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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52화 (252/312)

252화. 무슨 제안이더냐?

객잔을 나서는 순간 하무백은 사라졌다.

하늘로 솟은 듯, 땅으로 꺼진 듯.

어디에서도 그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함께 있는 이들 중 놀라는 이는 없었다.

이미 그간 하무백이 어떤 사람인지 겪어온 탓이다.

남궁지후가 앞장섰다.

그렇게 그들은 남궁세가의 정문으로 향했다.

수문위사들은 한눈에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교룡관에 있어야 할 남매가 전갈도 없이 갑작스레 세가로 귀환한 탓이다.

"대, 대공자님. 대공녀님. 어떻게······."

수문위사 조장이 깜짝 놀라 뛰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귀빈께서 본가에 방문하신다고 하여 모시고 오느라 그렇게 되었네."

남궁지후가 담담히 답했다.

"귀빈 말씀이십니까?"

조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가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선유곡의 공손무외 곡주님이시네."

남궁지후의 말에 수문위사 조장은 두 눈을 부릅떴다.

어찌 아니 그럴까.

신진팔문 중 한 곳의 문주다.

그런 이가 미리 기별도 없이 남궁세가의 대공자, 대공녀와 함께 나타났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아, 안에 서둘러 저, 전하겠습니다."

조장은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안으로 달렸다.

그와는 별개로 다른 수문위사가 안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남궁세가의 대공자, 대공녀를 문 앞에 세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

"내 직접 접객원으로 모시겠네."

남궁지후의 말에 앞장서던 수문위사는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남궁지후 일행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남궁세가의 내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죽립을 쓴 남궁휘와 추동, 마진기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공손무외의 조촐한 수행인원 정도로 여겼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는 공손무외를 접객원의 가장 상급의 방으로 안내했다.

한 문파의 수장이 올 때나 내어놓는 곳이었다.

공손무외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었기에, 접객원의 관리인들도 남궁지후의 명을 따랐다.

접객원을 찾은 이는 남궁화우였다.

이미 이리 찾아올 것을 알고 있던 그 아니었던가.

남궁화우의 움직임은 남궁화진을 통해 즉각 남궁화현에게 보고되었다.

"뭐라?"

남궁화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조금 전에 공손 곡주의 방문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와 함께 왔다고 했다.

대체 그 아이들과 무슨 접점이 있다고.

그런데 남궁화우는 또 어찌 알고 접객원으로 향했을까.

이 소식을 남궁화진이 전했다.

남궁화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서둘렀다.

선유곡의 곡주가 대체 왜 기별도 없이 남궁세가를 찾았단 말인가.

정천맹 내에서의 노선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절대 홀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지난 두 번의 전쟁에서 정파 중 선유곡의 신세를 지지 않은 문파는 없었으니.

남궁세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궁화현이 접객당에 당도하니, 이미 남궁화우가 공손무외와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공손 곡주님을 뵙습니다. 소식을 조금 전 들어 늦었습니다. 송구합니다."

남궁화현은 일단 곧장 공손무외에게로 향해 인사를 전했다.

공손무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 가주님을 뵙습니다.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이 공손모의 잘못이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불청객인에 이리 환대해 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는 인사.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궁화현의 시선이 남궁화우에게로 향했다.

"네 녀석은 이곳에 어쩐 일이냐?"

"맹의 호천단주로서 선유곡주께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형님."

"휴가 중이라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 한들 선유곡의 곡주님께서 오셨는데, 휴가 핑계를 댈 수는 없지요."

남궁화현의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의 시선에 죽립을 쓴 삼 인이 들어왔으나 곧 무시했다.

공손무외의 수행인으로 여긴 것이다.

외팔이가 섞여 있는 것이 신기했으나, 의술이 뛰어난 선유곡이니 그곳에 신세를 지고는 은혜를 갚기 위해 수행인이 되었겠거니 홀로 추측했다.

그들의 기도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었다.

남궁화현의 시선이 남궁지유, 남궁지후 남매에게로 향했다.

"너희는 이런 귀빈을 모시고 오는데, 세가에 미리 연락하지 그랬느냐."

차가운 말소리.

아비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일말의 정도 없는 사무적인 말이었으니.

"곡주님을 모시는 데 신경 쓰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쯧."

남궁지후의 사죄에 그저 혀를 차는 남궁화현.

"먼 길 오시느라 피로하실 텐데 여독을 좀 푸십시오. 오늘 저녁에는 연회를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남궁화현은 공손무외와 인사를 나누고는 접객원을 떠났다.

잠시 걸음을 멈춰 접객원을 바라보는 남궁화현.

알 수 없는 찝찝함이 그의 가슴 한 곳에 자리했다.

[화진.]

남궁화현의 전음에 남궁화진이 즉각 답했다.

[네. 가주.]

[이곳을 살펴라.]

[알겠습니다.]

남궁화현은 수하들에게 일러 성대한 연회를 준비토록 했다.

선유곡주의 방문인 만큼 세가의 명숙들 대부분이 참여해야 할 터.

아직 점심 무렵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더라도 시간이 빠듯했다.

***

남궁화현이 떠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후우······."

남궁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남궁화현이 이곳을 찾은 순간.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분노와 살심을 억누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었기에 전력을 다해 억눌렀다.

기도를 숨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정말이지 몇 번이고 출수할 뻔했다.

특히나 남궁지후에게 그 차가운 말을 건넬 때.

그때는 당장에 뛰쳐나갈 뻔하지 않았던가.

"하아, 하아."

반면 추동은 긴장이 풀린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언제 남궁화현에게 들킬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탓이다.

"허허. 그럼 저는 이만 좀 쉬겠습니다. 호천단주는 저녁 때 뵙지요."

"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는 이들.

이미 접객원 주변에 감시가 깔렸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는 탓이다.

남궁화우가 떠나고.

"저희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도 접객원을 떠났다.

남은 네 사람.

여독을 푼다는 핑계로 각자의 침실로 들어갔다.

추동은 여전히 긴장한 채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면서 연신 점괘를 뽑아 보았다.

결과가 항상 같았기에, 자신의 점괘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대체 생은 언제 나오는 것인지.'

자신의 신변에 관한 점괘가 여전히 흐리다는 것이 너무나 불안했다.

계속해서 혀 설만 나오고 있었으니.

남궁휘는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분노와 살심을 억누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

평정심을 잃어 검 끝이 흔들린다면.

남궁화현을 베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남궁휘의 심상에서 대연검법의 시작부터 끝이 담담히 파도쳤다.

종국에는 제왕검형으로 이어지는 대연검법.

익히지 않았지만 스스로 깨달은 검형.

그 파도의 끝은 남궁화현을 향하고 있었다.

마진기는 담담히 자신의 술법을 점검하고 있었다.

친자 확인의 술법.

절대 쉬운 술법이 아니었다.

신서의 파편에서 겨우 알게 된 술법이니 당연한 일.

언제고 펼칠 수 있게 다시 한번 술법의 시작과 끝을 확인했다.

공손무외는 그저 쉬었다.

자신이 할 일은 이제 끝이었으니.

자신의 환영 연회.

거기까지가 공손무외의 역할이다.

남궁화현의 추악함을 알릴 판을 까는 것.

이제 이후의 일은 남궁화우에게 달렸다.

남궁화현이 오기 전까지 이미 전음으로 논의를 마친 터.

'하무백. 그 친구는 항시 강호의 태풍을 몰고 다니는구만.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야. 태풍의 눈과도 같은 사람이로고.'

하무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 공손무외.

그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

"뭐야? 교룡관에 있어야 할 녀석이 세가에는 무슨 일이냐?"

남궁지후를 발견하고 대뜸 시비를 걸어오는 인간.

사촌형 남궁지린이다.

사촌들 중 나름 재능이 뛰어난 인물.

허나 남궁지후와 남궁지유에게 늘 비교가 되면서 그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열등감이 가득한 이였다.

"일이 있어서."

"훗. 제왕검형을 제대로 못 익혀서, 엿보기라도 하려고 온 건 아니고?"

소가주가 되기 위한 조건.

제왕검형.

현재 남궁세가에서 제왕검형의 성취가 가장 뛰어난 이가 바로 남궁지린이었다.

그랬기에 당당한 얼굴로 남궁지후를 향해 조소를 날리는 것이다.

직접 익혀보니 제왕검형이 얼마나 어려운 검법인지 알았기에.

가르침 없이 홀로 비급을 보고 그것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남궁지린의 조소에 남궁지후 역시 조소로 응수했다.

"글쎄? 과연? 훗."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았지만.

그저 남궁지후의 조소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남궁지린.

"네놈이 언제까지 그리 건방지게 구는지 두고 보자. 내가 소가주가 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남궁지후를 바라보는 남궁지린.

그러나 남궁지후는 무심한 눈으로 그의 눈빛을 받아넘길 뿐이다.

그리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그런 남매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남궁지린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빌어먹을 년놈들······."

남매의 사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주의 마음이 저들에게서 떠났음을.

그러니 자신들의 제왕검형을 직접 확인하고 수련을 독려하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가주의 눈에 찰 만한 성과를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다지만.

남궁지린은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못난 탓이 아니다.

제왕검형이 지고한 경지의 난해한 검법인 탓이라고.

***

하늘의 태양은 빠르게 남궁세가를 비껴갔다.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시각.

시비가 접객원에 방문했다.

공손무외를 연회장으로 모시기 위해서였다.

공손무외는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그 모습에 시비는 잠깐 곤란한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공손무외만 모셔 오라는 명을 받은 것이겠지.

그럼에도 시비는 연회장으로 그들 일행을 안내했다.

나머지는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라는 마음.

그녀는 그저 시비일 뿐이었으니까.

연회장에 당도하니 이미 남궁세가의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선유곡 곡주의 방문 소식에 모여든 이들이다.

그중에는 남궁지린 역시 있었다.

남궁지후와 헤어지고 나서야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 년놈이 저런 귀빈을 모시고 왔다니.

그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유곡의 곡주와 교분을 나눌 기회를 그들 남매가 가졌다니.

공손무외가 수행원들과 함께 온 모습에 신경을 쓰는 이는 없었다.

그저 그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쌓으려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두 모이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서로 간에 좋은 말이 오가며 분위기가 한층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온갖 산해진미의 맛은 훌륭했고, 악공들의 음악은 감미로웠으며, 천하명주는 달디 달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

남궁화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궁화현의 동생으로 남궁지린의 아비였다.

"하하, 선유곡의 곡주께서 귀한 걸음을 해주신 덕에 이토록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남궁가의 화영이 연회의 흥을 더할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내공을 실은 음성으로 말하자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무슨 제안이더냐?"

남궁화현의 물음.

"본 세가의 소가주가 되기 위해 전력으로 제왕검형을 수련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연회의 여흥을 더하기 위해 그중 뛰어난 이 둘의 비무는 어떨까 합니다. 수련 중인 제왕검형으로요."

그 말에 남궁가 사람들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제왕검형을 사용한 비무라니.

그것도 이제 갓 수련을 시작한 후기지수의.

이 자리에는 직계로서 제왕검형 전반부를 익힌 이도 있었고, 방계인지라 견식도 못 해본 이들도 있었다.

두 부류 모두에게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남궁세가의 미래를 선보이는 자리가 되기도 할 것이기에.

물론 이 제안은 남궁지린이 아버지에게 부탁한 것이다.

남궁지후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망신 주기 위해서.

두 사람이라 하면, 당연히 대공자인 남궁지후와 가장 성취가 뛰어난 남궁지린 자신이 선택될 것임을 알았기에.

남궁화현의 시선이 공손무외에게로 향했다.

"곡주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허허. 남궁세가 최고의 검이라는 제왕검형으로 안계를 넓힐 기회를 얻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하는 공손무외.

그의 반응에 남궁화현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린이었다.

"두 사람은 중앙으로 나와라."

거대한 연회장을 따라 사각형을 그리며 배치된 식탁.

그 중앙에 넓은 공간이 있었다.

남궁지후와 남궁지린은 가주의 명에 각자의 검을 들고 그곳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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