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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26화 (226/312)

226화. 비어 머글

"저런 쓰레기 병신 새끼. 쯧."

모든 상황을 지켜본 하무백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중간에 하무백이 직접 나설 뻔했다.

저 쓰레기 새끼가 연하민과 하설란을 훑어볼 때.

그 시선이 설란에게 닿았을 때.

가까스로 참았다.

찰나지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놈이 연하민에게 박살이 났다.

인과응보다.

이번 일만큼은 당진산과 연하민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런 하무백의 심정과는 별개로 생도들은 능우담을 따라 교룡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관주각 일 층의 대전.

팽도율은 태사의에 앉아 눈앞의 생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먼저 기유찬이 전한 소식을 들었고, 곧 능우담이 이들을 끌고 나타났다.

그중 한 녀석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흠."

태사의의 팔걸이를 가만히 두드리는 팽도율.

생도 간의 싸움이야,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룡관 밖에서 거하게 일으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당장 작년만 해도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어찌 된 일인가?"

팽도율이 연유를 물었다.

"철령, 저 녀석이 연하민을 희롱했고 제가 먼저 손을 썼습니다."

당진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말에 맹룡대 생도들은 깜짝 놀랐다.

당진산이 먼저 손을 쓰려고 한 것은 맞았지만, 손을 댄 것은 아니었으니까.

연하민이 막지 않았던가.

"아니오. 제가 먼저 손을 썼습니다."

연하민이 나섰다.

팽도율이 흥미롭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은?"

그의 시선이 와룡대 일 조에게로 향했다.

"철령이 가벼운 농을 했을 뿐인데, 당진산이 먼저 주먹을 휘둘렀고, 실제로는 연하민이 먼저 철령을 공격했습니다."

벽이겸의 말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 미묘하게 다른 진술.

한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당당함이 달랐으니.

"헌데 아무리 휴식일이라지만, 복귀 시간이 임박하도록 어디에 있었던 것이지?"

팽도율의 시선이 닿은 곳은 맹룡대였다.

"무창 인근의 야산에서 수련하다가 복귀가 조금 늦었습니다."

당진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맹룡대는 물론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의 의복은 엉망이었다.

정말 열심히 구른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는 복장이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와룡대 일 조에게로 돌아갔다.

제법 떨어져 있건만 팽도율의 코에도 술 냄새가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들을 향하는 날카로운 팽도율의 시선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이들.

"자네들은?"

"······."

팽도율의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술이야 마실 수는 있다고 하지만, 대낮에 기루에 있다 왔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어제부터 쭉 기루에 있었다고 실토하는 꼴이었으니 .

"철령. 자네는 그저 가벼운 농을 던진 거라고?"

"···네, 흐-."

앞니가 모조리 박살 난 때문일까. 발음이 새면서 대답이 나왔다.

"그 가벼운 농이 뭐였는지 나도 한번 들어보고 싶군."

팽도율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술 냄새만이 아니라 희미한 여인의 분 냄새도 이미 맡은 터다.

술과 분이라.

여태 기루에 있다 온 것이 뻔했다.

그런 놈이 연하민 같은 미녀에게 가벼운 농을 건넸다?

당진산의 주장대로 희롱을 했겠지.

그래서 자신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

철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팽도율의 시선이 다른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자네가 한번 말해 보겠나?"

"······."

벽이겸은 입을 꾹 다물었다.

"흐음. 가벼운 농일 뿐인데 이 자리에서 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가? 나도 같이 농에 웃어 보세나."

팽도율이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어차피 우리 시중을 들게 될 텐데. 어때, 그냥 지금 본 공자의 시중을 드는 연습을 해 보는 건?'이라고 말하며 제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창피할 법도 했지만 연하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유찬과 능우담의 시선이 철령에게로 향했다.

서릿발 같은 눈빛이다.

"정말인가?"

팽도율이 철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을 꾹 다물고만 있는 철령.

말의 내용은 농이라 우기면 우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중을 들라고 했을 뿐이니.

하지만 그러면서 가슴을 향해 손을 뻗은 행동이 문제였다.

명백한 희롱.

"나는 그다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농은 아닌 듯하군."

와룡대 생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팽도율의 기세가 점점 무서워지고 있는 탓이다.

솔직히 지금 자신들이 왜 이렇게 관주를 만나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교룡관 밖에서 생도간의 싸움이 벌어진 것은 징계받을 만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관주까지 나선다?

'이게 그렇게 큰일인가.'

철령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비호한다면야 관주가 나설 만한 일이기는 했다.

자신은 철기방주의 조카였으니까.

헌데 지금 관주가 하는 양을 보아하니 연하민 저년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았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멀쩡한 오른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팽도율의 시선이 다시 당진산과 연하민에게로 향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비무라는 좋은 해결 방법이 있는데 말일세. 당진산 생도는 얼마 전에 그걸 한번 치르기도 했고. 관외로 나가 그렇게 양민들 앞에서 싸움박질해야 했나?"

"죄송합니다. 분노가 너무 치밀어 올라 이성을 잃었었습니다. 잘못에 대한 처벌은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연하민이 담담히 말했다.

"아닙니다. 먼저 주먹을 지른 제 잘못입니다. 이 일에 대한 처벌은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당진산이 다급히 말했다.

태사의의 손잡이를 다시금 톡톡 두드리는 팽도율.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기유찬에게로 향했다.

"관칙이 어찌 되는가?"

"면벽 열흘입니다. 양쪽 모두."

관칙을 모두 머리에 넣고 다니는 그답게 대번에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는군."

팽도율이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당진산, 연하민, 철령. 세 사람은 내일부터 면벽실에서 열흘간 면벽을 하도록."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의 관주실로 향하는 팽도율.

그의 시선이 힐끔 천장 위로 향했다.

'이 정도로 끝내세나.'

하무백이라면 아마도 근처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관주각의 지붕 위에 있을지도 모를 일.

해서 그의 이목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다.

관칙대로 행한다는 결정.

이러면 그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다.

'하설란을 건드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군.'

팽도율은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설란을 건드렸다가 박살이 난 이가 자신의 조카였으니.

그 일이 시발점이 되어 팽가가 어떤 일을 겪었던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계단을 오르는 팽도율이었다.

"뭐, 관칙이라 하니."

하무백이 지붕에 앉아 담담히 중얼거렸다.

팽도율의 예상대로 하무백은 관주각의 지붕에 올라 있었다.

기감을 끌어올려 일 층 대전의 상황을 살피는 한편, 내공을 귀에 집중해 내부의 대화도 듣고 있었다.

하무백이 끼어들 계제는 없었다.

관칙대로 진행된 일이니.

희롱하고 시비를 건 것에 대응했을 뿐인데 똑같은 처벌을 받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관칙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무백이 끼어들기 힘들게 되었다.

***

맹룡대 생도들과 와룡대 생도들은 관주각 밖으로 나왔다.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눈길을 마주한 채.

처벌까지 받은 마당에 관주각 앞에서 다시 드잡이질할 수는 없었다.

연하민이 슬쩍 한 발 앞으로 나서 철령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다음은 이빨이 아니라 거기야. 네놈 다리 사이에 달린 거."

"박살을 내서 고자로 만들어 버릴 테니. 어디 또 그렇게 나대 봐."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우르르 사라지는 맹룡대와 와룡대 이십 조.

"죄송합니다."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긴 후 은화량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너희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저놈들이 먼저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고 거기에 대응한 것뿐이야. 실력도 없는 놈들이 나대기는."

당진산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미안해."

연하민은 오히려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에게 사과했다.

"열흘 정도 수련을 못 도와주게 됐어."

"아, 그러네. 나도 미안해."

연하민과 당진산의 사과에 이십 조 다섯 명은 세차게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결국 따지면 저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요."

영후인이 다급히 말했다.

"아냐. 철령이라는 놈 꼴을 보니, 그게 아니라도 사달이 한 번은 날 것 같았어."

당진산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는 나중천.

같은 방파 출신이라는 것이 이토록 부끄러울 줄이야.

물론 그놈은 자신을 철기방 출신이라 여기지 않겠지만.

"너희는 징계나 잘 받고 와. 얘들은 우리가 제대로 봐줄 테니까."

백리평의 말에 다른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빠져도 다섯 사람이 남아있었으니.

당진산과 연하민이 빙긋 웃었다.

"부탁한다."

"그······."

그때 나중천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익히라 하셔서 수련하고 있었지만, 유룡권법이 이렇게 훌륭한 권법인 줄을 몰랐습니다. 철기방의 철랑조를 압도할 줄은······.

철기방 출신이었기에 어깨너머로 본 철랑조가 있었다.

그랬기에 나중천은 알았다.

철랑조가 절대 만만한 무공이 아님을.

자신은 평생 저런 무공을 익힐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자신이 수련하고 있는 유룡권법이 철랑조를 꺾었다.

가슴 벅찬 일이다.

"그건 철령 저놈이 병신이라 그런 거야. 철랑조가 약한 무공이라서가 아니라."

연하민이 조곤조곤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룡권법이 뛰어난 권법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나중천의 말에 연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앞으로 더욱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나중천이 힘차게 외쳤다.

그 모습에 맹룡대 생도들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오늘 철령을 두드려 팬 또 다른 의미가 생긴 것이다.

이들은 유룡공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말의 불안함을 완전히 떨쳐냈다.

자신들의 방파의 절기를 유룡공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면서.

***

"비어 머글."

앞니가 부러진 탓에 발음이 새어 나왔다.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철령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뭐라? 다리 사이의 무얼 박살 내?'

저 망할 년이.

감히 자신을 이리 만들다니.

처벌도 납득할 수 없었다.

얻어맞은 피해자는 자신이건만, 어찌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처벌을 받는단 말인가.

숙소인 와룡숙으로 가는 내내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가벼운 농에 가슴을 향해 손 한번 뻗은 것이 무에 대수라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맹룡대 잡년이 감히 철기방주의 조카인 자신에게.

면벽.

좁은 방에서 가부좌를 튼 채 하루종일 벽만 보고 있어야 한다.

하루 열두 시진 중 열 시진을 그래야 한다.

먹을 것은 벽곡단 얼마와 물이 전부.

용변을 보는 최소한의 시간과 수면 시간을 합쳐서 할당된 시간이 두 시진.

그 짓을 열흘 하라니.

미친 것 아닌가.

다른 네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기루에서 함께 질펀하게 놀 때만 해도 다시 없을 친구요 지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들이 그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내 돈으로 기루에서 즐길 때는 아주 도원결의라도 맺은 것처럼 굴더니.'

아니, 애초에 그깟 놈들의 내기를 왜 받아서 시종도 없이 이리 불편하게 사는가 싶기도 했다.

철령은 가만히 있는 다른 넷에 대한 분노 역시 한쪽 가슴에 담아 두었다.

'내가 이대로 물러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철령의 두 눈이 사납게 빛났다.

와룡숙으로 돌아온 그는 서둘러 편지를 썼다.

그리고 곧장 사람을 통해 철기방으로 그 편지를 보냈다.

늦은 밤.

무창의 밤하늘을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하무백이 숙소의 창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전서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저 전서구가 날기 직전까지 이어진 움직임은 이미 기감으로 모두 알고 있는 터다.

오늘 헛짓거리를 하다가 두들겨 맞은 철령이라는 놈이 쓴 편지가 발목에 묶여 있을 터.

그렇다면 저 전서구의 목적지는 뻔했다.

철기방.

"철기방주의 조카라고 했던가?"

하무백은 철기방주의 형제들을 떠올려 보았다.

지난 전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이들로만.

그중에 저런 쓰레기는 없었는데.

대체 어떤 인간이 저런 쓰레기의 부모일지 궁금했다.

"뭐, 어쩌면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

호부 밑에 견자 없듯, 견부(犬父) 밑에 호자(虎子)도 없는 법.

저런 개자식의 부모이니 그 역시 개자식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동은 뻔했다.

당장 교룡관으로 달려오겠지.

귀한 자식이 두들겨 맞고 면벽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안 오는게 좋을 것 같은데······."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웃음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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