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학당으로 간다
전반기 개관식.
팽도율이 단상에 올라 생도들을 둘러보며 연설을 했다.
전반기의 시작은 후반기의 시작과는 달랐다.
일 년차 생도.
신입이 들어오는 탓이다.
개관식과 입관식이 동시에 치러졌다.
잠룡대, 와룡대, 맹룡대.
그냥 봐도 누가 신입 생도인지 보였다.
'올해는 어떤 녀석들이 있으려나.'
연설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팽도율이 생각했다.
이미 신입 생도들의 신상 명세는 모두 머릿속에 넣었다.
올해는 참으로 특이한 해였다.
'아마 지난 동투제 때문이겠지.'
원래라면 교룡관에 들어오지 않을 이들.
그런 이들이 많이 들어왔다.
동투제의 소문 때문이리라.
워낙 엄청났던 결과였으니.
그리고 또.
맹룡대도 작년과는 달랐다.
일초반식도 모른 채 들어온 이들이 태반이었던 맹룡대.
허나 올해는 그래도 무공을 익힌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름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중소문파의 제자도 있었다.
이런 변화의 시발점.
팽도율은 맹룡대 칠 조가 있는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개관식이 끝나고 교관들이 생도들을 인솔했다.
일 년차 생도들이 먼저 빠져나갔다.
"좋을 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당진산이 중얼거렸다.
피식.
백리평과 낙우진, 단목운뢰, 연하민.
네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어? 뭐야?"
당진산이 조원들을 돌아보았다.
작년 오늘.
서로가 어땠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다섯 사람이다.
그러니 당진산의 말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잔뜩 긴장한 채 이곳에 모였던 이들.
저마다의 사정과 사연을 가지고서.
이곳을 나서면 갈 곳이 없는 이도 있었고, 숨으러 온 이도 있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온 이도 있었고.
일 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들에게 일 년은 짧았다.
그런데도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작년의 자신들은 상상도 못 했을 모습.
그것이 지금 자신들의 모습이었으니.
한설빙이 그런 그들에게 다가왔다.
"노닥거리지 말고 모여."
그녀의 얼굴에 짜증이 살짝 어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하무백이 칠 조의 인솔까지 떠넘겼으니까.
충분히 못 쉬었다며, 오늘 불참했다.
이십 조 두 사람과 칠 조 다섯 사람.
모두 일곱을 데리고 향하는 곳은.
"학당으로 간다."
한설빙이 짧게 말했다.
"어? 왜 그곳으로?"
당진산의 중얼거림과 함께 생도들의 의문 섞인 시선이 한설빙에게로 향했다.
"이 년차부터는 과정이 좀 달라진다네."
그녀도 이틀 전에 맹룡대주 모용진호에게 전달 받은 것이다.
기존 교관들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신입교관인 그녀와 하무백은 모르는 사실.
그 자리마저 한설빙 혼자만 나갔다.
하무백은 정말 맹렬히 쉬고 있었기에.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조차 없었다.
어제서야 겨우 찾았는데, 돌아온 대답이 하루 더 쉬어야 하니 오늘 일은 맡기겠다 라니.
다시 생각해도 머리 위로 열이 뻗쳤다.
"네? 달라져요?"
하설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래. 본래 교룡관은 조별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렇죠. 잠룡대나 와룡대는 함께 대단위로 듣는 수업도 있고, 몇 개 조를 묶어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조별로 수업을 하기도 하지요."
당진산이 답했다.
당가 출신이기에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맹룡대도 이 년차부터는 그렇게 한대."
"네?"
그건 몰랐다.
"잠룡대, 와룡대 일 년차와 함께 수업을 듣는다네."
일곱 사람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일 년차요?"
백리평이 물었다.
"그래, 일 년차."
인상을 쓰는 몇몇 생도.
"후우."
한설빙이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가 특별한 거야. 모용 대주님께 듣기로는 맹룡대 이 년차라 하더라도 잠룡대나 와룡대 일 년 차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져서 오히려 그 두 곳에서 싫어한다고 해."
그 설명에 막 투덜거리려던 당진산의 입이 멈췄다.
맞는 말이다.
맹룡대의 일반적인 수준을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무림인으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은 배워서 가야한다고 관주님이 억지로 그렇게 하도록 하셨다네. 일 년차 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이 년차 때는 하나라도 건질 게 있을 거라고. 그러면 된 거라고."
한설빙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생도들도 이번에는 다시 움직였다.
그녀의 설명을 곱씹었다.
역시나 맞는 말이다.
맹룡대의 현실.
결국 일초반식도 모르는, 무공과 무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도 들어오는 곳이 맹룡대다.
당장 칠 조만 하더라도 단목운뢰, 낙우진, 연하민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이들을 잠룡대, 와룡대 일 년차와 함께 붙여놓았다?
칠 일도 버티지 못 하였으리라.
지금은 다르다.
맹룡대 칠 조만의 일 년.
그것이 그들을 몰라보게 변모시켜 놓았으니까.
모두 하무백 덕이었다.
당장 집에 가라고 귀찮은 티를 팍팍 냈던 교관이었건만.
그들을 동투제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올리게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해서 같이 받는 수업은 잠룡대와 와룡대의 교관들이 담당할 거다. 대부분 이론 수업이라. 뭐, 그쪽 교관들 중에서도 능력되는 이가 몇 없는 것 같던데.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 거야."
그렇게 학당 앞에 도착하니 수많은 이들이 줄을 지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학당의 건물이 교룡관에서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사실 일 년차 때도 이곳에 올 수는 있었다.
맹룡대 교관도 아무것도 모르는 생도들에게 기초적인 이론을 가르치기 위해 학당의 작은 교실을 이용하기도 하였으니까.
허나 칠 조는 달랐다.
이곳에 처음 왔던 날은 그저 비를 피하러 온 것이었으니.
게다가 당진산이 입을 잘못 놀린 덕에 그날은 학당의 장서고에서 자율학습을 했었다.
비급이라고는 제대로 읽지도 못하던 이들이.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비급을 본 적이 있었구나.'
단목운뢰가 학당 전각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가문의 비고에서 무공 비급을 처음 봤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어쩌다 이곳에서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몰라도, 여기서 무공비급을 처음 보았었다.
'오행신권이었나?'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지극히 기초적인 무공.
비급이라기보다는 입문서 같은 서책이었다.
권법의 자세 하나하나가 다 그려져 있고, 주석이 상세히 달려 있었으니.
진정한 의미의 비급을 처음 본 것은 가문의 비고에서가 맞았다.
학당 안으로 들어서니 낯익은 이들이 몇몇 보였다.
맹룡대 생도들이다.
그리고 낯선 이들도 가득했다.
그들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했다.
그들은 잠룡대와 와룡대의 신입 생도들이었으니.
'올해는 아무도 안 보낸다고 했었지?'
당진산이 누이의 말을 떠올렸다.
당가는 올해 교룡관에 제자를 보내지 않는다 했었다.
백리평을 힐끗 보니 종남의 제자도 없는 듯했다.
휴관기 동안 교관님이 종남에 가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맹룡대는 이 년차다.
지난 일 년 잠룡대와 와룡대 생도들의 무시를 겪었기에 자연스레 경계하는 것이다.
일 년차 생도들은 오늘이 교룡관에서의 첫 날.
모든 것을 경계할 때였다.
잠룡대와 와룡대의 교관들이 나와서 주변을 정리했다.
각기 정해진 단을 확인했고, 수업도 확인했다.
그렇게 들어간 커다란 교실.
오십 명 정도 수용 가능한 교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니.
잠시 후 교관이 들어왔다.
잔뜩 찡그린 얼굴의 한설빙.
"어?"
"응?"
칠 조 생도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당연했다.
학당 앞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자신은 가르칠 일이 없을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들어오다니.
잠룡대와 와룡대의 일 년차 생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연했다.
엄청난 미녀가 담당 교관이라고 들어왔으니.
"하아. '진법의 기초와 이해'라는 수업을 담당하게 된 맹룡대 교관 한설빙이다."
한숨과 함께 시작된 자기소개.
수업의 명칭을 들은 칠 조와 이십 조 생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빙의 진법을 직접 겪어 보았으니까.
'빌어먹을. 어째서 이 넓은 교룡관에 진법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제갈 교관 한 사람이야.'
제갈명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교관이다.
거기에 더해 맹룡대에게 방패술까지 가르치고 있으니.
해서 제갈명이 직접 한설빙에게 진법 수업을 맡아 달라 부탁했을 때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조금 전의 일이었다.
그렇게 전반기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당을 나올 때.
"이제 좀 교룡관에 들어온 것 같은데?"
단목운뢰가 힐끗 학당을 돌아보며 말했다.
낙우진과 연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율학습이 아닌 게 어디냐."
당진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보기만 해도 자율학습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오늘 남은 일정은 자율학습이었다.
어디에도 교관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
백리평의 말에 일행은 담룡동각으로 향했다.
이후 연무장으로 갈 동선을 생각한 것이다.
수많은 생도들이 이미 식사 중이었다.
그 중에는 신입 생도들도 있었다.
가장 구석진 곳에서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는 이들.
맹룡대의 신입 생도였다.
연신 힐끗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저 다섯 명이 이곳에 있는 맹룡대의 전부였다.
맹룡대 이 년차 생도들은 처음의 기억 때문인지 주로 담룡남각을 이용했다.
담룡동각으로도 가끔 오기는 하였지만.
아마도 저 생도들은 멋모르고 그냥 가까우니 이곳에 들어온 듯했다.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백리평 일행이 들어오자 그들의 시선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럴 수밖에.
백리평과 주우명은 지난 동투제의 준우승자와 우승자다.
즉.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두 사람이라는 의미.
"에휴."
당진산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구석진 곳의 식탁에 가서 앉았다.
맹룡대 신입 생도의 옆자리였다.
주변의 식탁은 모두 비어 있었다.
당진산이 움직이자 다른 일행도 그 식탁에 앉아 자리를 채웠다.
생도들이 연신 힐끔거렸다.
그러나 분위기가 달랐다.
조금 전은 노골적으로 바라보면서 저놈들은 뭔데 여기에 왔냐 라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저놈들이 왜 여기에 와서 눈치 보이게 저렇게 앉아 있어.
이런 분위기였다.
식판에 식사를 받아와서 막 한술 뜨려는 때.
"저······."
옆 식탁에 앉아 있던 일 년차 생도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맹룡대 이 년차 선배님들이시죠?"
조심스레 묻는 일 년차 생도.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남자 아이였다.
"작년에 동투제를 봤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해서 맹룡대에 자원했어요."
그의 시선은 주우명과 백리평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뜨거운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흠. 후배님."
당진산이 그런 일 년차 생도를 불렀다.
"네. 선배님. 초무하라 합니다."
"그래, 그래. 초 후배. 너 맹룡대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
당진산의 물음.
초무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이 년의 과정을 마친 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단 말이지?"
다시 한번 묻는 당진산.
초무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라."
당진산이 단호히 말했다.
그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동료들은 그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진산 이 녀석 왜이래?'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
당진산이 다시 한번 말했다.
"집에 가라."
초무하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당진산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식탁에 앉아 있던 다른 일 년차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