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그건 내가 해결해
하무백이 남궁세가의 일에 집중하는 사이.
교룡관의 시간도 똑같이 흘러갔다.
와룡대 이십 조의 생도들은 하투제를 대비해 하루하루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은 강해지고 있었다.
맹룡대 칠 조, 그리고 이십 조.
그들이 전부 매달려서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었으니.
"어찌 됐을까?"
단목운뢰가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당진산의 물음.
"교관님이랑 지후, 지유."
지후와 지유의 세가 사람이 교룡관에 찾아온 후.
그들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가 싶더니 훌쩍 떠났다.
하무백까지 함께.
아마도 남궁세가로 갔겠지.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별 걱정을 다한다. 그 분이 어떤 분인데."
그때 불쑥 들리는 목소리.
백리평이었다.
하무백에 대한 믿음이 단단한 눈빛.
"하긴."
단목운뢰는 그 말에 금세 수긍했다.
그래, 자신들의 교관이 어떤 사람이던가.
불가능 따위는 없어 보이는 인간 아니었던가.
아니, 인간이 맞긴 한 걸까?
그런 의문마저 가지게 하는 사람.
***
"애들 싸움이라 적당히 봐준 것이라 했겠다. 하면 애들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겠지."
구소소가 원독에 찬 눈을 새파랗게 빛냈다.
철령이 면벽을 끝내고 나온 후.
구소소는 교룡관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저간의 사정을 깊게 파고 들었다.
그리고 모든 사정을 알게 된 구소소.
하무백.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담당하는 아이들이 맹룡대 이 년차 칠 조.
그리고 자신이 아들이 속한 조와 승부를 결한 놈들은 와룡대 일 년차 이십 조의 쓰레기들.
헌데 내기로 걸린 것은 그 맹룡대 칠 조 놈들이란다.
하무백이 담당하는 그놈들을 후반기 내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일에 그렇게 나서는 놈인데.
과연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 꼴이 되면 어떤 심정일까.
제 놈이 한 말이 있으니 그 싸움에는 끼어들지 못할 것이고.
하투제라 했던가.
그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해서 지금 구소소는 구탄길과 함께 와룡대 일 조의 생도들을 전심전력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영약에 병기, 거기에 훈련까지.
철기방에서 철갑철기군까지 불러 들였다.
갑작스레 시작된 때 아닌 강훈련.
당연히 와룡대 일 조의 생도들은 반발했다.
벽이겸, 탁무전, 공구패, 화보명.
어디 보통 인물들이던가.
와룡대 이십 조를 우습게 보는 것도 있었고, 스스로들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런 그들이 하투제를 대비해서 훈련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구소소의 서슬 퍼런 기세.
그 기세에 전면으로 나선 구탄길.
그들 두 사람 때문에, 그들은 구를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 구르는 와룡대 일 조.
휴식일에 기루로 향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맹룡대 칠 조에 미색이 제법 반반한 아이가 있다 하지 않았더냐? 기루의 노류장화보다야 그 아이가 나을 것 같은데?"
구소소의 이 말이 와룡대 일 조 생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씨발, 이게 뭐하는 짓이지?"
연무장에서 한참 구른 후 잠시 쉬는 시간.
구소소와 구탄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벽이겸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철령을 노려보았다.
"병신 같은 새끼. 쓸데없는 짓을 해서 우리까지 이게 무슨 꼴이야?"
벽이겸의 타박.
철령은 그런 벽이겸을 함께 노려보았다.
"이딴 쓸데없는 내기를 받아온 새끼가 누구지?"
철령의 말에 벽이겸의 얼굴이 흉칙하게 일그러졌다.
"전부 동의했던 거 아니었나?"
"지랄."
두 사람의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졌으나.
남은 셋은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내기를 받아온 것은 벽이겸.
외숙과 모친을 불러 들여 이 사달을 만든 것은 철령.
남은 세 사람에게는 둘 모두 마땅찮았으니까.
"병신 새끼들이······."
탁무전이 중얼거렸다.
공구패와 화보명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벽이겸과 철령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다섯은 서로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 보았다.
"씨발. 주는 영약들은 넙죽넙죽 잘도 받아 처먹는 것들이. 진짜."
철령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욕설을 씹어 뱉을 때.
"다들 힘이 넘치나 보군."
그때 들린 목소리.
다섯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수밖에.
구탄길보다, 구소소보다 더 무서운 인물이었으니까.
철령은 저 사람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저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철령은 외숙과 어머니가 미친 줄 알았었다.
고작 이 정도 일에 저 사람을 부르다니 하는 생각에.
철갑철기군 스물을 이끌고 나타난 이.
군무한.
철기방 제일 고수이자, 철갑철기군의 군단장.
그가 대체 왜 생도들의 내기 때문에 교룡관에 온단 말인가.
과해도 너무 과했다.
그런 철령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군무한은 진심을 다했다.
"그렇게 서로 싸울 힘이 있을 정도니, 내가 기대를 해도 되겠지?"
무거운 군무한의 목소리.
그 말에 다섯 생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
한설빙이 학당의 지붕에 올라 있었다.
하무백이 자주 올라 교룡관의 전경을 바라보던 곳.
그곳에 오른 한설빙의 시선은 와룡대 일 조 연무장을 향해 있었다.
철기방에서 진심으로 나서서 와룡대 일 조 생도들을 굴리고 있었다.
갖은 영약까지 사용했다.
철기방주의 조카인 철령에게 사용하는 거야 그렇다 하겠지만.
다른 네 명에게도 영약을 먹였으니.
"저 인간들이 왜 저러지?"
한설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군무한까지 나타났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그가 이끄는 철갑철기군의 위력은 지난 전쟁에서 직접 목도했으니까.
한설빙으로서는 하무백에 대한 구소소의 원한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 것은 꿈에도 짐작치 못했다.
다만.
"이러면 우리 애들이 너무 불리한데. 이런 판국에 단주님은 안 계시고 말이지."
생도들에게만 맡기려 하였건만.
이렇게 되어 버리면.
더 이상 애들 싸움이 아니다.
이제는 어른 싸움이 된 것이다.
맹룡대 칠 조는 그녀의 담당 생도는 아니었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이 교룡관에 있기에 하무백이 믿고 자리를 비운 것이라 생각하기에.
"잠깐. 이거 내가 자꾸 단주님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 같은데······."
그리 중얼거린 한설빙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 어떻고, 이러면 어떠랴.
어차피 자신이 그리 하게 될 것인데.
며칠 와룡대 일 조의 모습을 지켜보던 한설빙이 결국은 움직였다.
하지까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늦은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하무백이 돌아오면 또 무슨 신기한 수를 내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 한 교관님?"
한창 훈련에 열중하던 맹룡대 칠 조와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은 갑자기 나타난 한설빙의 모습에 시선을 집중했다.
"너희들 지금 이러고 있으면 큰일 난다."
"네?"
당진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와룡대 일 조 애들.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줄 알아?"
한설빙의 물음.
"뭐, 철기방에서 제대로 지원해주고 있다 하더라고요."
역시나 맹룡대의 소식통답게 그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당진산.
"그래. 그런데 너희들이 이러고 있어서 되겠어?"
한설빙의 물음에 당진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하 교관님도 안 계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죠."
당진산의 담담한 말에 한설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말할 때가 아닐 텐데. 너희들 내기에 뭘 걸었어?"
"저희 하반기요?"
당진산의 대답에 한설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연하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민. 연하민을 걸었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한설빙.
"성도화화공자 당진산!"
망나니 시절 당진산의 별호를 입에 올리는 한설빙.
당진산이 가만히 한설빙을 바라보았다.
"너라면 저놈들이 그 내기 조건을 어떻게 활용할지 알 텐데? 하반기 내내 놈들이 시키는 대로 시중을 들어주는 거라면?"
당진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안다.
알고 말고.
당시 그놈들의 음욕 가득한 눈빛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수단 방법 가리지를 말아야지. 무슨 그런 팔자 좋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한설빙의 호통에 당진산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벌인 판이었기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작년 하투제. 어떻게 준비했었어?"
그때 한설빙은 교룡관에 없었다.
그랬기에 일단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연하민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일 년 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했다.
모두 들은 한설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맹룡대 이십 조, 칠 조, 그리고 와룡대 이십 조는 합동 훈련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한설빙.
"네? 와룡대까지요?"
담당교관이 엄연히 달랐기에.
가능할까 한 의문.
"그건 내가 해결해."
"저, 그러면 맹룡대 단체 훈련은요?"
단목운뢰의 물음.
하무백이 자리를 비운 지금 한설빙이 책임지고 있는 훈련이었다.
"다른 교관들은 뒀다가 뭐 하려고? 그 사람들도 교관들이야. 그리고 다른 부분은 하 교관님이 책임지겠지. 멋대로 자리를 비운 건 하 교관님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한설빙이 사라졌다.
관주와 담판을 지으러 간 것이다.
팽도율은 한설빙의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철기방의 개입을 막지 않았기에, 그녀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던 것.
그렇게 그 날 오후.
맹룡대 이 년차 칠 조와 이십 조.
와룡대 일 년차 이십 조.
이들 열두 명은.
교룡관을 나섰다.
목적지는 대별산맥의 목란산.
하투제가 열리는 곳이다.
유월의 첫 날 아침.
하무백이 교룡관에 귀환했다.
하지까지 스무 날이 남은 때.
"응? 뭐지?"
교룡관에 드는 순간 하무백은 알 수 있었다.
없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이 담당한 맹룡대 칠 조 전원과 이십 조.
그리고 와룡대 일 년차 이십 조도 없었고.
한설빙도 없었다.
"설빙이 움직인 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뿐.
그냥 움직였을 리는 없다.
교룡관에 소속된 교관이니 절차를 따랐을 터.
결국 관주 팽도율을 찾아가면 전후 사정을 알게 되리라.
"뭐, 저것들 때문이겠지만."
하무백의 시선이 와룡대 일 년차 일 조의 연무장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이들의 기감.
진작 떠났을 줄 알았던 구탄길과 구소소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군무한이라······."
지난 전쟁을 함께 한 전우.
각자 이끄는 무력집단의 특성상 서로 다른 전장을 누볐지만.
가끔은 마주쳤다.
그때, 철갑철기군의 위력에 감탄을 하기도 했었으니.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상황.
하무백은 팽도율을 찾았다.
"왔는가?"
담담하게 하무백을 맞이하는 팽도율.
이제는.
하무백이라는 인간에게 적응한 모습이다.
팽도율은 손수 찻잔을 내왔다.
"남궁지후, 남궁지유 두 사람은?"
그들의 복귀에 대한 소식이 없었던 탓이다.
"아마 전반기에는 복귀가 어려울 지도 모르겠소. 아, 그리고 그 두 사람 개명했소. 남궁후, 남궁유로."
하무백의 대답에 팽도율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남궁세가의 이름에 대한 규칙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글자와 한 글자의 차이.
남궁세가에서 일어난 변고에 대한 소문은 아직 퍼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남궁세가에서도 내원에서 벌어진 일이니.
합비의 사람들은 남궁세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할 뿐.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몰랐으니.
"복잡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팽도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무백.
"설빙은 어디로 간 거요?"
하무백의 이어진 물음.
그걸 물을 줄 알았다는 듯, 팽도율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목란산으로 갔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어서."
"역시······."
"자네도 갈 테지?"
팽도율이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서 진심으로 나온 이상 자신도 진심으로 나서야 했으니.
"하면 맹룡대의 단체훈련은 어쩔 건가? 한 교관도 떠나서 말일세."
하무백이 멈칫했다.
자신이 맡은 일이었기에.
"일단좀 살펴보도록 하겠소."
"잘 부탁하네."
팽도율의 부탁에 하무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체 훈련은 오후.
하무백은 일단 학당의 지붕으로 향했다.
철기방에서 그놈들을 어찌 가르치는지, 그놈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