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돌팔이로군
남궁화우.
올해 서른아홉.
남궁세가주의 막내 동생으로 현재 호천단주를 맡고 있다.
가슴 속에 큰 야망을 품고 있었기에, 호천단주가 공석이 되자마자 그 자리에 지원했다.
부단주 중 한 사람을 단주로 올릴 수도 있었으나, 남궁세가의 세를 업어 그가 호천단주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수하들의 지지는 얻을 수가 없었다.
현재도 호천단의 업무 대부분은 부단주인 담무흔이 행하고 있었다.
다른 부단주인 한설빙은 이때다 하고, 호천단을 그만 두었다.
그야말로 허수아비 단주인 셈이다.
그럼에도 남궁화우는 만족하고 있었다.
그가 호천단주의 자리를 탐낸 것은 호천단원들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호천단은 맹주의 수신호위다.
명목은 그러하다.
헌데 단순한 수신호위가 아니었다.
맹주의 비선조직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지난 전쟁에서도 맹주의 명에 따라 전장 곳곳을 누비지 않았던가.
맹주의 수신호위들이 맹주를 홀로 두고 작전에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맹주의 묵인 하에 태연히 자행되었다.
그런 조직이 호천단이다.
그리고 그런 조직이라 단주에게 어마어마한 권한이 하나 있었다.
전임 단주는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일급 기밀까지 자유로운 열람.
특급 기밀의 열람 역시 선조치 후보고가 가능했다.
사유는 맹주의 호위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임 단주는 그 권한을 부단주인 담무흔에게 위임한 듯했다.
'멍청한 인간인지··· 게으른 인간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하무백이라는 괴물은.
그 인간이 좌천당한 덕에 남궁화우는 자신의 야망을 위한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었지만.
호천단주.
그 자리에 오른 후 남궁화우는 기회가 되는대로 맹의 일급 기밀을 뒤졌다.
남궁세가와 관련된.
이유는 하나.
가주인 형님에 대한 것이다.
"그 아이들은 형님의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나단 말이지."
남궁세가주 남궁화현의 형제들 중 가장 재능이 넘치는 이는 막내인 남궁화우였다.
어느새 초절정의 초입에 든 경지.
반박귀진이 눈앞에 있었다.
그가 평가하는 큰형 남궁화현은 범재였다.
'그러니 제왕검형을 그 꼴로 망가트렸지.'
남궁화현이 펼치던 제왕검형을 떠올린 남궁화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이름과 껍데기만 제왕검형일 뿐, 제왕검형이 아니었다.
조부께서 아시면 무덤에서 일어나 통곡을 하실 그런 검형이었으니.
범재인 형이 세가주이기에 남궁세가가 천하제일세가의 위명도 빼앗겼다.
그것이 남궁화우의 생각이었다.
남궁은 항상 천하제일이어야 한다.
허나, 남궁화현은 연자경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가 본 연자경은 그야말로 무서운 인물이었으니.
그러니 천하제일세가의 자리가 호북연가에 넘어간 것.
남궁의 것을 다시금 찾아오려면 자신이 가주가 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남궁화우의 야망이다.
그래서 형의 부정한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세가 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눈을 돌린 곳이 정천맹.
천하 무림의 모든 정보를 모으는 곳.
그중에서도 그 정보에 접근권한이 큰 호천단주의 자리에 온 것이다.
남궁화현은 그것도 모르고, 정천맹에 남궁세가의 영향력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남궁화우가 호천단주가 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남궁화우가 주목하는 것은 남궁화현의 외유였다.
그때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으니.
당시 폐관에 정신이 없을 때였다.
설마 외유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오히려 형이 후사가 없어, 어쩌면 소가주 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수련에 매진하던 때.
그 외유에 무언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외유에 따라나섰던 호위무사의 이름조차 알 수가 없었다.
"쯧."
혀를 차는 남궁화우.
그는 아직도 그 호위무사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정천맹의 정보는 방대하고도 방대했으니.
천목각 만박당의 당주라면 알고 있을 지도 몰랐으나, 그에게 물을 수는 없는 노릇.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오늘도 남궁화우는 만박당의 장서고를 찾았다.
서고 관리인이 남궁화우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 부단주께서 다녀가셨습니다만. 혹시 그 자료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겁니까?"
관리인은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남궁화우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여전히 담무흔이 만박당에 드나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천단의 일 때문이라 여겼던 것.
허나 최근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보통 때와 다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내 다시 한번 직접 검토해봐야 해서 말이네."
"알겠습니다. 이리 오시지요."
관리인이 남궁화우를 안내해 한 서책을 펼쳐서 보여 주었다.
"이 부분입니다."
남궁화우는 찬찬히 살피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토록 찾던 이름이 그곳에 있었으니.
남궁휘(南宮徵).
남궁세가의 방계 하급무사. XX년 남궁화현의 외유에 호위로 참가하였다가 실종. 산월마림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
'찾았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확인하셨습니까?"
남궁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별다를 게 없군."
관리인이 서책을 덮고 제자리에 꽂았다.
남궁화우는 만박당을 나왔다.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는 그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실마리를 찾았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
담무흔이 왜 갑자기 저것을 찾아본 것일까? 그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인데.
오지랖이 넓고 갖가지 정보에 관심이 많은 인간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담무흔의 행적을 알아보았다.
호천단의 단주가 된 지 일 년이 넘었다.
아무리 허수아비라지만, 단 내에 심복 하나둘 만들 정도의 시간은 되었다.
'천리흑구가 날아왔었다고?'
그놈이 어떤 영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호천단에 배정된 놈은 제멋대로 탈주했다.
"백아라고 했었지?"
검은 놈의 이름이 백(白)이라니 우스운 노릇이다.
새로운 천리흑구는 아직 배정되기 전.
하면 분명 백아 그 녀석이 날아온 것이다.
그 녀석이 날아오고, 담무흔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백아가 있는 곳과 관련이 있을 터인데.
백아가 있는 곳은 전 부단주인 한설빙이 있는 곳이다.
그녀를 너무 따라서 탈주했다고 보고 받았으니.
그렇다면.
'교룡관.'
그곳에서 무언가가 있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맹룡대와 잠룡대의 연무장 주변을 쓸고, 빨래터에 가서 빨래한다.
그리고 가끔 병기고에 들러 병기를 닦는다.
병기고의 일은 조금 소홀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들의 검이 없었으니까.
다만 빨래터의 일은 정말 열과 성을 다했다.
남궁지후가 열심히 수련하는 만큼 그의 무복이 많이 나온 탓이다.
정말 새 것처럼 세탁했다.
은밀히 내공까지 사용해 가면서.
그리고 밤에는 며칠에 한 번씩 남궁지후의 수련을 도와준다.
남궁휘는 그날 이후, 이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과연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의문과 언제까지 이렇게 행복할까 하는 불안이 살짝 자리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남궁지유의 무복을 세탁하는 중이다.
'지후의 대연검법이 더욱 좋아졌어. 이런 추세라면 어쩌면 곧 벽을 하나 넘을지도.'
한창 집중하여 막 세탁을 끝내니, 다른 일꾼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정말 용하다니까."
"정말?"
"그려. 저 점쟁이 양반 못 맞추는 것이 없어."
"거 신통하구만. 어찌 그런 점쟁이가 무창에 왔다나."
"헹. 어림없는 소리. 못 맞추는 것이 없긴 왜 없어? 상대방 패는 하나도 모르더만. 크크크."
일꾼 아낙들의 대화에 사내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여?"
"자네들이 말하는 용하다는 그 점쟁이 작달막한 키에 애꾸인 점쟁이 맞지?"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낙네.
"도박장 지박령이여. 그 점쟁이. 그런데 번번이 잃기만 하지. 내가 어제 그 점쟁이 덕에 아주 포식을 했지. 크크크."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낙네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강 대인네 아이가 태어나지 열흘 전에 아들인지 딸인지 맞췄는데, 분명······."
아낙네의 남편은 강 대인 집의 일꾼이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듣고 직접 점을 보러 갔던 것이다.
"웃기는 인간일세. 다른 사람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맞추는 양반이 제 상대 손바닥 위의 패는 몰라서 그렇게 잃고만 있으니 말이야. 푸흐흐."
사내가 재미나다는 듯 말했다.
아낙네의 말에 혹해서 그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볼까 하던 다른 아낙네의 얼굴에 고민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남궁휘는 그 대화를 들으며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응? 남휘. 자네 왜 그러나?"
곁에서 한창 세탁하던 일꾼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 답하고는 다시 다른 이의 무복을 빨기 시작하는 남궁휘.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방금 들은 이야기에서 떠오르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살아있었군.'
남궁화현의 성정이라면 그를 잡아 죽이려 하였겠으나, 그때를 생각하면 쉽지 않으리라.
그때 그 인간은 남궁화현에게 두 번째 아이도 딸이라 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으라 하고는 떠났지.
그리고 나흘 뒤 전해온 전서.
그 전서를 받고 얼마 뒤, 남궁화현은 그 일을 벌였다.
그때는 전서의 내용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합비에서 남궁지유, 남궁지후 남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허나 곧 의문이 떠올랐다.
'저렇게 흔적을 줄줄 흘리면··· 금방 꼬리가 잡혔을 텐데. 어떻게 아직 살아 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하무백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전해 듣기로 맛있는 음식점이 생겼다 해서였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곳에는.
점(占).
이라 한 글자만 쓰인 깃발이 올려져 있었고.
애꾸눈 점쟁이가 점을 보는데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점쟁이로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려는데, 애꾸와 하무백의 눈이 마주쳤다.
하무백을 보자마자 점쟁이는 대경한 얼굴을 했다.
"귀, 귀인이로고. 귀인이야."
점쟁이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대번에 인상을 찡그리는 하무백.
점쟁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을 물리고 하무백에게로 다가왔다.
"내 천하를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보았지만, 귀인 같이 귀한 상을 지닌 이는 처음이외다. 이것도 인연인데 내 점을 보아 줄 터이니 이리 오시지요."
이게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어 대번에 얼굴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하무백은 차마 손을 쓰지 못했다.
아무리 하무백이라 해도, 고작 이런 일로 주먹을 쓰진 않는다.
게다가 상대가 일반인임에야.
어쩔 수 없이 끌려간 하무백.
점쟁이는 어느새 산가지를 꺼내들고는 점괘를 뽑았다.
"하아. 역시 귀인이십니다. 곧 어긋난 천륜을 바로 잡을 일이 있을 듯하군요."
추동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희열을 느꼈다.
무창을 찾은 진정한 목적은 다름이 아니다.
자신이 본 점괘에 이곳으로 가라하였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을 귀인이 이곳에 있다는 점괘.
겸사겸사 부자들 주머니도 털고 도박 맛도 좀 보고 그럴 요량이었다.
추동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소문이 나면 그 귀신들이 찾아왔으니까.
다행이라면 자신의 명에 관한 점괘는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도박판만 가면 도무지 맞질 않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고.
술법만큼이나 점을 익히는데 전력을 다했던 덕이다.
자신의 앞날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곳에서 점을 보며 귀인을 기다리기를 며칠.
드디어 귀인을 만났다.
점괘를 뽑아보니, 과연 어긋난 천륜을 바로 잡는다 나오지 않은가.
그러면 이 귀인이다.
자신을 구해줄.
어떤 점을 봤는지 귀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추동은 자신에 관한 귀인의 점괘를 뽑은 터.
자신에 관련된 어긋난 천륜이라면 단 하나.
'남궁. 그 빌어먹을 새끼.'
추동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원한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돌팔이로군."
하무백은 피식 웃으며 그리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추동은 더 이상 하무백을 잡지 않았다.
목적은 이뤘으니까.
이제 저 귀인의 뒤를 따르면 될 일이다.
허나.
추동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뽑은 점괘는 맞았으니, 그 해석을 잘못하였음을.
천륜이 어긋난 데에는 자신 역시 관여하였음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