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저거 뭐지?
"백화자광초라··· 그게 이건가?"
일로가 눈앞에 놓인 풀을 바라보며 말했다.
혈교에서는 산월마림에 이런 풀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봉마단에서 최근 들어 채집을 하고 있기에 알게 되었을 뿐.
봉마단이 산월마림에서 채집하고 있는 영초들에 대해서는 항시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중 몇몇에서는 나름의 성과도 얻었고.
최근에 추가된 것이 백화자광초였기에 당연히 관심을 가졌으나.
어려웠다.
정말 흔한 잡초 같았으니까.
왜 이걸 채집하는지 아직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천독곡의 곡주 여홍기도 백화자광초의 쓰임을 정말 우연히 발견했다.
천독곡의 비전 독 중 한 가지와 반응을 한 것을 농축시켰을 때 산공의 효과가 나타났으니.
혈교에 천독곡의 비전 독이 있을 리 없었으니.
"서찰은 잘 전했겠지?"
일로의 물음에 수하가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네. 서탁 위에 분명히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그 교활한 늙은이라면 아마 답이 올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게야."
급할 것은 없었다.
사강시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당장 어찌 될 정도는 아니었고.
정 급하면 강시의 숫자를 늘리는 일이야 어렵지 않았다.
귀찮고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었지만.
양민들을 납치해다가 산월마림에 던져 버리면 될 일이니.
"교주님은?"
일로의 물음에 수하가 답했다.
"그곳에 계십니다."
돌아온 답에 일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잠혼독의 실패로 더 깊은 곳으로 내려왔을 때만 해도 불만이 가득한 교주였다.
그런데 어느 날.
깊은 곳에 위치한 어느 암동에 당도한 이후로 그곳에서 요지부동이었다.
교의 대소사에 대한 보고를 형식적이라도 받곤 했는데, 최근에는 그것도 없었다.
오직 그 암동에 틀어박혀 있을 뿐.
해서 자신도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그 무엇도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대체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개세악은 토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역천혈류파멸혈공을 운용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이곳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이렇게 역천혈류파멸혈공을 운용해야 할 것만 같았다.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이끄는 것만 같았다.
개세악은 이끌림대로 행동할 뿐이다.
이렇게 하면 더욱 더, 더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렇게 운공에 열중하는 그에게 어둠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개세악은 그저 운공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
"오늘 수업은 뭐지?"
"경공과 보법의 이해?"
당진산의 물음에 백리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했다.
각기 다른 경공과 보법을 익히고 있는데, 이걸 어찌 수업에 녹인단 말인가.
그 의문은 수업이 시작되자 해소되었다.
"유룡신법(幼龍身法)?"
맹룡대 생도들은 생소한 신법의 기초부터 설명하는 교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룡대와 와룡대 일 년차 생도들은 지루한 얼굴로 수업을 들을 뿐.
명칭부터 그들이 그리 반응할 만했다.
어린 용의 신법이라니.
잠룡과 와룡이 아닌 어린 용이라니.
"이런 무공이 있었네?"
단목운뢰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교룡관이니까 있을 법 하지. 어쨌든 무공을 가르치는 곳이니까."
당진산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아."
단목운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맹룡대에도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무공이 있기는 했었다.
교룡심법, 교룡검법, 교룡권법, 교룡보법.
하무백이 삼재공을 더 망가트려놓은 무공이라 평을 들었던 것.
맹룡대에도 있는데 잠룡대와 와룡대에 없을 리가 없었다.
"유룡신법이면, 유룡검법, 유룡권법도 있겠네."
백리평이 담담히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수업의 명칭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검법의 기초, 권법의 개론.
명칭은 거창했으나, 오늘 수업을 보아하니 아마도 유룡검법과 유룡권법을 가르치는 수업일 듯했다.
"심법은?"
연하민의 물음.
"잠룡대와 와룡대는 이미 사문의 심법을 익히고 있는 이들이니까. 따로 심법은 없을 거다."
백리평의 대답에 연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심법도 익히지 못하고 교룡관에 들어온 이들은 맹룡대 생도들뿐일테니.
"그런데 수업 내용도 그렇고 신법도 그렇고 괜찮은데? 배울 게 있어. 이론적인 면에서."
주우명이 수업을 집중해서 들으며 말했다. 그는 상당히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가끔씩 고개도 끄덕이면서.
"그러면 뭐하냐. 저 꼴인데."
당진산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잠룡대와 와룡대의 생도들은 연신 하품에 딴짓이었다.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이도 있었고, 멍하니 다른 생각에 빠진 이도 있었다.
그러나.
찌릿.
정작 교관의 날카로운 눈이 날아간 곳은 맹룡대 칠 조 일행 쪽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수업을 듣고는 있으나 끊임없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으니.
맹룡대 칠 조 일행은 찔끔한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당진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들은 애초에 익힐 생각이 없는 녀석들이야. 사문의 무공에만 관심이 있지. 대체 이런 수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네. 기껏 만든 무공이랑 수업 시간이 아깝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상당히 유익할 거 같은데?"
백리평이 단목운뢰, 연하민, 낙우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세 사람은 눈을 빛내며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무공의 이론에 대한 설명이다 보니 구결의 해석 방법이 내용에 주를 이뤘다.
실전 위주로 가르치면서 생도들의 몸에 무공을 때려 박듯이 하는 하무백이 아직 가르치지 않은 부분.
당연히 세 생도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단목운뢰는 단목가의 무공에 대한 구결 해석을 하무백에게 가르침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단목운뢰의 무공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없었다.
그리고 연하민과 낙우진이 익힌 무공은 삼재공이 전부였다.
거기에 새로운 무공을 배우게 되었으니.
그들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솜이 물을 흡수하듯 수업 내용을 쭉쭉 발아들였다.
'허! 단순한 신법이 아닌데? 예사 심법이 아니야.'
역시 수업에 집중하고 있던 주우명이 마음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어린 용의 신법이라 이름 붙었지만, 이건 그냥 용의 신법이라 해도 될 만했다.
변화는 다양했고, 속도 역시 빨랐다.
특히 내공을 가리지 않는 무공이라는 게 대단했다.
이건 분명 교룡관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서 만든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신법을······.'
알면 알수록 대단했다.
개인이 홀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단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고려된 듯했다.
단순히 교룡관의 기본 무공이라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명문 문파의 신법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런 신법을 단지 이름만 듣고 우습게 여기며 아예 듣지도 않는 이들이라니.
한심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좋은데?"
단목운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연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룡대와 와룡대는 이 좋은 수업을 일 년차 때부터 들었구나."
단목운뢰가 부럽다는 듯 중얼거릴 때.
피식.
그들 곁을 지나가던 와룡대 생도 중 몇몇이 조소를 머금으며 지나갔다.
당진산이 눈썹을 찌푸렸다.
언무웅을 박살 내면서 저런 놈들이 사라졌을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지난 비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봤음에도 언무웅와 당진산 모두를 무시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매 수업마다 함께 하는 생도들이 달랐다.
맹룡대 칠 조와 이십 조는 항시 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다른 잠룡대, 와룡대, 맹룡대 생도들은 바뀌고 있었다.
단목운뢰가 당진산의 팔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당진산이 무어라 하려 했지만 그들은 이미 교실을 나가고 사라진 상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쓰는 당진산.
그때 먼저 나간 와룡대 생도들을 뒤따라 쭈뼛쭈뼛 나가는 다른 와룡대 생도들이 있었다.
"뭐지?"
당진산이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와룡대 생도들과는 달랐다.
잔뜩 주눅이 든 것이.
마치 맹룡대 생도들을 보는 것 같았으니.
"와룡대에도 저런 애들이 있나?"
당진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올해 일 년차 생도들은 여러 모로 신기했다.
"그래도 수업은 나름 열심히 듣던데?"
백리평은 수업 중 그들의 모습을 봤는지 그리 말했다.
"그래? 신기하네."
당진산이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뇌정루 출신의 와룡대 일 조의 일 년차 생도 벽이겸은 조금 전 맹룡대의 멍청이가 중얼거린 말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저딴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니.
딱 수준이 느껴지는 말이지 않은가.
그래.
딱 자신들을 따라다니며 시종 노릇을 하는 이십 조 녀석들처럼.
도림의 운도헌만 시종을 생도로 같이 입관시킨 것이 아니었다.
와룡대 일 조의 생도들도 모두 똑같이 했다.
그렇게 일 조의 시종 노릇을 하러 들어온 이들이 한 조로 묶여 배치를 받은 곳이 와룡대 이십 조였다.
말도 안 되는 편법이었지만.
신진팔문이 합심하여 이루어낸 일이다.
잠룡대와 와룡대, 그리고 맹룡대의 조편성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중간 관리자들이 행한다.
그들을 구워삶은 것이다.
조편성 따위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으면 신경을 쓰지 않으니.
사실 신진팔문의 다섯 문파의 제자들이 편성된 것이니, 전 생도들의 신상을 파악하려는 팽도율도 딱히 이십 조의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뇌정루, 대해문, 철기방, 빙천궁, 천검파.
이 다섯 문파들.
"하, 답답하다. 답답해. 이 말도 안 되는 수업을 듣느니 그냥 혼자서 무공 수련하는 게 훨씬 낫겠네."
학당 앞의 정원에 나와 햇볕을 쬐며 벽이겸이 투덜거렸다.
그 말에 다른 일 조 생도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투덜거렸다.
그때쯤 이십 조 생도들이 도착했다.
"야. 왜 이리 늦게 나와? 그딴 수업 뭐 들을 게 있다고. 우리보다 너희들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이십 조 생도들을 발견한 벽이겸이 짜증 난다는 듯 소리쳤다.
다섯 사람은 부리나케 달려와 그들 뒤에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섰다.
주변의 생도들이 그 모습을 힐끗거렸다.
와룡대는 신진팔문의 여덟 문파와 그들의 지지 세력의 규모 있는 문파들의 제자가 모인 곳이다.
대강 그 사정을 알기에 힐끗거릴 뿐, 딱히 참견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와룡대 일 조는 신진팔문에서도 나름 기대를 받는 후기지수들이었으니.
이십 조 녀석들이야, 사실 신진팔문의 제자도 아니었다.
잡일꾼 녀석들이었지.
와룡대에 집어넣기 위해 각 문파의 기본공 정도만 속성으로 가르친 정도였다.
맹룡대나 다를 바 없는 녀석들.
"입이 심심하니까. 담룡각 가서 전병이나 가져와. 수업 시작하기 전에. 너희들도 먹을 거지?"
벽이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이십 조 다섯 명은 전력으로 담룡각을 향해 달렸다.
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탓이다.
"선배들은 이 좋은 방법을 몰랐다고?"
길다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벽이겸이 중얼거렸다.
"운도헌. 그 병신 덕이지. 크크. 죽어도 시종이 필요하다고 우기다 보니, 도림에서 수를 찾아낸 거 아니야. 우리는 그걸 참고한 거고."
빙천궁 출신 탁무전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아, 너희 문파 실력자 분이 여기 교관으로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
벽이겸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후. 그러게. 엄청난 고수라 들었는데. 게다가 정천맹에서도 요직에 있었다고 하고. 그런데 왜 이딴 곳에 와 계신지 모르겠네."
탁무전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인사는 다녀왔고?"
"아니. 사실 우리 집안이랑 딱히 사이가 좋지는 않은 집안이라······."
빙천궁은 북해의 여러 유력 가문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문파였다.
덕분에 문파 내에서도 알력 싸움이 상당한 터.
"그래? 그래도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와룡대면 모르겠는데, 맹룡대라."
탁무전의 대답에 벽이겸이 피식 웃었다.
"맹룡대면 뭐··· 좌천됐나 보네."
그리고 그 교관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때쯤.
이십 조 생도들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야! 빨리 안 와!"
다섯 사람은 각기 본인들의 문파의 생도에게 전병을 건넸다.
전병을 받아 든 벽이겸이 인상을 팍 썼다.
"아이씨. 물은?"
"어, 그, 그게······."
"하··· 이 병신 놈들 전병 가져오라고 한다고 전병만 가져오냐? 생각이란 게 없어? 목이 막혀서 전병만 어떻게 먹어?"
"빠,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다섯 사람은 다시 헐레벌떡 움직였다.
그때 막 학당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온 맹룡대 칠 조 일행이 그 모습을 보았다.
"쟤들, 저거 뭐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당진산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