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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193화 (193/312)

193화. 이 정도?

하무백의 검이 날아오는 일곱 별을 모두 막아냈다.

일곱 별이 빙글빙글 돌며 사방에서 짓쳐 든다.

그야말로 환상 같은 움직임.

허나 하무백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단목세가의 북두환상검법은 이미 혈교와의 전쟁 때 본 검법이었던 터.

동료와 함께 검을 휘두르며 북두환상검법 역시 보았었다.

그러니 광회천의 검을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쾅! 쾅! 콰앙!

엄청난 거력이 검을 통해 전해졌다.

대법과 혈공의 상승 작용으로 얻게 된 어마어마한 양의 내공은 실로 엄청났다.

초식의 정교함 역시 대단했다.

그저 주먹을 휘두를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이런 놈이 왜 처음엔 주먹으로 덤빈 것인지.

허리의 검은 장식인 줄로만 생각했다.

"크하하하! 왜 그러느냐! 제대로 싸우지를 못하는구나!"

스스로 뿜어내는 엄청난 위력의 검법에 취한 것일까.

광회천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하무백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을 움직일 뿐.

챙!

채챙!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가끔씩.

쾅! 쾅!

강기와 강기가 부딪혀 터지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하무백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핏빛 검.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하무백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옷자락을 스치는 것도 없었다.

"이 정도냐?"

한참을 상대해 주던 하무백이 무심히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광회천의 옷이 거칠게 펄럭이며 부풀어 올랐다.

핏빛이 더욱 진해졌고, 커졌으며, 길어졌다.

간단한 손목의 움직임만으로도 혈강이 사방을 쓸어왔다.

쾅!

하무백의 묵강이 혈강을 막았다.

저벅.

한 발자국.

처음엔 한 발이었다.

광회천의 검을 상대하면서 처음으로 하무백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검이 움직였다.

하나의 검은 순식간에 수천의 검이 되어 광회천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무극여의팔절검해.

제 일 절.

개천(開天).

하무백의 손에서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일 절이 펼쳐졌다.

지금까지는 무극여의팔절검해의 검식을 응용하여 짧게 짧게 펼쳐왔다.

온전한 일 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펼친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북두칠성이라 한들, 하무백이 열어버린 하늘에서는 한낱 일곱 별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수천으로 늘어난 검은 다시 수만으로 불어나는 듯했다.

하늘을 열고 지배하는 것은 하무백의 검이었다.

묵강이 어린 검으로 검식을 펼친 탓일까.

광회천은 암흑 속에 빠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순간.

서걱.

오른 팔꿈치 아래가 잘려 나갔다.

서걱.

이번에는 왼팔이었다.

정말 찰나지간이었다.

그야말로 일 수유라 표현할 극히 짧은 시간.

그 사이에 모든 것이 일어났다.

"크아아악!"

광회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깨끗이 잘린 팔꿈치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양팔을 모두 잘랐기에, 점혈을 통한 지혈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피가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광회천의 얼굴이 점차 하얘졌다.

하무백이 손가락을 튕기자 지풍이 날아가 절단면 주변의 혈을 눌렀고, 점차 출혈이 줄었다.

"이 정도냐?"

다시 묻는 하무백.

"으으."

광회천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넘쳐흐르는 내공을 기반으로, 가장 자신 있는 검법을 펼쳤다.

장담할 수 있었다.

조금 전의 자신이라면 설사 벽력개라 하더라도 감히 감당할 수 없었다.

잘해야 백 초를 넘길까? 어쩌면 이백 초까지 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괴물은 뭐란 말인가.

자신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더니.

딱 한 번.

그래, 제대로 공격을 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그 결과가 자신의 양팔이 사라진 지금이다.

"괴, 괴물 새끼······."

혈교도들이 하무백에게 하던 말이 광회천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하무백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난 멀쩡한 사람이다. 괴물은 네놈들이지. 사람을 식강시로 만드는 독 따위를 만들고 있는 네놈들 말이야."

하무백의 발이 땅을 박찼다 싶은 순간.

퍽.

그대로 광회천의 배에 틀어박혔다.

"크아아아아악!"

커다란 비명이 광회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가장 고통스러운 곳을, 가장 고통스러운 강도로 찼으니까.

고통에 몸부림치던 광회천이 풀썩 주저앉는 순간.

콰지지직.

하무백이 그대로 그의 발목을 밟아 바스러뜨렸다.

"크허허헉."

비명은 계속됐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무백은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눈이 하얗게 뒤집히려 하는 순간.

하무백의 발끝이 가볍게 광회천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퍽!

정말 가볍게 살짝 후려쳤다.

혹시라도 죽으면 안 되니까.

"으윽."

적당한고통은, 눈이 뒤집히려던 걸 막았다.

오히려 정신을 차려버린 광회천.

"고작 이 정도로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되지. 아직 멀었어."

그 말과 동시에 날아든 하무백의 검은 그대로 광회천의 단전을 꿰뚫었다.

"커헉!"

깔끔한 일 검.

묵강은 그대로 광회천의 하단전을 소멸시켰다.

그 순간 사라져버린 내공.

"혈맥을 터뜨려서 자살 같은 거 할 생각 하지 말고."

하무백이 무심히 말했다.

광회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직 멀었어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광회천은 모든 걸 포기했다.

자살하려 마음먹고 단전을 폭주시키려 했으니까.

저 미친 괴물 놈의 무저갱 같은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죽는 것이 낫겠단 판단이 섰던 것이다.

살아서 고통을 당한다면······.

제 발로 지옥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니.

그러나 상대가 빨랐다.

단전은 사라졌고, 내공도 사라졌다.

이제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양팔이 사라졌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은 혀를 깨무는 것뿐인데.

고작 그 정도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저 피를 좀 흘릴 뿐.

이제 광회천의 생사는 온전히 하무백의 손에 쥐여 졌다.

그 순간 하무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단전을 소멸시켰는데, 그 순간 이질적인 기운이 놈의 혈맥 안에서 움직였다.

중단전과 상단전으로 스며드는 극히 미약한 기운.

'뭐지?'

무언가 어찌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일반적인 내공도 아니었고.

'숨긴 것이 더 있다면, 부수면 될 일.'

하무백은 품에서 잠혼독을 꺼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양을 광회천의 코에 가져다 댔다.

숨을 쉬는 것과 동시에 흡입한 잠혼독.

"걱정 마. 그 정도로 식강시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이미 그 양에 대한 대강의 계산을 마친 하무백.

"크윽. 크아아악."

광회천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다른 고통이 아니다.

미칠 듯이 치밀어 오르는 식욕과 충동에 대한 고통.

양팔이 없고 한쪽 발목이 박살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그 욕구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당장 흙이라도 퍼먹고 싶었으나 손이 없지 않은가.

그의 뇌리를 완벽히 차지한 충동은 고통마저 느끼지 않게 만든 듯했다.

광회천은 야산의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흙바닥을 혀로 핥고 이빨로 긁었다.

그렇게 입에 들어온 흙을 어그적 어그적 씹어 삼켰다.

정말 무엇이든 먹어야겠다는 모습.

"빌어먹을 새끼들."

하무백은 그 모습에 그의 양 무릎을 밟아서 박살을 냈다.

"크악. 아구. 쩝쩝."

순간적인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다가 이내 다시 흙을 퍼먹는 데 정신이 없는 광회천.

식강시가 되지 않았다 뿐이지.

이 정도면 사람이라 할 수 없었다.

"계산에 오차가 있었던 모양이군."

현재 광회천은 단전이 박살이 나, 내공이 없는 상태.

내공이 없는 이들에게 잠혼독은 잠복기가 없이 오히려 즉효였다.

내공이 있는 경우를 기준으로 양을 계산했기에 좀 많은 양을 흡입케 한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조금만 더 많았으면 저놈은 식강시가 되었을 터.

더 이상은 의미가 없었다.

하무백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죽어라."

하무백이 검을 치켜든 순간.

"아직 그럴 순 없지."

갑자기 흘러나온 낮은 목소리.

하무백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 수밖에.

지금 광회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광회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무백이 멈칫하는 순간.

광회천이 몸을 일으켰다.

무릎과 발목이 박살이 났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후들거리면서도 일어서는 광회천.

그리고.

팔꿈치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팔이 솟아났다.

무릎과 발목도 기괴한 소리를 내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너. 누구냐?"

하무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강시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괴이한 존재.

광회천도아닐 터.

조금 전까지 광회천이었다 한들, 지금은 분명 아니었다.

"큭큭큭. 글쎄? 누굴까?"

괴이한 목소리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눈동자의 색이 변했다.

흰자위 따위는 없는 새까만 눈.

동공과 흰자위의 구분이 없는 그저 암흑 같은 검은자위만이 가득했다.

"대단하군. 하무백.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과연 네놈을 경계하는 이유를 알겠다."

"너. 누구냐?"

하무백이 다시 물었다.

그 음성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상대를 향한 투기가 가득했다.

"석무원."

의외로 순순히 이름을 밝힌 상대.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괴이한 현상에 더해, 상대의 성씨를 듣자 단번에 떠오르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 새끼로군."

"흐음. 역시 똑똑해."

석무원은 긍정했다.

"그럼 네놈은 석원초의···."

괴상한 술법에 석씨라는 성을 듣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할아버님이시지."

하무백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졌다.

석원초.

하무백의 검에 명을 달리한 마교 교주의 이름이었다.

"하. 혈교 새끼도, 마교 새끼도. 왜 자꾸 이렇게 기어 나오는 거지?"

하무백의 검이 다시 묵빛으로 물들었다.

조금 전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의 정체는 마기였다.

대체 언제 저놈이 광회천을 만나 저렇게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일까?

"크크크. 나는 석무원이지만, 이 몸은 분명히 광회천이다. 이 몸을 어찌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못 해."

괴소를 흘리며 말하는 석무원.

"빌어먹을 마교 새끼들. 기이한 술법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칭찬으로 듣지. 크크크. 그렇다고 너무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이건 결코 쉬운 술법이 아니니까. 나도 네놈 덕분에 필생의 술법 하나를 버리게 된 꼴이라. 마음이 편치가 않아."

그러나 여전히 묵강을 피워올린 채 인상을 쓰고 있는 하무백.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네놈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봐야겠다. 할아버님이 어쩌다가 그리 당하신 지. 좀 전의 초식 정도가 전부라면······."

그 말과 동시에 광회천의 몸에서는 기분 나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무백은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검을 움직일 뿐.

다시 그 손에서 펼쳐진 개천.

다만 달랐다.

조금 전보다 더 빨랐고, 더 많은 변화를 보였으며, 더 강했다.

그 결과.

검은 광회천의 몸을 꿰뚫었다.

몸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검격의 힘을 이기지 못한 채, 광회천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개천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어머어머한 거력에 광회천의 몸을 바깥부터 서서히 사라져갔다.

흡사 천천히 소멸해 가는 듯한 모습.

몸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에도 광회천의 의식은 살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석원초의 손자의 의식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광회천의 몸이 겪고 있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발가락 끝부터 몸이 소멸되어 사라져 가는 듯한 그 끔찍한 느낌.

이윽도 팔다리가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가 싶더니, 몸통도 스르르 소멸되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머리 역시, 언제 그곳에 그것이 있었냐는 듯 흔적조차 남지 않고 소멸되었다.

"이 개같은 새끼가······."

하무백이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

"크허헉."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청년이 두 눈을 부릅뜨고는 피를 토했다.

"헉. 헉. 헉······."

그리고 세차게 몰아쉬는 호흡.

"과연 괴물이군······."

낮게 중얼거리는 청년.

"할아버지께서 그리 당하실 만했어."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는 청년, 석무원.

"하지만 나도, 아버지도 다를 거다. 하무백. 할아버지가 완성하신 마공은 진정한 마공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호흡을 고르는 석무원.

천천히, 그러나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혈교 놈들 좀 이용해보려고 사용했던 만마식혼화신대법(萬魔食魂化身大法)이었는데.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었군. 허무공 중 하나의 소재를 알았고. 하무백 놈의 실력도 간접적으로나마 겪었으니. 세 번의 횟수 중 한 번을 사용한 보람이 있었어."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면서도, 석무원은 만족스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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