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그러니 들어와라
남궁지후와 남궁지유.
두 사람은 걱정 어린 얼굴로 학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걱정될 수밖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남궁의 성을 숨기는 사람과, 남궁세가 가주의 동생이 만났는데.
게다가 둘은 서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교관님이 함께 가시긴 했지만······."
남궁지후가 중얼거렸다.
괴물 같은 그가 있다면 큰 사달이 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계속 걱정이 되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것은 남궁지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응? 뭐야? 얼굴이 왜 그렇게 썩어 있어?"
그때 학당으로 향하던 당진산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물었다.
"······."
남궁지후는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얼굴은 더욱 굳었고.
당진산의 시선이 남궁지유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인데?"
두 사람의 표정에서 보통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한 당진산이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남궁지유는 간략하게 말했다.
남궁세가의 사람이 찾아와서 하 교관님과 함께 교룡관을 나섰다.
그리고 그 일행에는 남휘라는 외팔이 일꾼도 함께 있다.
남궁세가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걱정하는 중이다.
라고.
적당히 숨길 내용은 숨겨서 이야기했다.
남휘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으니까.
"하 교관님이 나서셨으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거야."
연하민이 작게 말했다.
백리평이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진산 역시 동감이라는 얼굴.
"그래도 너희는 걱정이 된다는 거지?"
당진산의 물음에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뭐, 그러면 직접 찾아가 보는 수밖에."
당진산이 결론은 정해져 있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남궁지후가 물었다.
세 사람이 떠난 지 한참이다.
게다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너른 무창에서 어찌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당진산의 말을 들으니, 애초에 처음부터 따라나섰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궁지후에게 밀려들었다.
남궁지후의 물음에 당진산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의 끝.
하설란이 있었다.
"나, 나?"
하설란이 깜짝 놀랐다.
갑자기 자신을 바라본 탓이다.
당진산이 싱긋 웃었다.
"하 교관님 어디 계신지 알고 있지?"
하설란은 잠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와 사부님의 기척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척이나 느끼기 어려웠다.
놓친 적도 많았다.
두 사람이 작정하고 전력을 다해 기척을 숨긴다면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라버니는 딱히 기척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찾는 것은 이제는 쉬웠다.
다른 이들보다 존재감이 옅은 기척.
그것이 오라버니다.
오라버니는 습관적으로 기척을 옅게 흩어두고 지냈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찾기 힘들었지만, 깨달은 다음은 쉬웠다.
하설란의 긍정에 남궁지후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조금 전과 같은 말이었으나, 거기에 담긴 감정은 전혀 달랐다.
"자자, 그건 중요한게 아니지. 이제 찾아가 보라고."
당진산이 남궁지후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하설란은 위치를 가능한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함께 가는 것이 쉽게 찾겠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가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는 교룡관을 벗어났다.
***
"제안이요?"
남궁휘의 물음에 남궁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것 없습니다. 제 결심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남궁휘는 단호했다.
"아비이기에 듣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자네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알 것 같거든."
"······."
남궁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방계."
짧은 한 단어가 남궁화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남궁휘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자네의 아이들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 아이들은 방계가 되어 버리지. 그것도 아주 멀리 떨어진. 대연검법 이상의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방계. 그런데 두 아이는 이미 창궁무애검을 익혔어. 창궁대연심공으로 내공을 쌓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남궁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지후는 제왕검형까지 익혔다지? 세가의 원로들은 절대 그걸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앞뒤가 꽉 막힌 골방 늙은이들이니. 분명 무공을 회수하려 하겠지."
무공을 회수한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이미 익히고 머릿속에 있는 것을.
"머리에 든 기억을 지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일 명분은 없으니··· 아마도 단전을 폐하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무인이 단전을 잃는다는 건······."
"그만하시죠."
남궁휘가 결국 입을 열었다.
"자네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일 테지? 그래서 홀로 형님과 결착을 지으려는 걸 테고. 죽을 줄 알면서 말이야. 가슴에 쌓인 울분을 털어내고 싶은 건가?"
남궁화우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말 하나하나가 남궁휘의 가슴을 후벼 팠다.
틀린 곳이 없는 말이었기에.
"난 말일세. 가주가 된다면 저런 고리타분한 가법 따위는 없앨 걸세. 다 같은 남궁의 혈통이거늘, 거기서 다시 직계니 방계니, 직계와 얼마나 가깝고 먼지를 따져서 익히는 무공에 제한을 둔다? 바보 같은 짓이야. 스스로 쇠약해지려고 발악하는 거지."
남궁휘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직계인 남궁화우가 설마 저런 급진적인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탓이다.
세가라면 응당 혈통을 중요시 여겼기에 대부분 직계와 방계의 차별을 두었다.
그것이 혈통을 지키고 세가를 견고히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능은 혈통을 타고 흐르기도 해. 난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어. 다만 혈통을 타고 흐르는 재능이 꽃을 피우는 곳은 직계와 방계의 구분이 없다는 거지. 자네와 나처럼."
남궁화우는 남궁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울분이 담겨 있었다.
가주였던 아버지의 수많은 형제들.
그중 가장 뛰어났던 이는 막내인 남궁화우였다.
하지만 막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형제들 중 재능이 평범했던 큰 형은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소가주가 되고, 가주가 되었다.
후사를 만들지 못할 때, 은근한 기대를 가졌다.
헌데 악독한 수를 써서 그 문제를 넘어섰다.
"남궁의 성을 가진 이라면 모두가 세가의 모든 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할 걸게. 그러면 재능에 따라 성취가 드러나겠지. 그중 성취가 뛰어난 이들을 뽑아 제왕검형을 전수하고, 차기 가주 후보로 삼을 거야."
남궁화우는 그저 가주의 막냇동생일 뿐이다. 정천맹의 호천단주이고.
그에게 그런 것을 정할 권한은 없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이 가주인 양 당당하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남궁지후. 그 아이도 있겠지."
그 말에 남궁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지후가 방계의 핏줄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형님은 절대 그리하지 않을 터이지."
입술을 짓씹으면서 고민하는 남궁휘.
"그러자면 일단 내가 가주가 되어야겠지."
그게 문제였다.
입으로 아무리 떠들면 뭐 하나.
남궁화우는 아무것도 아닌 이였거늘.
"이게 내 계획일세. 그리고 내가 말한 것이 이루어지려면 자네의 도움이 좀 필요하고."
남궁화우는 남궁휘의 일신의 영달이 아닌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의 미래를 조건으로 제안을 해왔다.
남궁휘는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술을 들이킨다.
"제가 남궁을 믿을 것 같습니까?"
돌아온 것은 물음.
당연한 일이다.
그는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믿었다가, 배신당하고 죽을 뻔했다.
그리고 천륜이 어그러졌다.
눈앞의 달콤한 제안을 하는 이는 그런 인간의 동생이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어찌 쉬이 믿을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남궁화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
그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 시선의 끝에는 하무백이 있었다.
"여기 보증인이 있구만."
그 말에 하무백이 인상을 찡그렸다.
남궁휘와 함께 남궁세가로 가서 도와줄 생각이었기에.
남궁화우 이놈이 혹시 허튼짓을 할까 봐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인데.
갑자기 보증인에 자신을 끌고 들어가다니.
"자네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말고 있는가?"
"호천단주."
짧게 답하는 남궁휘.
"정확히는 전 호천단주이지. 지금 호천단주는 나거든. 어쨌든 저 사람의 본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 것 같은가?"
"알 수없소."
남궁휘의 대답에 남궁화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네 정도 되니 알아보는군. 뭐, 자네가 나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듯하니. 저 인간은 혼자서 팽가를 봉문했네."
남궁화우의 말에 남궁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개인이 집단을 무너뜨리다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저 인간이라면, 남궁세가 깊은 곳에 내가 숨는다 해도, 죽일 수 있지."
단언하듯 말하는 남궁화우.
하무백을 싫어했지만, 그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지난 전쟁의 영웅.
남궁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하무백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남궁화우의 말을 긍정했다.
"내가 약속을 어기면 언제든지 나를 죽여도 좋네. 저 친구가 이 자리까지 따라온 것을 보면 자네와 관계가 있는 듯하니."
남궁휘의 눈이 복잡한 빛을 띠며 떨렸다.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 약속 어겼으면 좋겠군.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죽이고 싶어졌으니."
남궁휘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무백의 허락이 먼저 떨어졌다.
그 말에 남궁화우가 피식 웃었다.
"자네의 검에 죽기 싫어서라도 약조는 반드시 지킬 걸세."
"하나만 묻겠습니다."
남궁휘의 말에 남궁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계인 막내 공자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세가에서 온갖 혜택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바로 직계다.
그런 직계인 남궁화우가 그 혜택과 기득권을 부수려 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직계? 훗. 직계에도 급이 나뉘지. 내 아비는 가주였지만, 어미는 그런 아비의 첩이었다네. 자네는 외원에 머무르나 그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네만."
남궁화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혈통이란 게 빌어먹을 것이야. 해서 나는 혼사도 치르지 않았다네. 이 빌어먹을 혈통을 안 남기려고."
미처 그 사실을 몰랐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는 남궁휘.
결국 결정을 내렸다.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남궁휘의 말에 남궁화우가 빙그레 웃었다.
"현명한 선택일세."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자네가 할 일은 한 가지. 남궁세가를 뒤집어엎는 것일세. 남궁화현 그 인간의 치부를 모두 밝히며 소란을 피우는 거지."
"죽으라는 건가?"
하무백이 끼어들었다.
그랬다가는 세가의 무사들이 몽땅 달려들 테니.
"내가 막을 거야. 공론화를 시켜야 하니까. 지금까지 심증만 있었지, 물증이 없었으니 하지 못했던 일이다."
"물증은 여전히 없다. 주장하는 사람만 있을 뿐. 그 아이들이 남궁휘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어찌 밝힐 것이지? 얼굴이 닮았다는 걸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하무백의 물음에 남궁화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히 염두에 두었다는 듯.
"세가의 혈통인지 확인하는 술법이 있다는 것 알고 있나?"
"그렇다고 하더군."
"세가의 혈통을 확인하는 술법이 있는데 아비의 자식인지 확인하는 술법이 없을까?"
남궁화우의 말에 남궁휘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 술법이 있습니까? 추동은 분명 그것이 불가능한 술법이라고··· 모산파에도 없는 술법이라고······."
남궁화현은 치밀한 이였다.
그 역시 부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술법이 있는지, 그 존재 여부부터 확인했었다.
"모산파에는 없겠지. 하지만 선유곡에는 있다네."
하무백도 조금 놀란 듯한 얼굴로 남궁화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술법이 존재한다니.
그것도 선유곡에.
"알려지면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이 생길 술법인지라··· 선유곡에서도 극비에 부치고 있지만 말이야.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술법이라 현재 가능한 사람이 한 명뿐이라 하더군. 마진기라고 하던가······."
가장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야. 일단 당사자들의 의견부터 들어야 할 것 같군."
하무백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사자?"
남궁화우의 물음.
"두 아이들. 그 아이들의 삶이니까."
하무백의 말에 남궁휘가 잘게 떨었다.
저 말은 곧.
자신이 아비임을 두 아이에게 밝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잠깐 생각에 잠긴 남궁화우는 이내 동의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러고는 남궁휘를 바라보았다.
남궁휘의 결정만 남은 상황.
"모르겠습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 가지 알려주자면. 두 아이는 형님이 자신들의 아비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어. 지유는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거든."
"그걸 어떻게?"
"세가에서 은밀히 자신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찾고 있었으니까. 아비의 냉대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들을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 아이가 교룡관에 보내진 것은 그래서야."
여아인 남궁지유는 가주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가주가 되는 것을 견제하려면 남궁지후만 교룡관에 보냈어도 됐을 일.
남궁지유까지 함께 보낸 것에는 그런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남궁휘.
드르륵.
그때 하무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묻도록 하지."
성큼성큼 주점의 문으로 다가가 활짝 문을 열어젖히니.
그곳에는 깜짝 놀란 표정의 남궁지후와 남궁지유가 있었다.
"기막을 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을 거다. 그러니 들어와라."
하무백의 말에 두 사람은 쭈뼛쭈뼛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