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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19화 (219/312)

219화. 저 새끼들

"내기?"

벽이겸이 되물었다.

당진산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를."

벽이겸은 무시하려 했다.

"자신 없나 보지?"

당진산의 도발.

벽이겸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진다.

"하투제라고 알아?"

당진산은 그런 벽이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벽이겸.

일 년차들만 출전하는 비무대회이니 아마도 알고 있으리라.

"거기서 너희랑 이십 조 애들이랑 겨루는 거지."

그제야 막 학당 밖으로 나오고 있는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

벽이겸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저딴 쓰레기들이랑? 단번에 박살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당진산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하투제의 규칙대로 해야지."

"규칙?"

"누가 더 오래 생존하나. 하투제는 최종 생존한 조가 우승이니까."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벽이겸.

"시작하자마자 저놈들을 깨부숴버리면?"

"너희들 승리군."

당진산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피식 웃는 벽이겸.

"네가 뭔데 나보고 저딴 쓰레기들이랑 싸우라 마라 내기를 제안하는 거지? 내가 왜 그 장단에 놀아나야 하고?"

"걸린 걸 들으면 생각이 좀 바뀔 것도 같은데."

당진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제야 벽이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뭘 걸 건데?"

이제야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교룡관 후반기 어때?"

당진산도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기의 당사자인 이십 조 생도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할 일이 일 조 생도들의 시중을 드는 것이었으니.

"그게 무슨 말이지?"

"하투제로 전반기가 끝이니까. 내기에서 진 쪽이 후반기 내내 이긴 쪽의 명령을 듣는 것."

벽이겸이 흥이 식었다는 얼굴로 물었다. 내기를 안 해도 시종들이 있지 않은가?

어차피 이길 내기이지만.

"너와 나?"

내기의 대상을 확인하며 묻는 벽이겸.

"아니, 와룡대 일 년차 일 조와 맹룡대 이 년차 칠 조."

벽이겸의 시선이 떨어져 있는 맹룡대 칠 조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에 누군가의 모습이 잡혔다.

벽이겸의 입가에 다시 커다란 웃음이 걸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 하. 하하하. 크하하하하!"

어이가 없다는 표정.

"그냥 하반기부터 내 시중들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어때? 이딴 귀찮은 내기 말고?"

벽이겸은 자신들이 이길 거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진산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런 벽이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받아들이지. 이건 거절하는 게 바보인 내기야. 크흐흐. 남아일언?"

"중천금."

벽이겸의 말을 당진산이 받았다.

"좋아. 뭐, 천금을 가져온다 해도 물러주지 않을 거다."

"이쪽이야말로."

정원에 나와 있는 맹룡대, 와룡대, 잠룡대 생도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연차도 다양하게 모여 있는 그들.

그런 사람들 앞에서 합의된 내기다.

결과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상황.

"아, 내기에 졌다고 퇴관하고 튀고 그러면 안 된다?"

막 몸을 돌리던 당진산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당가의 명예를 걸고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당진산이 제법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많은 이들 앞에서 개인의 명예를 넘어 가문의 명예까지 건 것이다.

"나 역시. 도림의 명예를 걸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벽이겸이 지지 않고 응수했다.

"자, 그러면 얘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뭐?"

당진산이 이십 조 생도들을 이끌며 말하자, 벽이겸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뭐긴, 내기 준비해야지. 혹시라도 그 전에 네 녀석들이 얘들 다치게 하거나 괴롭히거나 해서 아예 하투제에 참가 못 하게 할 수도 있잖아."

그 말에 벽이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딴 치졸한 짓 따위 하지 않아도······."

"그래. 그러니까. 이쪽은 얘들을 준비시켜야 내기가 되니까 데려간다는 거야. 그러니까 하투제까지 이 녀석들 건들지 마라."

그 말과 함께 당진산이 이십 조 생도들을 이끌었다.

덩그러니 남은 와룡대 일 조 생도들.

"이겸. 정말 괜찮은 거야?"

벽이겸의 결정에 얼떨결 내기의 참가자가 되어 버린 다른 조원들.

"자신 없냐?"

벽이겸의 물음에 다른 조원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저딴 쓰레기들과 자신을.

벽이겸의 시선이 몸을 돌려 멀어지는 맹룡대 칠 조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들었잖아. 맹룡대 칠 조 전원이라고."

"그게 뭐?"

"연하민. 그녀도 맹룡대 칠 조다. 그깟 내기에서 이기면 그 계집의 시중을 받을 수 있다고."

두 눈에 은은한 음심이 깃들며 벽이겸이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벽이겸과 똑같은 눈빛으로.

'하설란이라고 했던가? 저 년이 칠 조가 아닌 것이 아쉽네.'

누군가 맹룡대 칠 조가 모인 곳을 힐끗거리며 생각했다.

***

와룡대 이십 조 생도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 자리를 옮긴 당진산.

주변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갑자기 뭐야? 우리까지 전부 엮어서?"

백리평이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이 정도는 돼야 쟤들이 미끼를 물지."

"쓰레기들."

연하민이 차갑에 중얼거렸다.

"으, 응?"

깜짝 놀란 당진산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저 새끼들."

험한 말이 연하민의 입에서 이어 나왔다.

그녀는 분명히 마지막 순간 자신의 뒤에 닿은 그 끈적하고 기분 나쁜 시선을 느꼈다.

연가에서 수없이 받아봤던 시선이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한동안은 없었기에 잊고 있었던 그 소름 끼치는 불쾌함.

감히 자신에게 그런 음심 가득한 시선을 던지다니.

뒤늦게 학당에서 나왔기에 이십 조 생도들은 아직 전후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당진산이 그들에게 설명해주자.

"네에?"

"말도 안 돼······."

다섯 사람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저, 저희 때문에 선배님들이······."

은화량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왜?"

당진산의 물음에.

"하반기에 어떻게 하시려고요."

은화량이 어딘가에 숨어들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긴. 저 녀석들 부려 먹으면서 편하게 지내지."

너무 당당한 말에.

순간적으로 이십 조 다섯은 얼빠진 얼굴을 했다.

"이기면 돼. 이기면."

"그게······."

당진산의 말에 자신 없어 하는 다섯.

당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멱살 잡고서라도 이기게 만들어 줄게."

그때 들린 차갑고도 차가운 목소리.

연하민이었다.

"대신 죽을 만큼 괴로울지도 몰라."

이십 조 다섯 생도는 묵묵부답이었다.

"저희의 의견은 없는 겁니까?"

그때.

계속해서 조용히 있던 한 생도가 입을 열었다.

덩치가 가장 큰 녀석이었다.

철기방 출신의 나중천.

당진산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음. 그러네. 내가 미리 너희 의중을 물어봤어야 했었네. 어제 대강 파악은 한 거라 생각했는데."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빠질 거야? 그럼 지금 말해. 내기야, 조건을 바꾸면 될 일이니까."

나중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심사가 복잡한 모양.

"너희에게 손해가 날 건 하나도 없는 내기다. 너희가 지더라도 대가를 치르는 건 우리야."

맞는 말이다.

내기를 행하는 것은 자신들이지만,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맹룡대 칠 조였으니.

"우리 조에는 여자도 있어. 이러면 우리가 얼마나 큰 대가를 건 것인지 좀 이해가 가려나?"

당진산의 말에 그제야 이십 조 생도들의 시선이 모두 연하민에게로 향했다.

면사를 하고 있음에도 숨 막히게 아름다운 여인.

"그건··· 실수하셨네요."

나중천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철기방 출신의 와룡대 일 조 생도가 떠오른 것이다.

철령.

철기방주의 조카다.

실력이 뛰어났지만, 색을 너무 밝혀 종종 사고를 치는 인물.

그 때문에 교룡관으로 보내진 녀석.

"거기에 색을 엄청 밝히는 녀석이 하나 있어서."

이어진 나중천의 말에 당진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면서 힐끔 연하민을 살폈다.

"너희가 이기면 문제없어. 할 거야? 말 거야?"

연하민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후우."

한숨을 쉬는 이.

대해문의 영후인이다.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어제도 물어봤던 질문.

"어제 답해 줬잖아."

당진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다시 묻는 영후인.

"우리가 사연이 좀 많아."

당진산은 그리 말하고 싱긋 웃었다.

복잡한 감정이 다양하게 담긴 웃음이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정을 내린 것은 영후인이다.

"하겠습니다."

의외로 나중천이 다음에 말했다.

"저도요."

은화량도 결정을 내렸다.

남은 둘 역시 굳은 얼굴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슬슬 쉬는 시간도 끝이네. 수업 열심히 들어라. 썩은 생선 눈깔하고 듣지 말고. 전부 너희가 익여야 할 것들이니까."

당진산은 그 말을 끝으로 일행들과 몸을 돌렸다.

와룡대 생도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수업 하나하나가 중요해졌으니.

***

하무백은 멀찍이서 내기를 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오지랖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그.

간밤에 하설란에게 이야기를 들었기에 살피고 있었다.

거침없이 진행되는 그들의 대화.

내기에 참여한 이들 중 하설란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설란의 두 눈은 의욕으로 가득했다.

'다행이라면, 나쁘지 않은 녀석들이군.'

신기한 노릇이다.

시종으로 보낸 이들이라 했는데, 하나같이 무재가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리걸식하던 고아들 중, 각 문파들의 기본공을 전수해 익힌 이들을 보냈으니까.

그들에게는 기본공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공부다.

그걸 그런 환경에서 익혀냈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인 무재가 있다는 의미였으니.

와룡대 일 조의 면면을 다시 떠올렸다.

확실히 뛰어난 녀석들이었다.

남은 기한 동안 저 녀석들을 아무리 굴린다고 할지라도 정면으로 붙으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다만.

'머리를 잘 썼네. 하투제를 경험해봐서 그런 건가?'

오래 살아남는 걸로 조건을 바꾸면 해 볼 만은 했다.

작년, 맹룡대 칠 조가 그랬듯.

유격전은 단순한 비무와는 다르니까.

***

연무장에서 남궁지후가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남궁지유는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오늘 수업은 안 가는 거야?"

"최소한의 수업만 나갈 거야. 이게 더 중요해."

돌아온 대답에 물끄러미 있는 남궁지유.

동생이 휘두르는 검은 달라져 있었다.

삼재검법, 그리고 대연검법.

어제 하무백의 조언에 바로 수련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정말 그걸로 될 것 같아?"

"어제 들었잖아."

그때 남궁지유도 있었다.

연무장 한쪽의 저 커다란 나무 뒤에.

하무백도 아마 그녀의 존재를 눈치챘으리라.

그런데도 모른 척 넘어갔다.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교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남궁지유가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제왕검형의 비급을 하무백에게 전한 것.

그것은 그녀와의 상의 없이 남궁지후 독단적으로 행한 일이었으니까.

"소가주가 되고, 가주가 될 거야. 반드시."

남궁지후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찾을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검에 집중하는 남궁지후.

남궁지유는 가만히 그런 동생을 바라보았다.

남매라 하지만 두 사람은 어머니가 다르다.

자신은 정실, 지후는 첩.

사실 이것도 아버지가 일러주어 알게 된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어머니라는 존재를 본 적조차 없으니.

그렇지만 두 사람은 여느 세가의 어느 남매보다 사이가 끈끈했다.

보통 어미가 다른 자식들의 사이를 생각한다면,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철이 들기 전부터 자신들을 향했던 아버지의 냉대.

그것이 두 사람을 더없이 끈끈하게 만들었다.

세상 의지할 곳은 남매 서로뿐이라는 것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겪으며 깨달았기에.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아직 공석이고, 아버지는 그 자리를 경쟁에 부쳤다.

가문의 어른들에게 그것이 받아들여진 이유 중 하나.

지후의 어머니 때문이다.

첩의 자식, 서자.

그 사실을 저어하는 가문의 어른도 일부 있었던 탓이다.

압도적인 재능 덕에 지지가 더 많았지만.

남궁지유는 그런 동생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믿음과 애정이 가득한 눈빛.

반면 검을 휘두르는 남궁지후의 두 눈에는 점점 독기가 어리고 있었다.

그런 검의 움직임에도 점점 현기가 어렸다.

남궁지유는 자신이 잘못 보았나 다시 살폈다.

분명 삼재검법을 수련하고 있을 진데, 그 너머의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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