에 광회천이 두 눈을 살짝 치켜떴다.

"들었으니까. 단목세가가 어떻게 멸문 당했는지."

하무백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그 말이 나온 순간 여화의 두 눈이 다시 한번 원한으로 빛났다.

단목운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전히 겁먹은 모습이다.

하무백이 무표정한 얼굴로 광회천을 바라보았다.

광회천은 그런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이를 질끈 깨물었다.

당연히 잠혼독에 중독되어 식강시가 되었을 거라 여겼던 자가 눈앞에 있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미 벽력개를 상대하면서 상당한 양의 내공을 소모한 터다.

그러던 찰나에 눈앞에 강적이 나타났다.

계산 밖의 일이었다.

그가 월룡객잔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었다고 했을 때.

잠혼독에 당해 식강시가 될 거라 여겼으니까.

'씨발······. 저 좆같은 새끼가 어떻게.'

하무백과 대치하고 있는 광회천의 등에 땀이 송글송글 솟아올랐다.

"무창을 아주 뒤집으려고 했더군."

하무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식강시 오백이라."

이어진 말에 광회천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저놈이 어찌 그걸 알고 있단 말인가.

"전서구를 잡은 것인가?"

첫 번째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다.

하무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은 알았지. 하지만. 어떻게 전서의 내용을 읽은 거냐? 분명 암어로 썼을 터인데."

"지난 전쟁에서 내가 본 혈교의 암어가 얼마나 될 거라 생각하나?"

설마 혈교의 암어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어디로 보낸 거냐?"

하무백이 광회천을 보며 물었다.

전서구와 전서응을 모두 열두 방향으로 날렸다.

그야말로 무창에서 원형으로 퍼져나간 새들.

하무백이 잡은 것은 그 중 한 방향일 터.

"내가 그걸 알려줄 것 같은가?"

광회천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에도 하무백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뭐, 상관없어. 어디로 보낸 건지 알 것 같거든."

광회천은 그리 말하는 하무백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단목세가의 비고가 중요하다고 한들 자신의 목숨만큼 중요할까.

'좀 더 가까이 있어야 했다.'

후회했으나 늦었다.

하무백이 이미 자신과 여화 사이에 있으니, 인질을 잡을 수도 없는 상황.

"산월마림."

그때 갑자기 들린 하무백의 말소리.

광회천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궁리를 하던 중에 너무도 정확한 위치가 갑자기 들렸으니.

"역시. 그곳에 있었군."

광회천의 반응이 답이 되었다는 듯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부정해도 소용없는 상황.

"어떻게?"

"그곳인 모양이군. 지하에 무언가 더 있었던 모양이야······."

하무백의 말에 광회천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도 현 혈교의 본단에 가본 적은 없었다. 갈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들은 것은 있었기에 하무백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본단이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네가 어떻게 그것까지?"

넘겨짚은 것에 광회천이 당한 것이 아니란 소리.

하무백은 그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곳이 왜 그렇게 되어 있었을 것 같아?"

하무백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광회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광회천은 그곳을 보지 못했으니.

"네 녀석은 그곳에는 가지 않은 모양이군."

하무백은 그의 반응에서 쉬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그곳의 폐허를 보았다면 저런 모습일 수 없을 테니까.

하무백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단목운뢰의 어머니인, 여화.

그리고 동생인 단목운혜.

두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잔혹한 장면이 펼쳐질 예정이니.

장소를 옮기는 게 좋을 듯했다.

"좋아.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따로 해보도록 할까?"

저벅.

하무백이 광회천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주춤.

광회천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조금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다시 한 발자국 다가가는 하무백.

주춤주춤.

두 발자국 물러나는 광회천.

그런 대치를 몇 번 반복했을까.

턱.

광회천의 등이 담벼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다시 한번 싱긋 웃은 하무백이 땅을 박찬 순간.

그는 순식간에 광회천의 눈앞에 나타나.

퍽.

그대로 턱을 후려쳤다.

공중에 부웅 떠오르는 광회천의 신형.

하무백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채고는 그대로 담장 위로 뛰어 올랐다.

"원한이 크시겠지만. 이놈은 제가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하무백은 여화에게 이 말만을 남기고 그대로 사라졌다.

여화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 교관님······."

작은 중얼거림.

"어, 엄마. 으앙!!"

품 안의 단목운혜가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의 공포스러운 상황에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운혜야. 다 끝났어. 이제 괜찮아."

여화가 단목운혜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크윽. 놔라!"

광회천이 거칠게 외쳤다.

"재촉하지 마라. 곧 그렇게 해줄 테니까."

하무백은 빠른 속도로 달려 무창을 벗어나 야산에 접어 들었다.

그 순간 광회천을 던졌다.

"크윽."

그대로 내동댕이쳐진 광회천은 바닥을 구른 후 그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곧장 땅을 박차고 달렸다.

일단 저놈에게서 달아나야 했다.

남은 내공을 모조리 경공에 쏟아 부었다.

그 모습에 하무백은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누구 앞에서 도망치겠다는 것인가.

혈교십로 혈비영도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는데.

광회천은 얼마 가지도 못 한 채 하무백에게 잡혔다.

"고작 이 정도냐? 무공의 천재라고 들었는데?"

광회천의 앞을 막아선 하무백의 조롱.

그 말에 광회천이 이를 악물었다.

"천재이기에 알고 있지. 네놈 같은 괴물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그 대답에 하무백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벽력개 어르신과는 잘도 치고 박더니."

하무백은 기감으로 그와 벽력개의 전투의 기척을 느꼈으니.

"어떻게 해야 날 살려줄 거냐?"

광회천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이미 저항의 의지가 없었다.

그 물음에 하무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려줄 거냐고?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네놈이 무창에서 한 짓이 있는데? 꿈도 야무지다고 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무백의 물음에 광회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결국 광회천은 하무백을 향해 달려 들었다.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

붉은 강기를 두른 주먹이 하무백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갔다.

퍽.

하무백의 주먹이 그대로 광회천의 주먹을 향해 날아갔다.

새하얀 강기를 머금은 채로.

그리고 울리는 소리였다.

"크윽."

광회천이 신음을 흘렸다.

그대로 부서진 오른 주먹.

하무백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단목세가를 멸문케 했다는 인간이 고작 이 정도였나?"

"닥쳐라!"

그대로 왼손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하무백이 주먹을 맞부딪혀갔다.

광회천이 대경해 몸을 돌리며 하무백의 주먹을 피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왼 주먹도 박살이 날 터였으니.

하무백의 주먹이 다시 움직였고.

퍽.

"커헉."

광회천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컥컥."

둔중한 충격에 광회천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하무백은 그런 광회천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극명륜안을 운용하고 있었기에 광회천의 내공 상태를 모두 보고 있었다.

이놈은 지금 이 상태가 최선이었다.

월룡장 전각에서 벽력개와의 전투.

그것이 이놈이 낼 수 있는 최고 실력이었다.

수 년 동안 내공을 금제하고 지낸 놈이다.

이제 막 내공의 금제를 풀었고.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시적인 내공의 폭증이 있었다.

허나 그것도 벽력개와의 전투에 모두 소모한 상황.

더군다나 현재 변화한 몸의 상태에도 적응을 못 한 모양이다.

우스웠다.

진작 금제를 풀고 이 상태의 몸에 적응을 해서 제대로 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같잖을 뿐.

하무백의 그런 기색을 느꼈음인가.

광회천의 두 눈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공격은 헛된 몸부림일 뿐이었다.

"싱겁네."

싱거워도 너무 싱거웠다.

잠혼독을 뿌리려던 열 놈을 급히 처리하고 움직였건만.

그놈들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제대로 자근자근 밟아주려 했으나, 이놈이 단목운뢰의 집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고 급히 움직였다.

그 열 놈은 지금쯤 염라대왕을 만나고 있을까?

"어떻게 해줄까?"

하무백의 두 눈에 무료한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분노.

고작 이런 놈 때문에 며칠간 그 난리를 쳤던 것이 짜증났다.

무창의 주민들 중 대다수가 잠혼독에 중독된 상태라는 사실에 화가 났고.

아직 발현된 이는 없지만 어찌될지 모른다.

그놈들이 흩뿌린 독의 일부가 넓게 퍼지기도 했고.

하무백이 성큼 걸음을 옮겼고, 광회천의 눈앞에 나타났다.

퍽. 퍼퍽.

광회천을 두들겨 패는 소리.

"윽. 으윽."

신음소리가 광회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이, 빌어먹을 새끼······."

광회천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는 찰나.

그가 하무백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아직 멀쩡한 왼손에 내공을 가득 집중해서 꽉 잡았다.

하무백이 가볍게 떨쳐내려 했지만, 거머리처럼 붙은 광회천.

"죽어라!"

그가 하무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그의 옷이 부풀어 오르다 찢겨나갔고.

옷 안 어딘가에 있던 주머니가 터지면서 가루가 흩뿌려졌다.

만약을 위해 지니고 있던 잠혼독.

내공을 주입해야만 터지게끔 만든 주머니가 터진 것이다.

광회천은 이미 호흡을 멈추고 있던 상태.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무백이 한 호흡, 독을 흡입했다.

즉시 하무백에게서 떨어져서 물러나는 광회천.

"크크큭. 어디 이번에는 멀쩡할 것 같으냐? 월룡객잔에서 먹은 음식도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식강시가 되거라!"

광회천이 노린 한 수였다.

이걸 위해 그냥 그렇게 두드려 맞은 것이다.

하무백의 얼굴에 잠혼독을 뿌리기 위해.

그러나.

하무백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짜증어린 눈으로 광회천을 쳐다보고 있을 뿐.

"큭큭. 아직은 괜찮을 거다. 내공을 지닌 이에게는 잠복기가 있어 독의 발현이 늦으니. 하지만 그것도 독의 양이 많아지면 다른 이야기지. 독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발현 속도가 빨라진다. 이제 곧······."

광회천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찰나.

퍽.

그의 입 안에 무언가 틀어박혔다.

이빨에 찢겨 가루 같은 것이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 맛에.

광회천은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 잠혼독이란 거. 나도 좀 가지고 있어서 말이야."

허공에 흩뿌려진 것을 하무백이 이기어검과 내공으로 회수한 것까지 해서 열 놈에게서 빼앗은 독 주머니가 모두 열 개다.

그 중 하나가 지금 광회천의 입에 틀어박혔다.

오십 명을 식강시로 만들 수 있는, 많다면 많은 양.

"독이 많으면 내공이 있어도 빨리 발현된다고 했지? 네놈은 어떨까?"

하무백이 차가운 눈으로 광회천을 노려보았다.

"퉤!"

입 안의 독주머니를 뱉어냈지만.

이미 사분지 일은 흡입을 한 상태.

한 개인이 흡입하기에는 엄청난 양이었다.

"으, 으으, 으으으."

잠혼독이 어떠한 것인지 천하에서 가장 잘 알고 있을 광회천.

그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하무백은 그런 광회천을 유심히 살폈다.

무극명륜안을 최대한으로 펼쳐서.

'독을 만든 놈이다. 해독법이 있다면 알고 있을 놈.'

잠혼독을 흡입한 광회천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는 이유였다.

아니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이곳까지 이놈을 끌고 온 것이었다.

설마 숨긴 독이 더 있을 줄은 몰랐지만.

하무백의 몸 안에 들어온 잠혼독이 발현되려 난리를 쳤지만, 이미 한번 겪은 것.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웠다.

이미 무극여의심법의 내공으로 독 기운을 꽉 눌러 놓았다.

광회천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황급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어떻게든 독이 발현되기 전에 잠혼독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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