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병신들
"흐음. 저 정도였던가?"
하무백은 학당의 지붕에서 생도들이 반량환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몇 가지 약재가 없었기에, 구할 수 있는 걸로만 몇 개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것이다.
효과는 기존 무량환의 절반 정도로 느껴졌기에 반량환이라 대강 이름 붙였다.
완성품 하나는 직접 먹어보았고.
물론 스스로 미각을 담당하는 혈을 점하고 먹었다.
극악한 맛을 조금이나마 중화시켜 주는 약재도 빠졌기에, 더 극악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저 영약을 먹고 정신을 잃을 줄은 하무백도 몰랐다.
멀쩡한 사람을 기절시키는 약이라니.
"어떻게 하지?"
맹룡대 칠 조 생도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설마 이리될 줄이야.
"혈을 점하고 먹게 할 걸 그랬나?"
단목운뢰가 쓰러진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신들이 그냥 먹었기에, 이들도 한 번은 경험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냥 먹였는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당진산은 임대치의 구역질이 멎은 것 같자 손을 뗐다.
"어후. 이거."
"죄, 죄송합니다."
임대치가 면목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냐, 아냐. 잠깐 좀 씻고 올게."
당진산은 잠깐 자리를 비웠고 임대치는 계속해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했다.
이렇게 해야 입안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단환의 그 맛이 사라질 것 같았다.
"진정이 좀 됐으면 운공을 해. 다른 친구들은 어쩔 수 없고."
연하민의 말에 임대치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몸에 좋다고 했으니.
효과가 은근 기대되기도 했다.
이렇게 극악한 맛을 지닌 단환을 그렇게 먹게 했으니.
누워있는 넷.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정신 차려서 토악질하느니."
백리평의 말에 저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전 임대치를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주우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해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낙우진이 그리 대꾸하니 주우명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아."
"몸에 좋은데······."
낙우진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일 각 후 눈을 뜬 임대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요?"
그의 표정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그거 지효성 단환이야. 먹은 직후에 운공해 봐도 별 차이는 몰라. 한 달 정도 후에나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같이 꾸준히 운공을 해야 해."
어느새 손을 씻고 돌아온 당진산이 말했다.
당진산이 임대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시나요?"
"넌 대체 뭘 먹고 지냈길래,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거냐?"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 말에 다른 생도들의 시선도 임대치를 향했다.
그렇긴 하다.
다섯이 먹고 넷이 정신을 잃었다.
그렇다면 넷이 정상인 거고, 하나가 이상한 거다.
"그, 그게··· 북해는 먹을 게 귀하다 보니······."
임대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먹을 게 귀한 곳이 맞기는 하지만, 빙천궁 출신인 그라면 아무리 그래도 음식다운 음식을 먹었을 텐데.
생각보다 취급이 더 나빴던 듯했다.
이 각이 더 흐른 후.
정신을 잃은 이들이 하나둘 눈을 뜨고.
운공을 하는 것으로 이날의 수련은 마무리가 되었다.
도저히 다른 수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후아······. 살아 있는 거 맞지?"
왜인지 모르게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음을 옮기며 은화량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이른 새벽.
운공을 하던 와룡대 이십 조 다섯 사람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제야 그 빌어먹을 단환의 효과를 조금씩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 내공이······."
"보름 만에 지금까지 쌓은 양만큼 늘었어······."
은화량과 심철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반응은 다른 셋도 마찬가지.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세 배까지 내공이 늘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내공의 양 자체가 워낙에 미천하였기에, 조금만 늘어도 그리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단환이······."
임대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들 모두 명문정파에서 지냈기에 강호 무림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영약에 대한 것도 있었다.
저 소림의 대환단이나, 공청석유, 천년설삼, 천년화리의 내단 같은.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런 영약은 먹는 즉시 녹아서 목으로 넘어간다거나, 먹은 즉시 상승의 내공심법을 운용해야 막대한 양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거나.
그러지 않았던가.
헌데 자신들이 먹었던 것은.
모든 게 달랐다.
심철산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유룡검법을 전개했다.
막힘이 없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내공의 부족으로 뚝뚝 끊기던 부분이 분명 있었건만.
그 모습에 다른 네 사람도 검을 뽑아 들었다.
역시나.
막힘이 없어졌다.
"엄청나네."
나중천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설마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는 양.
철기방에서 잡일만 하며 평생을 보낼 거라 여겼는데.
무공다운 무공을 펼치다니.
울컥했다.
그런 심정은 다른 생도들도 마찬가지인지, 다들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늘 밤에 무창 근처 야산으로 간다고 했었지?"
영후인이 서둘러 신색을 정리하며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목란산까지는 갈 수 없지만, 근처 야산에서 노숙과 유격전 훈련을 한다고 했다.
도주, 은심, 매복, 기습 등등.
지금쯤이면 내공도 어느 정도 올라올 거라 했던가?
다섯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맹룡대 칠 조.
참으로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그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
"자, 자. 어서 가자."
노숙 준비를 마친 일곱 사람.
맹룡대의 단체 훈련이 끝나자마자 바로 와룡대 이십 조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석식 시간이지만, 식사를 하지 않고 출발했다.
내일은 휴식일이다.
지금 서둘러 교룡관을 나가 근처 야산에서 노숙 후 내일은 하루 종일 산속에서 수련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뒤를 따르는 하설란의 얼굴에 작은 기대가 어렸다.
이런 경험은 그녀 역시 처음이었기에.
"준비 다 했지?"
당진산이 연무장의 다섯 사람을 보며 물었다.
"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대답.
"저녁은?"
"안 먹었습니다."
은화량이 대표로 답했다.
당진산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교룡관의 정문을 빠져나온 후 당진산이 앞장서 달렸다.
인적이 뜸한 곳에 이른 후로는 신법을 전력으로 펼쳐 달렸다.
그곳까지 가는 것도 수련이다.
무창성 북서쪽 인근.
이름 없는 야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야산이지만 나무가 울창한 것이 산속의 전투를 익히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진산과 단목운뢰가 앞장서서 산속 깊숙이 적당한 장소까지 갔다.
"여기서 노숙이다."
당진산의 말에 하설란의 두 눈에 어린 기대가 더욱 진해졌다.
'모닥불도 피우고 식사도 하겠지?'
흡사 소풍을 나온 듯한 기대.
수련이라 하였지만, 노숙까지 한다고 하니 당연히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기대하는 것이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
그러나.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고, 은신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모포를 두르고 조용히 잔다."
연하민이 낮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하설란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그녀가 기대한 노숙은 이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저, 식사는······."
임대치가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없어. 오늘 저녁은 굶는 거다."
당진산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럴 것이면 담룡각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할 것을.
먹지 않고 서둘러 출발한다는 이야기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먹는 줄 알았건만.
"일단 잠자리를 잡은 후에 들어."
당진산은 그렇게 생도들의 잠자리를 확인했다.
입술이 뾰루퉁하게 튀어나온 하설란의 잠자리는 연하민이 살펴 주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일 테니.
그녀의 표정에 연하민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저러는 연유가 짐작되었기에.
주우명은 무당산에서의 경험이 있는지 나름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모두 잘 들어."
연하민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허나 고요한 산속의 밤인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하투제는 최종 한 조가 남을 때까지 진행이 돼. 하룻밤을 넘길 수도 있지."
"······."
다들 말이 없었다.
"이건 그때를 위한 훈련이야. 하룻밤을 식사 없이 버텨내고. 다음 날까지 전투를 치를 수 있게 하는. 밤에 움직이는 것은 자살 행위니까. 이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버텨야 해."
"선배님들도 그러셨나요?"
은화량이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칠 조 생도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우리는 하룻밤을 버티지 못했어. 애초에 목적이 달랐거든."
단목운뢰가 답했다.
당시 칠 조 최후의 생존자.
"너희랑은 목적이 달랐어. 지금 너희는 최대한 생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니까."
담담하나 친절한 단목운뢰의 음성이었다.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임대치의 물음.
"복수, 설욕."
당진산이 답했다.
지난번, 주점에서 대강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가.
"그건 성공했었지."
백리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가 떠오른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전력으로 수련했었다.
그것도 복수와 설욕이라는 독한 목표를 위해.
"하투제의 진행은 그다음의 문제였어. 우리는 가장 먼저 설욕전을 펼쳤으니까."
낙우진의 말.
그 역시 추억을 이야기하듯 말했다.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은 잠자코 들었다.
이미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건 당진산과 연하민의 이야기였고.
백리평, 단목운뢰, 낙우진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 느낌이 또 달랐다.
"저희도 성공할 수 있을까요?"
나중천이었다.
불안한 듯한 목소리.
"할 수 있어. 아니, 한다."
백리평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때 우리도 생존만을 목표로 했으면··· 준우승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대신 설욕은 못했겠지."
낙우진과 단목운뢰의 말이었다.
"하투제는 집단전이야. 그리고 유격전이고. 어부지리를 취하는 것도 가능해."
연하민이 끼어들었다.
"그랬지. 그렇게 당했지."
단목운뢰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다른 조들끼리의 전투를 유도하고 최후의 생존자의 뒤를 치는 거야."
단목운뢰가 그때 겪었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건좀 비겁한 것 아닌가요?"
은화량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우명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맹룡대 칠 조 다섯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비무가 아니라 전투야. 승리와 생존이 먼저지."
당진산의 말.
"그리고 그게 하투제에서 너희가 취해야 할 전술이야."
연하민의 설명.
"그러자면 빠른 신법과 은신이 필수지. 유격전의 방법도 익혀야 하고."
백리평이 덧붙였다.
"그건 내일 실컷 해줄 테니까. 이제 그만 자자."
당진산이 마지막으로 말하고 입을 닫았다.
"코오오."
하설란의 코골이 같지 않은 낮은 코골이 소리만이 울렸다.
그녀가 어느새 잠이 든 것이다.
***
"캬! 좋다!"
철령이 술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이, 이것도 드셔 보아요."
옆자리의 기녀가 젓가락으로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을 집어서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이 잘게 떨렸다.
그럴 수밖에.
구석에 한쪽 뺨이 빨갛게 부은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진 기녀가 있었으니.
음식을 살짝 흘렸다고, 시중도 못 든다며 얼굴을 후려친 게 눈앞의 이 남자다.
넙죽 받아먹는 철령.
"오, 넌 그래도 젓가락질을 좀 하는구나."
그리 말하는 철령의 손이 기녀의 앞섶을 파고든다.
"오호라. 좋구나. 왜 이리 가리고 있어?"
음식을 씹으며 철령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기녀는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이놈은 딱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이런 행패를 부렸으니.
이놈들이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는 기루에서 관여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다른 네 사람이 그런 철령을 보며 키득거렸다.
역시 주점보다는 기루가 좋았다.
내일은 휴식일.
오늘 밤새 이곳에서 놀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교룡관 문이 닫히든 말든 말이다.
"그놈들은 무창을 벗어나서 산속으로 간다며?"
옆자리에 앉은 기녀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던 탁무전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와룡대 이십 조의 행보는 대강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알려주고 있었으니.
"병신들."
벽이겸이 피식 웃었다.
"그래봐야 버러지는 버러지인 것을."
술 한 잔을 쭉 들이키는 벽이겸.
"이긴 다음, 하반기에는 무얼 시킬까?"
공구패가 기대된다는 듯 말했다.
"연하민. 그년은 내가 맡을게."
철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어허!"
"내가 맡는다."
네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다섯 사람.
일시에 피식 웃었다.
결국 자신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뜻.
"이렇게 하지."
벽이겸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장 많은 생도를 잡은 순서대로 그년을 맡기로."
이들의 안중에는 와룡대 이십 조는 없었다.
당연히 자신들이 그들보다 오랫동안 생존할 것이라는 생각.
오히려 연하민을 차지하기 위한 순번을 정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거 좋군."
"좋아! 본 공자의 실력을 그날 제대로 보여주지."
기녀의 몸을 주무르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다섯 사람.
그들은 그렇게 술과 흥에 취해 갔다.
무창에서 제일 높은 기루의 지붕.
편하게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렸다.
"병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