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63화 (263/312)

263화. 재미있군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남궁세가의 혼란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결국.

남궁화우가 되었다.

욕심이 없다 하였지만.

현 남궁세가의 상황에서 그 말고는 가주를 할 만한 이가 없었다.

남궁화우가 오히려 마지막까지 고사를 하는 바람에 형제들이 나서서 설득했다.

하여 남궁화우는 조건부로 가주의 자리를 받아 들였다.

10년.

그 이후 자신은 가주에서 물러나겠다 한 것이다.

그 시간이면 남궁세가의 혼란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될 터이니.

그리고 그가 애초에 그렸던 그림에 대해 발표하자 세가 사람들은 환호했다.

외원의 방계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직계의 가솔들은 불만도 내비치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가.

핏줄과 능력이 전혀 상관없음을.

방계의 남궁휘에게 가주 남궁화현이 패했다.

핏줄이 주는 정통성에 집착하다가 남궁세가가 퇴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그것을 남궁세가의 구성원 모두가 느꼈다.

하무백이라는 무인 하나에게 박살이 나면서.

핏줄 따위에 얽매일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덕.

남궁휘는 복권되었다.

그가 세가를 떠나겠다 했지만 그와 상관 없이 남궁세가의 당당한 일원으로 복권된 것이다.

남궁지후와 남궁지유는 남궁후와 남궁유로 개명한 것도 공식화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남궁휘가 지냈던 마을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남궁후와 남궁유는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교룡관으로 가겠다 하였다.

"유급할지도 모른다?"

하무백이 접객원에서 남궁후와 남궁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리 답하는 남궁후의 허리에는 고색창연한 명검이 매달려 있었다.

대라창궁검.

남궁화우가 가주에 오르자 가장 먼저 세가의 비고에서 꺼내서 준 검이다.

하무백에게 꾸벅 인사를 한 세 사람이 남궁세가를 떠나 절강성으로 향했다.

남궁휘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곳에.

그곳으로 가는 또 다른 목적.

"어머니를 뵙는 게 더 중요해요."

남궁유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산월마림에서 강시로 화해 있던 백부인과 주부인.

남궁휘가 두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고 양지바른 곳에 묘를 만들어 두었다.

남궁후와 남궁유는 그 사실을 남궁휘에게 들은 후, 함께 그곳을 찾기로 한 것이다.

공손무외와 마진기는 이미 사흘 전 떠났다.

함께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남궁세가의 정문이었다.

이제는 떠나야할 때.

남궁휘가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무백은 그저 빙긋 웃었다.

"그리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는 남궁휘.

허나 결국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하고 세 사람은 떠났다.

남궁휘 가족마저 그렇게 떠나니.

이제 하무백 홀로 남았다.

"다 끝났나?"

피식 웃은 하무백.

남궁세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떠나게 되다니.

남궁세가의 정문까지 나와 세 사람을 배웅한 하무백.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뒤를 돌아보았다.

남궁세가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이제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곳.

이렇게 나온 김에.

"이제 나도 그만 돌아가야겠네. 오랫동안 비웠으니."

교룡관을 떠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남궁후와 남궁유에게 유급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근무 불량으로 퇴관당해도 할 말이 없겠군."

잠깐 생각을 한 하무백이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정말 뜬금 없이 갑작스레 떠난 것이었으니.

이전에는 퇴관시킨다면 감사히 떠날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곤란했다.

자신이 교룡관에서의 생활에 썩 만족하고 있으니.

자신이 바라는 강호를 교룡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그리 마음먹고 막 발을 떼려던 찰나.

하무백이 멈칫했다.

남궁세가에서 풍기는 어마어마한 기세에.

하무백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런 무인이?"

분명 없었다.

기감으로 남궁세가는 물론이고 합비 전체를 탐색하기를 여러 번이었으니.

분명히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하무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군."

저 기세는 지금 하무백을 부르고 있었다.

초대에는 응해줘야지.

하무백은 떠나려던 몸을 돌렸다.

가볍게 발을 내딛고 훌훌 날아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향하니.

가주전이었다.

남궁화우.

그와 함께 있는 백발백염의 노인.

선풍도골의 자태가 그냥 신선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자네로구만."

하무백을 보자 싱긋 웃는 노인.

"남궁백 어르신이네."

남궁화우가 하무백에게 노인을 소개했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제일고수이시지."

남궁세가 제일고수.

그런데 이름이 외자다.

방계의 인물이라는 의미.

"헌데 남궁제일검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셔서, 현재 남궁제일검의 자리는 공석이지."

남궁화우의 말에 남궁백의 입가에 고소가 떠올랐다.

"방계라서?"

하무백의 물음에 남궁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원에서 인정을 안 해줬지."

"미친놈들."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하무백은 눈앞의 노인, 남궁백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으니까.

무극명륜안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그가 뿜어내는 기세가.

아니 그가 합비에 들어온 기감을 하무백이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경지를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최소 초절정의 끝.'

그날 밤.

남궁백이 남궁세가에 있었다면 하무백이 그리 쉽게 남궁세가를 무너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강자가 있었다니.

의외였다.

지난 전쟁에서도 보지 못했었으니.

"남궁제일검에게 주어지는 예외 때문이지."

남궁화우가 말을 이었다.

"제왕검형의 후반부. 그것을 익힐 자격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가주이지만, 예외적으로 남궁제일검도 익힐 수 있거든."

"지랄. 개나 소나 다 익히고 있더만."

하무백의 신랄한 비판에 남궁화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아버님과 형님의 협잡으로 야합에 함께한 원로들이 그 대가로 제왕검형 후반부를 익혔음을.

열흘간의 조사에서 알아냈으니까.

남궁화현의 입을 통해서.

하무백의 시선이 남궁백에게로 향했다.

"헌데 이분은 그딴 거 없어도 상관없으실 것 같네."

하무백의 평.

남궁백은 싱긋 웃었다.

"맞는 말이네. 한때는 그것이 한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전장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하무백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보내주지 않았다네. 가주와 원로들이."

그 말에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강력한 고수를 대체 왜?

"방계의 무인이 전장에서 대활약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게지."

남궁백의 말에.

"씨발 새끼들이."

하무백의 입에서 가감 없는 욕설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큰 전력이 될 고수를 세가에 묶어 두었다니.

그보다 더 심한 욕설도 마구 쏟아낼 수 있었다.

"일단 자네에게 고맙다고 해야겠군."

하무백이 의아한 눈으로 남궁백을 바라보았다.

"자네 덕에 조금 전 남궁제일검으로 인정받았거든. 원로원에서. 제왕검형 따위야 상관 없네만. 그 명예만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놓지 못해서 말일세. 허허."

남궁백 정도의 고수가 고작 그런 허명에 집착한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핏줄이랑 가문이 뭐길레······.'

남궁백의 그런 모습에 하무백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하무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속감이었으니.

"게다가 세가가 순혈주의를 드디어 벗어던지게 되었으니. 그 고마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나 같은 이가 이제는 없을 터이니."

그의 말에는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헌데.

거기까지 말한 남궁백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그리고 말일세. 자네에게 보여주기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일세. 남궁의 검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불렀군요?"

하무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백.

"잠시 외유를 다녀온 사이에 세가가 뒤집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네. 그리고 남궁이 그토록 허무하게 패했다는 데 더욱 놀랐고."

그의 말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하무백을 향한 것인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보여주시죠."

하무백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남궁백의 기세가 한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사람같은 기세는 사라지고 오롯이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남궁화우는 황급히 멀찍이 물러났다.

하무백의 기세도 변했다.

그의 기세 역시 한 자루의 검으로 화했으니까.

겉으로는 두 사람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가주전을 뒤덮은 기세는 거대한 검 두 자루가 되어 서로를 노리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두 사람.

남궁화우는 두 눈을 끔뻑거리며 그 모습을 보았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모습.

그러나 남궁백과 하무백.

두 사람은 이미 일 검, 일 검을 나누고 있었다.

방계이지만 재능을 인정받아 창궁무애검을 전수 받은 남궁백.

그는 창궁무애검을 극에 이를 정도로 수련하였고.

마침내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제왕검을 만들어 냈다.

남궁휘가 대연검법을 기반으로 제왕검을 만들어 낸 것처럼.

그 후로도 더욱 갈고 닦은 남궁백.

그의 검은 남궁세가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하무백은 새로운 경지에 든 이후 처음으로.

무극여의팔절검해의 두 번째 초식을 펼쳤다.

단하(斷霞).

노을을 자른다.

노을과 함께 창궁도 잘렸다.

"크윽."

남궁백이 신음을 흘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하무백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자네의 경지는 아득할 정도로군."

"남궁의 검 역시 훌륭합니다. 과연 남궁이로군요."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동시에 떠올랐다.

남궁화우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서로 바라만 보다가 저런다니.

적어도 이 주변이 초토화되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건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두 사람이 엄청난 기세를 피워올린 것은 알았지만, 그사이 있었던 치열했던 대결을 알아보기에는 그의 경지가 아직 낮았다.

"제왕검형 후반부. 한 번 보시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제왕검형 없이 창궁무애검만으로 제왕검을 이룬 남궁백이었다.

허나 하무백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자네가 그리 말하니 한 번 살펴봐야겠군."

이미 초절정의 경지를 벗어나 그다음 경지인 화경(化境)의 초입부에 살짝 발을 걸친 남궁백.

하무백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화경에 제대로 들 수 있는 단초일지니.

남궁백은 하무백의 조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까지 모두 지켜봤던 하무백.

하무백은 제왕검형에서 대연검법과 창궁무애검에는 없던 어떤 기운을 느꼈다.

하무백의 심상에서 싹을 틔운 곳에서 느꼈던 기운.

그것을 더욱 선명하게 느낀 것이다.

자신의 무극여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단목운뢰의 허무호연심결과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남궁휘와 남궁백의 제왕검에는 그 기운이 빠져 있었다.

남궁화현이나 남궁현철은 그 경지가 얕아 거기까지 도달하지를 못했고.

남궁백이 그 기운마저 손에 넣는다면 더욱 높은 경지로 나아가리라.

"자네에게는 빚이 자꾸 느는구만."

온화한 분위기로 변한 남궁백의 말에 하무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빚이라니.

"휘와 후. 그아이들 말일세."

"······."

"어젯밤에 만났었다네. 자네 덕에 이룬 경지라 하더군. 남궁세가의 미래를 만들어 주었는데. 나에게도 도움을 주니. 빚만 잔뜩 진 기분이야."

"아······."

하무백은 그제야 남궁휘가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인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마도 남궁백에 대한 것이었으리라.

허나 말하지 말란 언질을 받았던 것이겠지.

그럼에도 말을 해주려다가 말았다.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남궁백의 명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나를 믿었기 때문이겠지.'

"저도 빚을 갚은 것 뿐입니다."

하무백이 담담히 답했다.

"빚?"

"두 사람 덕분에 새로운 경지로의 단서를 얻었으니까요."

하무백의 대답에 남궁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괴물 같이 강한 무인이 더 강해질 단서를 얻었다 하니 그런 것이다.

"허허, 허허허."

그저 웃음만 흘러 나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궁세가는 절대 빚을 있지 않는다네."

남궁백의 말에 하무백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남궁세가를 떠났다.

이제 교룡관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으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