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20화 (220/312)

220화. 그 친구들은?

그 너머의 경지가 보이듯.

검이 움직인다.

도도히 흐르는 장대한 강물처럼.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섬전같이 내려치는 벼락처럼.

"후우."

검을 내린 중년의 사내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얼굴에는 검상으로 인한 흉터가 가득했다.

좌수검.

그는 왼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오른팔이 있어야 할 곳은 빈 소매만 펄럭였다.

그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다.

멀리 울창한 숲.

거대한 장성이 보인다.

한때는 이곳에도 심심찮게 나타났던 강시들은 저 장성이 들어선 후로 사라졌다.

아니, 돌아다니던 녀석들을 모두 처리하니 더 이상 강시를 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이 지역만은 산월마림이 아닌 그냥 산월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 노인이 그런 중년 사내를 향해 다가왔다.

"이제 그 괴물 새끼들도 저 장성에 갇혀 나타나질 않는데. 그래도 열심이구만. 흘흘."

"검의 길에 끝은 없습니다. 촌장님."

사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 나 같은 촌로가 무얼 알겠나."

촌장의 말에 사내는 빙그레 웃었다.

생명의 은인.

그랬기에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촌장의 마을에서 보냈다.

구명의 은혜를 갚아야 했으니.

"이제 떠나려는 게로구만."

촌장은 그런 사내의 마음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니야. 우리가 자네에게 감사하지. 자네 덕에 목숨을 구한 마을 사람들이 몇인가."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들입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서로 웃으며 바라보는 두 사람.

"저 장성이 생기고는 사실 자네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지."

"사실 저는 저 장성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허. 정천맹이라는 무림의 거대 세력이 만들었는데?"

"믿을 수 없는 이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복잡한 눈빛으로 산월장성을 바라보는 사내.

촌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사연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 떠나서 어딜 가려는 겐가?"

"찾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련한 눈빛이다.

"그러고 나서는?"

촌장이 묻는다.

"글쎄요. 순순히 내어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찾는 이들을. 무사히 함께하게 된다면······."

잠시 말을 멈춘 사내가 시선을 돌린다.

그곳은 그가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마을이 있는 방향이다.

"돌아와야지요. 함께든, 홀로든."

"응?"

예상치 못한 대답에 촌장이 두 눈을 끔벅였다.

"제게 이곳은 이제 고향입니다. 그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군요."

애잔한 감정이 가득한 사내의 말에 촌장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암. 그렇지. 언제든지 돌아오게나."

촌장의 배웅을 받으며 사내는 그렇게 마을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올 집과 같은 곳이기에.

이제는 자신이 생겼다.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러니 이제 찾아야 했다.

힘이 없어 잃었던 것들을.

사내의 걸음은 안휘성으로 향했다.

홀로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이 웅크리고 있는 그 땅을 향해.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으니.

맹룡대의 교관들은 드디어 훈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즉시 생도들의 훈련 담당으로 투입되었다.

한설빙에게 독하게 당한 탓일까.

생도들을 훈련 시키는 데 인정사정없었다.

"후우. 이제야 좀 쉴 수 있겠구만."

그 모습을 확인한 하무백은 싱긋 웃으며 대연무장 가장자리 아름드리나무 아래 널찍한 바위 위로 드러누웠다.

없던 바위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하무백이 어디선가 구해서 가져다 둔 것이다.

나무와 썩 어울리는 바위라 다들 대수롭지 않게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저런 용도일 줄이야.

생도들은 물론 교관들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자신들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그런 원망의 시선.

하무백이 몸을 일으켜 그런 교관과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멈췄지? 그리고 훈련은 나 좋으라고 시키는 거 아니다. 너희들 좋으라고 시키는 거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드러누웠다.

이윽고 교관들의 구령이 다시 시작되었다.

팽도율은 관주실의 창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쯧. 하 교관은 하 교관이구만."

혀를 차며 빙그레 웃는 팽도율.

어째 한 달 동안 열심히 하나 싶더니, 결국은 또 저러고 있었다.

저러기 위해 열심히 보낸 한 달이었던 것이다.

기유찬이 뒤에 서 있었다.

"그래도 맹룡대의 훈련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관들의 수준도 일취월장한 것 같다고, 제갈 교관이 평하더군요."

"그 친구가 그리 말한 거면 그런 거지. 고작 한 달 만에 말이야."

팽도율이 만족스레 웃었다.

"그것이. 이런 속도라면 연말에는 맹룡대 생도들이 교관들의 성취를 뛰어넘을 거라고도 합니다."

그 말에 팽도율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내공의 문제라고 하더군요."

그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맹룡대 교관들이 이류와 삼류라 하나 나름의 내공을 지닌 이들.

자신들만의 심법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연말에는 생도들이 앞설 것이라니.

사실 교관들은 내공 수련을 하지 않고 오로지 검법과 병진, 방패술의 초식과 형태에 대한 수련에만 매진했다.

하무백과 한설빙이 의도한 것.

교관 일에 필요한 부분만 중점적으로 훈련 시킨 것이다.

"생도들이 익히고 있는 심법이 삼재심법이라 하지 않았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팽도율.

"조화롭다고 하더군요. 검법과 방패술, 병진과 내공심법이 조화롭게 어울려 움직인다고요. 때문에 그 위력이 곱절은 날 거라 했습니다."

기유찬의 이어진 설명에 팽도율은 다시금 훈련하는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하무백.

저 인간의 대단함에 다시 한번 놀라며.

"참, 그 운도헌 녀석은?"

"임시로 와룡대 일 조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석이 생기면 그곳으로 배치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무백에게 그렇게 당하고 회복하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

회복 후 와룡대로의 전환을 요청했었다.

관칙에는 출신 문파와 능력이 뒷받침된다면 소속대를 바꿀 수 있다는 아주 지엽적인 전대 조항이 있었다.

운도헌은 그 기준을 만족시켰기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었는데.

그걸 사용하게 될 줄이야.

"그 친구들은?"

"하투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가에서 몸을 돌려 자신의 서탁으로 향하는 팽도율.

기유찬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내년에도 이런 같잖은 수작을 벌이겠지?"

"그들로서는 안 쓸 이유가 없지요."

같잖은 수작의 의미를 알고 있는 기유찬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골치 아프구만. 내 선에서 처리가 될 문제는 아니야."

"신진팔문 쪽의 수작질이니까요. 그렇다고 관칙을 크게 어긴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라서."

교룡관은 관주도, 부관주도 오대세가쪽 사람이었다.

백도회 소속.

신진팔문과는 사사건건 대립하는 집단이었기에 오히려 이 사안에 대해 강제할 힘이 약했다.

그들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었기에.

그리고 핵심은 기유찬의 말 속에 있었다.

관칙을 크게 어긴 것도 아니라는.

관칙에는 모든 생도들이 동등하다고 되어 있다.

생도가 생도를 시종으로 부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부림을 당한 생도가 자발적으로 도와주려 그랬다고 하면 처벌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 짓거리를 막겠다고 관칙을 빡빡하게 고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팽도율이 손가락으로 서탁을 톡톡 두드렸다.

"신진팔문에 입김이 센 사람을 통해야겠지요."

기유찬은 답이 나와 있다는 듯 말했다.

관주 당신도 알고 있지 않냐는 시선으로 팽도율을 바라보며.

"쯥. 그래. 이 건은 맹주님에게 바로 보고해야겠어."

팽도율은 결정을 내렸다.

"참, 자네는 내기가 어찌 될 것 같은가?"

팽도율의 표정이 변했다.

거기에는 순수한 흥미만이 가득했다.

그들의 내기가 성립하고 이틀도 되지 않아 교룡관에는 그 이야기가 알음알음 전부 퍼졌다.

기유찬과 팽도율의 귀에 들어간 것도 당연한 일.

그렇지 않아도 와룡대 일 조와 이십 조를 주시하던 터였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개입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

"일개 문사인 제가 무얼 알겠습니까?"

돌아온 기유찬의 대답에 팽도율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이어진 말에 다시 흥미가 어리는 시선.

"제갈 교관이 그러더군요. 제갈 세가의 무공은 충분히 강하다고요."

팽도율이 빙그레 웃었다.

그랬다.

유룡검법, 유룡권법, 유룡신법, 유룡검진.

제갈 세가에서 제공한 무공이었다.

정천맹의 요청을 받아 제갈 세가의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룡관에 가장 적합할 것 같은 무공을 만들어 준 것이다.

다만 그간의 사정으로 잠룡대와 와룡대, 맹룡대 생도들은 그것을 익히지 않았다.

잠룡대와 와룡대는 출신 문파의 무공을 수련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맹룡대 생도들은 그 무공에 대한 수업을 들어도 이해하고 익힐 능력이 없었다.

무엇보다 심법이 빠진 무공이었으니.

제갈세가에서는 어지간한 심법으로도 펼치는 데 무리가 없는 범용성이 높은 무공이라고 하였으나.

그게 어디 무인들에게 통할 말이던가.

그렇게 훌륭한 무공이 잊혀 갔다.

교룡관의 설립 의미도 그와 함께 조금씩 퇴색되어서.

그저 정천맹의 무력 집단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 의례 정도가 되어버린 터.

어쩌면 이번 하투제로 무언가 변화의 바람이 불지도 몰랐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

와룡대 이십 조의 연무장.

뇌정루의 은화량, 철기방의 나중천, 대해문의 영후인, 빙천궁의 임대치, 천검파의 심철산.

이들 다섯은 쉼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유룡검법.

수업에서 배우고 수련 시간에 휘두른다.

그리고 석식 시간 이후 깊은 밤에는 맹룡대 칠 조와 함께 수련한다.

지난 한 달간의 일과였다.

묵해진은 그런 생도들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담당 생도들.

허나 자신이 알려줄 것은 별로 없었다.

알아서 저리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내기라.'

내기에 대한 소문은 그 역시 들었다.

묵해진의 시선이 나중천에게로 향했다.

그럴 수밖에.

자신의 문파에서 온 녀석이었으니.

저 녀석을 볼 낯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묵해진은 더욱 유심히 다섯 명을 지켜보았다.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자 마음먹었기에.

그는 유룡공 비급을 다시 살피기도 했다.

"영후인. 검 끝이 한 치 어긋났다."

묵직하게 말하는 묵해진.

"네. 감사합니다."

영후인은 곧장 검로를 수정했다.

이와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묵해진은 요즘 유룡공의 비급을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교관으로 부임할 당시 받아서 한 번 살핀 적은 있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신에게 수업이 배정된 적도 없었기에 더 이상 살피지도 않았고.

이유는 간단했다.

수련하는 생도가 없었으니.

그러나, 알면 알수록 뛰어난 무공이었다.

'그 녀석들. 당최 알 수가 없군.'

묵해진의 생각은 맹룡대 칠 조 생도에게까지 미쳤다.

그들을 처음 본 것은 지난 하투제였다.

헌데 자신의 담당 조원들까지 그 하투제에 엮여 들어가다니.

다만.

그 역시 마음속으로는 맹룡대 칠 조 생도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

학당 지붕 위.

한설빙이 그곳에서 와룡대 이십 조의 연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대치라고 했던가······.'

빙천궁에서 교룡관으로 보내진 아이다.

한설빙의 두 눈에는 애틋함이 어려 있었다.

북해는 척박한 땅이다.

그 때문에 사람이 적었다. 그런데, 고아는 많았다.

빙천궁은 북해의 맹주로 그런 고아들을 돌봐 왔었다.

그중에 영민한 아이들을 궁 내의 일꾼으로 고용하거나 뛰어난 아이들은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했고.

그렇게 보살펴 왔었는데.

지금 이곳에 시종으로 저렇게 보내졌다고 하니.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당장 가서 따지기에는 북해는 너무 먼 땅.

그녀가 궁을 떠나 있는 동안 궁 내의 세력 판도가 바뀐 듯했다.

화가 잔뜩 나서 보냈던 전서에 대한 답이 그러했으니.

그녀의 시선이 와룡대 일 조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빛은 서릿발처럼 차갑고도 날카로웠다.

'탁무전. 빌어먹을 탁가.'

현재 빙천궁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가문이다.

휘하에 많은 가문들을 들여서 궁주조차 무시할 수 없게 된.

고아들에 대한 대우가 이리된 데에는 탁가의 의중이 있었다는 답에.

절로 열이 뻗쳤다.

북해의 맹주로서 응당 돌봐야 할 아이들을 부리고 있다니.

"아무래도 한 손 거들어야겠어."

한 달간 꾸준히 양쪽을 지켜본 끝에 한설빙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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