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이용?
"······."
"······."
남궁지유, 남궁지후.
두 남매는 얼떨떨한 얼굴로 남궁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들이 들은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받아들이지를 못한 것이다.
정적.
고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무백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남궁지유였다.
"어, 저, 그러니까··· 그게······."
횡설수설하듯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말.
"방금 말씀하신 것이··· 저희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그 시선을 받은 남궁휘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아, 아버··· 아버지······?"
남궁지유의 입에서 겨우겨우 흘러나온 한 단어.
아버지.
그 물음에 남궁휘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 내가 아비다. 너희들의 아버지······."
남궁휘의 목소리는 여전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그런······."
남궁지후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무지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아니, 이미 세상에 없을 것이라 여겼던 존재 아니던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화현이 자신들의 친부가 아닐 거라 결론을 내린 날.
남궁화현과 함께 외유를 나섰던 그 수행무사가 자신들의 친부가 아닐까란 추측도 했었다.
그리고 그리 추측하는 동시에, 그는 이미 죽은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아는 남궁가주라면, 그리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가.
자신들의 아비라고 하고 있다.
세가의 명부에 그 이름이 없는 남궁휘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가.
눈앞에 앉아서 자신들의 아비라 말하고 있었다.
'그게 그래서였나······.'
남궁지후는 남궁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와 수련하면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세차게 뛰던 심장.
터질 듯이 뛰지 않았던가.
그것이 그저 무공 때문인 줄 알았다.
제왕검형을 완성 시키기 위해.
경지를 넘어선 그 아름다운 대연검법을 배울 수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누이도······.'
남궁지유도 심장이 뛴다 하지 않았던가.
그게 무공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핏줄.
천륜.
그것이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든 것이다.
"아, 아··· 아버지······?"
결국 남궁지후의 입에서도 흘러나온 한마디.
지금껏 수없이 꺼내왔던 말이다.
남궁화현을 향해.
허나 지금의 이 말은 그때의 그 말과는 전혀 달랐다.
담긴 감정이.
그 감정의 깊이가.
완전히 다른 한 마디였다.
남궁휘는 그 말 하나에 담긴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궁지후의 두 눈에서도.
남궁지유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무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자, 부녀의 상봉.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하무백의 눈짓에 남궁화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주점을 나섰다.
그들의 자리에는 여전히 기막이 둘러쳐져 있었다.
하무백의 배려였다.
밖에서 친 기막.
저들의 대화는 이제 하무백도 들을 수 없었다.
일부러 그리했다.
이제는 저들 가족의 문제였으니.
주점 밖으로 나온 남궁화우는 내공을 귀에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곁에 있는 하무백을 슬쩍 보고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잔하시겠는가?"
"내가 왜?"
남궁화우의 제안을 하무백은 단번에 거절했다.
칼 같은 그의 거절에 남궁화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걸음을 뗐다.
"내일 다시 찾겠다고 좀 전해주게."
***
세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진실로 아버지가 맞는지, 아들이 맞는지, 딸이 맞는지.
확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여전히 쿵쾅거리며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이 이들이 가족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이 핏줄이요, 천륜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서히 눈물이 멎었다.
세 사람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남궁지유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서린다.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살아 계셔서. 저는 당연히 저희 부모님은 세상에 안 계실 것이라······."
말을 하다가 다시 울컥하는 남궁지유.
"저희가 자식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남궁지후가 습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합비에서 가주의 아이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듣는 순간 알았지. 그게 아니더라도 처음 마주친 순간 알았다."
그랬다.
합비에서 듣지 못했더라도.
아무것도 모른 채 두 아이를 만났더라도 단번에 알아보았으리라.
그 두 분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헌데 어찌하여 숨기신 겁니까?"
다시 묻는 남궁지후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아비를 눈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선배님이라 불렀던 자신 아니던가.
"미안하구나. 허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희를 위해서."
"아비를 앞에 두고도 자식들이 몰라보는 게, 어찌 그 자식들을 위한 건가요?"
남궁지유 역시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남궁휘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행이 시작된 그날의 이야기부터.
교룡관에 왔던 이야기.
그리고 지난 밤 자신의 결심에 대한 이야기까지.
남궁지유와 남궁지후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허나 그들의 가슴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열화가 같은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그 대상은 당연히.
자신들이 그간 아비라 부르며 지냈던 가주 남궁화현을 향한 것이었다.
"너희가 내 자식임을 알린다면, 지금껏 너희가 누리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가주의 자식이라는 것으로 누리던 것들이."
"그따위 것······."
남궁휘의 말에 남궁지후가 바로 반발하려 했으나, 남궁휘의 이어진 말이 빨랐다.
"그것에는 단전과 무공도 포함된다."
진중한 한마디.
그 말에 남궁지후는 흠칫했다.
"나는 방계의 하급무사다. 내게 허락된 무공은 대연검법과 대연심법뿐. 너희가 내 자식임이 인정된다면 너희 또한 거기까지만 허락될 터. 허나 너희는 이미 창궁무애검법과 창궁대연심공을 익힌 데다, 지후 너는 제왕검형까지 전수 받았다."
남궁휘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딴 무공이 무슨 소용입니까. 대연심공에 대연검법이면 충분합니다."
남궁지후는 제왕검형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가주의 자리는?"
"필요 없습니다."
이어진 남궁휘의 물음에 남궁지후는 단호히 말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예요."
남궁지유가 덧붙였다.
두 남매가 소가주의 자리를, 가주의 자리를 위해 노력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남궁화현에 대한 복수.
더불어 남궁세가의 가주가 된다면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을 뿐.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딴 가주 따위 누가 하든 상관없었다.
두 사람의 굳건한 얼굴에.
남궁휘의 두 눈에 다시금 눈물이 서렸다.
"너, 너희들······."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안하구나. 미안해. 내가 죄인이로구나······."
아이들의 심정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해서 끝까지 비밀로 한 채, 홀로 남궁화현에게 검을 뽑고 죽으려 마음먹었었다.
이 얼마나 크나큰 잘못인가.
정작 자식들이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치도 않았다니.
"아니요. 괜찮아요.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이렇게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괜찮아요. 그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남궁지유가 손을 뻗어 남궁휘의 왼손을 쥐며 말했다.
거칠었다.
허나 남궁지유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손이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손이었구나.
그리 생각하는 남궁지유였다.
그 모습을 보던 남궁지후도 슬그머니 손을 뻗는다.
그렇게 세 사람의 손이 한데 포개졌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시 시간을 보낸 세 사람.
"허면 이건 어찌 생각하느냐?"
남궁휘가 남궁화우의 제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는 두 사람.
이내 남궁지유가 고개를 저었다.
"막내 숙부, 아니 남궁화우의 제안은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득이 없어요."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남궁휘의 물음.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그런 것에 전혀 욕심이 없으니까요."
남궁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남궁화우에게 한 가지는 고마워해야겠네요. 그가 아버지를 그리 설득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렇게 저희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그 말에 남궁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그냥 하무백과 둘이서 남궁세가를 향해 떠났을 터였으니.
"그리고 하 교관님이 도와주신다 하였다면서요?"
남궁지유의 물음.
"그렇다면 남궁화우와 손을 잡을 필요가 더더욱 없죠. 그분의 도움이면 남궁화현을 마주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니까요."
남궁화우가 하무백 홀로 팽가의 절반을 날려 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라면 능히 남궁세가와도 맞설 수 있을 터.
남궁지유가 두 눈을 빛내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 제안하는 쪽은 우리예요. 아쉬운 쪽은 남궁화우일 테니까요."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하무백의 말.
그 말이 맞았다.
두 아이의 생각을 모른 채 일을 진행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두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진 줄도 모르고, 남궁화우에게 끌려다닐 뻔하지 않았던가.
방계의 설움.
무공에 대한 갈증.
그것은 남궁휘 자신의 것이었다.
이 두 아이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 년 전의 두 사람이라면 어쩌면 남궁휘의 생각과 같았을지도 몰랐다.
허나 교룡관에서의 일 년이.
그 생각을 바꿔 놓았다.
삼재검법과 맞붙어 패배했던 창궁무애검.
아무리 다수의 검진을 상대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삼재검법이란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동투제.
그 경험은 남궁지후에게 알려주었다.
무공 그 자체의 위력 그것보다는.
그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제왕검형을 위해 대연검법을 다시 수련하면서 다시 한번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 괴물 같은 하무백도 완성 시키지 못했다는 검공이 삼재검법이라는 이야기에 얼마나 경악했던가.
더욱이.
대연검법으로 제왕검형의 경지에 오른 당사자가 지금 눈앞에 있지 않은가.
바로 자신들의 아버지, 남궁휘.
그러니 창궁무애검이니, 제왕검형이니 하는 무공에 욕심이 날 리 없었다.
맹룡대 칠 조.
결국은 그들과의 만남이.
하무백.
그와의 만남이.
남궁지유과 남궁지후를 이렇게 바꿔놓았다.
남궁화현을 원망하면서 합비를 떠나 무창 교룡관으로 왔으나.
교룡관은 이들 남매에게는 기연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 교관님께 너무 큰 도움을 받는 건······."
남궁휘는 그것이 조심스러운 듯했다.
"은원이 확실한 분입니다. 무슨 빚인지는 몰라도,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하셨다면. 문제없을 겁니다."
남궁지후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그가 지금껏 겪은 하무백이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찌해야 하겠느냐?"
남궁휘가 남궁지유를 향해 물었다.
지혜로 반짝이는 두 눈을 바라보면서.
합비에서 남궁지유의 지혜가 능히 하늘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직접 겪으니 과연이었다.
'그분 역시 이리 지혜로우셨지.'
외유를 수행하며 겪었던 남궁화현의 정실.
백 부인이 절로 떠올랐다.
그분 역시 지혜로우셨으니.
그분은 외유를 시작할 때 이미 운명을 짐작한 듯도 했었다.
다시금 그때를 떠올려 보니, 남궁세가를 떠나는 그날부터 항상 슬픈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셨으니까.
"아버지?"
남궁지유의 부름에 남궁휘는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단전을 잃을 수는 없어요. 창궁무애검이나 제왕검형은 상관없지만요."
남궁지유의 말에 남궁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이미 익힌 무공을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세가의 노괴들은 분명 우리의 단전을 파괴하고 행동을 제약하려 할 거예요. 무공이 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겠다고."
남궁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남궁화우가 지적했던 사항들 아닌가.
"그러니 우리가 남궁화우를 이용해야지요."
"이용?"
"가주가 될 자격이 있는 이가 그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