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13화 (213/312)

213화. 웃긴 일이지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어둑어둑했다.

울창한 나무들.

나무 사이로 간간이 햇빛이 들어왔지만, 그 햇빛마저 음산해 보이는 곳.

산월마림.

관하경은 봉마단에 배속받은 후, 임무를 위해 이곳에 첫발을 디딘 날이다.

긴장으로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어이. 신입. 긴장 풀어. 시키는 대로만 잘 따르면 별일 없을 거야. 뭐, 별일이 있어도 쟤들이 시간 벌어줄 거고."

관하경과 함께 들어온 봉마단의 단원이 맹룡대를 힐끗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관하경의 시선이 맹룡대의 등으로 향했다.

자신들보다 앞장서 걷고 있는 이들.

커다란 방패를 내밀고 사방을 경계하며 걷는 그들의 모습은 산월마림에서 경험을 쌓을 대로 쌓은 정예병처럼 보였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관하경의 조와 함께 나온 이들은 맹룡대 사오 년차 무인들.

산월마림에서의 복무가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었다.

'생환율 오 푼이라 들었었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사오 년차 무인들의 숫자가 많았다.

이것은 방패가 가져온 변화였다.

맹룡대 무인들 사이에 방패술을 이용한 경험이 전해 내려가면서 생환율은 조금씩 올랐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 푼이라는 생환율이 무색하게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

제갈명이 뿌린 작은 씨앗이 드디어 싹을 틔운 것이다.

현 오 년차 무인들. 그들이 그 결정체였다.

그들의 복무 기간이 끝나면 맹룡대의 생환율이 획기적으로 올라가리라.

그 뒤로도 더욱 올라갈 것이고.

"크어어어어."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강시의 울음소리.

맹룡대 무인들은 즉각 경계 자세를 취했다.

봉마단 무인들의 두 눈도 날카롭게 빛났다.

관하경은 마른침을 삼키며 도병에 손을 올리고 선배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크아아앙!"

갑자기 튀어나온 혈강시 둘.

그러나 그 둘은 맹룡대 무인 열 명의 방패에 막혔다.

그와 동시에 봉마단 무인 넷이 뒤로 돌아가 혈강시의 목을 땄다.

힘없이 땅으로 떨어지는 혈강시의 머리.

관하경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맹룡대 열에 봉마단 다섯.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 편성이었다.

"어이. 신입. 정신 차려.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어떻게 해.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검을 검집에 꽂으며 다가온 선배의 말에 관하경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직 목표 지점까지 가려면 한참 더 가야 한다. 계속 이러면 곤란해."

"네. 시정하겠습니다."

관하경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다부지게 답했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렇게 넋 놓고 있지 않겠다 다짐하며.

"그럼 어서 작업 시작하자."

작업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관하경.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강시를 제거했으니 끝난 일 아닌가?

아니었다.

짧은 직도를 허리춤에서 뽑은 봉마단원이 혈강시의 배를 가르고는 도첨으로 뱃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다 썩어 문드러져 있는 뱃속.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뭔가요?"

"교육 안 받았어? 실적 챙겨야지. 이 강시 새끼들은 마물 주제에 내단이 있거든. 아무짝도 쓸모없는 쓰레기지만. 내단을 회수하는 걸로 실적이 기록된다."

그렇게 혈강시 시체 두 구에서 두 개의 내단이 나왔다.

"그럼 근처 수색하자."

맹룡대 무인들이 방패를 들고 주변 경계를 서는 동안 봉마단 단원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웃긴 일이지. 이 지옥 같은 땅에서 독초뿐만 아니라 약초나 영초도 많이 나온다는 게."

봉마단원 양엽명.

관하경의 사수를 맡은 그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관하경은 주변을 살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산월마림에 와서 약초를 캐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이게 다 돈이지. 높으신 분들은 그것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갈아 넣고 있는 것이고. 명분이야 혈교 잔당의 색출인데······."

"안 하나요?"

관하경의 물음에 양엽명이 고개를 저었다.

"하고는 있지. 그런데 굉장히 느려. 최대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이지만······. 글쎄. 나는 모르겠다."

관하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교육받을 때 익혔던 약초를 찾기 위해 주변을 살필 뿐.

***

정천맹.

장로원에 위치한 밀실.

그곳에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호북연가 가주, 연자경.

공동파장문인, 천기북.

천독곡(千毒谷)의 곡주, 여홍기.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이었다.

연자경이 이 자리를 주도하고 있었다.

"여 곡주. 진척 사항은 어떻소이까?"

"독 자체의 성능은 검증했으니 삼 할 정도 완성한 것 같습니다."

연자경의 물음에 여홍기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그게 과연 그 괴물 놈에게 효과가 있겠습니까?"

천기북이 자못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있을 겁니다. 제 놈이 아무리 만독불침이라 하나. 저 또한 만독불침에 가까운 몸. 허나 제가 그것을 처음 접했을 때 독기의 침습에 내공이 살짝 흩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라면 그놈에게도 통하는 산공독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여홍기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답했다.

"얼마나 모았소이까?"

연자경의 물음이 공동파의 장문인, 천기북에게로 향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희귀하기도 하고, 자생하는 곳이 워낙 깊숙한 곳인지라. 봉마단의 단원들도 채집이 쉽지 않습니다."

현 봉마단주가 공동파 출신이었다.

그랬기에 천기북이 봉마단의 사정에 훤한 것이다.

"설마 산월마림에 그런 독초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장성을 쌓아 남겨둔 보람이 있군요."

천기북은 감탄하며 덧붙였다.

산월마림은 마림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이용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했지만, 그 희생의 대부분을 맹룡대가 담당하고 있었으니.

"독도 어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는 법이지요."

여홍기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강시의 내단도 이용하고 있으니. 누가 그런 생각을 했겠소이까."

여홍기를 바라보는 연자경.

혈강시급부터 몸속에 내단이 있음을 최초로 알아낸 이가 여홍기였다.

우연한 발견이었다.

그는 본디 시독(屍毒)을 연구하던 이.

최적의 재료는 혈교의 강시들이었다.

특히나 사강시의 이빨에 있는 시독은 연구 대상이었다.

물리는 것으로 강시가 되어버린다니.

다만 그가 이런 연구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소수였다.

극비 중의 극비.

당연한 일이다.

정파 무림의 문파가 혈교의 강시독을 연구한다니.

백안시될 일이었으니.

허나 천독곡의 곡주 여홍기는 독에서 당가를 넘어설 길을 시독에서 찾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강시의 내단이었다.

지독히도 오염되고 혼탁한 내단.

아마도 생전의 단전이 강시화되면서 내단으로 변한 것이리라 추측했다.

그것에서 새로운 독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구한 결과.

내단이 정제되었다.

뽑아낸 독은 실망스러웠지만, 독을 뽑아내고 남은 내단이 쓸모가 있게 변한 것이다.

절세 영약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잘 배합하면 내공을 얻을 수 있는 단약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오직 연자경에게만 전해졌었다.

애초에 여홍기는 연자경의 사람이었으니.

연자경은 그 사실을 은폐했고, 백도회의 세력을 이용해서 산월마림의 온존을 주장했다.

여홍기가 발견한 산월마림의 의외의 이용 가치를 알리고, 백도회에 그 이권을 약속했다.

강시의 내단이 아니더라도 산월마림은 돈이 되었다.

여홍기가 시독을 연구하기 위해 산월마림의 주변을 드나들며 발견한 것들이 많았으니.

그랬기에 백도회가 산월마림을 온존하자는 연자경의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물론 연자경은 내단에 대한 사실은 숨겼다.

그래야 연자경이 내단을 얻을 수 있으니까.

강시의 내단은 혈교에서도 모를 일이었다. 알았다면 강시를 그렇게 두지 않았을 터.

연자경에게 이것은 기회였다.

그랬기에 봉마단을 장로원 소속으로 두었다. 그리고 봉마단주의 출신 문파인 공동파 장문인을 포섭했다.

그의 포섭은 쉬웠다.

구파일방의 일원이라 하나, 아무래도 하위의 문파로 취급되는 바.

거기에 쌓인 설움과 분노가 상당했으니.

덕분에 연자경은 산월마림을 철저히 백도회의 산하에 두고 관리하는 한편, 은밀히 내단을 모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사실 봉마단원들도 강시의 내단을 왜 모으는지 모르고 있었다.

공식적인 명분은 실적 평가를 위한 강시의 사살 증거 수집이다.

강시 목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내단을 꺼내 오는 게 깔끔하니까.

봉마단의 단원들은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의문을 가지는 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강시의 내단을 꺼내 보면 안다.

그 더러운 기운을 보면 이딴 쓰레기를 왜 가지고 오라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

"지금은 내단보다 산공독이 더 중요하지요."

여홍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단이야 산월장성을 쌓은 이후 지금까지 은밀히 해오던 일이다.

거기에 새로운 일이 더해졌다.

한 약초, 아니 독초를 채집하는 것이다.

강시의 시체들이 모이고 모여 썩으며 시독이 고이는 곳에만 자생하는 풀.

백화자광초(白花紫光草).

이것을 정제하여 농축하면 강력한 산공독이 만들어졌다.

살상력은 없으나, 중독되는 동안 내공을 정말 완벽히 흩어버렸다.

피독주 같은 독을 막는 기물이나 만독불침 같은 체질도 파훼하고 내공을 흩어버릴 가능성 또한 발견했다.

여홍기는 이것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그 사실을 연자경에게 알렸다.

연자경은 천독곡 최고의 후원자이자 뒷배였고.

여홍기는 연자경에게 충성을 다했다.

당가를 뛰어넘기 위해 연가를 택한 것이다.

천독곡의 곡주인 그가 장로원에 들 수 있었던 것도 연자경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 독의 존재를 들은 연자경은 단 하나의 가능성만 생각했다.

하무백을 중독 시킬 수 있는가? 그의 내공을 완벽히 흩어버릴 수 있는가?

그 물음에 여홍기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 답했고.

그 결과 봉마단이 백화자광초 역시 채집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 목적 따위는 몰랐다. 그저 채집하는 수많은 영초와 독초에 한 종류가 더 추가되었다고 여길 뿐.

"해약은 어떤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여홍기의 답에 연자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약이 없는 독약은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자칫 자신들이 중독되었을 때를 대비해야 하니.

"어쨌든 계속해서 연구해 보게나. 급할 것 없으니."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았다.

"혼란기에 잠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화살받이로 올려놓은 맹주가 지금 너무 커져 버렸소."

연자경의 말에 천기북과 여홍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역할은 마교 교주와의 양패구상까지였거늘, 오히려 마교 교주마저 쓰러뜨렸지요. 그리된 데에는······."

연자경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 뒤의 말을 알 수 있었다.

하무백 때문이라는 것.

이미 혈교 교주와 마교 교주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아낸 터.

하무백 그 새끼만 없었어도 소휘웅은 마교 교주는 커녕 혈교 교주에게 그 명을 달리 했을 것이다.

"신진팔문이라니 우스운 녀석들이지요."

천기북이 조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연자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 무림은 백도회의 것이다.

그리고 연자경은 그런 백도회를 자신의 발아래 두려 하고 있었고.

그런데 그 질서에 반하고 일어난 여덟 문파.

신진팔문.

혹자는 신진팔대방파라고도 부르는, 그들의 세력이 더 없이 커진 상태다.

이 모든 것이 혈교와 마교와의 전쟁 때문.

전쟁에 내몰아 지워버리려 했건만 오히려 세력을 더 키워 버렸다.

"하무백이라는 돌부리가 물길을 돌렸어요. 지금이라도 물길을 바로 잡으려면 그 돌부리를 뽑아야지요."

연자경의 안광이 사납게 빛났다.

"그리고 구파일방의 수좌는 공동파의 자리이고요."

그 말에 천기북이 작게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도회에서 당한 구파일방의 말석이라는 수모와 설움.

그것이 그로 하여금 백도회이면서 백도회에 대한 원한을 키우게 만들었다.

"천독곡도 정파제일독문이 되어야지요. 언제까지 정파임에도 사파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는 없는 법."

그 말에 여홍기의 두 눈이 빛났다.

정파는 기본적으로 독이라는 수단을 경멸한다.

오직 사천당가였기에 독을 사용함에도 인정받고 있었다.

사파나 흑도의 독에 대비하려면 정파 역시 독에 정통한 문파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있었고.

하지만 둘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천독곡은 정파임에도 정파에서 백안시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이가 연자경.

사천당가 역시 백도회였지만, 연자경은 사천당가의 자리에 천독곡을 집어넣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은 백도회임에도 백도회가 아닌 듯 제어가 되지 않는 이들이었으니.

"그러니 느리더라도 완벽해야 하오. 하무백. 그 돌부리를 완벽히 뽑아 없애기 위해."

연자경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들의 은밀한 회합은 끝이 났다.

천천히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연자경.

그런 그를 반긴 것은 서탁 위에 은밀히 놓인 전서 하나였다.

***

맹룡대의 훈련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전날보다 강도가 약해졌다.

아니, 강도가 강해질 거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생도들이 하무백의 도움으로 미약하나마 내공을 가지게 된 것이 한몫했고.

또 다른 이유는 하무백에게 있었다.

구령을 연이어 붙이면서도 하무백은 연신 누군가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이들은 그런 기색을 못 느꼈다.

오직 여섯 명의 생도만 그런 모습을 눈치챘다.

그들은 애써 웃음을 삼켰다.

그런 여섯의 시선이 향한 곳은 무표정한 하설란이 있었다.

하설란의 금제는 결국 위지군이 풀어 주었다.

친구들이 삼재심법을 알려주려 했지만, 내공이 금제된 상태에서 기초적인 심법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심법을 익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직접 내공을 불어넣어 움직여 주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데, 이들의 경지는 아직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무백의 숙소에 찾아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위지군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가볍게 금제를 풀어 주고 삼재심법 또한 알려주었다.

"허허. 란이의 오성이 뛰어나 삼재심법은 건너뛰고 가르쳤는데, 무백이 녀석이 미처 그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구나."

너털웃음을 흘리는 위지군.

허나 하설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라버니에게 단단히 토라져 버렸다.

하무백은 아침에야 위지군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는 머쓱한 얼굴로 오후에 훈련장에 나타난 것이고.

연신 하설란의 눈치를 살피느라, 맹룡대의 훈련은 어제와 다르기 힘들었다.

덕분에 맹룡대 생도들은 훈련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무백은 난감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하설란을 연신 힐끔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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