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성장했네
세 노인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공손무외, 당자청 그리고 위지군.
이 세 사람은 잠혼독을 눈앞에 두고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해약은 만들었다.
어렵지만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허나 지금 하려는 일은 세 노인이 머리를 맞대도 도통 진전이 없었다.
"특정 독에 중독되지 않게 하는 해약이라······."
당자청이 작게 읊조렸다.
물론 그런 약이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것의 원리는 미리 독에 중독되어 회복되는 과정을 거쳐 독에 저항력을 기르는 것이다.
잠혼독에도 과연 그 방법이 통용될까 실험해봤지만, 아니었다.
잔뜩 있는 잠혼독을 이용해 몇 번이나 스스로 중독되어 봤지만 그때마다 증상은 같았다.
잠혼독에 대한 저항력은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독에 스며 있는 혈독공 때문인 듯하구만."
당자청은 나름의 분석을 이야기했다.
그리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공손무외와 위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미 두 사람도 잠혼독을 몇 번 겪었으니까.
정말 지독한 독이었다.
세상에 이런 독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혈교란 집단은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인간의 식욕.
탐식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이지를 상실한 강시를 만들다니.
몇 번 스스로 중독되면서 독을 시험한 위지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혈독공이라는 것. 혈공의 일종일 텐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닐세. 그것 이외의 불순물이라 할까, 이물질이라 할까. 그런 내공이 살짝 뒤섞여 있는 것 같군."
위지군의 말에 당자청과 공손무외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어렸다.
세 노인은 어느새 서로 말을 편히 나누고 있었다.
비슷한 연배이기도 했고 같이 고민을 나누다 보니 그리되었다.
서로의 능력에 대한 존경도 한몫했고.
"그건 아마도 마공일 겁니다."
그때 공손단경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늦은 밤까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리 말하는 공손단경의 얼굴에도 피로가 가득했다.
그 역시 수없이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이곳에 들른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 피곤해할 정도의 업무량이었으니.
교룡관의 팽도율과 연백진, 그리고 정천맹 무창지부장은 실신한 지 오래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수많은 업무를 처리한 기유찬은 하늘 밖의 하늘을 목도하고 감격에 몸을 떨며 코피를 흘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공손단경에게로 향했다.
"정천맹의 총군사를 맡고 있는 공손단경이라 합니다."
뒤늦은 자기소개.
당자청과 공손무외는 이미 그를 알고 있으니 위지군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이다.
"아, 귀찮은 노인네······."
위지군이 하무백에게 언젠가 들었던 말을 중얼거리자 공손단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 단주에게 제가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입니다."
그 말에 다들 웃음을 지었다.
"숙부님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공손무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라 하였지만, 멀고 먼 관계다.
선유곡이 생기기도 전에 서로 갈라져 나갔기에, 친척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그저 같은 성씨를 쓰고 같은 항렬을 쓴다는 것 정도.
항렬상 공손무외가 공손단경의 숙부 뻘이었기에 그리 부르는 것이다.
"그보다, 마공이라고?"
공손무외의 물음에 공손단경이 답했다.
"네. 하 단주, 아니 하 교관의 말을 들어보니, 광회천 그자는 마교의 대법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허니 아마도 잠혼독을 만들 때 마공이 섞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 들른 것이다.
하무백이 미처 이들 세 사람에게 마교의 대법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다.
"마공. 마공. 마공이라······."
위지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즉시 잠혼독을 흡입하고는 운공에 들어갔다.
독의 움직임을 다시 관조하려는 것이다.
***
"뭐가 이리 진지하냐? 일어나라. 어서."
하무백이 허공섭물로 단목운뢰를 일으켜 세웠다.
단목운뢰는 그저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서 있을 뿐이다.
"공짜 아니라고 했었지?"
하무백의 물음에 단목운뢰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대가라도 상관없습니다. 비고 안의 모든 것을 달라 하셔도 괜찮습니다."
즉각 튀어나온 단목운뢰의 말.
그 말에 하무백이 비스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나를 양아치로 아는 거냐?"
단목운뢰가 흠칫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는 하무백.
"가자. 가서 보자.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무공인지."
하무백의 말에 단목운뢰가 앞장섰다.
***
단목운뢰와 함께 하무백은 관제묘로 향했다.
늦은 밤이건만 거지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 있었다.
아니, 그게 당연했다.
이곳은 개방 거지들의 본거지였으니.
벽력개는 없었다.
그는 단목운뢰의 집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광회천이 제거되었음에도 그러고 있었다.
지난번.
전각 더미에 깔리면서 광회천을 놓쳤고, 그가 여화를 찾아갔던 일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무백이 아니었다면······.
벽력개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벽력개의 언질이 있었음인가.
단목운뢰가 모습을 드러내자 거지들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관제묘 밖으로 나갔다.
"어르신이 조처를 해두신 모양이군."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단목운뢰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 보자."
하무백의 말에 단목운뢰는 제단 아래로 시선을 두었다.
하무백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이건······."
단목운뢰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하무백은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과연··· 여기 이 자리가 열쇠를 꽂을 자리겠군. 그렇다면 열쇠는 그 팔찌인 건가?"
단번에 알아보는 하무백.
그 모습에 단목운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 바닥의 원들. 그냥 아무렇게나 파 놓은 게 아니다. 은하환상검법. 너희 가문의 검법 중 하나인 그것의 흔적이다. 그리고 이 원은 은하환상검법의 초식의 시작이자 끝인 부분이고."
그러니 하무백이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단목세가의 비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은하환상검법의 초식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광회천. 그놈이 여기에 왔다면 단번에 알았겠군.'
하무백과의 싸움에서는 은하환상검법을 제대로 펼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단목세가의 천재 중의 천재라는 평을 들었으니, 당연히 알았을 터.
단목운뢰가 열쇠를 제자리에 꽂으니 문이 열렸다.
그렇게 단목운뢰와 하무백은 비고 가장 안쪽의 석실에 도착했다.
하무백은 성큼성큼 걸어가 비급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단목운뢰를 절망에 빠뜨린 비급이 이 둘임을.
아니, 여기에 있는 그 어떤 비급이라 하더라도 단목운뢰는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이제 무공입문 일 년 차.
비급으로 무공을 익힌 적도 없는 초심자이니.
불가능한 것이 당연했다.
하무백이 먼저 본 것은 팔십일식은하환상검법이었다.
단목세가 최상의 검공.
이건 하무백도 지난 전쟁에서 본 적이 없었다.
하무백이 봤던 것은 은하환상검법이 전부.
은하환상검법은 모두 구식(九式)으로 이루어진 검법이었다.
찬찬히 비급을 읽으며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읽기만 해도 머릿속에 그 검법이 그려졌다.
"호오······."
하무백은 낮은 탄성을 흘리며 검법에 흠뻑 빠져들었다.
단목운뢰는 그저 긴장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
이 각쯤 흘렀을까.
하무백은 비급을 내려놓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다 살핀 것이다.
이번에는 허무호연심결을 집어 들었다.
단목세가의 알려진 내공심법은 호연청명심법.
허무호연심결은 하무백도 처음 보는 내공심법이었다.
비급의 책장을 넘기는 하무백의 손길이 점점 느려졌다.
가끔씩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흐음."
고민하는 듯한 음성.
단목운뢰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무백이 난감해하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관님도 안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함.
그렇게 한 시진이 흘렀고.
하무백은 허무호연심결의 비급을 덮었다.
"어, 어떻습니까?"
불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단목운뢰.
"뭐, 이정도 가지고. 걱정 접어둬라. 그럼 이만 가자. 그리고 이 비급은······.
하무백은 허무호연심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공짜가 아니라고 했었지?"
"네."
단목운뢰는 짧게 답했다.
"그럼 이 비급으로 하지."
허무호연심결을 집어 들면서 말하는 하무백.
"알겠습니다."
단목운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어머니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동생 혜아의 목숨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 비고의 모든 것들 드려도 아깝지 않다고.
거기에 더해 자신에게 가문의 무공을 가르쳐주겠다 하시는데.
아무리 귀한 무공이라 한들 아깝지 않았다.
하무백이 마음에 든다는 듯 빙긋 웃었다.
"성장했네."
그 말과 함께.
화르르르르.
하무백이 일으킨 삼매진화에 허무호연심결의 비급이 불탔다.
그 광경에 단목운뢰가 순간적으로 놀랐다.
그럴 수밖에.
이렇게 비급을 불태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
그 후 하무백은 다른 비급들을 살폈다.
남은 비급들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단목운뢰는 그 모습도 잠자코 지켜보았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라 여긴 것이다.
"수련은 내일부터다. 이제 그만 가자."
"네."
단목운뢰가 짧게 답했다.
어느새 신색을 회복한 터.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집으로, 교룡관으로 향했다.
교룡관의 숙소에 돌아온 하무백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보름달이 휘영청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허무호연심결······.'
자신이 불태워버린 비급을 떠올리는 하무백.
이미 그 내용은 머릿속에 모두 있었다.
한 번만 읽어도 어지간한 비급은 모두 외울 수 있었다.
그런 하무백이 무려 다섯 번을 읽고 외웠다.
그 후 태워버린 것이다.
처음 허무호연심결의 비급을 읽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석무원.
그 새끼가 광회천에게 대법을 펼친 이유가 이것임을.
일의 선후는 모른다.
광회천에게 대법을 펼친 후 비급의 존재를 알았을지.
비급의 존재를 알고서 광회천에게 대법을 펼친 것인지.
중요한 것은.
석무원 그 새끼가 저 비급의 존재를 알았음이고, 아마도 노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완전하지만, 불완전했지.'
하나의 심법으로 완전한 무공이었다.
허무호연심결은.
단목세가라는 명문정파 최고의 심법답게 정순하고 웅혼한 심법이었다.
허무라는 명칭이 왜 붙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만 그 웅혼함 속에 거대한 어떠한 힘이 숨어 있었다.
그것도 불완전한 힘이.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잠깐 고민했다.
그래서 굳이 다른 비급도 모두 살폈다.
그리고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허무호연심결.
이것이 단목세가의 무공의 시작이었다.
다른 무공은 전부 여기에서 파생된 것.
거대한 힘을 활용한 공부를 만들고, 그것에서 오히려 그 거대한 힘을 뺀 후 하나둘 완성한 것이 단목세가의 무공이었다.
호연청명심법이 그러했고, 은하환상검법이 그러했다.
다른 모든 무공이 그러했다.
시작이자, 기본인 허무호연심결.
그리고 거기에서 알맹이를 쏙 빼고 만든 것이 단목세가의 무공.
알맹이가 들어있는 것은 허무호연심결이 유일했다.
'팔십일식은하환상검법은 그 알맹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검법이었고.'
그 거대한 힘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검법, 그것이 팔십일식은하환상검법이었다.
다만, 그 거대한 힘이 들어있지는 않았기에 비급은 그대로 두었다.
'위험한 비급이다.'
하무백이 그리 생각할 정도로 허무호연심결은 엄청난 힘을 지닌 무공이었다.
'석무원, 아니 마교 새끼들이 저 비급을 노리는 것은 아마도 나 때문이겠지······.'
하무백은 정확히 그들의 의도를 짐작해냈다.
그럴 수밖에.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직접 상대했던 마교의 천마신공.
그 이상의 힘이 스며 있는 무공이었음이니.
그런 상념에 잠겨 있던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 기운, 낯설지만은 않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달랐지만 비슷했다.
무극여의심법의 오묘한 묘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