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51화 (251/312)

251화. 흉(凶)!

선유곡이 있는 호남성에서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까지는 먼 길이었다.

강서성이나 호북성을 거쳐서 가야 했으니.

그런 만큼 서둘러 달렸다.

들리는 마을마다 마시장에서 최고의 준마들로만 골라서 바꿔 타며 달리고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안휘성 합비.

남궁휘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남궁세가의 담장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도 와서 보았던 곳.

허나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아들과 딸과 함께였으니까.

그리고 든든한 조력자도 있었다.

이제 저곳에서 떳떳하게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떠날 생각이었지만.

일단 일행은 근처의 객잔의 별채를 잡고 여독을 풀었다.

깊은 밤.

하무백이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잠시 함께 가지.]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낸 하무백.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면사로 얼굴을 가린 남궁지유가 나왔다.

"무슨 일이신가요?"

남궁지유가 조심스레 물었다.

"앞으로의 행보를 논의해야 하니까."

그러면서 남궁지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손을 바라보는 남궁지유.

해야 할 논의와 내민 손의 상관관계를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남궁화우와 해야지."

하무백의 말에 남궁지유의 얼굴이 놀람의 기색으로 가득 찼다.

야심한 시각이다.

그 말인즉.

남궁세가의 경계가 최고조에 이른 시각이란 의미였다.

헌데, 지금 남궁화우를 찾아가겠다고?

사전에 약속도 없었는데?

어떻게?

온갖 의문이 떠오르는 얼굴.

거기에 하무백 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까지 데리고 가겠다니.

"일단 잡아."

짧게 말하는 하무백.

남궁지유가 주저주저하며 그 손을 잡았다.

걱정과 달리 이미 하무백의 기감은 남궁세가 전체에 퍼져 있었다.

가볍게 땅을 박찼다.

바닥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고, 움직임에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것은 남궁지유의 신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무백의 내공이 남궁지유의 전신을 감싸며 완벽하게 그 기척을 지웠다.

그렇게 허공을 가볍게 날아 하무백이 남궁세가의 담벼락을 넘었다.

그 누구도 하무백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했다.

남궁지유가 함께 있는지조차 몰랐다.

하무백은 제집인 양 너무도 편안하게 남궁세가의 외원을 가로질러 내원으로 접어들었다.

남궁지유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기척까지 완벽하게 지운 것은 물론이고, 하무백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남궁화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움직임.

"역시 가주는 자기 막내동생도 믿지 않는군."

남궁화우가 머무는 작은 별채 주변의 기척을 살핀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렸다.

남궁지유가 깜짝 놀랐다.

감시자들이 있는 곳에서 저렇게 중얼거리는 하무백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요했다.

어떤 반응도 없었다.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한 것이다.

이 모든 행동을 아무것도 아닌 양,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럽게 행하는 하무백의 모습에 남궁지유는 계속해서 놀랐다.

괴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항상 상상을 초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무백은 주변을 가만히 살폈다.

여기까지는 쉬웠으나, 무려 다섯 사람이 신경을 집중해서 감시하고 있었다.

혼자였으면 어렵지 않았으나, 지금은 남궁지유도 함께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잠깐의 틈 정도는 필요했다.

해서 지금 그 틈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에,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흩날렸다.

그 순간 하무백이 움직였다.

흩날리는 나뭇잎의 틈 사이로 하무백과 남궁지유의 신형이 완벽히 숨어들어 그대로 흐르듯 움직였다.

그렇게 별채 안으로 스며든 하무백과 남궁지유.

감시자들은 그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깊은 잠에 빠져든 남궁화우도 하무백의 방문을 전혀 몰랐다.

"그만 일어나지."

낮은 속삭임.

그 작은 소리에 남궁화우가 깜짝 놀라 곁에 두었던 검병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하무백과 남궁지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세차게 떨었다.

"어, 어떻게······."

남궁세가의 경계를 뚫은 것도 그렇지만, 지금 자신의 거처에는 감시자가 붙어 있는 상황.

그들마저 완벽하게 속이고 들어오다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이제부터 할 이야기가 중요하지."

하무백은 그러면서 남궁지유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선 남궁지유.

하무백의 기막 속에서 두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

남궁화진은 직계의 무인이었다.

자신의 아들은 방계가 되는, 직계 중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직계.

그럼에도 뛰어난 실력에 암영의 일인이 되었다.

암영에서도 특히나 은잠과 감시에 능했다.

그런 그가 남궁화현의 명령을 받고 남궁화우를 감시하기를 며칠째.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남궁화우의 거처를 감시하고 있었다.

'응?'

그러던 순간.

그의 표정이 변했다.

남궁화우의 거처에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남궁화진의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변화가 있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분명 희미하지만 남궁화우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헌데 지금은 그 기척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무슨 꿍꿍이냐?'

지금까지 조용하던 남궁화우가 움직임을 보인 것.

남궁화진은 수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조금 더 남궁화우의 거처 가까이 이동했다.

그런데도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 주시하고 있으니, 다시 남궁화우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과 다름없는 기척.

남궁화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계속 감시하도록.]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남궁화진은 조용히 움직였다.

별거 아닌 변화였지만, 남궁화현에게 보고해야 했다.

털끝만 한 변화가 있더라도 보고하라 하였으니.

잠에 빠져들어 있던 남궁화현은 호위무사의 보고에 눈을 떴다.

그리고 집무실에서 남궁화진을 맞았다.

"무슨 일이지?"

"남궁화우의 거처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궁화현의 두 눈이 빛났다.

"변화?"

"네. 이 각 정도,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흐음······."

잠시 생각에 잠기는 남궁화현.

"드나든 사람은 없었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궁화진은 확신에 차서 답했다.

그럴 수밖에.

한시도 그 거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전력을 다해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기척이 사라졌던 것도 알아차렸으니.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는 남궁화현.

드나든 사람 없이 고작 이 각의 시간 동안 기척이 사라진 것.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남궁화진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저리 확신한다면 드나든 사람이 없는 것은 확실할 터.

"후우··· 녀석은 왜 본가에 와서는 이리 심기를 어지럽히는지. 계속 감시하도록."

"알겠습니다."

남궁화현의 명령에 남궁화진은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남궁화현 역시 다시 침실로 향했다.

그가 집무실을 벗어난 후.

파직.

남궁화현이 톡톡 두드렸던 의자의 팔걸이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멋지게 음각된 구름 문양이 쩌적 갈라졌다.

***

"그래 어쩌기로 하였는가?'

기분 좋은 아침.

식사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공손무외가 하무백에게 물었다.

이미 간밤에 하무백이 남궁세가를 다녀왔음을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지유와 지후가 오늘 세가에 복귀하기로 하였습니다. 곡주를 귀빈으로 모시고."

공손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교룡관에서 갑자기 세가로 복귀할만한 명분이 되겠구만."

무려 선유곡의 곡주다.

그가 남궁세가를 방문하는데 남궁지후와 남궁지유가 함께 했다면 교룡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고 바로 남궁세가주를 만날 수 있겠구만."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남궁화우도 나올 거에요. 세가의 어른들도."

당연한 일이었다.

신진팔문 중의 한 곳인 선유곡.

더군다나 선유곡의 의술에 신세를 지지 않은 문파가 없을 정도이니.

그 정도 의전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때 남궁화우가 터트릴 겁니다."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흐음······."

턱을 쓰다듬는 공손무외.

"현재 수문위사들인 외원의 무사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몰라요. 추동도 물론이고요. 그러니 내원의 가주를 만날 때까지는 아무 제지가 없을 거예요."

어쩌면 남궁휘를 선유곡의 무사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네의 얼굴을 아는 이는 있을지도 모르는데?"

공손무외의 물음에 하무백은 빙그레 웃었다.

"저는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하긴. 자네라면."

공손무외는 금세 수긍했다.

"다만. 곡주께 너무 큰 부담을 지워드리는 게 아닐지 걱정입니다."

하무백의 말에 남궁 남매가 슬그머니 공손무외의 눈치를 살폈다.

그 말대로였으니까.

공손무외에게 지금 이 일은 전혀 상관없는 타 문파의 일이었으니까.

그것도 남궁세가다.

남궁세가의 가주와 맞서는 일.

공손무외 개인이 아닌 선유곡이라는 문파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공손무외는 빙그레 웃었다.

"이미 나와 본곡이 자네에게 큰 도움을 받았네. 그런 자네가 이들을 돕겠다는데, 나 또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일이네."

"그렇다고는 해도······."

"게다가 자네가 이리 나서는 일이니. 실패할 일은 없지 않은가?"

그 물음에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성공시킬 겁니다."

그 말에 공손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성공시킬 거라는 말.

그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 공손무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손무외는 그날 하무백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만물련 최강 최악의 화기를 무력화시키던 하무백의 모습을.

"그렇다면 이미 성공한 일 아닌가. 그런데 무슨 부담이 되겠는가."

하무백에 대한 확고한 믿음.

"감사합니다.'

하무백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남궁 남매와 남궁휘는 공손무외에게, 그리고 하무백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추동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미친 인간들······.'

여전히 점괘는 혀 설(舌)이 나오고 있었다.

남궁세가가 어떤 곳인데 저리 대수롭지 않게 말하다니.

아무리 선유곡이라 하더라도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아무래도 남궁세가에 비해 많이 약했다.

무림 문파라지만, 의술과 술법에 집중한 문파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소수로 남궁세가의 중심으로 당당히 들어가겠다니.

점괘는 하무백이 귀인이라 했지만.

귀인이라고 칼이 빗겨 가는 게 아니었다.

추동은 조심스레 하무백의 점괘를 다시 뽑아 보았다.

'붕(崩)?'

무너진다는 것일까? 무너트린다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어 고민하던 추동의 머리에 번쩍 스치는 생각.

이걸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추동은 남궁화현의 점괘를 뽑아 보았다.

이십여 년 전 그에 관해 무수히 점괘를 뽑았기에, 지금도 뽑을 수 있었는데.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니.

그렇게 뽑은 점괘.

'흉(凶)!'

믿을 수 없는 점괘가 나왔다.

남궁화현의 오늘 점괘가 흉이라니.

그에게 횡액이 닥칠 거라는 의미 아닌가.

오늘 횡액이라 할만한 일이라고는.

이들의 방문뿐이었다.

"허······."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흘린 추동.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점괘를 뽑았다.

이번에는 남궁휘의 점괘였다.

연(緣).

인연 연이 남궁휘의 점괘로 나왔다.

남궁화현은 횡액이, 남궁휘는 인연이.

점괘가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오늘 이들의 일은 성공을 한다는 의미. 그렇다면 하무백에게서 나온 붕이라는 점괘는.

'허어··· 저 인간이 남궁세가를 무너트린다고? 한 개인이?' 자신의 점괘이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점괘였다.

마진기는 그런 추동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하룻강아지를 바라보는 범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 슬슬 움직이도록 하지요."

어느새 식사가 끝났다.

차도 비웠다.

마침 남궁세가에 방문하기 적당한 시간인 듯했다.

하무백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행들 모두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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