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점쟁이가?
남궁화우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이건 무공교관이 아니라, 강호제일의 살수라 해도 믿을 실력이었다.
바로 곁에 나타남에도 전혀 그 낌새를 느낄 수가 없었다.
방심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들과 은밀한 계획을 나누기에, 기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는 상태.
누군가의 접근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던 터다.
그런데도 정말 하무백이 입을 열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누군지 모를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도.
그렇다면 하무백이 그의 기척까지 완벽히 지워냈다는 것.
괴물이라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문득 사흘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약조를 어기면 하무백이 처단하면 될 일이라고.
갑자기 목 주변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약조를 깰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다.
"추동."
남궁휘가 하무백이 데려온 애꾸 사내를 보며 중얼거렸다.
애꾸 사내는 남궁휘를 보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 어떻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추동.
"부, 분명 비명횡사할 상이었거늘······."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추동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본 관상이 틀릴 리가 없다는 눈으로 남궁휘의 얼굴을 다시 살피는 그.
눈빛이 멍하니 바뀌었다.
"마, 말도 안돼. 사, 상이 바뀌다니······."
남궁화현의 공격으로 엉망진창의 검상을 입었던 얼굴.
바로 그 검상이 남궁휘의 상을 바꾼 것이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추동의 얼굴이 넋이 나가 있었다.
점괘를 벗어난 천륜의 힘의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하무백은 물끄러미 그런 추동을 바라보았다.
"이놈을 살려서 데리고 가야 한단 말이지?"
남궁지유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한 증인이니까요."
"이딴 놈이 제대로 말을 할까? 그리고 말을 한다 한들 믿을지도 모르겠고."
"아버지께서 살아 돌아오신 이상. 그날의 진실을 증언해줄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날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고작 셋이에요."
남궁화현, 남궁휘 그리고 추동.
이게 전부였다.
하무백과 남궁지유의 대화에 추동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저들의 대화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을 남궁세가에 데려가서 그날의 일을 이야기하겠다는 거 아닌가.
'처, 천륜을 바로 잡을 상의 주인이 맞을 터인데··· 악연을 끊을 귀인일 터인데··· 어, 어째서······.'
추동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에 관한 점괘였기에 좋은 쪽으로만 해석을 한 것이었던가?
아니다.
지금껏 생(生)의 점괘가 나온 곳으로만 움직였고, 무창 역시 그러했다.
사(死)의 점괘도 종종 나왔고 그런 곳은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것이 지금껏 남궁화현의 마수에서 살아남은 비결 아니던가.
남궁휘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추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받은 이, 추동.
그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길거리에서 여전히 점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몰아친 돌풍에 정신을 차리니 이곳이었다.
귀인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
"이, 이것이 대체 무슨 일인지··· 잠깐 시간을 좀 주십시오······."
추동이 조심스레 말했다.
"저놈은 뭐요?"
남궁화우가 하무백에게 물었다.
"들어서 알 것 아닌가? 그날 일의 증인."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추동을 바라보는 남궁화우.
"점쟁이가?"
"점쟁이인 동시에 모산파의 술법사지."
하무백이 태연히 답했다.
"모산파? 술법사?"
남궁화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거기에 남궁휘가 중얼거린 추동이라는 이름.
사흘 전, 자신이 술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왔던 이름이었다.
"그럼 저놈이······."
"남궁화현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확인해 준 술법사라는군. 그리고 저 두 아이의 성별을 감별하는 술법을 사용해줬고."
"용케도 살아있군."
남궁화우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추동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형님이 여태 저놈을 살려뒀을 리 없을 테니.
"나름 능력 있는 점쟁이라는 거지."
하무백의 말에 남궁화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궁화현이라면 암영을 동원해 죽이려 하였을 텐데,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
본인의 삶에 대한 점은 기가 막히게 쳤던 모양이다.
그사이 추동은 겨우겨우 상황 파악을 마쳤다.
저 두 젊은이가 아마도 그때 배 속에 있던 아이들.
그리고 남궁휘가 아비임을 이제는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중년인은.
아마도 남궁세가의 사람일 터.
"내게 바, 바라는 게 무엇이오?"
추동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물음에 하무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 알면서 뭘 그래.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니라, 네가 해야만 하는 거야."
"시, 싫다면?"
"남궁화현 손에 죽는 거지."
하무백의 대답에 추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남궁화현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네놈을 제압해서 합비에 던져둘 거거든. 그러면 암영이라는 놈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하무백의 말에 추동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 당신들의 요구들 들어준다면?"
"죽지는 않게 해주지."
하무백의 태연한 대답에 추동은 하나 남은 눈을 데구르륵 굴렸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마라. 내 눈에 띈 이상 도망갈 방법은 없으니."
"저, 점을 쳐봐도 되겠습니까?"
추동의 요구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품에서 작은 산가지를 꺼내는 추동.
두 가지 경우의 점괘를 뽑았다.
그 결과는.
'사(死). 이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 이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말을 듣는다 하여도.
'활(活)이라······.'
생이 아니라 활이라는 점괘가 나온 것.
산다는 의미는 같지만, 왜 생이 아닌 활이 나왔을까.
보통은 생이라 나오는데.
알 수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의 시선이 하무백에게 닿는 순간.
'뭐, 뭐라··· 이, 이게 대체······.'
점괘가 바뀌었다.
살 활의 삼수변(氵)이 떨어지고 남은 글자.
설(舌).
혀 설 자만이 남았다.
'결국 내 목숨은 내 혓바닥에 달렸다는 건가······.'
점괘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잘 처신하면 활로가 생길 거라고.
"후우."
외통수다.
"알겠소이다. 시키는 대로 하겠소. 대신 내 생명은 반드시 보장해 주어야 하오."
그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동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얼굴이 따끔거렸다.
남궁휘가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탓이다.
하무백과의 대화가 끝난 듯하자.
남궁휘가 물었다.
"비명횡사할 상이란 게 무슨 말이지?"
추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조금만 잘못해도 죽을 수 있었으니까.
남궁휘는 한동안 더 추동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꿋꿋이 그 시선을 무시하는 모습에 결국 시선을 돌렸다.
지금 급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제 다음 단계는?"
하무백이 물었다.
"친자 판별의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술법사를 찾아 함께 합비로 가야 해요."
남궁지유가 담담히 말했다.
"풉."
그 말에 참으려던 웃음을 흘리고 만 추동.
다섯 사람의 시선이 단번에 그에게로 다시 모였다.
"아, 아니··· 그것이 워낙에 말도 안 되는 일인지라······."
혈통 판별의 술법진을 만들어 준 곳이 그의 사문이었던 모산파.
그랬기에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고차원의 술법인지 잘 알고 있었다.
친자 판별의 술법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상상 속의 술법.
가능할 리 없었다.
"마진기라는 술법사는 가능하다고 하던데?"
하무백의 물음.
그 말에 추동은 경악한 얼굴을 했다.
"그, 그, 그분이 아직 살아계신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이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무백.
아는 거라고는 선유곡의 술법사라는 것과 이름뿐이었으니 .
그것은 남궁화우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제 알기로는 이미 그분의 세수가 백을 넘으셨을 터인데······."
그 말에 네 사람은 동시에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리 나이가 많은 술법사인 줄은 몰랐던 탓이다.
정말로 추동의 말대로 살아있을지 어떨지 모를 일.
만약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면 이번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살펴야 했다.
"이거 어쩌면 정말 남궁세가를 풍비박산 내야 할지도 모르겠군."
오직 하무백만이 조금 곤란해졌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풍비박산을 냈다가는 남궁세가에 남게 되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둘러서 선유곡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남궁지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이곳에서 헤어지지."
남궁화우의 말.
"혹여라도 계획이 틀어진다면 따로 연락을 드리겠어요."
남궁지유는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남궁화우를 남겨두고 자리를 떠나는 다섯 사람.
추동은 순순히 따라서 움직였다.
하무백이 굳이 그의 멱살을 잡을 필요가 없이.
***
호남성 형산.
선유곡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절경이었다.
과연 중원 오악 중 남악다운 산세라 할까.
하무백은 주변의 경관을 둘러보았다.
선유곡의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었는데, 정작 선유곡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
벽력개에게 들은 대로 길을 잡아 깊숙한 계곡을 타고 들어가니, 과연 선유곡의 현판이 멀리 보였다.
이미 벽력개가 전갈을 보낸 것일까.
공손무외가 정문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하무백을 발견한 듯 단번에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어서 오게나. 하하하. 어서 와!"
하무백의 두 손을 잡고는 정말 반가이 인사를 건네는 공손무외.
남궁 남매와 남궁휘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관계이길래 선유곡의 곡주가 이리도 반긴단 말인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손무외와 함께 나온 공손비연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는 면사 따위로 얼굴로 가리고 있지 않아 눈부신 미모가 더욱 화사하게 빛났다.
"자, 자. 먼 길 피곤할 텐데 어서들 들어가지."
공손무외가 직접 이들을 안내해 선유곡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빈객당.
호화롭기 그지없는 별채 하나가 이들에게 배정되었다.
가장 중요한 귀빈들에게만 내주는 곳이라 했다.
"일단 여독부터 풀고, 저녁때 회포를 풀도록 하지. 허허허."
그 말을 남기고는 공손무외와 공손비연이 사라졌다.
"대체 교관님은 선유곡과 무슨 인연이신 거예요?"
남궁지유가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작은 도움 좀 줬을 뿐이다."
하무백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아무 방이나 문을 열고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공손무외의 말대로 여독을 풀어야 했으니까.
오랜만의 원행은 제법 피곤했다.
육체적으로는 전혀 피곤하지 않은 경지의 고수지만, 하무백은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다.
저녁때까지는 쉬어야 하니까.
추동은 눈치를 살피다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
사실 몇 번 도망을 칠까 하고 점괘를 뽑아봤었다.
그때마다 너무도 확실히 나오는 사(死)라는 점괘에 이제는 그냥 이들의 처분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게 되었다.
남궁휘와 남궁지후, 남궁지유가 각자의 방을 정하고는 여독을 풀었다.
욕실도 네 군데나 있었고, 모두 따뜻한 물이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남궁지유는 욕실에서 묵은 먼지부터 씻어냈다.
자신들을 마중 나온 공손비연의 아름다운 모습에 묘한 경쟁심이 생긴 탓이다.
보는 순간 알았다.
무림오화 중 선유곡의 선국화가 그녀임을.
자신 역시 남궁세가의 연난화라 칭해지는데, 그녀에 비해 모자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인의 묘한 자존심이었다.
붉은 노을이 조금씩 몰려오는 시각.
하무백은 침상에서 일어나 욕실에서 몸을 씻었다.
손이 된 입장에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몸을 단정히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공손비연이 직접 찾아왔다.
시종이나 시비를 보내도 될 일을 직접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선유곡에서 하무백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궁가의 사람들의 얼굴에 옅은 긴장이 어렸다.
이제 가서 대화를 나누며 마진기에 대한 것을 알아보게 될 터.
부디 그가 살아있기를 세 사람은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