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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57화 (257/312)

257화. 방법은 하나로군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남궁세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텅 빈 채 흔들리는 오른팔.

외팔이 사내는 왼손을 죽립에 가져가더니 천천히 그것을 벗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

상처투성이 중년인의 얼굴이었다.

검상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있었는데, 흉터가 희미하여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다.

다만, 희미한 흉터 덕에 용모는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고.

그렇게 드러난 얼굴에 대한 평가는.

잘생겼다였다.

마치 남궁지후처럼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 감상을 떠올린 몇몇 이들이 흠칫 놀랐다.

외팔이 중년 사내의 얼굴을 봤는데 왜 남궁지후와 그 용모가 비슷한 것일까 하는 사실에.

그런 그들과는 달리.

세가의 늙은 무인들은 충격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의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중년이 되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세월이 자리했으나,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흉터가 진했다면 인상이 사나워져서 몰라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런 희미한 흉터로 가릴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남궁화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외팔이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떤 소리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불신 가득한 눈빛만 중년 사내에게 닿아있을 뿐.

'저, 저놈이 어떻게··· 분명, 분명 확실히 죽었을 터인데··· 어찌 그런 상처를 입고 떨어져서 살아날 수가······.'

도무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 남궁화현.

그럴 수밖에.

예사 협곡에 떨어진 것이라면,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허나, 당시 그놈이 떨어진 협곡은 산월마림을 향해 세차게 흘러가던 곳.

그렇기에 그곳으로 흘러가 살아남을 리가 없었다.

산월마림 어디에선가 강시가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곳의 지리를 제대로 몰랐던 남궁화현의 패착이었다.

그 협곡 아래 물길은 산월마림으로 흘러 들어가 어느 마을을 거쳐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였다.

그 어느 마을에 남궁휘가 떠내려왔고.

그렇게 남궁휘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남궁화현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분명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남궁현철의 전음.

확실히 죽었다고 여겼기에, 암영을 투입하지도 않았었는데.

저렇게 살아서 나타나다니.

그동안 아무리 가문에서 그의 존재에 대해 지웠다고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였다지만.

그와 관련된 사람을 모두 숙청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휘, 휘, 휘··· 저, 저, 정녕··· 휘란 말이더냐!!!"

지금처럼 말이다.

멀리서 비틀거리면서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오는 노인.

추동의 폭로에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노인.

못해도 환갑은 지나 보이는 이었다.

이룬 경지가 낮았는지, 이마를 아로새긴 주름의 골은 깊었다.

그가 덜덜 떨면서 남궁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이름을 계속 중얼거리면서.

하무백과 남궁화우, 추동, 남궁휘가 있는 곳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왔다.

몇몇 무인들이 그의 행동을 막으려 했으나.

찌릿.

그때마다 날아오는 하무백의 살기에 얽매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궁휘를 마주 보고 선 노인.

그가 남궁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말, 휘···. 네, 네가 맞느냐······?"

노인의 행동에도 남궁휘는 그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눈을 가득 채운 습기.

남궁휘의 입술이 떨리는가 싶더니 조금씩 달싹거렸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한 마디.

"네. 숙부님. 소질··· 휘입니다."

"크흐흐흑. 사,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형님이, 형님이 이 사실을 아시고 떠나셨어야 하는데··· 크흐흐흑."

남궁휘의 대답에 노인, 아니 남궁휘의 숙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곧 통곡했다.

불과 두 해 전 세상을 떠난 그의 형, 남궁휘의 부친이 떠오른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의 생환,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형.

그 두 존재가 그로 하여금 그토록 서럽게 통곡을 하게 만들었다.

노인의 반응에 이곳에 있던 이들은 이제 모두 저 외팔이 중년인이 남궁세가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노인, 아니 남궁진은 외원 동쪽의 경계를 책임지는 방계의 무인이었으니.

그를 아는 이들은 많았다.

그가 저 사내를 조카라 하지 않았는가.

"잠깐···. 남궁휘라면······."

중년의 누군가가 남궁화우와 추동이 폭로한 사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십 년 전.

남궁화현을 따라나섰던 수행무사.

그의 이름이 분명 남궁휘였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었다.

추동의 주장에 따르면 남궁화현의 손에 죽었다는 남궁휘.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추동 저자의 말을 증명하라 하시었소이까? 내가 바로 그 증인이오. 가주. 아니 남궁화현!"

분노가 가득 담긴 차가운 외침.

차가웠기에 그 분노가 더욱 절절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사이 겨우 정신을 수습한 남궁화현.

남궁현철의 전음 덕이었다.

"자네가 어찌 살아났는지는 모르겠네만. 내가 세가에 돌아와 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네. 자네는 나와 두 부인을 살리기 위해 괴물 같은 강시들을 유인해 산월마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어느새 뻔뻔한 얼굴로 낯빛을 바꾼 남궁화현.

"자네의 그 희생에 참으로 슬퍼했다네. 그런데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 오늘처럼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자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날의 일을 그리 날조하는 것인지··· 내 알 수가 없구만. 혹시 화우 놈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인가?"

남궁화현의 말에 원로들을 비롯한 노회한 세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일을 겪고, 두 아이가 남궁가의 핏줄임을 확인하는 자리에 있었던 이들.

"그런 일은 없다. 남궁화현. 추동은 진실을 말했고 나 역시 진실을 말고 있음이니. 네 놈의 간악한 술수에 휘말려 나는 두 부인을 범하는 대죄를 지었고 두 아이를 회임시켰다. 나 역시 남궁의 핏줄. 내 아이라 할지라도 그 술법진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터이니. 이제 그만 그 가면을 벗어라!"

처음 마을을 떠나 합비로 향했을 때 이미 수없이 생각했던 장면이다.

하지만, 그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 상상 속의 자신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처참히 당해서, 무릎 꿇려진 채 저 남궁화현에게 악을 쓰는 모습이었으니까.

어찌 홀로 남궁세가의 엄중한 경계를 뚫고 저 빌어먹을 새끼를 이렇게 당당히 마주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기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헌데,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괴물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하무백.

그는 정녕 천외천의 고수였다.

"가주. 나도 묻고 싶소이다! 휘의 말이 정녕 진실이란 말이오이까?"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일까?

남궁진이 비척거리며 일어나 남궁화현을 향해 물었다.

"허어. 남궁진 동단주. 내 그대의 형인 남궁표 동단주를 어찌 대했는지 있었는가? 그리고 그가 맡았던 동단주의 자리를 왜 자네에게 맡겼는지도 잊었고? 모두 저기 있는 남궁휘. 저 친구 때문 아니던가?'

남궁화현의 답.

그러나 남궁진은 다시 물음을 던졌다.

"하면. 왜 휘의 흔적을 모두 지우려 하셨습니까? 자식 잃은 아픔에 힘들어하는 형님께 왜 휘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못 하게 하셨습니까? 외원 동단주의 직위는 그 대가 아니었습니까?"

세가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던 또 다른 비사가 남궁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허나, 그 말에 남궁휘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때문에 남은 가족이 고초를 겪었을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던 모양.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사그라들 원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니.

남궁휘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끝은 정확히 남궁화현에게로 향했다.

"네 놈도 무인이라면, 그딴 구차한 변명 따위는 집어치우고 검으로 말해라."

서릿발 같은 눈빛.

남궁화현이 남궁진과 남궁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남궁화현.

그의 시선이 남궁화우에게로 향했다.

"화우. 대단하구나.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거냐? 네 놈이 가주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짐작은 했다만,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줄은 몰랐구나."

남궁화현은 이 모든 것이 남궁화우가 반역을 일으키기 위해 날조하고 모함하는 것으로 몰아가려 했다.

"창천검대! 창궁검대! 창운검대! 제왕창궁검진을 발동하여 저 역도들을 쓸어버려라!"

남궁화현의 명령.

그와 동시에.

챙! 채채챙! 챙!

이백에 달하는 무사들이 동시에 검을 뽑았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악무는 남궁휘와 남궁화우.

하무백은 그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다가 움직였다.

검병을 잡은 것이다.

역수로.

스르릉.

그대로 검을 뽑아 든 하무백.

그의 검에는 묵빛 강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죽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푹.

검이 바닥에 꽂혔고.

파바바바바박!

묵빛 강기가 땅을 차고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그 모습에 대경한 남궁화현.

저 다음이 어떤 장면인지 불과 얼마 전에 겪지 않았던가.

"피, 피, 피해라! 흐, 흩어져!"

막 검진이 발동되려는 찰나.

다급한 가주의 명령에 무사들은 황급히 몸을 날렸다.

바닥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불길한 검은 선을 피해서.

그러나.

"터져!"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쿠르르르르릉!

콰콰콰콰쾅!

쿠콰콰콰쾅!

땅이 터지고, 갈라지고, 뒤엎어지면서.

지진이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강기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크어억!"

"커헉!"

"아악!"

사방에서 터지는 비명.

연회장이 무너진 이후에 몰려든 이들은.

조금 전의 그 폭발음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똑똑히 보았다.

왜 연회장이 사라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추풍낙엽처럼 폭발에 휩쓸려 날아가 버린 제왕창천검진.

딛고 선 땅을 저렇게 터트려 버리면 대체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저 괴물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잠시 후.

이백여 명의 무사들 중 절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피를 흘리고, 피를 토하고.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신음하는 이들.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하무백이 남궁화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후와 지유. 두 사람이 네 친자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남궁화현의 물음.

"추동과 남궁휘의 말에 증거가 없듯, 네 말에도 증거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혈통 판별의 술법진은 남궁가의 핏줄인지만 알려주기에.

남궁화현의 친자식이라는 증거 또한 될 수 없다는 말.

하무백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무위에 충격을 받은 남궁세가 사람들의 귀에 그 말이 똑똑히 박혀 들었다.

다시금 남궁화현을 향해 모여드는 시선.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 같은 무위를 보았기 때문인가.

낮은 그 말에 묘하게 설득되어 버린 남궁세가의 사람들이었다.

남궁세가를 습격한 적도의 말이었는데도.

"갈! 세가를 습격한 악적의 말 따위에 누가 현혹되는 것이야!"

남궁현철이 곁에서 노호성을 터트렸다.

"원로원의 원로들이 모두 보고 듣고 판단한 일이었다! 어찌 부정이 있을 수 있을쏘냐!"

남궁현철의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세가 전체에 퍼졌다.

그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리는 가솔들.

허나, 그들의 눈에 어린 일말의 의심을 완전히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도 뭔가 있긴 있는 것 같던데······."

낮게 중얼거리는 하무백.

그 말에 남궁현철의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저 빌어먹을 놈이 무엇을······.'

하무백의 시선이 남궁화현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정면에서 받으니 두 눈이 깜깜해지는 남궁화현.

마치 끝이 없는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무백.

저 괴물은 연회장을 무너트린 그 말도 안 되는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한번 펼쳤다.

그럼에도 지금 저놈은 너무도 태연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는 듯.

그런 무지막지한 강기를 두 번이나 터트렸음에도, 내공은 여전히 넘쳐 흐른다는 듯.

저 여유만만한 모습.

남궁화현의 자신만만하던 모습이 수그러들었다 .

제왕창궁검진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와해 되었고.

구성원의 절반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저 팽가가 약해서 당한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저 미친놈이 말도 안 되게 강한 것이었다.

입술을 짓씹는 남궁화현.

저 미친놈이 남궁화우와 남궁휘에게 붙었다.

무력은 자신이 압도적이라 여겼지만, 실상은 아니었던 것.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궁화현은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암담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날 방도를 찾으려 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왼손에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남궁휘.

그리고 하무백이 나서기 전의 남궁휘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지 않았던가.

자신과 결판을 내자고.

그렇다.

이 사달의 원인은 결국 남궁휘와 남궁지후, 남궁지유 남매.

그러니 남궁휘를 처리하면 끝이다.

남궁화우가 아무리 물고 늘어진들.

남궁휘가 없다면야.

당황했음에도 노호성을 터트렸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남궁휘가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 아니던가.

살아남았다면.

다시 죽이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남궁화현은 결정을 내렸다.

"남궁휘. 무인이라면 검으로 말하라고 하였던가?"

남궁화현이 하무백의 시선에서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남궁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물음에 남궁휘는 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남궁화현이.

저벅.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좋아. 검으로 말하지."

스르릉.

남궁화현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하무백을 돌아보았다.

"끼어들 것인가?"

그 물음에 하무백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화현.

오롯이 그 자신과 남궁휘.

둘만의 승부다.

됐다.

걱정은 하무백의 개입뿐이었다.

그가 저리 명백히 의사를 보였으니.

절대 끼어들지 않을 터.

이제 자신이 남궁휘의 목을 취하기만 하면 끝이다.

남궁화현의 검 끝이 남궁휘를 가리켰다.

동시에 남궁휘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복잡한 심경이 담긴 웃음.

말없이 남궁휘 역시 다시 검을 들었다.

그 검 끝이 남궁화현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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