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저 아이들이
황력.
거한의 이름이다.
일꾼들을 관리하는 이들 중 하나로 저 인간의 구박에 그만둔 이들도 많았다.
감히 위지군에게는 어쩌지 못하지만, 그 외의 일꾼들은 쥐잡듯 잡았다.
일꾼을 뽑는 이들이 팔 병신을 뽑아놔서, 황력도 가뜩이나 짜증이 나던 차.
위지군이 저 팔 병신을 싸고도는 바람에 제대로 교육을 못 시켰었다.
헌데 오늘은 혼자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위지군과 함께였는데.
거기에 마침 비질도 않고 멍하니 서 있으니.
제대로 걸린 것이다.
"팔 병신을 일꾼으로 뽑아줬으면, 열심히 해야지. 팔도 한 짝밖에 없으니 다른 이들 하는 것에 두 배로 움직여야 할 텐데. 그리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터져 나온 호통.
"아, 죄송합니다."
남궁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 그딴 말 할 시간에 빗자루를 움직여. 에잉. 여기 청소도 하나도 안 됐구만."
그가 가리킨 곳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청소가 안 되었다고 트집을 잡았다.
고함 소리에 이미 걸음을 멈췄던 생도들.
그의 억지에 단목운뢰가 나서려 했지만 당진산이 그 팔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일꾼들 사이의 일이야. 안타깝지만 우리가 끼어들면 안 돼. 그냥 위 어르신께 알리는 게 좋아."
당진산의 판단.
위지군은 어느새 교룡관의 일꾼들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덕분에 관리자들도 위지군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다만 위지군이 모든 일꾼들과 항시 함께 있을 수는 없었기에 이런 일도 생겼다.
단목운뢰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하설란을 바라보았다.
"어르신어디에 계셔?"
"응? 우리 연무장 근처에 계신 것 같은데?"
단목운뢰가 땅을 박찼다.
위지군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내가 이래서 외팔이는 안 된다고 노백이에게 말을 했는데. 위 영감 그 인간이 괜찮다고 해서 놔뒀더니. 일을 이딴 식으로 해?"
황력의 폭언은 멈추지 않았다.
노백은 남궁휘를 처음 보고 일꾼으로 일해보라며 들여보내 준 이였다.
그 역시 관리인 중 한 명.
그는 지금 열을 올리고 있는 황력과는 달리 일꾼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다.
그때 남궁지후와 남궁지유가 맹룡대 생도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빨리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황력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사과하는 남궁휘의 곁을 지나쳤다.
황력의 트집은 그냥 들어도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에.
남궁지후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텅 빈 오른팔 소매.
푹 숙인 머리, 그리고 언뜻 보이는 얼굴의 흉터들.
찌잉.
가슴 한켠에 기이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남궁지유가 물었다.
남궁지후의 걸음이 살짝 느려진 탓.
"아, 아니야."
남궁지후는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이봐!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남궁 남매가 지나가든 말든 황력은 연신 남궁휘를 쥐잡듯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궁휘는 황력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볼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저 아이들이······.'
남궁휘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보았으니까.
남궁지후와 남궁지유가 일행에 합류한 후에도 황력은 계속해서 남궁휘를 타박하고 있었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도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여기 멈춰 있어?"
남궁지유의 물음.
"운뢰를 기다리고 있어."
당진산이 가볍게 답했다.
"저 꼴을 못 보겠던 모양이더라고, 운뢰가."
이어진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
그러나 이내 나타난 노인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력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노인 일꾼.
위 노인.
아무도 그를 단순한 일꾼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뒤로 단목운뢰가 따라오고 있었다.
위지군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곧장 황력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황력 역시 위지군을 발견했다.
움찔한 기색.
"자네 지금 뭐 하는 겐가?"
"일을 제대로 못 하니 가르치고 있었소."
위지군의 추궁에 황력은 당당히 답했다.
"어디를 제대로 못 했다는 거지? 내가 보기에는 깨끗한데?"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는 위지군.
그 물음에 황력은 대꾸하지 못했다.
괜한 트집을 잡고 있었을 뿐, 청소는 깨끗이 되어 있었으니.
"그, 그게······."
"그리고. 휘 이 친구에 대해서는 내가 전담하기로 노백 그 친구와 이야기가 되어 있는데, 왜 자네가 이러지?"
위지군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황력을 쏘아 보았다.
황력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무슨 노인네 눈빛이······.'
등이 축축해졌다.
자신 못지않은 덩치에, 자신 못지않은 근육.
저 노인네는 몇 살인지도 모르겠고, 어찌 저런 몸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기세는 또 어떤가.
노인네가 싸고도는 게 꼴 보기 싫어서 꼬투리를 좀 잡으려던 것인데, 이리 순식간에 나타날 줄이야.
황력의 시선이 맹룡대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성큼성큼 걸어오던 위지군의 뒤에 따라오던 녀석이 있었으니.
하지만 일꾼인 자신이 생도들에게 무얼 하겠는가.
저들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인 것을.
"빨래가 많이 밀렸소. 그래서 일꾼을 찾으러 온 것뿐이오. 흠흠."
그리 말하고는 스윽 몸을 돌려 사라졌다.
눈살을 찌푸리는 위지군.
"에잉. 저놈은 항시 저러니. 쯧."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위지군이 교룡관에 오기 전에 황력은 정말로 안하무인이었다고 들었었다.
"개새끼가 한 마리 짖었다 생각하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빨래가 밀렸다니, 일단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
그렇게 남궁휘를 다독인 위지군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남궁휘의 시선이 맹룡대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단목운뢰와 눈이 마주치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강의 사정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함께 있는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를 잠깐 보고는 몸을 돌렸다.
처음이었다.
저 아이들의 얼굴을 정면에서 이렇게 바라본 것이.
잠깐이었지만 시간이 멈춘 듯 길게 느껴졌다.
아니, 너무 짧았다.
다시금 계속해서 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은.
아직은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북쪽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일꾼들이 빨래도 하는 건가?"
"우리 무복."
고개를 갸웃거리던 단목운뢰의 중얼거림에 남궁지후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 말에 맹룡대 생도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했다.
그들은 자신의 무복은 자신들이 빨아 입었으니까.
맹룡대는 따로 통일된 무복이 없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무복을 입었으니.
"교룡관에서 지급한 거라, 관리도 교룡관에서 해주는 거야. 다른 옷들은 우리가 직접 빨아."
남궁지유가 설명을 덧붙였다.
"좋네. 잠룡대랑 와룡대는."
당진산의 투덜거림 같은 중얼거림에 남궁 남매는 피식 웃었다.
"자자, 어서 가자. 이제."
백리평이 분위기를 정리하고는 연무장을 향해 먼저 걸음을 뗐다.
***
연무장에 도착한 일행들.
이렇게 모두가 모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누구부터 할래?"
당진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남궁지후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무량환을 먹은 그날 이후.
이들은 와룡대 이십 조의 수련을 봐주는 것 외에는 따로 비무를 한 적이 없었다.
무량환의 약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중 가장 성과가 큰 이들은 당연히 연하민과 당진산이다.
열흘 내내 운공만 하고 있었으니.
"좋아. 그럼 나도 먼저 하지."
남궁지후를 보고 당진산이 연무장 가운데로 나섰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번에는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
두 사람이 마주 섰고, 다른 이들은 멀찍이 물러났다.
먼저 움직인 것은 당진산.
영사구편이 남궁지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거기에 대한 남궁지후의 대응은 당연히 제왕검형이었다.
당진산은 처음 보는 제왕검형.
허나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무공을 펼치는 데 집중했다.
두 사람의 편과 검의 기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내공이 늘어난 만큼 움직임에 힘이 있었다.
한참을 어울리자, 당진산이 조금씩 밀렸다.
내공에 있어 별 차이가 없는 두 사람이었기에, 초식에서 승부가 갈렸다.
남궁지후의 제왕검형은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었다.
"푸하."
승부가 완전히 나기 전.
당진산이 거친 호흡을 터뜨리며 물러났다.
"엄청나네."
당진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너 역시."
남궁지후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지랄들 한다."
그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생도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갔다.
하무백이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일까.
"기껏 좋은 것 먹여놨더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그리 낭비하면서. 뭐가 엄청나다는 거야? 낭비가 엄청나다는 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하는 하무백.
질책이요, 타박이었음에도 당진산과 남궁지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자신들이 겪은 저 교관은 저렇게 타박만 하고 끝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무백의 시선이 다른 생도들에게로 향했다.
"너희들은 어떤지 좀 보자."
그 말에 전부 짝을 지어 대련을 시작했다.
허나 대련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무백이 중간에 끊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도들의 상태를 전부 파악한 하무백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 좋은 거 먹고 내공이 늘어나서 신난 건 알겠는데. 낭비가 너무 심해. 그렇게 주구장창 내공을 사용하면, 십 갑자가 쌓여도 부족하다고 할 거다."
하무백의 말에 당진산이 피식 웃었다.
십 갑자가 모자란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니, 애초에 십 갑자의 내공을 인간이 품을 수나 있단 말인가?
순수히 내공심법만으로 쌓으려면 무려 육백 년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인데.
"내공은 주구장창 밀어 넣기만 하는 게 아니다. 밀어 넣어야 할 때는 밀어 넣고, 빼야 할 때는 빼고. 폭발적으로 터뜨릴 때는 터뜨리고."
하무백은 설명하면서 대강의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생도들은 그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 직접 대련해서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주우명이 조심스레 요청했다.
"흠. 귀찮은데······."
내켜 하지 않는 하무백.
허나 생도들의 시선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막 발을 떼려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다음에 하자. 밥 먹어야겠다."
그러고는 쌩하고 사라졌다.
"허······."
누군가의 헛웃음만이 흘러나왔다.
그래, 저런 인간이었다.
저 교관은.
***
발래터에 도착한 위지군과 남궁휘.
빨랫감이 많이 밀렸다는 황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잔뜩 쌓여 있는 빨랫감에 일꾼들은 두 사람을 열렬히 반겼다.
"자, 그럼 자리를 잡아볼까."
위지군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근처에 남궁휘가 자리를 잡았다.
잠룡대의 무복이었다.
무복 한쪽에는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빨래를 하는데.
남궁휘가 막 집어 든 무복에 수놓아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지후.
그의 눈이 잘게 떨렸다.
같은 이름이 둘은 없을 터.
조금 전 잠깐 보았던 그 아이의 무복이었다.
손이 잘게 떨렸다.
그럼에도 정성을 다해서 천천히 무복을 빨았다.
어디 묵은 때 하나 남지 않도록, 그렇게 남궁지후의 무복을 빨았다.
덕분에 남궁휘의 속도가 느려져 보통 사람이 빨래하는 속도와 비슷해졌다.
빠르게 빨랫감을 해결하던 그가 느릿느릿 움직이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깨끗이 남궁지후의 무복을 빨아서 넘긴 후.
다른 무복을 빨고 있는데.
이번에는.
남궁지유.
그 이름이 보였다.
다시금 느려지는 남궁휘의 손길.
잘게 떨리는 손끝.
살짝 붉게 변하려는 두 눈.
'잘 컸구나.'
지금 남궁휘의 마음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위지군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기 전까지 그저 열심히 빨래만 했으니.
"무슨 일 있는가?"
"아, 아닙니다."
"그래? 오늘은 유독 열심이구만. 허허."
무슨 사연이 있음을 눈치챘으나, 위지군은 그저 평소처럼 넘어갔다.
"오늘 병기고에는 혼자 가는 게 어떤가? 내 다른 일이 좀 있어서 말이지."
어느새 오후다.
점심 식사도 거르고 빨래에만 집중한 것이다.
"아, 그 전에 일단 밥부터 먹자고."
그렇게 담룡각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병기고에는 남궁휘 홀로 왔다.
먼지가 잔뜩 쌓인 병기들.
남궁휘는 아무것이나 집어 들지 않았다.
대신 안력을 집중해 병기에 새겨진 각인들을 확인했다.
이전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조금 전 무복에 수놓아진 두 사람의 이름을 보고서야 생각해낸 것이다.
마침 혼자 병기고에 왔기에.
그렇게 얼마나 살폈을까.
남궁휘는 두 자루의 검을 집어 들었다.
각기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의 이름이 각인된 가검이다.
허공섭물로 검을 띄우고.
면포로 한 번.
기름먹인 면포로 또 한 번.
그리고 면포로 다시 한 번.
정성을 다해 닦았다.
자신의 검을 손질할 때보다 더욱더.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집중한 순간이리라.
날이 없는 가검임에도, 검은 번쩍거렸다.
당장에라도 무엇이든 베어 버릴 듯한 모습이었다.
가검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모습.
"언제 이걸 쓸지는 모르겠다만······."
손질을 마친 남궁휘는 제 자리에 검 두 자루를 돌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 손에 잡히는 대로 병기를 닦았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
그럼에도 병기들은 깨끗한 모습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