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왜 이런 거지?
"이, 이게······."
남궁지후는 멍한 얼굴로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자신이 펼쳤으나, 그러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대연검법을 펼쳤다.
그런데.
검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검로는 대연검법이 아닌 제왕검형에 가깝게 변화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대연검법이 제왕검형이라는 씨앗을 틔우기 위한 양분이라는 이야기는 하무백에게 이미 들은 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연검법을 펼쳤는데, 그것이 제왕검형으로 이어지다니.
상상조차 못 한 일이다.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는.
"그분."
그 사람의 검법을 본 것이 원인임이 분명했다.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던 대연검법을 펼쳤던 외팔이 일꾼.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이런 변화라니.
하무백이 준 깨달음에 더해져 엄청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남궁지후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 전 보았던 그의 대연검법을 최대한 기억해내려 하였다.
그렇게 심상 속에서 보고 있자니, 그 검법은 대연검법이 분명했지만 대연검법이 아니었다.
이미 대연검법을 넘어선 무언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왕검형.'
그랬다.
그저 양분에 불과했던 검법이, 스스로 제왕검형의 한 줄기로 변해 있었다.
남궁지후가 두 눈을 떴다.
어느새 새벽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그분을 뵈어야 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궁지후의 두 눈이 반짝였다.
***
교룡관의 하루는 변함없이 시작되었다.
위지군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비질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을 찾은 손님에 그는 비질을 잠시 멈추었다.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찾은 겐가?"
위지군의 앞에는 남궁지후가 있었다.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남궁지후가 정중하게 말했다.
"부탁? 이 늙은이에게? 허, 말해보게. 내가 도와줄 만한 게 있을지는 모르겠네만."
"그, 새로 오신 일꾼분 말입니다."
"일꾼분?"
요상한 말이다.
일꾼에 분이라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위지군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 남휘 그 친구를 말하는 겐가?"
"그, 얼굴에 흉터가 많으신······."
외팔이라는 것은 민감하다면 민감한 문제였기에, 남궁지후는 흉터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 맞네. 남휘 그 친구일세. 왜 그러는가?"
"저를 남휘 대협께 소개해주실 수 있을지요. 갑자기 찾아가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요."
"대협? 고작 일꾼에게 잠룡대 생도가 무에 대협이라 하는가?"
위지군이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대협이 맞으십니다."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 시간이면 맹룡대 쪽에 있을 걸세. 함께 가세나."
위지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남궁지후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위지군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조금 걸어서 맹룡대의 연무장 사이 길을 걷다 보니, 열심히 비질 중인 사내가 보였다.
"이보게나. 남휘."
위지군이 부르자 비질을 멈추고 고개를 드는 남궁휘.
그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흠칫했다.
위지군의 곁에 남궁지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룡대 생도 남궁지후라는 아이인데, 자네를 좀 만나고 싶다 하는군. 그러면 이야기들 나누게."
위지군은 그렇게 말한 후 몸을 돌렸다.
이미 오전의 일과가 시작된 터라, 돌아다니는 이는 없었다.
작은 길에 마주 선 두 사람.
쿵! 쾅! 쿵! 쾅!
남궁휘는 자신의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저 멍하니 남궁지후를 바라보고 있는데.
남궁지후가 남궁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꾸벅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다시 뵙습니다. 선배님."
"아······."
"어젯밤에 수련을 훔쳐본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남궁휘는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남, 남궁세가의 생도께서 보잘것없는 일꾼에게는 무슨 일이신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었기에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여전히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결례를 범해 보게 된 검법은 분명 남궁세가의 검법이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저희 세가의 선배님이겠지요."
남궁지후는 오늘 아침 나름대로 추론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남휘라는 가명을 쓴다고 하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사정이라는 것은 남궁지후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제왕검형의 완성.
오직 그뿐.
"부디 제게 그 대연검법을 알려주십시오."
남궁지후가 다시 한번 포권을 하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 검이 가야 할 길을 선배님의 검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어리석은 후배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남궁지후는 여전히 허리를 숙인 채였다.
남궁휘는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고작 대연검법이다.
남궁세가주의 장남인 남궁지후라면 창궁무애검은 물론이요, 제왕검형까지 사사 받았을 터.
고작 대연검법에 목메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은 그 검법 하나만을 끝없이 수련하여 초절정의 경지에 들기는 하였지만.
더 훌륭하고 더 빠른 검법이 있는데 대체 왜 대연검법에.
쿵! 쾅 쿵! 쾅!
심장이 더욱 거칠게 뛰었다.
그리고 의문에 앞서 남궁휘로서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먼저.
그랬기에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했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하지요. 저는 다른 일 하러 가겠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서둘러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허리를 들어 올린 남궁지후의 입가에는 만족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어쨌든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으니까.
헌데 그때.
쿵! 쿵! 쿵! 쿵! 쿵!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게, 거칠고도 빠르게 뛰는 심장.
남궁지후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제왕검형의 완성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흥분.
그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남궁지후는 몸을 돌렸다.
***
"타핫!"
힘찬 기합성과 함께 검을 휘둘렀지만.
퍽.
속절없이 막히고 뒤로 튕겨 나갔다.
"검진에서 멋대로 튀어나오면 안 돼!"
백리평이 심철산을 향해 외쳤다.
방금 튀어나온 이가 그였다.
심철산이 쓰러지자 남은 네 사람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 사이를 백리평이 치고 들어갔다.
"크윽."
"윽."
신음 소리를 흘리는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
"뭐 하는 거야! 한 명 빠졌다고 검진이 망가지면 어떻게 해! 두 명이 남더라도 유지해야지!"
가차 없이 검을 휘두르며 호통을 치는 백리평.
그렇게 오늘도 와룡대 이십 조는 패배했다.
그러나 점점 더 버티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심철산이 튀어나온 것도 사실은 백리평이 일부러 허점을 노출시켜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허점이 보인다고 무작정 튀어 나가면 안 된다. 그게 함정일 수도 있어."
주우명이 심철산의 곁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네······."
심철산이 의기소침해 대답했다.
"뭐, 백리평이 일부러 함정까지 팔 정도면 너희가 그만큼 늘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정도 허점을 파악했다는 것도 보는 눈이 좋아졌다는 거고. 그러니까 힘내."
주우명이 심철산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때?"
백리평이 당진산을 돌아보며 물었다.
"좋아졌네. 겨우 열흘인 것 같은데도."
"정말 열심히 굴렀거든."
단목운뢰가 답했다.
"그러면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는데?"
당진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단계요?"
은화량이 물었다.
"너희 다섯이 언제까지 모두 생존해 있을지 모를 일이니. 네 명이 남았을 때, 세 명이 남았을 때, 두 명이 남았을 때, 혼자 남았을 때는 상정해서 훈련해야지. 최대한 오래 생존하는 것이 목표니까."
"그, 그 말씀은······."
"일 대 일 비무도 해야 한다는 거지."
당진산이 빙긋 웃었다.
"그런데 오늘 지후는 안 오려나?"
단목운뢰가 연무장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남궁지후, 남궁지유 남매가 최근 안 보이는 탓이다.
그들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무언가 집중하고 있는 게 있나 봐. 오늘은 오전 수업도 불참했다고 지유가 그랬어."
연하민이 말했다.
"역시 제왕검형 때문이겠지?"
단목운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남궁지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으니 .
***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는 그 시각.
잠룡대 일 년차 이십 조의 연무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게 말이 돼? 네가 모르는 사람인데 대연검법을 극성을 넘어선 경지로 펼쳤다고? 그리고 이름은 남휘?"
남궁지유가 함께 걸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도 남궁휘겠지?"
남궁지후는 남휘가 남궁세가의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대연검법이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 말에 남궁지유는 곰곰이 생각하며 기억을 뒤졌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남궁세가의 구성원 전부의 이름이 들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그런 이름은 없었다.
아니, 있지만 그 남궁휘는 지금도 세가에 있었으니.
"내가 아는 한 그런 사람은 세가에 없어······."
남궁지유의 말에 남궁지후가 흠칫했다.
누이의 기억력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무슨 사정이 있겠지.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가의 은밀한 사정이."
"······."
그 말에 남궁지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랬으니까.
자신들이 세가주의 장녀고 장남이었지만, 분명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도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연무장.
남궁휘가 나와 있었다.
남궁지후의 걸음이 빨라졌다.
남궁지유도 보조를 맞춰서 걸었다.
그렇게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남궁휘를 마주했을 때.
쿵! 쿵! 쿵!
갑자기 남궁지유의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지······.'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다. 얼마 전 스치듯 봤던 것이 첫 만남인.
그런데 묘하게 익숙했다.
낯선데, 익숙한 느낌.
알 수 없는 느낌이다.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남궁지후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어찌 이곳에······."
두 사람이 나타났을 때부터 멍하니 얼어있던 남궁휘.
사실 저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낮의 일로 아마도 남궁지후가 이곳에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도 자신이 먼저 이곳을 찾았으니.
이 모순적인 감정과 행동은 무엇일까.
남궁휘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무창에 올 때만 해도 그저 먼발치에서 잘 지내는 것만 바라보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교룡관에 일꾼으로 들어오고.
아이들의 흔적을 보고, 실제로 아이들을 마주치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겼다.
때가 아니라 생각했으면서.
자신의 걸음은 이곳으로 향했음이니.
"어쩐지 오늘 밤도 이곳에서 수련하실 것 같았습니다."
남궁지후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허······."
남궁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이윽고 결정한 듯 말했다.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허락의 말에 남궁지후가 활짝 웃음 지었다.
그와 동시에.
쿵! 쿵! 쿵!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갑작스러운 몸의 반응에 당혹스러운 남궁지후.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제가 펼치는 대연검법의 미진한 부분에 대해 알려 주십시오."
남궁지후의 대답에 남궁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해정(약 22시)에 이곳에서 뵙지요."
그리 말하고 남궁휘가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
짧은 대답 후 서둘러 사라지는 남궁휘의 모습에 순간 남궁지후는 당황했다.
그러나 내일부터 알려주겠다는 답은 들었기에, 아쉬움은 덜했다.
힐끗 남궁지유를 돌아보니.
그녀는 얼굴이 살짝 발개진 채 가슴에 한 손을 올리고 있었다.
"왜 그래?"
남궁지후의 물음에 남궁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모르겠어. 왜 이러는지."
복잡한 심정의 대답.
물끄러미 남궁지후를 바라보는 남궁지유.
"혹시 너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어?"
멈칫하는 남궁지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누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대답이 되었다.
"왜 이런 거지?"
남궁지유에게는 또 다른 의문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