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그럼 더 좋지
그런 시선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생도를 시종 부리듯이 부리고 있으니.
특히나 맹룡대 칠 조 생도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러나 와룡대 일 년차 일 조의 인원들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모르는 듯했다.
"보기 싫은 모습이지?"
어느새 다가온 남궁지후가 물었다.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대체 뭐야?"
"나도 어제 누이에게 듣고 알았어. 신기한 방법을 찾았더라고."
칠 조 생도의 시선이 남궁지후에게로 향했다.
"왜, 그 하 교관님께 박살 난 맹룡대 일 년차 생도."
"아, 그 도림 림주의 아들이라던?"
"그래. 운도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맹룡대에 들어갔는지 모를 놈인데······. 그 와중에 그냥 들어온 게 아니더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칠 조 생도들.
"시종들을 맹룡대 생도로 입관시켰어. 교룡관에서 자기 수발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절로 어안이 벙벙해지는 말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맹룡대에 시종들을 입관시켰다고.
이 년 뒤에 산월마림으로 가야 하는데?
"그리고 그 방법을 신진팔문의 다른 문파에서도 알게 된 거고."
그 말을 할 때쯤 대나무 물통을 든 다섯 사람이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그럼 저 친구들도······."
단목운뢰의 말에 남궁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룡대는 맹룡대랑 다를 텐데?"
인원 부족으로 개나 소나 다 받아들이는 맹룡대와는 달랐다.
"적당히 기본공 정도 가르쳐서 보낸 모양이더라고."
그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남궁지후.
짝!
우당탕.
그때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벽이겸이 물통을 내민 생도의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어찌나 세게 후려친 건지 맞은 이는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씨. 전병 다 식었잖아. 휴식 시간도 끝이고. 뭐 이런 병신 같은 게 와서는. 쯧."
전병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몸을 돌려 학당으로 들어가 버리는 벽이겸.
"저 새끼가······."
당진산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짓이었으니까.
남궁지후가 그런 그의 팔을 잡았다.
"다른 문파의 일이야."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당진산은 알았기에 거기서 더 움직이지 않았다.
벽이겸에게 뺨을 맞은 생도는 아마도 뇌정루의 사람일 터.
아무리 교룡관 내의 일이라지만 뇌정루 사람끼리의 사건에 끼어들기에는 명분이 약했으니.
그 사이 생도들은 학당으로 들어갔다.
다음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이는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
"괜찮아?"
어느새 다가간 단목운뢰가 뺨을 맞은 생도를 살폈다.
"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잔뜩 주눅이 든 생도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안으로 향했다.
복잡한 눈으로 그런 이십 조 생도들을 바라보는 맹룡대 칠 조 생도들.
"안타깝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 친구들 내부 사정이니까."
"없긴?"
남궁지후의 말에 당진산이 얼토당토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거 관주님은 아실까?"
문득 단목운뢰가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남궁지후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굳었다.
교룡관 내의 일을 세세히 살피는 관주라면 알 수도 있었지만, 그 시기가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저 친구들을 위한 일은 아닌 거라는 거. 알잖아?"
남궁지후의 물음.
그의 시선은 질문을 던진 단목운뢰가 아닌 당진산에게로 향해 있었다.
당진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오대세가에 속한 거대 가문의 직계다.
그런 만큼 세가의 생리를 잘 알았다.
"관주님이 아시면 저 다섯은 퇴관 처리될 거고, 본파로 돌아가야겠지. 그리고 거기서 모진 꼴을 당할 거고."
당진산이 뻔히 보이는 과정을 말했다.
"그래. 끝까지 책임질 게 아니면 돕는 게 아니야. 오히려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는 남궁지후.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써야지. 여기는 교룡관이잖아."
당진산의 입가에 은근한 웃음이 떠올랐다.
"무슨······."
남궁지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다른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작년에 비슷한 일을 겪어서 그런지 말이야."
학당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당진산이 말했다.
"결국 강호는 이긴 놈이 강한 거고, 강한 놈은 못 건드는 거지."
"눈이 아예 죽어 있던데······."
단목운뢰가 끼어들었다.
"뭐, 시간은 아직 좀 있으니까 천천히 하면 돼. 천천히. 하지만 빡세게."
"그러니까 뭘?"
백리평의 물음.
"하투제."
짧은 대답.
그러나 그 말에 다들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지후는 살짝 빨개진 얼굴로 슬쩍 시선을 돌렸고.
주우명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자신이 맹룡대로 오게 된 이유.
작년 하투제 결과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에.
호승심에 교룡관을 찾은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주우명은 그 선택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무당에서, 사부님과만 지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그리고 그 경험은 자신을 더욱 강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투제?"
하설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동투제는 직접 참가했기에 알고 있지만 하투제는 자세히 몰랐다.
"일 년차 생도만 참가하는 집단전 비무대회야."
단목운뢰가 간단히 설명했다.
"거기서 깨부수면 돼. 실력으로. 교관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허튼수작도 못 부릴 거고."
"모든 전투가 교관 참관하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잖아?"
당진산과 당추가 그랬었다.
남궁지후의 물음에 그 말을 한 당진산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럼 더 좋지. 크."
섬뜩하기까지 한 웃음.
"뭐, 그것도 저 친구들이 할 마음이 있어야."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투쟁심이 있을 거야."
잠자코 있던 연하민의 한마디.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은은한 분노마저 담긴.
"무공은?"
남궁지후의 연이은 지적.
칠 조 생도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아, 아니. 나는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검토를······."
"무공이야, 삼재공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백리평의 말.
남궁지후는 그 말에 딱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 삼재공에 당했던 이가 자신이었으니까.
물론 검진이었지만.
저들은 그 검진을 가르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유룡신법. 뛰어난 신법이던데. 검법이나 권법도 있는 거 아니야?"
"아!"
백리평의 말에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흘리는 남궁지후.
가문의 무공 수련에만 집중한 터라 미처 그것은 생각지 못했다.
"그렇지. 그게 있었지······."
"그보다 빨리 가자. 늦겠다."
낙우진의 말에 다들 걸음을 바삐 서둘렀다.
***
"하. 어이가 없네?"
하무백이 눈앞에 놓인 필사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세가 최고 검공의 비급이 자신에게 있었다.
간밤에 찾아온 남궁지후가 내놓고 간 것이다.
제발 가르침을 내려 달라면서.
"괜한 오지랖이었나?"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조언 한마디를 해줬더니 자신에게 이런 숙제를 낼 줄이야.
하무백은 가만히 비급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남궁지후가 자신의 사정을 솔직히 밝히면서 제발 도와달라 했었다.
"남궁세가주라······."
한 번쯤 지나쳤던 기억도 있었다.
남궁세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인물.
그런 인간이 소가주 선정을 이런 식으로 한다라.
이상하기는 이상했다.
최고의 재능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검증하겠다니.
그것도 자신의 장남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다른 이들이 본다면 진정으로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공명정대한 가주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궁지후에게 소가주를 안 주려고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남궁지후의 재능을 아는 하무백이기에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 많은 호천단부단주, 담무흔.
그에게서 남궁세가주에 대해 무언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루한 작전 중 심심함을 풀기 위해 그가 일방적으로 주절거린 것이었기에, 하무백은 그것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니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
"뭐, 밥이나 먹으면서 물어보지."
하무백은 한설빙을 찾아갔다.
그녀와 함께 담룡각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북담룡각이다.
"그거 지겹지 않아요?"
한설빙이 작소육을 가리키며 물었다.
"맛있잖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설빙.
그녀의 접시에도 작소육은 올려져 있었으니.
"그, 남궁세가주 말이야."
밥을 먹으며 하무백이 입을 열었다.
"네?"
"담무흔이 예전에 뭔가 사연이 있다고 주절거렸던 게 뭐였지?"
"아, 담무흔 그 오지랖꾼."
담무흔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인상을 쓰는 한설빙.
함께 부단주 직에 있었지만, 정말 자신과는 안 맞는 인간이었다.
"남궁세가주의 사연이요?"
되묻는 한설빙.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빙은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 인간이 풀어놓은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아."
생각이 났다는 듯 작은 탄성을 흘리는 한설빙.
"그거 진짜 옛날이야기예요. 전쟁이 터지기도 전의."
"무슨 내용이었지?"
"그게. 남궁세가주가 소가주 시절에 자식이 생기지 않아서 고생했다고 한 이야기였죠. 당시 가주님이 가주가 되려면 후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었고."
거기까지 들으니 대강의 얼개가 생각이 났다.
"첩까지 들였는데도 자식이 없었다 했던가."
"그랬죠. 그러다 중원 유람을 떠난 후 자식을 얻어서 돌아왔는데······."
"아들과 딸만 데리고 홀로 돌아왔었다고 했었지."
한설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시에 온갖 소문이 돌았다고 했었죠. 담무흔 그 인간은 남궁세가 일을 어찌 알고."
"의심이 갈 만한 상황이기는 했군."
그랬다.
부인과 첩, 그리고 호위무사 하나와 함께 외유를 떠난 소가주가 홀로 아이들만 데리고 귀환했으니.
"호위무사가 길을 잘못 들어 산월마림에 들어갔다고 했다더라고요."
혈교가 강성하던 시절이다.
산월마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곳일 때.
장성 따위도 없던 시기.
길을 잘못 들면 산월마림의 경계를 넘을 수도 있었고, 혹여라도 재수 없게 암혈강시나 묵혈강시 같은 놈이라도 만났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절묘하게 맞물려야만 일어날 수 있는 극히 희박한 일.
"소가주가 호위무사랑 부인들을 죽이고 민가의 아이 둘을 데리고 온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호위무사랑 부인들만 산월마림에 밀어 넣었을 수도 있으니까.
산월마림은 그런 곳이었다.
흔적 없이 사람을 죽여 없앨 수 있는 곳.
감히 시신을 찾으러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으니.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났으니까.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바로 작전이 시작되었기에.
"그래서 어떻게 됐지?"
막상 관심을 가지고 듣다 보니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술법이요."
"술법?"
"네. 남궁가의 핏줄인지 확인하는 술법진이 남궁세가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더라고요."
들어본 적이 있는 술법이다.
"세가에서 그런 뒷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소가주가 바로 아이들의 피를 그 술법진에 떨어뜨렸다던데요."
"핏줄이 맞다는 결과가 나왔겠군."
한설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지금 남궁지유와 남궁지후가 있는 것이고, 그가 가주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들은 기억이 없는 이야기인데?"
"아, 작전 끝나고 뒤풀이 때, 누가 물었어요. 그래서 어찌 되었냐고."
물론 그 자리에 하무백은 없었다.
하무백은 뒷풀이에 참석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술법진은 대체 누가 설치한 거지?"
"선유곡이요."
"아."
하무백이 작은 탄성을 흘렸다.
의술과 술법의 선유곡.
하무백은 의술 쪽으로만 그들과 교류를 주로 하였기에 미처 술법까지는 생각을 못 한 것이다.
"정파에서는 선유곡이 독보적이죠. 사파는 귀령궁, 그리고 마교. 아, 모산파도 있다."
한설빙이 술법에 능한 문파들을 꼽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궁세가 이야기는 왜 물어보신 거예요?"
"좀 걸리는 게 생겨서."
하무백의 대답에 한설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세가주의 과거 소문이 하무백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들었다."
어느새 식사를 마친 하무백이 기막을 해제하고 빈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설빙 역시 식사를 거의 마친 터.
"같이 가요. 어차피 대연무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화현과 남궁지후라······.'
하무백은 자신이 잠깐 마주쳤던 남궁세가주 남궁화현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
'후······. 해은 사자.'
잔뜩 부풀어 오른 뺨을 만지며 은화량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단상의 교관이 무어라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지만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뇌정루.
그곳에서는 강호에 유리걸식하는 고아들을 거두어 제자로 삼았다.
명목상의 제자.
그렇게 들어온 이들의 역할은 본제자들의 시종으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강호를 유리걸식하다가 객사하는 것보다는 뇌정루의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 훨씬 나았기에, 뇌정루로 향하는 고아들은 많았다.
은화량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은 편이었다.
명해은.
그녀를 만났으니까.
뇌정루에서 딱히 주목 받지 못하는 제자였지만 그녀는 심성이 고왔다.
제자라 이름만 올렸을 뿐, 제대로 대접도 못 받는 자신에게 꼬박꼬박 사제라 칭하며 사자라 부르도록 했다.
자신만이 아닌 다른 고아 출신 제자들에게도.
사실 교룡관으로 오면 그런 명해은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자원을 하였던 것인데.
이미 교룡관을 수료하고 떠났다 하니.
목적했던 사자는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벽이겸 그 악독한 놈의 시중만 들게 되었다.
그 사실에 남은 사 년의 세월이 막막하기만 한 은화량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두 눈은 시커멓게 죽어가고 있었다.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만이 머리에 떠돌았다.
그러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영혼 없이 벽이겸의 뒤를 따라 담룡각으로 가 그의 심부름을 했다.
한 대 더 맞은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있으니 이 정도에서 끝난 것.
다음은 조별로 수련하는 시간이었다.
하루 중 벽이겸의 손길을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
은화량은 와룡대 이십 조의 수련장으로 향했다.
물론 벽이겸의 일 조 수련장까지 그를 수행한 뒤에.
가는 길목에서 다른 이십 조 생도들을 마주쳤다.
저마다의 사연은 달랐지만, 전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생도들.
동질감이 들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신경을 쓰기에는 각자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그때.
"어이. 후배들."
이십 조의 연무장 도착 즈음해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불렀다.
한 번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