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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48화 (248/312)

248화. 그럼, 가라

"흠."

전각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모두 지켜본 담무흔.

남궁 단주의 뒤를 쫓았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마 내가 알아본 정보를 쫓았던 거였을 줄은······.'

한설빙의 부탁으로 남궁휘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내주었었는데.

남궁화우는 그것을 단서로 교룡관을 찾은 것이다.

한설빙이 물어왔을 때 설마 하긴 했었는데, 남궁휘가 멀쩡히 살아서 저리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여기서 뭐 하냐? 맹주 곁을 안 지키고? 단주랑 부단주가 다 이렇게 나와 있어도 되는 거야?"

갑작스레 곁에서 들린 하무백의 목소리.

담무흔이 싱긋 웃었다.

마치 그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에이. 저야 맹주님이 가보라고 해서 왔죠."

"맹주가? 왜?"

"우리 단주님이 뭐 때문에 그리 바삐 휴가를 떠났는지 쫓아가 보라더라고요."

그 말에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화우를?"

"남궁세가에 무슨 사달이 벌어질 것 같은 낌새를 느낀 거죠. 뭐."

담무흔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하 단주님이 교룡관으로 가고 난 뒤로, 맹주님 얼굴이 아주 좋아졌어요."

"왜?"

"뭐, 처음에는 얼굴이 썩어 갔는데··· 팽가의 일이 터진 이후로는 얼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담무흔의 대답에 하무백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는데.

지난 행적을 보니.

전부 맹주의 적대세력과 얽혀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거기에 더해 맹주의 우호세력인 만물련과 선유곡에는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우연이었지만,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절묘했다.

'아무리 그 영감이라도 이런 걸 계산했을 리는 없고.'

공손단경을 잠시 떠올린 하무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제 본 대로 보고해야죠. 뭐."

하무백의 물음에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답하는 담무흔.

"교룡관에 남궁휘가 있었고, 남궁화우는 그를 쫓아왔으며. 곧 남궁세가에서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 그렇게요. 거기에 하 단주님도 연관이 된 것 같다고."

"마지막 부분은 빼라."

담무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차피 알게 될 텐데요?"

"일이 터진 다음에 아는 거랑, 터지기 전에 아는 건 다르지. 내가 엮여 있다는 걸 알면 공손 영감이랑 맹주가 다른 수작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고."

맹주의 목표 중 하나가 백도회의 세력 약화임을 잘 알고 있는 하무백이다.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일에 그런 맹주의 손길이 섞이는 것이 싫었다.

"거부권은 없는 거죠?"

잠깐 생각하던 담무흔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애초에 네놈이 돌아다니는 걸 눈 감아 준 게 누굴까?"

안다.

자신이 무창에 들어선 순간부터, 저 괴물 같은 단주의 감각에 걸렸음을.

기척을 아무리 감추더라도 교룡관 근처로 오면 어차피 걸릴 것을 알았기에 그냥 대놓고 움직였다.

그러면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그것이 지금이었고.

저, 괴물 단주가 자신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만약 거부하면 어찌 될까요?"

"옛정이 있으니 아프지는 않게 해주마. 일이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있도록."

담무흔은 그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할 수 있었다.

'조만간 남궁세가가 뒤집어지겠네······.'

담무흔이 마지막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말 안 하겠다고 하고 맹으로 가서 말을 하면요?"

하무백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담무흔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겪고도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담무흔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거지."

죽이겠다는 말이 아니다.

연을 끊겠다는 것이다.

하무백은 이런 부분에서는 칼 같았다.

"에휴."

담무흔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어라 달려야겠네요. 남궁화우가 남궁휘를 만나는 것만 보고 복귀했다고 보고하려면."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라."

그리고 사라지는 하무백.

그곳을 잠깐 바라본 담무흔이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정말로 전력을 다해 달렸다.

무창에서 머무른 시간이 짧아야 자신이 알아낸 사실이 그 정도인 것에 대한 변명이 될 터이니.

남궁화우가 남궁휘와 만나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달려왔다고 하려면.

이틀이라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

남궁휘는 숙소에서 짐을 챙겼다.

생도 하나를 기절시키고 일꾼 하나의 팔과 손을 박살을 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할 수 없는 상황.

"가려는가?"

그때 들린 위지군의 목소리에 남궁휘가 문을 열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많은 것을 도와주셨는데, 이리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남궁휘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무창에 온 목적은 이제 다 이루었고?"

"어르신 덕분에 넘치도록 이루었습니다. 꿈에서도 감히 바라지 못하던 일이 이루어졌고요."

살짝 떨려나오는 남궁휘의 말에 위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륜이란 그런 거지."

위지군의 말에도 남궁휘는 놀라지 않았다.

오늘 잠룡대 연무장 주변을 청소하며 그간의 일을 돌이켜 봤다.

그래서 위지군이 자신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배려해 주었음을 깨달았다.

하긴.

이곳에서 남궁지유, 남궁지후 남매를 마주칠 때마다 자신이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몰라보는 것이 더 어려울 터.

"정말이지 어르신의 은혜, 각골난망입니다."

"허허. 그저 인연이었을 뿐이니. 그럴 필요 없네. 그런 것일랑 어서 잊어버리고, 앞으로 행복하게 사시게나."

위지군의 덕담에 남궁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자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 보이네만."

"네.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지요. 풀지 못하면 자르기라도 해야지요."

먹먹한 목소리가 남궁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위지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무백이 녀석이 도와줄 모양이던데. 최대한 이용해 먹게나. 상당히 강한 녀석이니까. 허허. 나 또한 자네와 인연이 닿아서 즐거웠네."

그렇게 위지군이 숙소를 떠났다.

남궁휘는 위지군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창에 와서 기연을 얻었다.

위지군의 존재가 남궁휘에게는 기연이었다.

만년설삼이니, 공청석유니 하는 신외지물 따위를 얻는 것을 기연이라 한다지만.

그런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을 얻지 않았는가.

아들과 딸.

그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연이었다.

이 순간까지도 단 한 가지의 의문만은 풀리지 않았다.

위지군은 왜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즐거웠다 했지만 결국 위지군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랬기에.

잊으라 한 것을 잊을 수 없었다.

각골난망.

은혜를 뼈에 새기며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

남궁휘는 남궁 남매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남궁화우가 있는 곳을 향해서다.

"오늘 남궁화우가 교룡관을 찾아왔었다."

남궁휘가 작게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두 사람은 전혀 몰랐다는 듯 남궁휘를 쳐다보았다.

"황력. 그 인간과 다툼이 있을 때였다."

"아, 그래서······."

생각났다는 듯 남궁지유가 중얼거렸다.

"드러내신 기도가 너무 과하다 생각했는데, 남궁화우에게 보여주신 거로군요."

남궁지유의 말에 남궁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걷고 있던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도 느꼈던 기도였다.

일개 남궁세가의 방계 생도와 일꾼을 상대한 것치고는 과해도 너무 과하다 생각했는데.

설마 아버지가 이런 심계를 사용할 줄은.

"네가 그러지 않았더냐. 아쉬운 것은 남궁화우라고. 그의 기척이 느껴지길래 마침 기회가 괜찮다 싶어 확실히 보여주었다."

"잘하셨어요. 그의 몸이 더욱 달았겠네요."

남궁지유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도착한 객잔.

남궁화우가 입구에 나와 있었다.

남궁휘가 은연중 드러낸 기도를 느끼고 나온 것이다.

"들어가도록 하지."

객잔후원의 별채.

그가 혼자 사용 중이었다.

다탁에 둘러앉은 네 사람.

손수 차를 준비한 남궁화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무얼 해주면 되겠는가?"

먼저 숙이고 들어오는 남궁화우.

남궁지유가 살풋 미소 지었다.

역시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틀 사이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그러니 그런 야망도 지닌 것이겠지.

"미리 말하자면 지난번에 내가 건넨 제안만 하더라도, 내 형제들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할 제안일세."

첨언하는 남궁화우.

맞는 말이다.

혈통을 중시하는 세가에서, 남궁화우가 내민 제안은 파격 그 자체였으니까.

그는 이미 남궁휘 가족이 그의 형제들 중 다른 이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음도 파악하고 말을 보탠 것이다.

"원로원의 폐쇄요."

남궁지유가 대뜸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남궁화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원로원.

어지간한 대문파나 세가에는 당연하다는 듯 존재하는 곳이다.

은퇴한 전대 고수들이 머무는 곳.

문파에 위기가 닥칠 때는 커다란 힘이 되는 곳이지만, 문파의 운영에 간섭을 시작하면 그렇게 피곤한 곳도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겠지?"

남궁화우의 물음에 남궁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하지만 호천단주께서 가주가 된 후에 하려는 일을 생각하면, 언젠가 한 번은 부딪혀야 할 곳이죠."

인상을 찡그리는 남궁화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일들은 모두 혈통을 무시하는 파격이었기에.

그 꼰대들의 무수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전대 고수라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거다. 무력으로 저항하면 아무리 가주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가문의 어른이기도 하고."

그것이 문제였다.

사실 현 원로원의 폐쇄는 그 또한 바라는 일이었다.

다만 그걸 이룰 힘이 없을 뿐.

"그건 도움을 주기로 한 분이 있어요."

남궁지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도움을 주기로 한 분을 말이다.

남궁지유는 이미 전날 하무백을 만난 터.

그에게 여러 가지를 확인 후 가능한 부탁을 해둔 터였다.

"그렇다면야. 다만 원로원의 폐쇄는 현 원로원에 대해서다. 세가가 존재하는 한 원로원은 없앨 수 없는 곳이니."

그 말에는 남궁지유 역시 동의했다.

전대 고수란 또 다른 힘이었으니까.

다만 지금은 이들의 목적을 방해하는 존재였기에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거면 될까?"

남궁화우의 물음에 남궁휘가 입을 열었다.

"검 한 자루 구해줬으면 좋겠군."

"검?"

남궁화우의 물음에 남궁휘의 시선이 남궁지후의 허리로 향했다.

"보시다시피 쓸 만한 검이 없어서."

남궁화우를 대하는 남궁휘의 말투와 태도가 변해 있었다.

남궁화우는 굳이 그 부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전에는 직계와 방계의 관계였다면, 지금은 동등한 관계라는 생각이었으니 .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자신이 조금 아쉬운 상황.

"아무 검이나 말하는 것은 아니겠군?"

남궁화우의 물음에 남궁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라창궁검(大羅蒼穹劍)."

짤막한 대답에 남궁화우의 얼굴이 굳었다.

남궁세가의 삼대 보검.

그중 하나였다.

제왕청천검은 가주의 신물이었기에 오직 가주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것이 대라창궁검과 천뢰봉황검, 이 두 자루.

이렇게 세 자루가 남궁세가의 삼대 보검이다.

대라창궁검과 천뢰봉황검은 깊숙한 곳에서 소중히 관리만 되고 있을 뿐 아직 주인이 없었다.

대라창궁검과 천뢰봉황검의 주인은 오직 가주만이 정할 수가 있었는데, 현 가주는 누구도 정하지 않은 탓이다.

대라창궁검을 남궁지후에게 주려면 선결 조건이 남궁화우가 가주가 되는 것이다.

이미 현 원로원도 폐쇄하기로 한 마당에.

"알겠네. 그리하지."

남궁화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라창궁검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놀란 얼굴이던 남궁지후가 두 눈을 끔뻑였다.

"너는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다."

남궁휘가 남궁지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약속들. 잘지켜야 할 거야."

그 순간.

하무백이 귀신같이 나타났다.

그 누구도 그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하무백의 한 손에는 애꾸의 왜소한 사내가 붙잡혀 있었다.

추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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