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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43화 (243/312)

243화. 닮았습니까?

정신없이 말을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확인해야 했기에.

말을 바꿔타며 그야말로 전력으로 달려 드디어 무창에 도착했다.

남궁화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무창으로 가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달렸으니.

일단 객잔에 들어가 방을 잡고 쉬었다.

당장 탈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달렸으니까.

마음이 급한 탓이다.

남궁휘.

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욕을 마치고 침상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형님이 외유를 나갈 때 데리고 갔던 유일한 무사.'

방계에서도 하급 무사였다.

그런 이를 굳이 챙겼던 남궁화현.

남궁화우는 언젠가 궁금하여 물었던 적이 있었다.

왜 그리 그를 가까이 두냐고.

그때 돌아온 대답이.

'재능 있는 이를 곁에 두는 것뿐이다 였던가······.'

당시 남궁화우는 그 말뜻을 몰랐다.

아니, 남궁휘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래봐야, 방계 중 방계에 하급무사.

형님의 극찬에도 보려 하지 않았다.

대연검법은 한계도 명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남궁세가의 진정한 무공은 창궁무애검.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해석을 해낸 제왕검형.

그 둘뿐이라 생각했으니까.

'부디 교룡관에 그가 아직 남아 있었으면 좋겠군.'

남궁화우는 그리 생각하며 피곤에 지쳐 잠에 빠졌다.

하무백과 남궁휘가 술잔을 나누던 그때에.

아침.

업무를 막 시작한 이 시각에 팽도율은 난감한 얼굴로 맞은편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호천단주 남궁화우.

정천맹의 직급 체계대로라면 교룡관주인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이다.

당연했다.

맹주 직속의 호위이자 무력부대인 호천단이 후기지수를 키워내는 교룡관보다 중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음이니.

허나, 오늘 방문은 직급과 무관했다.

지금 호천단주는 그 직무에 맞는 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 아니다.

휴가를 내고 이곳에 급히 온 것이다.

교룡관에 찾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어렵겠소이까?"

남궁화우가 담담한 얼굴로 팽도율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의 요청은 간단했다.

교룡관에 찾는 이가 있으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책상을 톡톡 두드리는 팽도율.

'허락할 수밖에 없겠지.'

휴가 중이라 하나, 어쨌든 상급자.

그리고 사람 하나만 찾겠다는데, 자신이 어찌 막겠는가.

"이리로 그 사람을 부르는 건 어떻소이까?"

팽도율이 물었다.

외부인이 교룡관을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허나 남궁화우는 고개를 저었다.

"가문의 일인지라······."

그러면 막을 명분도 없었다.

남궁세가의 일과 교룡관의 사람이 어찌 연관되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존중하고 협조해 주어야 할 명분이니.

"알겠소이다. 그러면 내일까지 자유로이 둘러보시지요."

팽도율의 허락이 떨어지자 남궁화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감사하외다. 조용히 둘러만 보겠소이다."

그리고 관주의 집무실을 나가는 남궁화우.

"아, 잠깐."

팽도율이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그런 남궁화우의 발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는 남궁화우.

"알고 있겠지만, 그가 있소이다."

팽도율의 당부에 남궁화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자신의 전임자인 하무백.

바로 그.

팽도율의 당부에 남궁화우는 살짝 언짢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지금 남궁화우에게는 하무백보다 남궁휘가 더 중요했으니 .

관주각을 나온 남궁화우의 발길은 맹룡대 연무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아의 현 주인인 한설빙이 그곳에 있으니.

그 근처에 남궁휘가 있을지도 모른다 추측한 것이다.

'하무백. 그 인간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길을 따라 걷는 그의 눈에 한 사내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텅 비어 나풀거리는 오른 소매.

왼손으로 빗자루를 들고 비질을 하는 사내.

일꾼이다.

그에게 느껴지는 기도 역시 단순한 일꾼.

'외팔이를 일꾼으로 쓰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곁을 지나간 남궁화우.

신기한 생각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 희미한 흉터들이 가득한 중년 사내다.

무수한 검상을 입은 듯한 흉터.

그것을 보는 순간 남궁화우는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많이 희미해졌지만, 흉터의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 흔적은 남궁화우의 머릿속에 하나의 검로를 그렸다.

익숙한 검로다.

절대 모를 수 없는.

당연했다.

'형님!'

남궁화현의 제왕검형의 검로였으니.

우뚝 멈춰선 남궁화우가 몸을 돌렸다.

사내가 비질을 멈추고 그런 남궁화우를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그를 알아본 것이 틀림없었다.

남궁화우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남궁화현의 제왕검형에 저렇게 당했을 인물은 이곳에는 한 사람뿐이리라.

자신이 급한 걸음을 하게 한.

"남궁휘······?"

남궁화우의 입에서 작은 물음이 흘러나왔다.

남궁휘는 주춤 물러서려 하다가 이내 자세를 바로 했다. 그의 두 눈에는 짙은 경계와 분노가 자리했다.

남궁세가.

그 집단에 대한 경계와 분노였다.

남궁화우를 똑바로 바라보는 남궁휘의 기도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단순한 일꾼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랜만이외다. 막내 공자."

당당한 남궁휘의 모습.

그 모습에 남궁화우는 두 눈을 크게 치켜 떴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무공을 익혔음이 분명한 남궁휘의 기도가 보통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남궁화우 역시 얼마 전 그 경지에 도달했기에.

"형님이 말한 재능이란 게 이런 거였군."

중년의 나이에 반박귀진의 경지에 든 남궁휘.

그가 익힌 무공이라고 해야 대연검법이 고작이다.

고작 대연검법으로 어찌 저 경지에.

"막내 공자 역시 여전히 훌륭한 재능이십니다."

남궁휘가 담담히 말했다.

그 역시 남궁화우의 경지를 알아본 것이다.

초절정의 중반. 반박귀진의 경지.

남궁휘는 이미 그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기에 알아보고자 하니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남궁휘의 물음.

"자네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자네를 찾아왔지."

돌아온 대답에 남궁휘는 깜짝 놀랐다.

강호에 나와 이름을 밝힌 적도 없건만, 어찌 알고 찾아온단 말인가.

남궁휘라는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은 어젯밤, 하무백과의 술자리가 처음이었거늘.

'혹시 밤의 수련을 훔쳐본 이가 있었던 건가?'

생각이 미치는 곳은 그것밖에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남궁지후와 함께 수련하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남궁세가에 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솔했다.'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허면, 곧 저를 죽이러 찾아오겠군요."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화현과 결착을 지으러 합비로 다시 갈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존재가 발각되었으니 그가 이곳으로 올 터.

그 말에 남궁화우가 고개를 저었다.

"나만 알고 있네."

알 수 없는 말이다.

"아무리 남궁세가라 한들, 교룡관의 일꾼이 드나드는 것까지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나 또한 자네가 설마 일꾼으로 있을지도 모르고 왔고."

남궁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대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안 것일까.

"누군가 자네의 정보를 열람했더군. 그리고 그날 교룡관에 있을 전서구가 정천맹에 왔었고."

눈살을 찌푸리는 남궁휘.

대체 누가.

"쯧. 쓸데없이 호기심만 부린다 싶더니. 꼬리를 달고 왔네."

어느새 나타난 하무백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남궁화우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딱딱하게 굳는 남궁화우의 표정.

만나고 싶지 않은 이를 맞닥뜨렸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하무백의 시선은 곁에 있는 한설빙에게로 향했다.

한설빙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백아를 쫓아온 모양이군."

하무백의 말에 남궁화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네 명.

이제 오가는 생도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눈길을 끄는 모습.

그들을 생도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았고.

그중에는.

"숙부님을 뵙습니다."

남궁화우를 향해 포권을 취하는 남궁지후와 남궁지유.

그 두 사람도 있었다.

잠룡대에 있을 두 아이가 어찌 맹룡대 구역에 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두 사람을 쳐다보는 남궁화우.

"오랜만이로구나."

정천맹에 머물고 있었기에 두 사람을 보는 것은 일 년여 만이었다.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궁화우의 시선이 남궁휘에게로 향했다.

"역시······."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화우.

"일단 자리를 좀 옮겨야겠군."

하무백이 그리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그 뒤를 따랐다.

한설빙은 따라가려다 하무백의 전음을 듣고는 걸음을 멈췄다.

지은 죄가 있으니 궁금함에도 차마 쫓아가지 못했다.

생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의 얼굴에는 작은 걱정이 어렸다.

"막내 숙부가 선배님을 찾아온 건가?"

남궁지후의 말에 남궁지유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게. 어떻게 알게 된 걸까?"

그들은 세가에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

전날 밤.

하무백과 남궁휘가 술잔을 나눴던 주점.

그곳에 이제는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을 받는 주점. 과연 문을 닫기나 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여전히 손님은 없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겠어. 그 아이들. 네 아이들이지?"

남궁화우가 본론부터 말했다.

입을 꾹 닫고 있던 남궁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게 닮았는데. 형님의 얼굴은 하나도 없어. 형수님의 얼굴과 자네의 얼굴이 있을 뿐이지."

남궁화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남궁휘가 흠칫 놀랐다.

"닮았습니까?"

전혀 생각도 못 했다는 표정이다.

"난 자네의 원래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흉터로 가려지기 전의. 지금도 흉터가 옅어진 덕에 찬찬히 뜯어보면 닮은 곳이 많이 보여."

남궁화우의 말에 남궁휘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자신과 닮았구나.

자신의 핏줄이 맞구나.

부인들의 얼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얼굴도 있었구나.

심한 검상으로 얼굴이 망가져 자신조차 자신의 본 얼굴을 잊고 살았구나.

그런 상념이 휘몰아쳤다.

"뭐, 흉터가 옅어진 것이 어젯밤이니. 아직은 아이들이 모를 만도 하군."

하무백이 담담히 말하자 남궁화우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때문이다.

"허··· 말도 안 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탄식을 흘렸다.

하무백은 피식 웃을 뿐.

"저를 왜 찾으신 겁니까?"

남궁휘가 물었다.

남궁화우는 남궁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형님이 싫네."

짧은 말.

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

"그래서 형님을 끌어내릴 생각일세. 재능 없고 실력 없는 이가 가주로 있기에 남궁세가가 서서히 쇠락해 가는 거야."

남궁화우는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이야기했다.

그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내가 왜 굳이 기를 쓰고 호천단주직을 얻었는지 아시오?"

자신을 향한 물음에 하무백은 알겠다는 듯 답했다.

"이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군."

호천단주의 권한을 잘 알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비슷하오. 그날의 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지. 남궁세가에는 아무런 자료도 없으니."

"그래서. 당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 친구를 이용하겠다?"

하무백의 물음.

"큰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외다."

두 사람의 대화에 남궁휘는 남궁화우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남궁화현의 가장 큰 치부. 그게 저와 아이들이로군요."

"대남궁세가의 가주의 자격이 없는 치부지."

"그런다고 당신이 가주가 될 수 있을까?"

남궁화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에게는 후손이 없다."

단정을 내리듯 하는 말.

당연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의 친부는 여기 있는 남궁휘였으니까.

"그리고 조카들은 아직 제왕검형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한 풋내기들이지."

어리기도 어렸다.

"형제들 중 막내인 당신이?"

"실력으로 누르면 될 일."

남궁화우는 본인의 실력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무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만할 정도의 경지임을 알아본 것이다.

저 나이대에 저 정도 경지에 오른 이는 정말로 드물었으니까.

그 말에 남궁휘가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단호한 말이다.

남궁화우가 그런 남궁휘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그 아이들은 남궁화현의 자식들로 남아 있는 것이 맞습니다. 설사 소가주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비의 마음이었다.

자식이 티끌만 한 상처도 입지 않기를 바라는.

전날 밤.

남궁휘는 남궁화현과 결착을 짓겠다고만 했지, 아이들과 어찌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죽으려 하는 것이다.

아무리 초절정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남궁화현과 결착을 짓겠다고 홀로 남궁세가를 찾는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말이었으니.

하무백이 함께 하기로 하였기에 그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후우. 아비란 건가······."

남궁화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륜이란 것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지. 그 아이들도 나름의 느낌이라는 것이 있어. 세가에서 보낸 그 긴 시간 동안 그 아이들이라고 아무것도 몰랐을 것 같은가?"

남궁화우의 물음에 남궁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내 제안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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