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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09화 (209/312)

209화. 할 말은?

강기가 없음에도.

편기(戰氣)만 일으켜서 그 초식을 펼쳤다.

제대로 펼친 것이 아니다.

그저 흉내만 냈을 뿐.

그럼에도 편은 언무웅의 중첩된 권기에 구멍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위력을 지녔다.

단 한 점.

당진산의 전신을 짓누르는 권기의 압력에, 단 한 점만을 집중해서 찔렀다.

푹.

당진산은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편은 중첩된 권기를 뚫고 나갔다.

한 점에 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푹.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찔렀다.

언무웅이 말아 쥔 주먹의 중지 부분에 당진산의 편이 권갑까지 뚫고 박혔다.

"크윽."

예상치 못한 공격과 고통에 언무웅이 신음을 흘렸다.

그 순간.

압력이 사라졌다.

언무웅이 권기의 중첩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됐다.'

꼿꼿이 섰던 편이 다시 영활하게 움직였다.

사냥감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가는 뱀처럼 짓쳐 들었다.

퍽!

편이 언무웅의 등을 후려쳤다.

"크윽."

다시 한번 신음을 흘린 언무웅이 바닥을 굴렀다.

편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영사구편은 그런 언무웅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몰아쳤다.

내공을 가득 머금은 편이 주변을 휘몰아쳤다.

언무웅은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당진산은 그가 권기를 중첩시킬 틈을 주지 않았다.

이미 한번 당해 보았기에.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쳐서 끝내야 했다.

지난 경험이 그렇게 하라 말해주라 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후려치는 편.

언무웅은 용케도 그것을 막고 피하고 있었다.

당진산의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힐끔.

그사이 심판인 비가영을 살피기까지 했다.

'손속이 과하면 개입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진산은 봐 줄 생각이 없었다.

무인이라면 자신이 행한 일에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맹룡대가 당한 모욕에 대해 제대로 대가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맹룡대를 우습게 보지 않을 터.

이것은 지금 비무를 구경하고 있는 다른 잠룡대, 와룡대 일 년차 생도를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

맹룡대는 너희가 우습게 낮잡아 볼 대상이 아니라고.

당진산의 편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언무웅은 보법을 밟아가며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 와중에 권을 뻗어 반격을 시도했지만.

주먹이나 권풍은 이미 당진산에게 닿지 않는 간격이었다.

비가영은 두 사람의 비무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개입할 틈도 없이 한 번에 몰아쳐야겠군.'

그러기에 아주 좋은 초식이 있었다.

영사구편의 여덟 번째 초식.

백사난무(百姓亂舞).

백 마리 뱀의 어지러운 춤.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는, 폭풍 같이 상대를 몰아쳐서 산산조각을 내버리는 초식이다.

그런 만큼 상대가 피했을 경우의 허점이 큰 초식인지라, 펼칠 때 조심해야 했다.

확실할 때. 또는 절체절명의 순간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 때.

그럴 때만 사용이 가능한 초식.

전반 칠 초식과는 다른 후반의 이 초식이었다.

편에 폭풍을 몰아치는 팔 초와, 일격필살의 구 초.

당진산은 둘 모두 아주 잘 알았다.

몸으로 배웠으니까.

당지연의 초식에 당해가면서.

그런 만큼 초식을 펼칠 최적의 때를 잘 알고 있었다.

당진산은 그 틈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무웅이 절대 피하지 못할 회심의 순간을.

언무웅은 이를 악물고 당진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날아드는 편을 양팔을 교차해서 막았다.

일단 돌격해서 자신의 간격에 당진산을 두겠다는 의도.

접근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비가영이 비무를 멈출 것 같았다.

이미 언무웅은 상당히 많은 공격을 허용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언무웅의 눈빛은 아직 살아있었다.

이런 상태로 이겨 봐야 저놈은 절대 승복하지 않을 터.

그랬기에 당진산은 편에 실은 힘을 줄였다.

언무웅은 그 틈을 타 단번에 거리를 줄이고 간격을 잡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후려치는 주먹.

그야말로 일격필살의 기세였다.

덕분에.

'빈틈이 너무 커.'

당진산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일직선으로만 달려들었기에.

당진산은 가볍게 보법을 밟는 것만으로도 언무웅의 돌격과 주먹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언무웅은 멈추지도 방향을 바꾸지도 못했다.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기세를 실은 탓이다.

당진산은 몸을 핑그르르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지나친 언무웅의 뒤를 잡았다.

"타핫!"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당진산의 손끝에서 영사구편의 팔 초, 백사난무가 펼쳐졌다.

"머······."

당진산이 언무웅의 회심의 일격을 피하는 순간.

비가영은 승부가 갈렸다는 판단에 비무를 끝내려 했으나.

막 당진산의 초식이 시작되었다.

비무를 끝낼 때를 놓친 것이다.

그녀는 저 초식이 끝나는 대로 비무를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백사난무는 무자비했다.

파파파파파파팍!!!

폭풍처럼 몰아치는 편.

순식간에 언무웅의 전신을 두드렸다.

"커어어억."

언무웅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신의 옷이 찢어지며 울긋불긋한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그, 그만!"

비가영이 황급히 비무를 멈추려 외쳤지만.

이미 시작한 초식이기에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는 내공이 역류해 오히려 당진산이 내상을 입을 터.

결국 교관이 직접 중간에 개입하여 비무를 멈추게 해야 했지만.

비가영은 선뜻 저편의 폭풍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망설인 시간.

그 시간에 백사난무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편이 언무웅의 허리를 휘감는다 싶더니.

부웅.

그의 몸을 허공에 띄웠고.

쾅!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푸아아아아하.

사방으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구경을 하던 생도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지막의 그 한 수.

자신을 향해 펼쳐졌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으니.

더군다나 바닥에 내리꽂아 버리는 저 마무리는.

비가영이 낭패한 표정으로 언무웅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의 망설임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는 자책을 하며.

당진산을 탓해야 하지만, 탓할 수도 없었다.

그는 펼치던 초식을 중간에 멈출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크으으윽."

언무웅이 신음을 흘렸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격심한 통증.

특히나 마지막 일격에 머리가 심하게 울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깨로 떨어졌다.

머리로 내다 꽂을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기에 그리 한 것이다.

비가영이 언무웅의 상세를 살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내상 또한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바닥에 내리꽂은 그 일격.

그 때문인지, 왼팔이 부러졌다.

당진산은 이미 편을 회수해 허리에 감은 터.

비가영은 서둘러 언무웅의 왼팔에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그녀가 선유곡 출신임이 다행인 순간이다.

"아플 거야."

짧은 경고 후 어긋난 뼈를 단번에 맞췄다.

"크흡."

언무웅이 온몸에 땀을 흘리며 신음을 흘렸다.

비가영은 적당한 부목을 대고는 단단히 고정했다.

"바로 의당으로 가도록. 그리고 네 패배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 터.

그럼에도 시비로 인한 비무였기에 승패를 명확히 알렸다.

비가영이 몸을 일으켜 당진산을 노려보았다.

멈출 수 없는 초식을 하필 그 순간.

당진산이 의도했음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심증일 뿐.

이것으로 당진산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손속이 과하면 개입한다고 했을 텐데."

그 속에는 승패가 결정 난 상황에서 왜 그랬는지에 대한 추궁이 담겨 있었다.

"저 녀석 눈빛이 살아있었습니다."

담담한 대답.

당진산이 언무웅을 바라보았다.

됐다.

지금은 눈빛이 죽었다.

스스로 본인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비무야. 생사결이 아니고."

"그래서 이 정도로 끝난 겁니다. 마지막 순간 손속에 사정을 두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

비가영은 그 물음에 대꾸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머리부터 내리꽂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내공이 실린 편을 허공에 띄워 바닥에 내리꽂는 그 마지막은.

"앞으로 주의해. 그리고 네 승리다."

그 말을 끝으로 비가영은 연무장을 떠났다.

당진산이 언무웅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아직 연무장에 남아 있었다.

"할 말은?"

당진산이 차갑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를 악무는 언무웅.

전신의 옷이 너덜너덜했다.

찢어진 옷 사이로는 붉게 부어오른 살갗이 보였다.

편이 무수히 두드리고 지나간 자국이다.

흡사 채찍질을 당한 죄인의 몸에 든 상처 같았다.

"져, 졌다."

패배를 시인하는 말이 언무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맹룡대와 잠룡대의 차이. 이제 잘 알겠지? 본 공자가 제대로 보여줬으니."

당진산의 말에 결국 언무웅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비무를 신청할 때 당진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

"우와아아아!"

비무가 끝났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함성을 내지른 이는 일부였다.

모두 맹룡대였다.

이 년차 생도만이 아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일 년차 생도 역시 잔뜩 흥분해 함성을 질렀다.

그중에는 초무하도 있었다.

'역시. 맹룡대를 선택한 것은 옳았어. 이런 선배들이 있는 곳이라니.'

담룡각에서 자신에게 충고를 했던 선배, 당진산.

사실 지난 동투제에서 그의 활약을 대단치 않게 봤었다.

헌데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오늘 이렇게 멋지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았으니.

저런 사람이 맹룡대의 선배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초무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도 저런 무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하무백이 몸을 돌렸다.

"일 각 안에 전부 대연무장으로 와라."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온 당진산은 막 자리를 뜨는 하무백의 뒷모습을 힐끔 보았다.

"뭐라셔?"

"어, 너 살았다고."

백리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답지 않은 농담이었다.

"뭔 소리야?"

"지면 죽는다고 했었거든."

단목운뢰가 덧붙였다.

"져? 이 내가?"

당진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제법 힘들었잖아."

단목운뢰의 말에 당진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완전 여유였어!"

"그렇다면 다행이네. 일 각 안에 대연무장으로 모이래. 수련 시작이라고."

연하민의 말.

그 말에 당진산이 우뚝 멈췄다.

"일 각? 점심시간인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그게······. 끝났어."

하설란의 말에 당진산이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그것도 벌써 일 각이나 지나 있었다.

"어, 어떻게······. 밥도 못 먹었는데······."

꼬르륵.

때마침 당진산의 뱃속에서 울리는 소리.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백리평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한끼 안 먹는다고 죽지는 않지. 가자."

단목운뢰가 몸을 돌렸다.

"너희야 그렇겠지만··· 나는······."

전력을 다한 비무였다.

여유라고 했지만, 단전이 텅 비어 있었다.

능력을 뛰어넘은 구 초식, 거기에 남은 내공을 몽땅 털어 넣었던 팔 초식.

기실, 당진산은 현재 기진맥진한 상태다. 당장 드러누워서 쉬고 싶은.

그런데 밥도 못 먹었다.

배는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수련을 하러 가야 한다.

그것도 하무백이 각오 단단히 하라고 한 수련을.

당진산이 금세 울상을 지었다.

"젠장······."

작은 탄식을 흘리고 일행의 가장 마지막에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대연무장.

"오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어진 투덜거림만이 잠룡대의 연무장에 남았다.

그들이 떠난후.

나머지 맹룡대 생도들도 떠났다.

그들도 시간이 늦었음을 알고 있는 탓이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은 잠룡대와 와룡대 생도들.

"씨발. 이게 뭐야. 맹룡대한테······."

누군가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중얼거렸다.

몇몇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씨. 그러면 어쩔 건데. 누가 비무라도 도전하려고?"

"······."

그 말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연무장.

언무웅이 마지막으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의당을 향해서 걷는 그의 뒷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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