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축하한다
남궁휘의 검도 그 움직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남궁지유는 입을 쩍 벌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냥 봐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모두 무아지경에 들었음으로.
얼마 전 하무백과의 대련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한 남궁지후가 다시 무아지경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지경인데.
그를 대련으로 이끌어주던 남궁휘까지 무아지경에 들었다.
과연 강호에 이런 기사(奇事)가 또 있었을까.
그녀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두 사람의 검은 어지러이 엉키는가 싶더니, 서서히 조화롭게 섞이기 시작했다.
대련이 아닌, 잘 짜인 검무(劍舞)를 함께 추는 듯했다.
두 사람의 간격에 있는 공간 모두를 완벽히 지배하는 듯한 압도적이면서 장엄한 모습의 검무.
두 사람의 검의 움직임은 비슷했으나 또 달랐다.
서로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 아름답다······.'
남궁지유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머리 한쪽과 가슴 한쪽을 간질이는 듯한 느낌.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녀 역시 무공에 있어 어떤 계기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나도검을 잡고 싶어지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연무장은 완벽한 두 사람의 영역.
감히 그 틈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명상으로라도 지금 떠오른 것을 정리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두 사람의 검무를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훨씬 더 많은 영감을 그녀에게 줄 것 같았기에.
"허······."
하무백이 탄성을 흘렸다.
남궁휘의 모습 때문이다.
"대단하구나."
위지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네요. 저 경지에서 저렇게 벽을 넘을 계기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제왕검형이 그 계기가 되었어."
위지군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왕검형.
남궁세가의 모든 검법을 집대성한 최후, 최강의 검법.
그 기반이 대연검법과 창궁무애검임을 하무백은 비급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후반부의 비급은 보지 못했지만, 전반부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했다.
새로운 검의 길을 개척하게 하는 것이 후반부일 터.
그건 재능의 영역이었다.
가주만이 익힐 수 있다는 제약이 있기에 오히려 발전이 더디게 되어버린 비운의 검법이라, 하무백은 생각했다.
가장 재능 있는 이가 가주가 되는 것이 아니니.
가주는 핏줄로 정하는 것 아니던가.
"저 정도면 어디까지 닿을 것 같으냐?"
위지군이 하무백에게 물었다.
"아마도 초절정의 끝자락까지 닿을 듯하군요."
"단번에?"
돌아온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무백.
"저 정도의 재능이라면 충분합니다. 이번에는 초절정의 끝자락 앞에 있는 벽에 부딪혀 멈추겠지만요."
두 사람은 일찍이 넘어선 벽이다.
허나 당금 강호에 그 벽의 존재를 본 이는 소수.
지금 남궁휘가 그 소수 중 하나가 되려 하는 것이다.
그 사이 두 사람의 검은 모든 검로를 펼치고 멈췄다.
남궁지후의 두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이, 이게 대체······."
무아지경에 들어서 펼친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있었다.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어마어마한 양의 검로.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빨리 명상에 들어 깨달음을 정리해라.]
그때 귀에 울린 하무백의 전음성.
남궁지후는 본능적으로 그 지시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명상을 하라 했지만,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의 움직임이 떠오르면서, 복기가 되었으니.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 갔다.
그 후.
남궁휘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허나 그는 경험이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선 채 다시 두 눈을 감고, 휘몰아쳐 온 깨달음을 정리했을 뿐.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궁지후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에서 맑은 안광이 번쩍였다.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키려던 남궁지후는 눈을 감고 서 있는 남궁휘를 보고 흠칫했다.
그런 그에게 남궁지유가 검지를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뭐, 뭐야?]
조심스레 전음으로 묻는 남궁지후.
[너와 대련 중에 무아지경에 들었어. 그리고 무아지경에서 나온 후 곧장 저렇게.]
돌아온 대답에 남궁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아지경에서 노니느라 남궁휘가 어떤지는 전혀 몰랐다.
헌데 남궁휘마저 무아지경이라니.
[어떻게 된 일이지······.]
남궁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음으로 말하자.
[아마도 제왕검형 때문 아닐까?]
돌아온 대답.
[아······!]
그때의 감각에 손끝이 저릿해졌다.
제왕검형의 한 자락을 제대로 펼쳐냈다는 뿌듯함.
'대연검법과 창궁무애검의 수련이 먼저라던 하 교관님의 말씀이 맞았어.'
대연검법과 창궁무애검의 합일.
그것이 설마 제왕검형의 길이었을 줄이야.
그 사이 남궁휘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리고는 곧장 검을 휘둘렀다.
아름다운 궤적을 남기며 움직이는 검.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연검법인 듯 보이는 움직임이었으나, 결코 대연검법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오하고 오묘했으며, 신비롭기까지 했다.
"제, 제왕검형······!!!"
남궁지후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깨달은 제왕검형과는 달랐지만, 저 또한 제왕검형이 분명했다.
자신도 익혔기에 알 수 있었다.
남궁지후의 제왕검형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같다면.
남궁휘의 제왕검형은 깊은 바닷속 같았다.
"어떻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제왕검형의 단 한 글자도 모를 남궁휘가 어떻게 제왕검형을 저리 펼쳐내고 있단 말인가.
눈에 보이는 경지만 하더라도 남궁지후보다 훨씬 위였다.
그토록 비급을 궁구하고 수련했던 자신보다도.
그렇게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의 경악 속에 검법을 모두 펼친 남궁휘.
"후우······."
깊은숨을 내쉬고 납검하는 순간.
휘황찬란한 빛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쩌적. 쩌적.
그리고 온몸의 피부에 균열이 일어난다 싶더니.
파사삭.
한 꺼풀의 피부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드러난 그의 모습.
더욱 하얀 피부에 광택이 났으며, 얼굴의 흉터는 살짝 희미해져 있었다.
"타, 타, 타, 탈태(脫胎)!!!"
남궁지후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외쳤다.
환골탈태.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낸다는 지고의 기사.
말로만 듣던 것이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남궁휘의 시선이 남궁지후에게로 향했다.
포권을 취하며 깊게 허리를 숙이는 남궁휘.
"남궁 공자 덕에 크나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선배님. 저 역시 선배님 덕에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꾸벅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남궁휘가 그 자리를 떠났다.
덩그러니 둘만 남은 남궁 남매.
"저런 사람이 왜 세가에서 기록도 없이 사라졌을까?"
남궁지유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남휘라 했다.
남궁휘임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도.
"몰라. 이번에 세가에 돌아가면 알아봐야지."
남궁지후의 말에 남궁지유 역시 단단히 마음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탈태까지 겪었으면 대체 경지가 어느 정도인 걸까?"
남궁지후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보다는 네 경지를 더 궁금해해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나타난 하무백의 물음에 남궁지후가 고개를 획 돌렸다.
그곳에는 하무백이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렇게만 있지 말고, 검을 한번 휘둘러 봐라. 좀 전에 어떻게 하는지 봤잖아."
"아······."
하무백의 말에 남궁지후는 다시 검을 뽑았다.
그리고 제왕검형을 펼쳤다.
분명 남궁휘의 그것과 달랐다.
대연검법만을 기반으로 한 남궁휘의 제왕검법, 대연검법과 창궁무애검을 합일시킨 남궁지후의 제왕검형.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오롯이 검을 잡은 이의 역량에 달린 문제였으니.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남궁지후의 제왕검형.
초식이 진행될수록.
남궁지후는 점점 더 검법에 빠져들었고.
제왕검형 전반부를 모두 펼쳤을 때.
그의 검에는 하늘이 서려 있었다.
창궁.
높디높은 하늘과 같은 푸르른 빛깔의 검강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으니.
남궁지후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런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축하한다. 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걸."
그 말을 끝으로 하무백은 사라졌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만이 멍한 얼굴로 있을 뿐.
검강은 서서히 사라졌다.
다시 새하얀 가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꾸, 꿈은 아니지?"
남궁지후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다, 다시 할 수 있어?"
남궁지유의 목소리도 떨렸다.
남궁지후는 마지막의 감각을 떠올리며 검에 내공을 불어넣자.
푸르른 검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허······."
"하······."
동시에 터져 나오는 탄성.
검강이라니.
절정이라니.
꿈에서라도 바라는 경지였으니 언제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던 곳이었건만.
이렇게 도달하게 되었다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
두 사람에게서 떠난 하무백은 훌쩍 교룡관의 담장을 넘었다.
남궁휘의 기척을 쫓아가는 것이다.
초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한 그가 향한 곳은 의외로 무창 뒷골목의 허름한 주점이었다.
이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으면서도 손님은 아무도 없는.
용케도 그런 주점을 알고 있구나 싶었다.
하무백은 자신의 기도를 감추지 않았다.
남궁휘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기도를 드러내며 천천히 그 주점으로 향했다.
문을 여니 홀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작을 하는 남궁휘가 앉아 있었다.
"오시었소?"
하무백을 힐끗 본 남궁휘가 말했다.
그 앞에 털썩 앉은 하무백.
어딘가에 있던 주인장이 젓가락과 술잔을 가지고 왔다.
"오리구이도 하나 부탁하오."
하무백의 주문에 주방으로 사라지는 주인장.
"오랜만이오. 무명."
"정말 오랜만이군요. 호천단주."
첫인사였다.
교룡관에서 두 사람은 수 차례 마주쳤으나, 그때마다 모른 척 지나갔다.
제대로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인 것이다.
"한 잔 받으시지요."
남궁휘가 왼손으로 술병을 들었다.
하무백이 잔을 내밀어 받은 술을 그대로 목으로 넘겼다.
싸구려 화주의 화끈함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까지 내려갔다.
"축하하오."
하무백의 한마디.
"호천단주의 경지는 대체 어디에 도달해 있는 겁니까? 지금도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는군요."
하무백의 말에 남궁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교룡관 교관에 불과할 뿐이외다."
하무백의 답에 남궁휘의 고소가 더욱 진해졌다.
"이거 갑자기 결심이 흔들리는군요. 이제 내 것을 찾으러 갈 때가 되었다 생각했는데······. 바로 하늘 밖의 하늘을 마주하고 있으니 자신감이 사라지는군요."
쪼르륵.
자신의 잔을 채우는 남궁휘.
화주를 단번에 넘겼다.
"무엇을 잃었기에?"
하무백의 물음.
남궁휘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글쎄요. 잃은 것이라고는 한쪽 팔이 전부인 것 같기는 한데······."
오른쪽 어깨를 으쓱하며 잠깐 자신의 팔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남궁휘.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나란 사람의 존재를 잃은 것 같군요. 남궁휘라는 사람의 존재."
다시 잔을 채우는 남궁휘.
이번에는 잔만 채우고 그대로 두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것이오?"
하무백이 물었다.
예전.
산월마림에서 만났을 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교룡관에서 보여준 모습과, 오늘 보여준 모습.
그것이 자연스레 하무백으로 하여금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부 위지군의 부추김도 한몫했을지 모를 일이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남궁휘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밤이 제법 길게 남았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