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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01화 (201/312)

201화. 오라버니

해약을 완성하고 사흘이 지났다.

여전히 해약은 잠혼독에 반응하여 그것을 흩어내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그럼에도 당자청과 공손무외는 새로운 해약의 조합에 여념이 없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는 것이다.

당지연은 오늘도 아침에 잠혼독을 복용했다.

역시나 해약이 반응하며 잠혼독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좋아."

당분간은 크게 할 일이 없었다.

해약은 작은 단약 형태로 조제하기로 결론을 지었기에 약재와 함께 연단 준비만 해둔 터.

지금은 결과를 지켜보는 시기였으니 그 이상은 할 일이 없었다.

해서 오랜만에 몸을 풀러 가기로 했다.

무공 수련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홀로 하는 것과 상대가 있는 것은 달랐으니까.

'진산 녀석 영사구편도 제법이었고.'

교룡관 맹룡대에 입관 후 달라진 동생의 모습이 퍽 기뻤다.

당지연은 입가에 은은한 웃음을 머금고 맹룡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적당히 손봐주겠다고 생각하면서.

"타핫! 핫!"

맑은 기합성과 함께 저마다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생도들.

휴관기임에도 저리 열심히 수련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욱이 잠룡대도, 와룡대도 아닌 맹룡대가 저런 모습이라니.

휴관기에 본가나 본파에 돌아간다는 핑계로 교룡관을 떠나는 이들이 수련에 얼마나 게을러지는지 알기에 더욱 감탄했다.

당가에 있는 잠룡대 생도들도 보통은 그랬으니까.

당지연의 두 눈이 당진산을 찾았다.

열심히 편을 휘두르고 있는 당진산.

지난번에는 검이더니, 자신과 편으로 겨뤄서 처참한 꼴을 당했다고 이제 편을 집중적으로 수련하는 모양이다.

헌데, 하무백 교관이 그 수련을 봐주고 있었다.

당가의 무공인 영사편법을.

교룡관의 교관이.

'하 교관님. 대체 정체가 뭘까?'

물론 알고 있다.

지난 두 번의 전쟁의 숨은 영웅.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겪은 하무백의 모습들.

식강시를 상대하는 모습, 중독된 이들을 해독하는 모습, 신출귀몰한 무공에 더해 이제는 당가의 편법을 봐주는 모습까지.

알면 알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대단한 분이시죠?"

그때 곁에서 들린 공손비연의 물음에 당지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비연 역시 일이 한가해진 틈에 잠시 몸을 풀고 싶다며 그녀와 함께 연무장으로 향하는 중이었으니.

해약의 조합과 실험에 매달리는 동안 몸이 너무 굳은 것 같다는 이유였다.

"알 수 없는 분인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에 공손비연은 살풋 미소를 지었다.

당지연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같은 여자인 자신마저 반할 것 같을 정도로.

휴관기의 교룡관은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공손비연은 면사를 벗고 다녔다.

하여 그 아름다운 미소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응?"

검을 멈춘 주우명의 시선이 그녀들에게로 향했다.

기척을 느낀 탓이다.

그리고.

주우명은 그대로 멈출 뻔하다가 이내 제정신을 차렸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미녀를 보았으나, 이미 내성이 있었으니.

자신과 함께 수련하는 연하민 역시 그녀 못지않게 아름다웠으니까.

아니, 하설란 역시.

그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란 주우명.

자신이 보고 놀란 미녀가 누구인지 알아챈 까닭이다.

선국화(仙菊花) 공손비연.

지난 동투제 때도 먼발치서 몇 번 보았지만 그때는 면사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습을 본 것은 처음.

그 엄청난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으나, 이내 진정을 했다가 그 이유에 다시 깜짝 놀랐다.

'하민과 설란의 미모가 무림오화 선국화에 견줄 만하다고?'

아름답다고 생각은 했으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주우명은 공손비연과 연하민, 하설란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아무리 아름다움에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도가인 무당 출신인 그로서는 여자에 대한 면역이 약했으니.

여자들을 이렇게 자주 보게 된 것도 교룡관에 온 이후가 처음 아니던가.

"응? 왜 그래?"

주우명의 모습에 백리평도 고개를 돌렸고, 이어서 단목운뢰, 낙우진이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주우명과의 차이라면 그들은 공손비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매일 보는 연하민, 하설란은 익숙해졌으나 처음 보는 공손비연의 미모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연하민과 하설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쯧. 아무튼."

"쯧쯧. 남자들이란."

그 중얼거림에 그때야 당진산이 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 정도로 수련에 집중해 있었다.

그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당지연이었다.

"마녀! 왔구나! 오늘에야말로······. 응?"

호기롭게 당지연에게 소리치던 당진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멈췄다.

그제야 공손비연을 발견하고는 사고가 정지한 까닭이다.

하무백은 그런 생도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직 미숙한 녀석들이다.

미인계 한 번에 다 쓸려나갈지도 모를 멍청한 놈들 같으니.

"무슨 일이시오?"

하무백의 물음에 당지연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몸도 좀 풀고 비무도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실례가 아닐까요?"

지난번도 그런 적이 있던 터다. 실례일 리 없었다.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덕분에 이놈들 약점도 발견했고요."

하무백의 말에 공손비연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저런 말을 하는 연유를 아는 까닭이다.

생도들의 시선은 느끼고 있었으니.

황급히 품에서 면사를 찾으려 할 때 하무백이 그것을 막았다.

"괜찮습니다. 답답하실 터인데. 저놈들이야 제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하무백의 허락에 생도들이 연무장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비무가 어찌 될지는 너무 뻔한 사실이었으니까.

당진산은 보무도 당당하게 연무장 가운데로 가고 있었다.

공손비연은 하설란과 연하민의 곁으로 왔다.

"소란을 일으킨 것 같아서 죄송해요."

조심스레 말하는 그녀.

"아니에요. 쟤들이 못난 거죠. 저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연하민이 맞은편 가장자리의 생도들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곁에서 하설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다를 거야."

그때 당진산이 당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오. 고작 며칠 수련한 걸로? 오늘은 더 심한 꼴 당할지도 모르는데?"

당지연의 말에 당진산은 편을 한 번 바닥에 세차게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선공은 당진산이었다.

영활한 움직임을 보이며 날아가는 편.

당지연은 가볍게 보법을 밟아 편을 피하고는 이윽고 자신의 편을 휘둘렀다.

차악! 착! 착!

허공에서 어우러지는 두 개의 편.

마치 검은 뱀 두 마리가 허공에서 싸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무백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독에 대한 재능이 무공에 대한 재능을 가렸군.'

교룡관에 온 이후 본 그 나이대의 후기지수들 중 당지연이 가장 강했다.

지금도 역시.

당지연은 적당히 당진산의 경지에 맞춰서 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지난번도 그랬고.

물론 마지막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지만.

마치 지도 대련을 하듯이.

당진산을 거칠게 대하는 듯했지만, 이렇게 보고 있자니 확실히 동생을 아끼는 누이의 모습이었다.

하무백도 아끼는 동생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비무는 점차 치열해졌다.

당지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어떻게 며칠 만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체 하무백 저 인간은 자신의 동생에게 무얼 가르친 걸까.

갑자기 자신도 맹룡대 칠 조에 들어 하무백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 좋았지만 무공도 좋았다.

계속해서 강해지는 그 희열은 마약과도 같았으니.

당지연의 편의 움직임이 점점 더 현묘해졌다.

당진산은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때때로 의표를 찌르며 오히려 당지연을 놀라게까지 했다.

검법에 비해 미숙해 보이던 편법이 단 며칠 만에 이렇게 탈바꿈하다니.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당진산의 편이 당지연의 방어를 피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당지연도 당연히 다음 움직임을 알고 있기에 좌측으로 한 발 움직이는 찰나.

편이 교묘히 움직이면서 그 뒤를 쫓았다.

'뭐?'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순간 당황한 당지연.

영사구편 속에 호연십팔편을 섞은 것이다.

당가 편법의 입문공인 호연십팔편이다.

한창 영사구편으로 비무를 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호연십팔편이라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단순한 변화와 움직임이었으나, 당지연의 방심을 완벽히 찔렀다.

당진산의 편은 곧바로 영사구편의 움직임을 보이며.

짜악!

당지연을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됐다!"

작전의 성공에 환성을 내지르는 당진산.

사실 이 전법은 하무백의 조언을 바탕으로 구상한 것이다.

적의 방심을 이용하는.

당지연은 훌쩍 뒤로 물러나 편의 간격 밖으로 나갔다.

"어!"

"어어······."

그런 당지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생도들이 입을 벌렸다.

주우명은 비롯한 남자 생도들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당지연은 통증이 느껴지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윗 가슴과 목 사이의 부분.

편에 당한 상처로 옷이 찢어지고, 뽀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드러난 곳엔 붉은 편 자국도 나 있었다.

가슴 부분이 찢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아래에 맞았어도 그럴 뻔한 상황.

그제야 당진산도 그 사실을 인식했다.

"아, 아니. 난. 진짜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하여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횡설수설하는 당진산.

그 말은 사실일 터다.

한 대 때리는 데 집중한 그가 어찌 때리는 부위를 노렸겠는가.

빈틈이 드러난 순간 냅다 휘두른 것이지.

그 결과가 지금이다.

당진산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당지연이 왼손으로 옷이 찢어진 부분을 가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전투 중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알고 있다.

무인으로서 생사결을 벌인다면 이따위 것은 신경 쓸 일도 아니란 것도.

하지만 이것은 비무다.

동생의 동료와 교관들도 지켜 보고 있고.

쪽팔렸다.

그것이 당지연의 솔직한 심정.

그 심정은 이내 분노로 화했다.

두 눈이 불을 뿜었다.

그녀가 분노하는 만큼 오른손에 들린 편이 꿈틀거린다 싶더니 서서히 솟아올랐다.

이윽고 마치 창처럼 꼿꼿해진 편.

"펴, 편강."

단목운뢰가 깜짝 놀랐다.

미약했지만 분명 편에는 강기가 어려 있었다.

'역시.'

하무백은 짐작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 헌데 벌써 강기의 경지를 이루었다.

대단한 이였다.

"누, 누나! 그러니까 이건······."

마녀 대신 누나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소리.

"죽어!"

외침과 함께 당지연의 편강이 당진산을 향해 날아갔다.

"크아아악!"

무자비한 손속에 당진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을 뿐.

얼마나 공격이 이어졌을까.

"그만!"

하무백이 외쳤다.

"그러다가 진짜 죽습니다."

이어진 말에 당지연이 편을 허리에 감았다.

연하민이 황급히 피풍의을 가져다주었다.

아직 날이 추웠기에 입고 다녔는데, 수련 중에 벗어둔 것을 그녀에게 건넨 것이다.

"고마워."

당지연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피풍의를 걸치고는 앞섶을 여몄다.

그제야 남생도들이 시선을 바로 했다.

"쯧. 멍청한 놈들. 전장에서 그러다가 죽는다."

하무백의 질책에도 얼굴이 벌게진 남생도들의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쯔···쯧. 진짜 쑤··· 쑥맥들이네······."

바닥에 널브러진 당진산이 다 죽어가는 꼴을 하고는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찌릿.

당지연의 날카로운 시선이 향하자 이내 입을 닫았다.

'에효, 저 녀석들. 다음에 성도에 한번 데려가서 제대로 뜯어고쳐 놔야겠네.'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당진산이었다.

그 후.

당지연과 공손비연은 연무장을 떠났고, 하무백이 당진산의 상세를 돌봐 주었다.

"멍청한 놈."

하무백의 질책.

"그, 그게 그곳을 노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막 당진산이 변명하려던 찰나 하무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다. 왜 멈췄지? 공격에 성공했는데?"

"아······."

"상대가 결과에 당황하기까지 했는데, 네놈이 더 당황해서 물러나면 어쩌자는 거냐."

"······."

"전장에서는 더한 일도 있고. 산월마림에서 젊은 여성이었던 강시가 옷 안 입고 덤비면 그냥 물러서기만 할 거냐?"

당진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오라버니."

그때 하무백을 부르는 하설란.

그녀의 얼굴이 묘했다.

그 모습에 당황한 하무백.

"아니, 이번 일은 특수한 경우라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실전에서의 일을 경고하는 거야."

동생의 매서운 표정에는 하무백도 어쩔 수 없이 주춤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생도들의 입가에는 슬그머니 미소가 걸렸다.

그 와중에 단목운뢰의 눈은 초점이 살짝 흩어져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바빴다.

조금 전 당지연이 보여준 모습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자신이라면 팔십일식은하환상검법으로 어찌 상대했을지 치열하게 상상하고 있었다.

지금 머릿속에서 조금 전의 당지연과 가상의 비무를 펼치고 있는 셈.

하설란의 찌릿한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던 하무백은 그런 단목운뢰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어떤 상태인지 알아본 것이다.

'역시 매사에 이렇게 열심인 녀석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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