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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30화 (230/312)

230화. 일꾼이라

"흐음. 이제 정리가 된 건가?"

술잔을 입에 가져가던 위지군이 작게 중얼거렸다.

남궁휘가 고개를 돌려 그런 위지군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무엇이 정리되었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다만, 멀리 높게 솟은 전각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저곳에서 엄청난 기세가 일었던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워낙 순식간인데다, 너무 멀었기에 남궁휘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자신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으니.

'녀석. 이번에는 손속에 사정을 좀 둔 것인가?'

반면 기감을 관주각까지 확장할 수 있는 위지군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두 느꼈다.

아까 황급히 말을 달려와 안으로 들어갔던 이들.

며칠 전의 소란 때문에 찾아온 이들이라 추측했는데.

역시나 자신의 제자와 다툼이 있었고, 당연하게도 모두 패했다.

이제 슬슬 즐거운 낮술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저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가?"

위지군이 남궁휘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네만··· 일꾼은 항상 뽑고 있다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게나."

그 말을 끝으로 위지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위지군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일꾼이라······."

작게 중얼거리는 남궁휘.

자신이라고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텅 빈 오른팔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렇다 해도, 될까?'

외팔이.

보기만 해도 탈락이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남궁휘의 시선이 다시 교룡관으로 향했다.

***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시각.

다섯 사람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한 명이 빠지면 두 개의 검이 그 자리로 날아들었다.

강맹하게 날아오는 검은 세 개의 검이 맞았다.

남궁지후는 다섯 사람이 짠 검진 안에서 기세 좋게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대단하네."

백리평이 그 모습에 감탄했다. 단목운뢰가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지후와 작년의 우리였다면··· 필패였겠어."

단목운뢰의 말에 남궁지유가 피식 웃었다.

"지금의 너희도 작년의 너희와 다르잖아. 이미 일대일로 겨뤄서 이겨 놓고는."

남궁지유의 지적에 단목운뢰는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다.

지금 남궁지후가 펼치는 검은 급격히 발전되어 당장의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으니까.

"저게 제왕검형?"

백리평의 물음에 남궁지유는 그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이어서 나온 묘한 대답.

"엄청나네."

단목운뢰가 순수히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유룡검진을 펼치는 다섯 사람은 남궁지후의 검을 막기에만 급급했으니.

이제 반의 반각이 지났을 뿐인데, 완벽한 수세였다.

그리고 몇 합이 더 흘렀을까?

은화룡이 검을 놓쳤고, 나중천이 뒤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두 명이 탈락.

그리고는 남은 세 명마저 쓰러지기까지는 불과 한 호흡이었다.

다섯 사람은 멍한 얼굴로 남궁지후를 바라보았다.

"이게 남궁세가······."

심철산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남궁세가가 아니라 남궁지후지."

백리평이 그 말을 정정해줬다.

"후우."

호흡을 고르는 남궁지후를 보며 단목운뢰가 움찔거렸다.

당장에라도 붙어보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참아. 지금은 저 애들이 먼저니까."

낙우진이 그 낌새를 읽고는 단목운뢰를 다독였다.

"자, 그렇게 쓰러져 있을 시간 없다. 이번에는 오 대 이."

백리평이 어수선함을 정리했다.

그 말에 낙우진과 하설란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와룡대 이십 조의 수련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교룡관에서는 무공과 진법을 다듬었고, 휴식일에는 실전 훈련을 한다.

이것이 하투제까지 와룡대 이십 조의 일정이었다.

이들은 오늘 관주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도 모른 채 수련에 열심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주변에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던 생도들은 저마다 편한 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언제 먹지?"

낙우진이다.

오후 훈련을 마친 후 석식 시간도 아끼며 바로 검진 수련에 들어갔던 터다.

이제는 배가 제법 고플 시각.

그렇지만 담룡각의 석식 시간은 이미 끝이 났다.

간단한 요깃거리가 남아 있기는 하겠지만 식사로서는 글쎄······.

"나가자. 그냥 바로 앞의 금룡루에 가자. 일단 먹고 와서 계속하고."

다들 식사를 어찌할까 고민하는 모습에 백리평이 제안했다.

당진산이 있었다면 그가 했을 역할.

며칠의 부재이건만, 당진산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백리평이다.

그렇게 열두 명의 생도들은 교룡관 정문으로 향했다.

바로 근처의 금룡루를 향해.

***

남궁휘는 술잔을 채웠다.

천천히, 천천히 마시고 있었다.

합석해주었던 노인이 떠나고도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궁휘.

창밖은 이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교룡관으로 향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오리구이와 죽엽청주가 올려져 있었다.

새로이 주문한 음식들.

자리에 앉아 있기 위해 주문한 것인 양,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노인이 시켰던 계정도 아직 남아 있었으니.

"응?"

그런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열두 명.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교룡관을 나오고 있었다.

무엇이 즐거운지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어둠 탓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공으로 안력을 끌어올린다면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저 정도 나이려나?'

그냥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 뿐이다.

얼굴조차 보지 못했으니까.

***

어두운 밤.

구탄길이 겨우 눈을 떴다.

침상에 누운 채 온몸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전신을 검에 난자당했으니, 살갗에만 상처가 났다고는 해도 이리 치료를 한 것이 당연한 일.

"으윽."

정신을 차리니 전신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검에 베인 통증과는 전혀 다른 통증이었다.

마지막이 떠올랐다.

자신을 덮친 수없이 많은 권영.

그것이 만약 검이었다면?

자신은 죽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무백이라는 미친놈.

소문은 듣기는 했지만, 그보다 훨씬 강했다.

하필이면 령이가 시비붙은 이가 저 미친놈이 담당하는 생도라니.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라버니?"

침상 곁에 엎드려 선잠이 들었던 구소소가 구탄길의 한숨 소리에 두 눈을 떴다.

"너는 괜찮으냐?"

구탄길이 동생을 보며 물었다.

"그놈은 뭔가요?"

대답 대신 돌아온 물음.

그녀는 하무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럴 수밖에.

지난 전쟁 내내 철기방에 있었으니.

"있다. 미친놈 하나. 괴물이기도 하고. 강하다 듣기는 했으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구나."

구탄길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구탄길은 철기방의 방주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 못지않게 강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바.

비록 분노에 가득 차 움직였다 하지만, 분명 전력을 다했다.

거기다 마지막에 펼쳤던 철기진천팔격창의 최후 초식은 다시 생각해도 더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무참히 패했다.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연히 서 있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 이상의 실력이라는 의미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실수했어요. 군 대장을 데려왔어야 했어요."

철갑철기군의 대장.

군무한.

철기방 제일고수.

그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구소소다.

허나 구탄길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직접 하무백을 겪으니 알 수 있었다.

"됐다. 괜찮으냐고 물었다만?"

다시 동생의 안위를 확인하는 구탄길.

그 물음에 구소소는 배꼽 아래쪽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안색이 어두워졌다.

"문제가 있더냐?"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구소소는 하무백에게 단 두 번의 주먹을 맞았을 뿐이다.

얼굴과 명치.

명치······.

그럴 리는 없는데.

"설마 단전이더냐?"

다급히 묻는 구탄길.

구소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을 오 성 이상 일으키면··· 단전이 깨질 듯이 아파요. 의당의 의원은 단전에 전체적으로 가는 상처가 나 있는 상태라고 하네요. 흥. 돌팔이 같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단전은 보통 하단전이다. 하단전은 배꼽 아래에 위치하고.

구소소가 맞은 곳은 명치다.

하단전보다 훨씬 위.

그런데 단전에 상처가 났다니.

그 무지막지한 권력은 대체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냐?"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아, 교룡관의 의당이에요. 오라버니의 상처가 심하고, 저도 내상이 있는 듯하여 팽 관주가 이곳으로 안내해줬어요."

구탄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돌팔이가 아니다. 그 말이 맞을 게다."

"오라버니는 어떤가요? 진맥한 의원이 오라버니가 저보다 심각한 상황이라 했어요."

그 말에 억지로 가부좌를 틀고 운공을 시작하는 구탄길.

대번에 인상을 찡그렸다.

의원의 말이 맞았다.

구탄길은 단전은 멀쩡한 듯했다.

대신 혈맥이 망가졌다.

온몸의 혈맥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전신을 두드린 하무백의 권.

그것이 원인이리라.

오 성 이상의 내공을 움직이려 하면 혈맥 곳곳이 막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내상이라면.

"족히 반년은 정양해야겠구나. 후우."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것인지······.

"하무백. 그놈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요."

구소소의 두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구탄길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나, 그는 냉정히 생각했다.

그 괴물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철갑철기군 전부를 이끌고 와서 병진으로 압박한다면 가능할까?

그가 펼쳤던 검법이 떠올랐다.

한 번은 그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철갑철기군의 병진이라면.

하지만 두 번이라면?

세 번은?

힘들 듯했다.

집단을 이길 수 있는 개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것은 정천맹주 소휘웅이나 가능하리라 여겼건만.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팽가가 단 한 명의 고수에게 당했다고······.

생각이 거기에서 멈췄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그 신비고수가······.

"나진. 있느냐?"

기척이 느껴졌으니, 있겠다는 생각에 심복 수하를 불렀다.

쓰러진 말들을 처리하느라 남았던 3인 중 하나였다.

"네. 방주님."

[가서 혹시 팽가와 하무백 사이에 교룡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거라.]

전음으로 은밀히 명령을 내렸다.

"네."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는 나진.

"무슨 일이에요? 오라버니?"

"령이 녀석, 면벽이 끝날 때 얼굴 한번 보고 가자꾸나."

그 말에 구소소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일 당장 꺼내 와야죠!"

"그 괴물 놈과 다시 한번 드잡이질을 하자고?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놈이 아니라. 팽 관주에게······."

구탄길이 고개를 저었다.

하무백과 붙기 전이라면 또 몰랐다.

그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내공의 오 성 이상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지금으로서는 그를 압박할 방도가 없었다.

"내상이 도진 몸으로?"

구탄길의 물음에 구소소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령이. 그 불쌍한 것을······."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내라면 그런 고난도 겪어가면서 성장하는 거다."

구소소가 고개를 획 들었다.

"오라버니······."

원망 가득한 중얼거림.

"하무백. 그 괴물과는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너도 이번 일은 어서 잊어라. 그럼 쉬거라."

그 말만을 남기고 구탄길은 침상에 돌아누웠다.

구소소는 답답한 마음에 의당 밖으로 나왔다.

가슴 깊은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분노의 열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직 정신 못 차렸군."

그곳에 하무백이 있었다.

"네, 네놈이······."

"네 오라비는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가는 것 같던데. 네년은 여전히 앞뒤 분간을 못 하는구나."

하무백의 전신에서 살기가 치솟아 구소소를 옥죄었다.

구소소는 갑자기 자신의 전신을 압박하는 어마어마한 살기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게······."

"애들 싸움이라 적당히 봐준 거다. 봐줬을 때 정신 차리고 물러가라. 선을 넘으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몰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살기는 씻은 듯 사라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하무백이 떠나고 구소소가 혼자 남게 되자.

풀썩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살기에 둘러싸여 있었다면 오줌을 지렸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지독한 공포.

지금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야 오라버니가 저놈을 괴물이라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태어나서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으니.

'그, 그래도 반드시 복수한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다고 했어······.'

공포에 질렸으면서도 하무백에 대한 원한을 절대 잊지 않겠다 마음먹은 구소소였다.

지금은 힘이 약해 굽혔을 뿐이라 자위하면서.

***

'면벽 내가 한다고 할 걸 그랬나······.'

며칠 전 단목운뢰의 작은 중얼거림.

자리를 떠나던 하무백은 그 중얼거림을 들었다.

이왕 면벽하는 거 더 강해지라고 두 사람에게 무량환을 주었지만, 다른 셋에게는 주지 않았다.

'흠. 다른 녀석들도 챙겨 주기는 해야겠네.'

구소소에게 살기 짙은 경고를 남기고 걸음을 옮기던 하무백은 문득 단목운뢰의 중얼거림을 떠올리고는 그리 생각했다.

해서.

맹룡대 생도들을 찾았으나, 교룡관에는 없었다.

"좋은 것 좀 주려는데 귀찮게 하는군."

기감을 넓게 펼치니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교룡관 앞의 주루.

금룡루.

주루라 하지만 식사도 파는 곳이었기에 아마도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아직 저녁 전이었다.

귀찮은 철기방 놈들 때문에 저녁을 거른 것이다.

일단 무량환을 챙기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적당히 챙기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생도들이 모여 있는 금룡루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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