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07화 (207/312)

207화. 그 다음은?

'과연, 교룡관이군.'

언무웅은 수업 내용에 감탄했다.

역시 정파의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모이는 교룡관다운 수준이라는 생각.

자신같이 뛰어난 무인이 교룡관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마음속으로 자화자찬했다.

이 부분에서 그는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진짜 뛰어난 이들은 교룡관에 입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언무웅은 모르고 있었다.

비가영의 독과 약에 관한 수업은 훌륭했다.

특히나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언무웅으로서는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그 내용이 강호초출의 무인들을 위한 지극히 기초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비가영이 수업을 끝내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훌륭한 수업을 해준 아름다운 교관님이 맹룡대 잡것들과 눈인사를 하고 떠났다.

와룡대의 교관님이 어찌 맹룡대 잡것들과?

기분이 팍 나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주의를 주려던 참이다.

"어이!"

언무웅이 일곱 사람에게 다가가 불렀다.

동시에 고개를 돌리는 일곱.

"흐읍."

그중 두 사람을 보고 언무웅은 숨이 멎을 듯 놀랐다.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이 흉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초월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면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데, 저런 아름다움이라니.

면사를 벗은 모습이 못내 궁금했다.

하북성 진주.

작지 않은 도시인데, 그곳에서도 절대 볼 수 없는 미인이었다.

이런 미인이 무엇 때문에 고작 맹룡대에?

그런 의구심이 드는 찰나.

"무슨 일이지?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일곱 사람 중 한 명이 언무웅에게 말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언무웅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허리에 감긴 검은 편이 눈에 들어왔다.

교룡관에서 편을 저렇게 허리에 감고 다니는 이들은 뻔했다.

하지만 그들이 맹룡대에 있을 턱이 없었다.

오대세가의 일원이니 당연히 잠룡대에 있을 터.

"허. 네 녀석은 뭔데 맹룡대 주제에 허리에 그렇게 편을 감고 다는 거냐? 당가가 무섭지도 않으냐?"

언무웅의 호통.

그 말에 생도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특히 당진산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교실을 빠져나가려던 이들의 걸음이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은 것이다.

개중에는 맹룡대 다른 조의 생도들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이없음이 떠올랐다.

잠룡대의 무복을 입은 것을 보니 이제 막 입관한 일 년차인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혹시 당가의 사람이오?"

당진산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무웅은 당당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비록 오대세가로 이름 높은 당가의 사람은 아니나, 명문 진주 언가의 사람으로서 두고 볼 수 없어서 말한 것이다."

진주 언가(晉州 言家).

하북성 진주에 위치한 세가로 권법이 유명한 곳이다.

하북에 위치한 팽가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당당한 정파 명문 세가였다.

"당가의 사람이 아니면 굳이 참견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당진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같은 명문 세가의 사람으로 참견할 자격은 충분하다. 그리고 너희 맹룡대. 교실 분위기를 너무 흐리고 있어. 자격도 없는 이들이 교룡관에 운 좋게 들어왔으면 그만한 예의는 갖춰야지!"

이어진 호통.

다시 한번 두 눈이 동그래지는 일곱 사람.

잠룡대와 와룡대 일 년차 생도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들도 저 맹룡대 생도들이 아니꼽기는 했다.

특히 마지막에 비가영 교관과 아는 체를 할 때.

다른 조의 맹룡대 생도들의 두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어렸다.

맹룡대 생도들은 알고 있었다.

칠 조와 이십 조.

저 이들이 얼마만 한 괴물들인지.

그리고 출신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이들도 있음이니.

"흐음. 딱히 분위기를 흐린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진산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의 두 눈은 이놈이 과연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본 공자가 손을 쓰게 하지 마라. 언가의 권은 무섭다."

언무웅이 두 손에 내공을 잔뜩 불어넣으며 말했다.

그의 기세가 일렁였다.

"푸하하하하!"

그 순간.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무웅의 시선이 그쪽으로 획 돌아갔다.

뒷문 쪽.

그곳에 한 거한이 서 있었다.

잔뜩 일그러져 있던 언무웅의 표정이 그를 발견하자마자 풀렸다.

아는 인물인 탓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보 형님. 그렇지 않아도 오늘 중에 인사드리러 가려고 했는데."

잠룡대 삼 년차 생도.

황보패였다.

산동 황보세가.

역시나 오대세가에는 들지 못하지만, 권법으로 유명한 명문세가였다.

권법을 절기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 황보세가와 진주 언가는 항시 경쟁의 관계였고, 교류도 활발했다.

"그래 무웅. 오랜만이다. 교룡관에 들어온다는 소식은 들었다만. 지금 한가하게 나한테 인사나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물음.

"푸하하하하!"

황보패가 다시 한번 큰 웃음을 터트렸다.

연이은 웃음에 언무웅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황보패라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저리 웃는 것이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일 년차에다가 이제 입관한 지 이틀이니 모를 수도 있다지만······."

웃음을 멈춘 황보패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작년 동투제 우승자와 준우승자를 상대로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 게다가 당가의 직계에게 당가가 무섭지 않냐니."

이 교실에서 다음에 있을 수업을 위해 온 황보패는 언무웅의 언행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당가의 직계?"

그 말에 언무웅이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획 돌려 당진산을 쳐다보았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당진산.

"그리고 맹룡대라 하지만, 종남의 제자와 무당의 제자도 있다."

계속되는 황보패의 설명.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년차 생도들이다. 뭐, 년차는 큰 상관은 없으려나?"

황보패는 덩치만큼이나 목소리도 컸다.

덕분에 그 말을 주변의 이들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맹룡대 생도들이야 진즉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잠룡대와 와룡대의 일 년차 생도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가나 좀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끼어들면 쓰나?"

당진산이 황보패를 향해 말했다.

"나도 잠자코 있으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일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말이야. 이 녀석 눈치는 없어도 실력은 있거든."

언가의 권이 무섭다는 말을 했을 때.

황보패는 더 이상 지켜보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과장된 웃음을 터트리며 끼어든 것이다.

황보패는 언무웅의 실력을 잘 알았다. 가문 사이의 교류가 있는 덕이다.

해서 그는 언무웅이 교룡관에 입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언가주의 셋째 아들이긴 했지만, 그 능력은 언가의 후기지수 중 최고.

아니 하북에서 최고였다.

하북팽가의 망나니 덕에 팽가의 꼴이 말이 아닌 지금은 더더욱.

다만, 가문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 때문에 눈치가 좀 없었다.

황보패의 대답에 당진산이 빙긋 웃었다.

당진산은 이미 황보패와 한 번 붙은 전적이 있었다.

동투제 예선전.

당진산이 상대한 이들 중 하나가 황보패였다.

당연히 당진산의 승리였다.

당진산의 시선이 다시 언무웅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언가의 권이 무서운데. 그 다음은?"

당진산의 물음.

그러나 언무웅은 가만히 당진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왜 당가의 직계가 맹룡대에 있지? 잠룡대가 아니라? 겨우 그 정도 그릇이라서? 무당과 종남의 제자도 역시 그래서?"

언무웅의 물음에 황보패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불안불안 하더라니. 역시나 저 눈치 없는 녀석은.

분명 동투제의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있다고 말을 해주었건만.

"맹룡대는 어디까지나 봉마단을 보조하기 위한 집단으로 교육한다고 들었다. 정파의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교룡관의 목적에는 맞지 않은 이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제자가 왜 그런 곳에 있는 거지?"

명문정파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언무웅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이미 당진산의 물음 따위는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반면 언무웅의 말에 당진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른 맹룡대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산월마림을 겪고 왔으니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로군."

당진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무섭다는 언가의 권, 한번 견식해 봐야겠어."

"그쯤 하지. 당진산. 이 녀석도 몰라서 실수한 건데."

황보패가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당진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상관없어. 저 녀석은 명백하게 맹룡대를 우습게 깔아보고 시비를 건 거야. 그게 나였기에 망정이지, 저기 있는 저 친구들이었으면? 황보패. 너도 나서지 않았겠지."

당진산의 말에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던 맹룡대 생도들이 흠칫했다.

맞는 말이다.

만약 저 언무웅이라는 녀석이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었다면?

꼼짝도 못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이 년차이고, 저 녀석이 일 년차인 것은 중요치 않았다.

저 녀석이 더 강하다는 것이 중요했지.

황보패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잠룡대랑 와룡대 녀석들 여전히 우리 맹룡대를 무시하는데. 이번에 아주 그 못되어 먹은 근성 제 대로 손 봐 주겠어."

칠 조의 다른 생도들도 딱히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언무웅의 마지막 말이 그들을 자극한 것이다.

"맹룡대를 모욕한 대가는 제대로 치르게 해주마."

당진산이 날카로운 눈으로 언무웅을 바라보았다.

언무웅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잠룡대와 맹룡대의 차이를 본 공자가 직접 보여줘야겠군. 언가의 권과 더불어서. 나 언가의 삼남 언무웅이 당가의 직계 당진산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언무웅이 호기롭게 외쳤다.

상대가 당가의 자제라 하였기에 나름 격식도 갖추었다.

당진산이 서늘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기꺼이 받아들이지. 네 녀석은 맹룡대를 욕보였어. 맹룡대의 한 사람으로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지."

"우와아아아!"

갑작스러운 비무의 성립에 구경하던 이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교룡관 입관 이 일차부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용. 무슨 일이지?"

그때 들린 청아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

비가영 교관이었다.

이 교실에서 삼 년차 생도를 상대로 수업이 있었기에 다시 온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맹룡대 칠 조에게로 향했다.

휴식 및 이동 시간이 끝나가는 때에 여전히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있었으니.

아니 대부분의 생도가 그대로 있었다.

다음 수업을 위한 삼 년차 생도들까지 들어온 덕에 교실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구경꾼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와룡대 삼 년차 생도가 그가 지켜본 상황을 간략히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시비가 붙어서 비무를 하기로 했다라······."

비가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핵심만 요약하자면 그랬다.

생도들 간의 시시비비 때문에 비무가 벌어지는 일은 교룡관 내에서는 종종 있었다.

교관 사이에도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고.

다만.

이제 전반기 시작 이 일차다.

시비가 붙어서 비무를 벌이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

비가영의 시선이 당진산에게로 향했다.

'맹룡대 칠 조.'

그 교관에 그 생도라 할까.

분명 작년에도 전반기 초반에 비무가 있었다.

그것도 교관 사이의 비무가.

하무백과 사도광.

비가영은 골이 지끈거렸다.

하필이면 자신의 수업이 끝난 직후에 이런 소란이라니.

그것도 몰랐으면 모르되, 다음 수업을 위해 찾아왔을 때까지 이러고 있으니.

"후우. 점심시간에 비무를 하도록. 참관은 내가 할 거고. 손속이 과하다 싶으면 즉시 개입할 거야."

생도들 간의 비무라면, 교관 한 사람이 참관 및 심판을 봐야 했다.

비가영이 그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자신의 수업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무백이 얽히기라도 하면 더 골치 아파질 것을 염려한 탓이다.

"알겠습니다."

당진산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 알겠습니다."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비가영의 모습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언무웅 역시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했다.

"그럼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해."

그렇게 소란은 일단락됐다. 아니 점심시간으로 미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