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12화 (212/312)

212화. 나는 어쩌라고요···

휘영청 밝은 달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제법 늦은 밤.

다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

연무장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는 이가 있었다.

아니 휘두르기보다는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지후.

그가 홀로 잠룡대의 연무장에서 제왕검형을 수련하는 것이다.

그의 곁에서 함께 수련하던 남궁지유도 들어간 시간.

달빛 덕에 제법 밝은 밤이었기에 수련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아니, 어둠 따위는 지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태양으로 비춰도 깜깜할, 알 수 없는 구결이 문제였지.

이렇게 해석해서 이렇게 휘둘러 보고.

저렇게 해석해서 저렇게 휘둘러 보고.

아무리 해도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과연 이게 남궁세가 최강의 검법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어렵네."

당연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남궁세가 최강의 검법이라 하겠는가.

창궁무애검법을 익힐 때는 이러지 않았다.

힘들었을지언정 막막한 벽을 마주한 느낌은 없었으니까.

'이게 맞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 없었다.

제왕검형 전반부.

아버님은 딱 한 번 펼쳐서 보여주셨다.

그리고 전해진 비급.

세가에서 모두 외우고 왔다.

제왕검형의 비급을 세가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다시 한번.'

남궁지후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여준 검로대로 검을 움직였다.

끼긱.

헌데 어느 순간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몸이 멈칫거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구결 해석의 충돌.

남궁지후의 머리가 '그 구결은 그 움직임이 아니다'라 말하며 동작을 제어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운 대로 움직이려는 마음과 자신의 해석대로 움직이려는 마음.

두 심상이 충돌한 것이다.

"하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계속해서 막힌다.

진전이 없었다.

이래서야 사촌들과의 경쟁에서 패할 것이 뻔했다.

일 초식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을.

'호오. 좀 다르군.'

그 모습을 하무백이 멀찍한 곳 지붕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팽도율과의 만남 후 숙소로 가려던 중 남궁지후의 기척에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하무백은 제왕검형의 검로 또한 알고 있었다.

지난 전쟁에서 남궁세가의 직계들과도 함께 싸운 경험이 있었으니.

그런데 남궁지후가 지금 펼치는 것은 제왕검형인 듯 아닌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나같이 똑같은 검로를 보였던 제왕검형과는 다른 모습.

그것이 하무백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일 초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남궁지후는 다시 검을 움직이려다가 다시금 머리를 가로저으며 멈췄다.

"왜? 잘 안돼?"

그때 풀쩍 뛰어내려 다가온 하무백.

"하, 하 교관님?"

남궁지후가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왜? 가문의 비기를 수련 중인데 내가 엿본 것 같아서?"

제왕검형이었기에 일부러 아무도 없는 늦은 밤에 수련하고 있던 터.

하무백의 말에 남궁지후의 얼굴이 살짝 빨갛게 상기되었다.

하무백이 팔을 앞으로 뻗었다.

검결지를 쥐고는 천천히 움직였다.

남궁지후는 갑작스러운 하무백의 행동에 깜짝 놀랐으나, 그 표정은 이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그럴 수밖에.

지금 하무백은 자신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제왕검형의 검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이미 제왕검형의 검로 따위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어, 어떻게······."

하무백은 경악에 물든 남궁지후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뭐, 수십 번을 보다 보면, 대강 흉내는 내게 되지."

하무백의 말에 남궁지후는 두 눈을 부릅떴다.

흉내라고?

저게?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가 펼쳤던 제왕검형의 전반부보다 더 완벽해 보였는데?

대강 흉내를 냈다고?

남궁지후는 커다란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맹룡대 교관 하무백.

대체 이 인간은 어떤 존재란 말인가?

괴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다.

이런 인간이 왜 고작 교룡관에서 교관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왕검형이라지?"

하무백의 물음에 남궁지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검법(劍法)이 아니고 검형(劍形)일까?"

하무백의 물음에 남궁지후는 멈칫했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의문.

그것을 하무백이 던진 것이다.

"남궁세가 가주의 형제들이 펼치던 제왕검형도 제왕검형이었지만, 네가 펼치려다 멈춘 것도 제왕검형이야. 뭐, 난 둘 중 네 녀석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들긴 했어."

하무백은 거기까지 말하고 몸을 돌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궁지후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검법이 아니라 검형."

하무백이 던진 물음을 작게 중얼거리며.

***

똑같은 하루다.

해가 떴고, 오전 수련과 수업을 받았으며, 중식 시간에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맹룡대 생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연무장에서의 훈련.

대연무장으로 향하고 있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교관들 역시 마찬가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억지로 대연무장에 들어선 그들은 검과 방패를 들고 줄을 맞춰 섰다.

단상에는 이미 하무백이 무서운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오늘은 어제의 훈련에 하나를 덧붙인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 모습을 본 단목운뢰가 부리나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준비."

하무백의 말에 즉시 기본자세를 취하는 단목운뢰.

"일 보 전진."

한 발짝 앞으로 발을 디뎠다.

"이 보 전진."

이번에는 두 발짝.

"쉬어."

자세를 바로 하는 단목운뢰.

"잘들 봤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재미날 거야. 그럼 위치로."

하무백의 지시에 교관들과 생도들이 어제처럼 멀찍이 나누어 섰다.

그리고 시작된 훈련.

어제의 훈련 강도에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훈련 강도가 더욱 올라갔다.

"으윽."

한 시진쯤 흘렀을 때.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칠 조 생도들도 마찬가지.

시작부터 하무백이 그들의 내공에 금제를 가한 탓이다.

하설란 역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하무백은 여전히 지독하게 몰아붙였다.

"우웩."

구토하는 이도 하나둘 속출했다.

겨우 두 걸음 걷는 것.

그것이 엄청나게 힘들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두 걸음이었지만, 반복되고 누적되니 온몸이 후들거렸다.

하무백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구령을 붙였다.

교관들도 한설빙에게 똑같은 훈련을 받으며 역시나 구토를 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석식 시간을 넘겼다.

하무백의 눈짓에 한설빙은 교관들의 훈련을 종료시켰고.

즉시 운기를 하도록 지시한 뒤 하무백 쪽으로 다가갔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나머지는 훈련 계속."

한설빙이 하무백에 이어 구령을 붙였다.

자세가 틀어진 이들을 향한 응징이 약해졌다.

하무백에 비해 그녀는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생도들은 조금 살 것 같았다.

하무백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이들 중 가장 선두에 선 이의 등에 장심을 대었다.

"집중해라."

그리고 흘러 들어가는 내공.

내공은 삼재심법의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네 녀석 스스로 움직여 봐."

그 말을 남기고 다음 사람, 다음 사람.

차례로 삼재심법의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훈련에 집중하던 칠 조 생도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

"친절하시네."

당진산이 작게 중얼거렸다.

심법 수련의 시작부터 저렇게 내공을 심어주다니.

자신들에게는 그래도 호흡법 수련을 좀 한 후에나 해줬던 것이다.

"전부 살아남으려면 시간이 없으니까."

백리평이 담담히 말했다.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네."

"누가 잡담하나!"

그때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든 한설빙의 서릿발 같은 호통.

찔끔한 두 사람은 다시금 훈련에 열중했다.

자정에 이른 깊은 밤.

이제야 생도들의 훈련이 끝났다.

대연무장에 모인 생도들 전부에게 내공을 심어주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다.

교관들은 벌써 사라진 후.

"너희들에게 알려준 것은 삼재심법이다. 지금 혈맥을 움직이는 기운, 그게 내공이란 것이고. 오늘 잠잘 생각 버리고 심법 수련에만 열중해라. 안 그러면 사라질 수도 있으니."

하무백은 그 말은 남기로는 몸을 돌렸다.

대연무장의 생도들 대부분은 심법 수련에 열중했다.

개중에 몇몇은 자리를 떴다.

"쳇. 삼재심법 따위."

교관들이 사라지자 즉시 일어서는 몇몇 이들.

나름 커다란 문파에서 체계적인 수련을 받았던 이들이다.

이들이 맹룡대에 들어온 것은 운도헌과 비슷하거나 각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삼재심법을 수련할 수는 없다는 것만은 같았다.

사실 방패술 따위 수련하는 것도 계속해야 하나 회의가 드는 판에.

그렇게 대연무장을 떠나는 몇몇 이들.

당진산이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병신들. 기연을 떠먹여 줘도, 그게 기연인 줄을 모르지."

당진산은 아직도 하무백이 삼재심법의 내공을 처음 심어줬던 날을 잊을 수 없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마공이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

아마 오늘 다른 생도들에게 해준 것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어쨌든 그것만으로 엄청난 기연이거늘.

삼재심법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저 무시만 하고 있다.

"잠깐?"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오른 당진산.

저 녀석들이 아무리 병신인들 단전에 자리한 내공의 씨앗을 느끼지 못할 리는 없었다.

이미 다른 내공심법을 익혔다면 더더욱.

그런데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아마 우리처럼 내공의 씨앗을 심어주시지는 않은 모양이야."

백리평이 담담히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병신들 걸러내려 그러시나."

당진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귀찮아서겠지. 너무 많잖아."

연하민의 담담한 말.

그 말에 칠 조 생도들은 설득되어서 고개를 끄덕여싿.

자신들의 교관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으니.

하무백은 교육당의 지붕에서 대연무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몇 생도들이 떠나는 것이 보였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떠먹여 줬는데, 싫다는 놈들.

억지로 처먹일 생각도 없었다.

해주되, 따라오는 놈들만 챙기기도 벅찼다.

'토납, 축기.'

오늘 알려준 것은 삼재심법의 공능 중 두 가지의 묘리만 담겨 있는 심법이었다.

구결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운공 경로만 때려 박은 상태.

토납에도 세맥의 묘리가 일부 들어 있었기에, 저것만 열심히 수련한다 해도 어느 정도 혈맥은 깨끗해질 터.

저 아이들에게는 저것이면 충분했다.

산월마림에서 검과 방패로 방진을 짜서 빌어먹을 강시 새끼들을 막는 역할이니까.

'강시를 쓸어버리는 것은······.'

하무백의 시선이 칠 조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네놈들이 해야지.'

칠 조의 생도들에게는 거기에 더해 세맥의 묘리까지 넣었었다.

'토납, 축기, 세맥. 무극의 기본이 되는 묘리다.'

하지만 역시 구결은 알려주지 않았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었기에 인연을 시험키 위해 모든 공능이 담긴 삼재심법을 전수했다.

구결 없이 심법 수련만으로 그 공능을 깨달아 무극의 기본 첫발을 들일 수 있을지.

들인다면 인연이 닿은 것이고, 들이지 않는다 해도 그 또한 좋았다.

어쨌든 자신이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가르침이라는 것을 내린 녀석들이었으니.

'그보다 저놈들 삼재심법 수련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아무리 무극의 씨앗이 되는 심법을 알려주면 뭐 하나.

갈고 닦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거기에 더해 단목운뢰나 백리평은 사문의 심법을 얻었으니.

"뭐, 네놈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피식 웃은 하무백은 훌쩍 몸을 날려 숙소로 향했다.

"이씨. 금제를 안 풀어주면 운공을 어떻게 하라고······."

당진산이 원망을 가득 담아 중얼거렸다.

"되는데?"

연하민의 말에 당진산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응? 된다고?"

당진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연하민.

"삼재심법. 운공이 가능해. 그리고 금제도 풀리는 것 같고."

그녀의 대답에 즉시 삼재심법을 수련하는 칠 조의 생도들.

"되, 된다."

연하민의 말대로 금제도 풀렸다.

즉시 심법에 침잠하는 생도들.

그 말에 주우명도 즉시 삼재심법을 운용했다.

하무백에게 배운 것은 아니지만, 무당의 제자로 삼재심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과연 금제가 풀렸다.

그 역시 삼재심법을 운용했다.

친구들의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설란.

"오라버니. 나는 어쩌라고요······."

유일하게 삼재심법을 모르는 하설란만은 그렇게 그날 홀로 심법을 운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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