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50화 (250/312)

250화. 어찌 알았나?

공손비연이 앞장서고 하무백이 그 뒤를 따랐다. 남궁가의 세 사람은 하무백의 뒤를 따랐고.

추동은 숙소에서 머물겠다 하였다.

그로서는 떨떠름한 곳일 터다.

모산파에서 쫓겨난 몸인데, 선유곡이라니.

그것도 곡주와 함께 저녁 만찬이라니.

그렇게 공손비연을 따라간 연회실은 넓었으나 화려하지 않고 격조 있는 공간이었다.

만찬답게 식탁 위에는 갖가지 요리들이 가득했다.

공손무외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하무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그래 여독은 잘 풀었는가? 어서 앉게나."

공손무외가 연회장에 당도한 하무백 일행을 반가이 맞았다.

그의 시선이 남궁가의 사람들에게도 머물렀다.

"과연 연난화로군. 아름답기 그지없는 모습이야."

공손무외의 격찬에 남궁지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공손비연이 있기에 그녀 역시 면사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하무백은 처음으로 공손무외의 아들이자 공손비연의 아버지인 공손우경을 만났다.

그렇게 서로 간에 인사를 마치고 적당히 그간의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요리는 하나같이 그 맛이 훌륭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술잔을 내려놓은 공손무외가 하무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야 자네가 본곡을 방문해 주어 기껍기 그지없네만. 걸음을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자네가 이 먼 곳까지 그냥 올 리는 없을 터. 무언가 일이 있는 것이겠지?"

공손무외의 물음에 공손비연이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하무백을 겪었기에 그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은가.

공손무외가 그리 생각했기에, 이 자리에 선유곡의 사람은 공손가의 세 사람이 전부였다.

분명 하무백이 무언가 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에.

공손무외의 시선이 남궁가의 남매와 무인에게로 향했다.

하무백 본인이 아쉬운 일은 없을 터.

하면 저들과 관련이 있는 일일 것으로 추측했다.

"선유곡에 마진기라는 술법사 분이 계시다 들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백은 넘었을 것이라는 추동의 말에 하무백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했다.

마진기의 이름이 나오자 공손무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이름이 하무백에게서 나올 줄은 예상도 못 했다는 듯.

"허. 자네가 그분은 어찌 알고······."

"연세가 많으시다 들었는데

"정정하시네."

하무백이 걱정스레 묻자 공손무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는 하무백이 아닌 남궁 남매와 남궁가의 무사였다.

공손무외의 눈길이 자연스레 그들에게로 향했고.

찬찬히 세 사람을 살피는 공손무외.

이내 무엇을 깨달았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신색을 회복했다.

"허어."

그리고 흘러나오는 한숨.

"강호에 떠돌던 소문이 헛소문이라 여겼는데, 진실이었구만······."

그의 말에 흠칫하는 남궁지유와 남궁지후.

마진기.

그 이름이 나온 것과 그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만으로 전후 사정을 짐작해 낸 공손무외에게 놀랐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공손비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공손우경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비연이는 가서 마 어르신을 모시고 오너라."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심부름이었으나, 공손비연은 조심스레 일어나 연회장을 나섰다.

분위기가 무거운 탓이다.

잠시간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하무백이 묵묵히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소리가 들릴 뿐.

그런 하무백을 향해 공손무외가 물었다.

"어찌 알았나?"

"네?"

"마 어르신 말일세. 강호에는 그 술법에 대해 아는 이가 극히 드물 텐데."

"맹의 정보를 마음껏 열람할 수 있는 이가 알려주더군요."

하무백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대답에 공손무외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천맹에 마진기와 그 술법에 관해 지나가듯 흘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가문의 후계 구도 때문에 시끄러울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설마 그것마저 맹에 기록으로 남아 있었을 줄이야.

공손무외가 안타까운 눈으로 남궁 남매와 남궁휘를 바라보았다.

"남궁세가가 시끄럽겠구만."

안타까움 가득한 목소리다.

공손우경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 어르신의 어느 술법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소곡주인 그는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아버지와 외인들이 알고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어차피 세상에 알리지 않으려 했던 일이라 너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니."

그 기색을 눈치챈 공손무외가 아들의 서운함을 달랬다.

"그리고 하 교관.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술법이지."

이어진 공손무외의 말에 이번에는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버지······."

공손우경이 깜짝 놀랐다.

저 말의 의미를 공손우경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할애비다. 최후에는 열어볼 생각이었느니라. 네 녀석이 너무 쉽게 의지하는 것 같아 그리 말했다만."

공손무외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하무백과 남궁가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대화였다.

공손무외가 다시 하무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헌데, 아무리 자네라 한들 남궁세가가 상대라면 힘들지 않겠는가?"

빙그레 웃음 짓는 하무백.

"어긋나 틀어진 것을 바로 잡는 일이 어렵고 힘들 뿐이지요. 남궁세가를 상대하는 일이야, 뭐······."

광오한 대답이다.

남궁세가를 상대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다는 저 모습.

그럼에도 공손무외는 그저 머리를 주억거릴 뿐이다.

인정한다는 듯.

세상 어디에서 저런 무인이 나타났을까.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허허. 곡주. 이 늙은이를 찾았다고요?"

그때 창노한 웃음소리와 함께 선풍도골의 노인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하얗게 센 머리와 긴 수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대번에 신선이라며 납작 엎드렸을 그런 외모였다.

"어르신. 어서 오시지요."

공손무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진기를 맞았다.

다른 이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인 일이오이까?"

마진기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조심스레 그 뒤를 따라온 공손비연 역시 자리에 앉았다.

"본곡의 중요한 손님이 어르신을 청해서요."

오는 길에 공손비연에게 대강 듣기는 한 터.

마진기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가 그대로 멈췄다.

세차게 떨리는 두 눈.

"허어. 세상에 이런 대단한 이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감탄을 흘리는 마진기.

그는 하무백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남궁지유와 남궁지후, 그리고 남궁휘를 살피고는 다시 돌아왔다.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찾은 이유는 대강 알겠구먼."

남궁 남매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저 손님이 소유를 치료해준 귀인입니다."

"제 사부께서 행하신 일일 뿐입니다."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허어. 내 생명의 은인이었구만."

마진기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소유를 치료했을 뿐인데, 어찌 마진기의 생명의 은인이 된단 말인가.

"본곡의 중요한 기밀일세. 남궁세가의 소공자와 소공녀는 지켜줄 수 있겠는가?"

공손무외의 물음에 두 사람, 아니 남궁휘까지 세 사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남궁세가의 소공자와 소공녀이니. 본곡에는 신서(神書)라는 것이 존재한다네."

공손무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선유곡의 신서.

술법에 있어 선유곡을 천하제일이 될 수 있게 해준 신비로운 서책.

강호에 은밀히 퍼져 있는 소문이었다.

"신서는 본곡 술법의 시작이자 끝이지. 전지하고 전능하다고 여겼었으니."

그리 말하는 공손무외의 입가에 고소가 어렸다.

"그런데 전지하고 전능하지 못한 모양이군요."

하무백의 말에 긍정하는 공손무외.

"그렇더구만. 신서를 열었는데, 불가라는 답만 얻었었다네."

전대 곡주의 병증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때를 이름이다.

물론 그런 자세한 사정은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최근 신서를 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지."

하무백은 그 말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대가가 있나 보군요."

"수명일세."

마진기가 답했다.

"이번에 신서를 열었다면, 몇 사람의 수명이 줄었을 것이고, 그중 한 사람이 나였네. 아마 그랬다면 난 천수를 다했겠지."

마진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구음절맥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까?"

하무백의 물음에 선유곡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거 신서가 아니라 마서(魔書) 아닙니까?"

적나라한 하무백의 지적에 남궁가의 이들이 깜짝 놀랐다.

사실 남궁지유 역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었다.

사람의 수명을 대가로 지식을 나눠주는 존재라니.

책이라 부르고 있지만 과연 책일지도 의문이었다.

"허허허. 옳은 말일세. 그래서 최근에는 거의 열지 않는다네."

마진기는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그럼에도 신서라 부르는 것은 신서를 열 때, 우리의 물음에만 답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무수한 술법의 파편들이 흘러나온다네. 본로가 본곡에서 신서를 여는 의식을 집행하는 자리에 있는지라 그 파편을 가장 많이 얻었지."

불가해한 존재인 듯했다.

신서라는 것은.

"그중에 자네들이 바라는 술법도 있었다네."

그 말에 남궁 남매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진기가 남궁 남매와 남궁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비와 자식들이지? 나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네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를 못할 테니."

마진기의 말에 공손우경과 공손비연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남궁지유와 남궁지후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주의 장녀와 장남 아닌가.

남궁세가의 소공녀와 소공자.

헌데 그들의 아비가 지금 저기 함께 있는 외팔이 무인이라고.

기함할 일이다.

"아······."

공순우경이 작은 탄성을 흘렸다.

아버지가 말한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그 역시 그 소문을 알고 있었으니.

헌데 마진기에게 도와달라고 왔다는 것은.

설마.

"혹시··· 부모와 자식의 사이를 확인할 수 있는 술법이 있단 말입니까?"

공손우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런 술법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

그럴 수밖에.

혈통을 증명하는 술법 자체만도 얼마나 어려운 술법인지 잘 아는 까닭이다.

"신서의 파편 덕에 어찌어찌 알게 되었느니라."

마진기가 담담히 답했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며 이곳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이해하게 된 공손우경.

그는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소공자와 소공녀의 아비가 따로 있었다니, 크나큰 일이로군. 당연히 이 늙은이가 남궁세가로 함께 가서 증명해 주어야 하는 일이겠지?"

마진기의 물음.

"송구스럽습니다만. 부디 부탁드립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남궁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어찌 된 사연인지 들어나 보세."

마진기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연을 이야기하는 이는 남궁지유였다.

이미 선유곡의 기밀을 들은 데다, 부탁하러 온 처지.

사연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남궁세가에서 일이 벌어지면 강호 전역으로 소문이 퍼져나갈 터이기도 했고.

그렇게 선유곡의 사람들은 남궁지유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을 무렵.

공손가의 사람들과 마진기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함께 자리했다.

가주가 되기 위해 저지른 일이 천인공노할 짓이었기에.

천륜을 어기고, 아비와 어미를 죽이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게 이 천륜을 바로 잡으라고 하 교관 같은 귀인을 본곡에 보내준 모양이로군. 해서 신서를 열지 않고 소유를 고칠 수 있었던 게야."

마진기가 담담히 말했다.

"그 말씀은?"

남궁지유가 희망에 찬 눈으로 물었다.

"내 도와주겠네. 남궁세가로 가서 그 술법을 사용하도록 하지."

마진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동시에 일어나 허리를 숙이는 남궁가의 세 사람.

그들의 얼굴은 붉게 변해 있었다.

"나도 함께 가세나."

공손무외가 입을 열었다.

"아, 아버님!"

공손우경이 깜짝 놀라 외쳤다.

타 문파의 일에 선유곡의 술법사가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인데, 곡주가 직접 나서다니.

"마 어르신을 보증해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게다."

공손무외가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남궁세가와의 관계가······."

애초에 구파일방, 오대세가와 신진팔문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정파라는 큰 울타리에 함께 하고 있었는데.

선유곡이 남궁세가의 일에 이렇게 끼어들게 되면, 두 문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파일방, 오대세가와 신진팔문 사이에 큰 골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뭐, 이 일이 끝나면 남궁세가는 본곡의 최우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공손무외가 하무백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그가 이리 적극적으로 나선 이상 남궁세가의 운명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으니.

***

남궁화현은 막냇동생 남궁화우가 휴가를 내고 본가에 왔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놈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쯧."

본가에서 떨어뜨려 놓으려 호천단주가 되는 것을 밀어줬던 것인데.

일 년 좀 지나서 휴가로 본가를 찾다니.

언짢았다.

불쾌한 기분에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았는데.

쩌적.

찻잔 받침이 금이 가면서 갈라졌다.

남궁세가주가 사용하는 다기다.

희대의 명품으로 사용하고 있을 터인데, 이리 갑자기 금이 가버리다니.

이 무슨 일인지.

남궁화현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 들었다.

찻잔 받침에는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푸른 하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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