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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22화 (222/312)

222화. 어찌한다?

중년의 외팔이 사내는 눈앞의 장성을 훌쩍 뛰어넘었다.

목적한 곳.

안휘성 합비.

그곳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산월마림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다.

미쳤다고 할 행동이었지만, 사내는 자신이 있었다.

오랜 세월 이곳을 드나들면서 길을 보는 눈을 익힌 덕이다.

장성이 들어서기 전부터 산월마림의 강시들과 싸웠고, 장성이 생긴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녔던 길.

마물들이 존재하는 더러운 땅이건만, 신기하게도 귀한 약초들이 많이 난 탓이었다.

혁낭을 등에 메고 검을 빗겨 멨다.

언제든 뽑을 수 있게.

'상대하기 버거운 놈들의 영역만 잘 피하면 된다.'

사내는 그 영역을 읽는 눈을 가졌다.

그렇게 중심을 지나쳐 목적한 북서쪽 장성을 향해 갈 때.

"피해!!"

"위험해!!"

다급한 외침이 울창한 숲을 뚫고 사내의 귀에 들렸다.

사내는 걸음을 멈췄다.

이 저주받은 땅에 있을 사람이라면 뻔했다.

목숨을 걸고 약초를 캐러 들어온 약초꾼이거나.

'정천맹의 무인들.'

산월장성을 관리한다는 그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넓은 장성 주변을 꾸준히 순찰하면서 다니는 이들이었으니.

사내는 외침이 들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썩 좋아하는 집단은 아니지만, 이 험한 땅에 배치되어 고생하는 힘 없는 무인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

쌔액!

날카로우면서도 둔중한 파공음과 함께 관하경의 도가 공간을 갈랐다.

단천도법.

도림의 제자라면 어렵지 않게 익히는 도법이다.

허나 그 움직임은 다른 도림의 인물이 펼치는 것과 전혀 달랐다.

같은 도법이 맞나 의심마저 들 지경.

물론 지금 상황에서 어울리는 생각이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귀찮은 놈의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캉!

단번에 목을 갈라버릴 기세로 날아든 도가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튕겨 나왔다.

치켜든 팔로 관하경의 도를 막은 강시는 시꺼먼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은은한 묵빛이 감도는 피부.

묵철강시였다.

"고, 고맙습니다."

방패가 쪼개진 맹룡대원 하나가 관하경을 향해 힘겹게 인사를 전했다.

방금 그녀가 다급히 도를 날리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묵철강시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리라.

관하경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조차 내지 못하다니······.'

나름 강력한 도격을 떨쳤으나 멀쩡한 강시의 모습에 관하경은 살짝 놀랐다.

묵철강시와는 첫 조우였다.

"씨발. 우리끼리는 저 새끼 못 잡는데······.'

봉마단 흑대 이 조의 조장 풍건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욕설을 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묵철강시를 상대하려면 최소한 세 개 조는 필요했다.

피해 없이 잡으려면 다섯 개의 조.

지금처럼 자신들만이 상대한다면 필패였다.

살아남으려면.

봉마단 조장이 힐끗 맹룡대 열 사람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얼굴로 방패를 든 아홉. 그리고 방패가 박살 난 하나.

저들을 버리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묵철강시는 개체마다의 영역이 있었기에, 적당한 희생물을 던져주고 그 틈에 영역을 벗어나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다.

조장의 시선이 다른 조원에게로 향했다.

그는 지은 죄가 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용변이 급하다며 순찰 경로를 이탈한 것이다.

설마 그가 이탈한 곳에 묵철강시의 영역 변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작년 가을 즈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나, 조용하기만 하던 산월장성 남쪽의 영역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 여파가 북서쪽인 이곳까지 미쳤던 것이다.

덕분에 힘들게 파악한 묵철강시의 영역이 꼬여버렸다.

묵철강시가 꼬이면 암혈강시도, 그리고 더 괴물 같은 놈들도 변화가 있을 터인데.

'미치겠네. 여기서 살아나가도 그다음이 문제다. 영역 확인에 들어간 시간과 희생이 얼마였는데······.'

강시 주제에 영역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은 터.

그리고 힘겹게 파악한 영역이 틀어져 버렸으니.

조장 풍건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판단을 잘해야 했다.

맹룡대를 제물로 삼고 몸을 빼느냐, 아니면 그들과 힘을 합쳐 저놈을 상대하느냐.

보통의 조장들은 이 경우 선택은 하나였다.

맹룡대를 버리고 몸을 빼는 것.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애매했다.

변해버린 영역에 들어온 이상, 여기서 몸을 빼고 복귀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풍건의 시선이 맹룡대 조장에게로 향했다.

맹룡대 오 년차. 올해만 버티면 이 지긋지긋한 산월마림을 벗어날 수 있는 이.

그리고 지난 오 년간 자신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이.

유귀광.

어리바리한 신입 시절 함께 흑대 이 조에 배속되었다.

봉마단과 맹룡대라는 골이 깊은 간극이 있었으나 지난 세월은 두 사람의 우정을 그 골보다 깊게 만들어 주었다.

마침 풍건을 바라보는 유귀광.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유귀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 의미는 뻔했다.

자신들이 막을 테니 떠나라는 것이다.

그제 밤, 저 녀석과 한잔 술을 나눴을 때가 떠올랐다.

이제 열 달만 더 버티면 그간 모은 돈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있다며 웃던 녀석.

"씨발."

풍건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검에 희미한 기운이 어렸다.

가진 내공을 몽땅 불어넣은 검기다.

"엄호해!"

그리 외치고 묵철강시를 향해 튀어 나갔다.

캉!

묵철강시의 팔에 검이 막혔다.

관하경의 일격과 차이가 있다면 작은 상처는 생겼다는 것.

최소한 검기는 있어야 이 괴물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크어어어!"

묵철강시가 풍건을 향해 팔을 휘두를 때.

쾅!

어느새 끼어든 유귀광이 방패로 그 공격을 막았다.

"미친놈."

힐끗 풍건을 쳐다보고 작게 중얼거리는 유귀광.

"가족들 만나봐야지."

그리 답한 풍건이 다시 묵철강시에게 달려들었다.

조장의 결정에 따라 나머지 네 사람도 전력을 다해 묵철강시에게 달려들었다.

봉마단 다섯 사람은 자연스레 유룡검진을 펼쳤다.

각기 다른 병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도 변주는 상관이 없었다.

교룡관 시절에는 쳐다도 안 봤던 검진이었건만.

봉마단에 배치된 이후 정말 필사적으로 익혔다.

묵철강시가 아니라 혈강시라도 강한 개체를 마주치게 되면 유룡검진이 필수였으니까.

챙! 카캉! 채챙! 쾅!

유룡검진과 맹룡대의 방패술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묵철강시를 상대했다.

쉬이 밀리지는 않았다.

다만, 저 괴물에게 큰 타격을 주지도 못했다.

'괴물이야. 진짜.'

관하경은 전력을 다해 도를 떨치며 그리 생각했다.

풍건이 그랬던 것처럼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도기를 일으켰다.

그제야 조금씩 상처가 나는 묵철강시.

관하경의 실력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단천도법을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나름의 성취를 얻었다 생각했건만.

자만이었다.

도강을 일으킬 수 없으면, 저 괴물들에게는 아무리 높은 경지의 도법이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관하경은 이를 악물고 도를 휘둘렀다.

당연했다.

멈추면 죽는다. 물러나도 죽는다.

그저 전력을 다할 뿐.

강기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검기와 도기만으로 저놈에게 타격을 주기에 다섯이라는 숫자는 적었다.

콰앙!

큰소리가 울렸고.

유귀광의 방패가 쪼개졌다.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쪼개진 틈으로 강시의 손톱이 짓쳐 들었다.

봉마단원의 검이 날아 들었지만 강시는 그것을 무시했다.

전략을 바꾼 것이다.

한 놈씩 확실하게 제거하겠다는 전략.

"크윽."

유귀광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찔러오는 묵빛 감도는 음산한 손을 노려보았다.

스걱.

그때 갑자기 날아온 검이 그 손목을 잘라 버렸다.

푸른 검강이 덧씌워진 검.

왼손에 검을 든 외팔이 사내의 발이 강시의 얼굴을 후려쳤다.

일격에 주춤 물러서는 강시.

중년 사내는 담담한 얼굴로 묵철강시를 바라보았다.

'제법.'

의외였다.

맹룡대 녀석들만 방패를 든 채 겨우겨우 버티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봉마단 녀석들도 있을 줄이야.

굉장히 희귀한 경우였다.

저놈들이 그간 마림 안에서 행했던 일을 생각한다면.

불쌍한 맹룡대 녀석들을 구하기 위해 왔건만.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가.

중년 사내의 검에 어린 강기가 더욱 짙어졌다.

땅을 박찬 그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아!"

봉마단원들은 감탄을 흘리며 그 모습을 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검법이었으나, 저런 장엄한 검법을 본 기억이 없었다.

사내의 검은 삼 초만에 묵철강시를 네 쪽으로 갈라버렸다.

"후우."

검을 내린 사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찡그렸다.

단전에서 전해지는 통증 때문이다.

단전의 상처와 내공의 한계 때문에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각은 고작해야 오 초식을 펼칠 정도.

"가, 감사합니다. 대협."

풍건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포권을 취했다.

"영역이 변한 듯하니 어서 이곳을 벗어나게."

중심을 가로지르면서 느낀 바를 전했다.

사내는 영역을 읽는 눈을 길렀기에 그 작은 변화를 감지했지만, 이들은 아직 모를 터였다.

"가, 감사합니다."

이내 나머지 인물들이 포권을 하고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됐네. 위험에 처하고도 서로 동료를 감싸는 모습이 기꺼워 한 손 보탰을 뿐이네."

"대협의 존성대명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풍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마림 안에 봉마단이 아닌 이가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위기를 넘기게 도와준 덕분일까.

"일단 여기를 떠나세나."

사내가 재촉했으나, 풍건은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사내.

"남··· 남휘라고 하네."

사내는 그리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게. 안전한 곳까지 알려주겠네."

그렇게 봉마단을 데려다 준 중년 사내 남휘는 산월장성의 북서쪽 성벽을 넘어서 곧장 안휘성을 향해 달렸다.

***

"그만."

갑자기 들려온 담당교관의 말에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의 얼굴에는 의구심이 어렸다.

간간이 조언은 해줬으나 이렇게 수련을 멈추게 한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묵해진은 연무장 가운데로 왔다.

"제법 형이 갖춰진 것 같으니 실전을 겪어봐야지."

현재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은 유룡검진을 수련 중이었다.

"네?"

"너희들 상대 중에 철기방 녀석도 있었지?"

묵해진의 물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생도들.

묵해진의 출신이 철기방임을 아는 까닭이다.

"맹룡대 그 녀석들이라면 틀림없이 각개격파 하라고 조언을 했을 테고."

이어진 말에 깜짝 놀라는 이십 조 생도들.

그 반응에 묵해진은 피식 웃었다.

지난 하투제, 각개격파를 눈앞에서 지켜본 판정관이 자신 아니었던가.

"그러자면 속전속결이 필요할 텐데, 지피지기 정도는 해 둬야지."

호의적인 말에 얼떨떨해하는 생도들.

그럴 수밖에.

이들은 본파의 제자들에게 이런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터다.

"무슨 그런 표정들을 짓나. 담당교관으로서 생도들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을. 어서 들어와라."

묵해진이 장창을 들고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철기방은 철기병이 주력인 방파였다.

덕분에 기병창을 이용한 창법이 발달 되었다.

기마 상태가 아닐 때는 기병창보다 좀 짧은 육 척 세 치 정도의 장창을 사용했다.

"먼저 간다."

여전히 얼떨떨해하는 생도들을 향해 묵해진이 먼저 창을 휘둘렀다.

머리로 이해를 못 한다면 몸을 움직이면 될 터.

묵해진의 선공에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은 바삐 움직였다.

철혼창법(鐵魂槍法).

묵해진의 장기이자, 와룡대 일 조 철령의 장기인 창법이다.

일거에 적을 쓸어버리는 듯한 패도적인 창법이 연신 생도들을 향해 날아왔다.

학당의 지붕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하무백.

'흐음. 제법 저 녀석들 인복이 있는 건가?'

한설빙도 그렇고, 묵해진까지.

교관들이 몸소 도와주려는 모습에 하무백이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 역시 저렇게 저 녀석들을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일을 벌인 것은 자신이 담당하는 생도 녀석들이었지만.

'어떻게 한다?'

하무백이 고민했다.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작년의 경우는 자신이 몸소 나섰기에 가능한 일.

지금 와룡대 일 조 녀석들은 작년의 잠룡대 일 조 녀석들 이상으로 방심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이십 조 녀석들의 준비도 작년에 비하면 부족했다.

무엇보다.

'내공이 문제로군.'

이건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차이가 어느 정도라야 초식과 검진으로 극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하무백은 이 벽을 자신이 직접 내공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으로 뛰어넘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저 아이들에게 그렇게 나서는 것도 우스웠고.

무엇보다 익힌 심법이 삼재심법이 아니었다.

'어찌한다?'

본디 하지 않았을 고민이었지만.

가끔씩 자신을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하설란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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