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너무 쉽지?
대연무장이 생도들로 가득 찼다.
맹룡대 일 년차 생도들과 이 년차 생도들.
모두 한자리에 있었다.
생도들의 가장 선두.
그곳에는 맹룡대 교관들까지 모여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들 역시 맹룡대주인 모용진호의 지시로 모였다.
모용진호는 관주 팽도율의 지시를 받은 것이고.
모용진호 역시 교관들과 함께 서 있었는데 그 표정이 묘했다.
그들과 마주 보는 곳.
그곳에는 팽도율과 하무백, 한설빙이 있었다.
첫날이니만큼 도움을 주기 위해 제갈명 역시 나와 있었다.
"맹룡대의 수련 과정에 변화를 줄 예정이다. 목적은 생환율을 올리기 위해서."
단상에 오른 팽도율이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연무장에 모인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그의 말.
"응? 그게 무슨 말이지?"
"대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도들뿐 아니라 교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맹룡대주인 모용진호는 미리 언질을 들었기에 큰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점점 낭패한 표정을 지을 뿐.
"앞으로 맹룡대의 모든 수련은 산월마림에서의 생존에 초점을 맞춘다. 장비 지원 역시 그리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수련은 여기 하무백 교관이 책임진다."
팽도율의 선언.
그 말에 소란은 더욱 커졌다.
맹룡대주인 모용진호가 있는데 어찌 일반 교관이 모든 수련을 책임진단 말인가.
"맹룡대 훈련에 관해서 하무백 교관의 권한은 나와 동등한바,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곧 관주에 대한 항명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럼."
팽도율은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 자리는 하무백이 대신했다.
"전원 죽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려 주마. 생도든, 교관이든."
차가운 목소리.
그 말에 두 눈을 부릅뜬 것은 오히려 교관들이었다.
교관도 굴리겠다니.
"앞으로 내가 가르치고 수련시킬 것들은 현 교관들도 모르는 것이다. 교관이라는 직책에 맞게 생도들을 가르치려면 교관들도 익혀야 할 터. 지금까지의 꿀만 빨아 먹던 생활은 잊어라."
교관들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꿀만 빨아 먹던 생활이라니. 잠룡대와 와룡대 교관들에게 당한 무시와 멸시를 저놈이 알기나 할까.
심지어 잠룡대나 와룡대의 생도들마저 맹룡대의 교관을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맹룡대 교관 대부분은 강호에서 이류 정도의 수준을 가진 무인들.
특별히 기댈 만한 배경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맹룡대의 목적 자체가 산월마림의 희생양을 교육 시키는 것이었기에 굳이 뛰어난 교관이 필요 없었던 연유다.
맹룡대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무인이라 할 만한 이는 대주인 모용진호, 단 한 사람이 전부였다.
하무백이 오기 전까지는.
"이익."
교관 중 누군가가 분노를 토하려 했다.
막 입을 열려는 찰나.
하무백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대로 마주친 시선.
"으··· 으윽."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온몸을 내리눌렀다.
버틸 수가 없었다.
서서히 수그러지는 몸.
그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감히 불만을 터뜨릴 생각은 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꿀꺽."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뭐지?
저런 괴물이 왜 맹룡대에 있는 거지?
그런 시선들.
애초에 작년의 하투제와 동투제를 보았기에, 보통 인물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상상을 넘어섰다.
불만을 터뜨렸다가 한쪽 무릎을 꿇었던 교관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온몸을 옥죄는 압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용진호까지도.
"검과 방패를 들어라."
하무백의 짧은 지시.
그와 동시에 일꾼들이 검과 방패를 날랐다.
그 일꾼들 중에는 위지군도 있었다.
생도들과 교관들에게 똑같은 검과 방패가 지급되었다.
그들은 주춤주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어?"
방패를 집어 든 맹룡대 이 년차 생도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그럴 수밖에.
작년에 사용하던 방패와는 달랐으니까.
일단 더 무거웠다.
그리고 더 단단해 보였다.
"그건 수련용이다. 실전용은 따로 준비 중이다."
하무백의 간단한 설명.
"이거 아무래도······."
"그렇지?"
백리평과 당진산이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패를 드는 순간 맹룡대 칠 조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일반적인 방패의 무게가 아니다.
이런 방패를 사용한다면, 그건 실전에서 오히려 움직임을 느리게 해 더 위험할 뿐이다.
방패를 들고 실전을 치러 봤기에 쉬이 알 수 있었다.
결국 수련을 더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무게의 방패를 준비했다는 거다.
"그러면······."
연하민의 시선이 검으로 향했다. 날이 없는 가검.
역시 수련용으로 보였다.
이것도 무거울 테지.
연하민이 검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엄청난 무게였다.
이것들을 가지고 걷는 것만 해도 금세 모든 힘을 소진할 정도.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일 년차 생도 중에는 검과 방패를 드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생도들은 여기 있는 한 교관이. 교관들은 내가 가르친다. 그럼 각자 교관 앞으로 모여라."
하무백과 한설빙이 대연무장의 양쪽 끝으로 움직였다.
그에 따라 맹룡대 교관과 생도들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하무백이 이미 엄청난 기세로 기선제압을 했기에.
교관들은 불만 어린 표정이었으나 순순히 따랐다.
애초에 대주인 모용진호 역시 순순히 그 지시에 따르고 있었으니.
'관주.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전날 이에 대한 언질을 들었을 때. 모용진호는 정말로 진지하게 항명과 사직을 생각했었다.
허나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교룡관의 생활이 나름 만족스러웠기에.
그는 강호가 얼마나 비정한 곳인지 잘 알았기에.
그리고 감히 하무백에게 반항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처음 교룡관으로 올 때, 어떤 인물인지 관주에게 듣지 않았던가.
믿을 수 없었지만, 믿어야 했다.
관주가 그런 걸로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오늘은 첫날이니 가볍게 할 거다. 잘 봐 둬라. 이게 기본자세다."
하무백은 방패와 검을 들고 한 자세를 취했다.
교관들은 그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기본자세를 취한다. 실시!"
하무백의 지시에 엉거주춤 자세를 취하는 교관들.
그들 중 정확한 자세를 취한 이는 모용진호가 유일했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이도 그가 유일했다.
다른 이들은 대강대강 설렁설렁.
조금 전 하무백의 압도적인 기세에 당했음에도 금세 그것을 잊은 듯했다.
물고기만도 못한 지능들인 것이다.
피식.
하무백이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땅을 박차고는.
퍽! 퍼퍽! 퍼! 퍼퍼퍽!
"크윽"
"아악!"
"이게 무슨······."
검집 채 검으로 교관들을 후드려 팼다.
"자세 교정이다."
담담한 말.
그 말대로였다.
하무백이 후려 팬 곳은 자세가 틀린 곳들이었다.
하무백의 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자세가 조금 더 그럴듯해졌다.
다만.
교관들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악! 못 참아!"
그 와중에 온몸에 흉터가 있는 낭인 출신의 교관 하나가 하무백에게 달려들었다.
퍽!
빠각!
검은 인정사정없이 움직였고.
그 교관은 입에서 피와 함께 이발을 흩뿌렸다.
이어서 어딘가 뼈가 부러지는 소리까지.
"꺼져."
차가운 하무백의 한마디.
"우우······."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혀 보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검이 날아올 때 온몸을 덮쳤던 무시무시한 살기.
낭인 출신이었기에 살기에 더욱 민감했다.
그는 순간 죽음을 몇 번 겪은 듯했다.
그리고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퍽.
하무백의 발끝이 그의 배에 박혔다.
"커헉."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꺼지라고 했다."
그는 비틀대며 대열에서 겨우 이탈했다.
"또? 또 덤빌 사람?"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교관들은 하무백의 그 말에 즉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 기본자세를 취하려 했다.
"저, 저······."
"후아. 살벌해라."
"한 교관님이 담당한 게 다행인가?"
멀리서 그 모습을 힐끔 본 맹룡대 칠 조 생도가 그리 중얼거리며 대화할 때.
퍽!
퍼퍽!
이곳에서도 섬뜩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칠 조 생도들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잠시 한 교관이 누구 밑에 있었는지 생각지 못했다.
결국 둘 모두 똑같은 인간이었다.
***
"으으······."
"끄윽······."
수련을 시작한 지 반 시진.
교관들, 생도들 할 것 없이 모두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 한 것은 기본자세 수련밖에 없었다.
준비라 외치면 기본자세를 취하고, 쉬어라 외치면 휴식을 취하는 단순한 수련.
그것만 반복했는데 온몸이 후들거리고 팔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나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칠 조와 이십 조 생도들 뿐.
그들은 이미 하무백을 겪어보지 않았던가.
힐끗.
하무백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을 생도들은 바로 느꼈다.
파파팍.
행동을 더욱 절도있게, 힘있게 열심히.
칠 조 생도들은 즉각 반응했다.
교관님은 분명 말했었다.
정말 제대로 굴려 주겠다고.
그런데 지금 이 정도는,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자신들에게는 제대로 굴리는 게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하무백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했으니.
최대한 힘들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반 각 휴식! 모두 편하게 쉰다!"
그때 하무백이 외쳤다.
"후아."
"하아."
"살았다."
전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대로 드러누운 이들도 있었다.
뚜벅뚜벅.
그런 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하무백이 곧장 걸어왔다.
"교대다."
한설빙이 있는 곳에 온 하무백이 짧게 말했다.
"네."
한설빙이 교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당진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쩐지 이곳을 보더라니.
교관들의 기를 꺾기 위해 처음에 하무백이 그들을 담당한 것이다.
팽도율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것이 하무백이었으니.
반 각의 시간은 정말로 짧았다.
하무백의 지시에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들.
"준비!"
다시 터져 나오는 하무백의 외침.
생도들이 열심히 자세를 취했다.
멀었지만, 그들도 힐끗힐끗 보았다.
인정사정없이 교관들을 두드려 패던 하무백의 모습을.
하무백은 생도들 사이를 걸었다.
여전히 후드려 패면서.
차이라면.
교관들을 팰 때보다는 많이 약했다.
특히 일 년차 생도는 살살 팼다.
적어도 수준에 따른 차별은 두고 있었다.
그런 하무백이 칠 조와 이십 조 생도 앞에 도착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생도들.
하무백은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속해서 준비와 쉬어를 외쳤다.
칠 조와 이십 조 생도들은 더욱 열심히 검과 방패를 움직였다.
"너무 쉽지?"
그들을 향한 하무백의 물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푹. 푸푹.
가볍게 날린 하무백의 지풍.
일곱 사람의 요혈을 두드렸다.
"큭."
"억."
그리고 그들은 곧장 내공이 움직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간단하게 그들의 내공을 금제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최소한 동등하게 하는 거지. 한 교관은 너무 물러."
그리고 그들 앞에 계속 서 있었다.
그럼에도 귀신같이 자세가 틀리는 생도를 알아차리고 그곳으로 지풍을 쏘았다.
그렇게 이 각이 흐른 후.
당진산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비무에서 내공을 모두 소진하고, 밥도 못 먹고, 근력의 소모 역시 상당했었으니.
그나마 수련이 할 만한 것인지라 내공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하무백은 칠 조 생도 중에서도 당진산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 왜! 왜! 나만 가지고!'
마음속으로 온갖 불만을 외쳤으나,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윽고.
퍽!
"큭."
자세가 틀린 당진산을 향해 하무백의 검이 날아왔다.
"쯧. 이러니 그렇게 무르게 당하지."
당진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겼는데! 이겼는데!'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긴 것도 자랑이냐?"
퍽.
그 말과 함께 검이 날아왔다.
그 사이 방패의 각도가 좀 틀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