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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08화 (208/312)

208화. 지면 죽는다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생도들은 교관의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은 온통 점심시간의 비무에 쏠려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을까.

가장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인데.

교룡관 전반기 이틀 차에 이런 사건이라니,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점심시간임에도 담룡각은 조용했다.

심지어 교관들도 몇 없었다.

겨우 수업 세 개가 진행될 동안, 소문이 교룡관 전체로 퍼져 버린 것이다.

덕분에 잠룡대 연무장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비무를 구경하러 온 것이다.

일 년차, 이 년차, 삼 년차, 사 년차 할 것 없었다.

잠룡대, 와룡대, 맹룡대의 구분도 없었다.

올 수 있는 이들은 죄다 몰린 것 같았다.

크지 않은 연무장에 이리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당연히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비가영은 그런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다들 참 한가한 모양이네."

예상치 못하게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벌써 점심시간의 절반이 흘러간 상황.

어쨌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기에 비가영은 비무를 진행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비가영의 말에 당진산과 언무웅이 마주 보고 섰다.

"와아! 아무나 이겨라!"

"제대로 싸워라!"

여기저기서 터지는 함성.

허나 당진산은 무덤덤했다.

반면 언무웅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교룡관의 수많은 생도들, 선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남궁지후가 백리평에게 다가와 물었다.

잠룡대 이 년차였기에, 그는 다른 수업을 듣고 있었다.

"뭐,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어."

백리평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한 번은 겪고 지나가야 했을 일이야."

남궁지유가 당진산과 언무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연하민의 되물음.

"사실 지금까지 교룡관 내에서 맹룡대에 대한 인식이 그랬으니까."

남궁지유는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매지만 다르긴 달랐다.

남궁지후는 전후 사정을 파악하지 못해서 백리평에게 물었는데.

"작년 우리와 너희의 일도 있고."

덧붙인 남궁지유의 말.

칠 조 생도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투제 이후로는 인식이 좀 바뀌긴 했지만, 문제는 올해 들어온 일 년차 생도들이지. 오늘 저 비무 이후로는 좀 달라질 거야. 그러니 한 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해야지. 언무웅. 저 생도가 아니라도 다른 생도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어."

연하민을 비롯한 칠 조 생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기에.

"그러면 진산이 압도적으로 이겨야겠네."

단목운뢰의 중얼거림.

"그럴 거야."

백리평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지난겨울 휴관기 동안.

당진산은 정말 미친 듯이 수련했다.

특히나 당지연과의 비무 때문에 더욱더.

지금의 당진산은 동투제 때의 그와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그 사이 비무 시작 전의 절차가 끝났다.

두 사람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언가의 무공이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음을 내 증명하리라.'

언무웅은 마음속으로 투지를 다잡았다.

'제대로 박살 낸다.'

당진산도 비무에 대강 임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럼, 비무를 시작한다!"

비가영의 외침과 함께 둘이 즉시 자세를 다잡았다.

예상과 달리 언무웅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간격을 벌리고 당진산을 관찰할 뿐.

어느새 착용한 권갑 주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먹에 내공을 잔뜩 밀어 넣은 모습이다.

"편은?"

아직도 맨손으로 서 있는 당진산을 보며 언무웅이 물었다.

"필요하면 사용할 거다."

그 말에 언무웅의 표정이 굳었다.

감히 언가의 권을 상대로 주무기도 사용치 않고 적수공권으로 나서겠다니.

이건 언가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후회할 거다. 편을 꺼낼 시간도 없을 터이니. 타핫!"

언무웅이 땅을 박차고 당진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람 같은 움직임에 질풍 같은 주먹이 당진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당진산의 주먹도 마주 움직였다.

삼재권법의 움직임.

언무웅은 당연히 그 움직임을 알아보았다.

권법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기본적인 움직임이었으니까.

"감히!"

언무웅은 당진산의 대응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겨우 삼재권법 따위로 언가의 천압권법(天壓拳法)을 상대하겠다니.

쾅!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주먹끼리의 충돌.

당진산은 곧장 언무웅의 품을 파고들며 주먹을 뻗었다.

언무웅은 상체를 뒤로 젖혀 당진산의 주먹을 피하는가 싶더니,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동시에 다시 한번 주먹을 뻗었다.

당진산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드는 주먹.

당진산은 한 손으로 언무웅의 주먹을 쳐내고, 다른 손은 언무웅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역시 마주 오는 언무웅의 주먹에 막혔다.

쉴 틈 없이 날아드는 서로의 주먹.

두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남궁지후가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진산의 일방적인 승리를 생각했는데, 상대가 거의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언무웅. 언가주의 삼남이야. 언가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하다고 소문났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야."

남궁지유는 언무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누이는 어떻게 그걸 알아?"

"정파 세가 회합."

정파 무림의 세가들 중 가장 강성한 스무 개의 세가들이 일 년에 한 번 정도 회합을 가진다.

언가도 당연히 매년 그 회합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

다만 남궁지후는 그 회합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남궁지유가 매년 회합에 참석해 세가들의 동향을 살폈고.

그는 다른 세가의 후기지수들과 딱히 교류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싫어했기에.

"우와!"

그때.

땅에서 승천하는 용과 같이 어마어마한 기세를 뿌리며 하늘로 솟구친 언무웅의 주먹에 당진산의 상의가 찢어졌다.

살짝 드러난 살갗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압력이 어마어마하군."

당진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본가의 천압권은 천하제일이다."

자부심이 가득한 말.

"그런데 고작 삼재권법으로 상대하니 당연한 일."

그 말에 당진산이 피식 웃었다.

"고작 삼재권법이라······. 직접 상대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거냐?"

"······."

그 물음에 언무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아는 것이다.

결코 상대의 권법이 쉽지 않았음을.

자신을 모욕하려 삼재권법을 사용한 것이 아님을.

"하지만 인정은 하지. 권법에서는 네가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삼재권법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겠어."

당진산이 주먹 쥔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의 양 주먹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맨주먹과 권갑을 낀 주먹의 차이였다.

"그러니 제대로 상대해주지."

당진산은 그리 말하며 편을 쥐었다.

차르르르르.

허리에 감겨 있는 검은 편이 풀려 나왔다.

"지금부터 진짜다. 감히 맹룡대를 무시하고 모욕한 대가를 제대로 치를 거다."

"흥. 당가의 망나니, 성도화화공자의 편 따위."

언무웅이 코웃음을 쳤다.

시비 이후, 당진산에 대해 알아본 모양이다.

헌데 알아 온 것이 딱히 영양가가 없었다.

교룡관에 들어온 후 변화한 당진산의 모습이 아닌, 들어오기 전 망나니 시절의 이야기만 들은 듯했다.

청성파 출신의 같은 조 생도가 말해 준 내용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일 년차 생도라면, 당진산이 지난 일 년 교룡관에서 어땠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저 같은 사천의 청성파였기에, 당진산이 한창 성도에서 사고 칠 때의 모습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성도화화공자라······.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당진산이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간다. 잘 막아라."

휘리릭!

그 말과 함께 편이 영활한 뱀처럼 날아들었다.

영사구편.

능숙하게 펼쳐지는 당가의 절기가 언무웅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언무웅은 연신 주먹을 휘둘러 편을 쳐냈다.

허나 이리저리 움직이는 편은 언무웅의 주먹에 튕긴 즉시 교묘하게 휘어지며 다시 날아왔다.

"쳇."

언무웅이 발을 움직였다.

보법을 펼쳐 당진산 주변을 움직이며 틈을 노렸다.

허나 당진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가의 보법인 귀원보를 펼치며 움직였다.

귀원보는 영사구편과 찰떡궁합인 보법이었기에, 편의 변화가 더욱 다채로워졌다.

언무웅은 좀처럼 당진산의 간격을 부수고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편의 움직임이 너무 촘촘했다.

'어떻게. 당가의 망나니 따위에게.'

언무웅은 이를 악물었다.

언가를 대표해 교룡관에 온 자신이다.

당가의 소가주도 아니고, 당가주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사천에서 소문난 망나니에게 이리 고전을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언무웅의 옷이 펄럭였다.

내공을 더욱 끌어올린 것이다.

천압공.

천압권과 짝을 이루는 내공심법으로 이름대로의 공능을 지녔다.

하늘이 누른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압력을 뿜어내는 권법을 펼쳤다.

"크윽."

당진산이 처음으로 신음을 흘리며 한발 물러섰다.

둔중한 압력이 편을 통해서 전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저 애송이 제법이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단목운뢰를 비롯한 일행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척도 없이 귀신같이 나타난 하무백이 재미나다는 얼굴로 두 사람의 비무를 보고 있었다.

"교관님께서 어떻게······."

아무리 당진산의 비무라 하나, 하무백의 성정상 일부러 잠룡대 연무장까지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귀찮아서.

헌데 이렇게 나타나다니.

"점심시간 끝났다."

담담한 말.

그 내용에 생도들은 깜짝 놀랐다.

막상막하의 박진감 넘치는 비무에 그만 시간을 잊은 것이다.

그것은 심판을 보고 있는 비가영 역시 마찬가지인 듯.

그녀의 신경은 온통 두 사람에게 가 있었다. 불의의 사고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오후는 내가 맡은 맹룡대 전체의 지옥 훈련이 예정되어 있는데······. 한 놈도 나타나지 않으니. 잡으러 왔지."

그 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게 놀고 있었군."

"저, 그게······."

단목운뢰가 무어라 사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하무백이 고개를 저었다.

"뭐, 내가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지면 죽는다."

하무백이 별것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맹룡대 칠 조 생도들은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그 말 속에서 진심을 느낀 것이다.

"진산이 질까요?"

"저 애송이 제법이라고 했잖아."

단목운뢰의 질문에 돌아온 하무백의 대답.

그 말에 생도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단순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애송이라 생각했는데, 교관님이 인정할 정도의 실력자였다니.

"그런데 나한테 배운 놈들이 저 정도에 질 수는 없지. 그러니 지면 죽는다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쌓은 경험이 달랐다.

가문에서 열심히 수련만 한 녀석과 실제로 바닥을 구르며 실전을 치른 녀석.

그 차이는 컸다.

당진산이 한발 물러서자 기회를 잡았다는 듯, 언무웅이 더욱 몰아쳤다.

일 권에 더해진 이 권.

거기에 다시 더해진 삼 권.

층층이 더해지는 권의 압력은 점점 배가 되었다.

천압권의 특징 중 하나인 중첩이 펼쳐진 것이다.

유연하게 이리저리 휘던 편도 강력한 압력에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이것 참. 쪽팔리게.'

당진산은 이를 악물었다.

설마 잠룡대 일 년차 생도에게 이렇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다니.

역시 잠룡대는 달랐다.

교룡관에서 얼마나 수련을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강한 놈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실력이 달랐으니.

사 년차라고 일 년차보다 무조건 강하란 법이 없었고.

일 년차라고 그저 약하다는 법도 없었다.

당장 작년 동투제에서도 잠룡대와 와룡대의 일 년차 생도들이 활약하지 않았던가.

작년은 유독 강한 녀석들이 많이 들어왔던 해였다.

당진산은 편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엄청난 압력으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저놈은 미숙했다.

압력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이런 것을 뚫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한 점. 그거면 충분하지.'

다만, 편은 한 점을 노리는 공격을 하기에는 부적합한 무기.

그 약점을 극복해야 했다.

당진산은 그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무창에 왔던 누이가 직접 보여주고, 자신을 무던히도 두드려 팼으니.

'그런데 할 수 있을지······. 뭐, 그래도 해내야 하지만. 아니, 해낸다. 맹룡대를 위해서!'

당진산은 내공을 더욱 불어넣었다.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서서히 꼿꼿해지는 편.

본디는 강기를 일으켜야 했다.

믿을 수 없게도 누이는 미약하게나마 강기를 사용했으니.

당진산은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검기와 같이 편기만으로 그 흉내를 내야 했다.

눈앞의 상대라면 그 수준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꼿꼿이 창처럼 쭉 펴진 편을, 당진산은 곧장 언무웅의 주먹을 향해 찔러 갔다.

편법이 아닌 것 같이 보였지만, 이 또한 영사구편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강기를 펼칠 수 있는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최후 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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