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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65화 (265/312)

265화. 실망했네

와룡대 일 조는 쉬이 찾을 수 있었다.

오전이면 학당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이 시간에 연무장에서 구르고 있는 이들은 와룡대 일 조 다섯뿐이었다.

교룡관의 일반적인 교육과정도 무시하고 수련하는 것이다.

물론 와룡대 일 조의 담당 교관 재량으로 가능한 일이긴 했다.

하무백 역시 자신의 재량으로 맹룡대 칠 조를 데리고 나가기도 하니까.

다만, 지금 저 자리에는 와룡대 일 조 담당 교관이 없었다.

구소소의 등쌀에 못 이긴 것인지,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지금 와룡대 일 조를 굴리는 이는 군무한이었다.

철갑철기군 다섯과 와룡대 일 조 다섯의 다 대 다 전투.

하무백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법 짜임새가 있었다.

그러나.

'하투제는 저런 방식이 아닌데.'

당연한 생각이다.

저들은 지금 철갑철기군의 전투방식으로 와룡대 일 조를 상대하고 있으니까.

와룡대 일 조는 거기에 응하면서 역시나 철갑철기군의 전투방식을 익히고 있었다.

철갑철기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마군이다.

기병들이 기동할 수 있는 너른 평원의 전투에 최적화된 이들.

목란산의 산속에서 벌어지는 유격전인 하투제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때 와룡대 생도들의 훈련을 지켜 보던 군무한의 시선이 하무백과 마주쳤다.

하무백은 싱긋 웃어주었다.

'하무백······.'

군무한이 하무백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그의 기척을 느끼고 그곳을 바라본 것이 아니다.

와룡대 일 조 생도들의 형편 없는 모습에 답답한 마음을 식히려 하늘을 올려 보다가.

학당의 지붕 위가 그의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 있는 이를 발견하고 눈이 마주쳤다.

과연 괴물은 괴물이다.

아무리 거리가 좀 있다지만, 군무한 자신이 하무백의 기척을 전혀 몰랐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지금 하무백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은 철갑철기군과 생도들에게로 향해 있었으니까.

철기군이 적당히 수준을 맞춰주고 있음에도, 다섯 생도의 합격술은 어긋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구소소는 제법 만족한 얼굴이다.

저 정도 수준에서 저 정도 합격술이면 괜찮다고 여기는 듯.

군무한은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하무백이 돌아왔으니··· 어찌 될지는······.'

방주의 명이었기에 저 망나니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와룡대 이십 조 아이들을 본 적은 없다.

다만 신진팔문의 허드렛일하던 아이들이라는 말은 들었다.

상식적이라면, 절대 질 수 없는 싸움.

다만.

하무백이라는 존재가 걸렸다.

지난 전쟁에서 그가 겪고 들은 하무백이라는 인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던 괴물이었으니까 .

'뭐, 여기는 이 정도면 됐고.'

볼 것을 모두 본 하무백의 신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향한 곳은 자신의 숙소.

일단 떠나기 전에 맹룡대의 훈련 상황도 확인해야 했으니.

일단 잠부터 청했다.

오후 훈련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까.

***

맹룡대의 훈련은 다행스레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무백이 생각했던 수준은 이루고 있는 상태.

한설빙이 그간 신경을 쓴 것도 있었고, 다른 교관들 역시 열심히 매달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훈련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생도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리고 정말 철저하고 엄격하게 훈련 상황을 살폈다.

덕분에 어설픈 이들은 예외 없이 추가 훈련을 받는 고달픈 경험을 했다.

'복수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는 하무백.

맹룡대의 훈련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한 달 이상 맹룡대 교관들도 힘들게 굴렀다.

지금 교관들이 생도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자면 마치 그에 대한 복수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의도야 어떻든, 그 덕에 훈련 상태가 좋았다.

이 정도면 하투제까지는 자리를 비워도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그다음은.

'바쁘겠군.'

어째, 스스로 편한 생활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린 하무백.

그의 걸음은 목란산으로 향했다.

바스락.

떨어진 나뭇잎을 밟은 소리가 울렸다.

바짝 마른 나뭇잎이 아니다.

여름 초입에 들었기에 여전히 생기가 남아 있는 나뭇잎.

그것을 밟고 난 소리는 극히 작았으나.

지금 발을 잘못 디딘 이의 귀에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잡았다."

그 결과.

등 뒤에서 들리는 당진산의 목소리.

"후우. 졌습니다."

은화량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당진산이 만족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잘 잡아 보라고. 저녁이 걸렸으니까."

그 말과 함께 왼 팔뚝에 둘렀던 붉은 띠를 건네주고는 서둘러 사라지는 당진산.

은화량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길 삼백에 이르렀을 때.

두 눈을 뜨고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모습을 하무백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제법이네.'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술래잡기처럼 보였지만.

은신과 추적 훈련이었다.

작년에는 자신이 혼자 다섯을 감당해야 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저렇게 많은 이들이 산속을 누비며 은신과 추적 훈련을 하고 있었다.

효과는 더 좋았다.

하투제는 수없이 많은 이들이 산속에서 움직인다.

그렇다면 사람이 많고 흔적이 많을수록 하투제와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무백이 슬쩍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한설빙이 있는 곳.

한설빙은 높다란 나무에 올라 생도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제법이야."

갑자기 나타난 하무백의 말에도 한설빙은 태연했다.

하무백이 기척을 슬쩍 드러내며 접근한 덕이다.

"이제 오셨네요."

목소리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수고했어."

간단한 말. 그러나 한설빙의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갔던 일은요?"

"대강 잘 해결됐다."

"무슨 일이었던 거예요?"

연유를 묻는 한설빙.

일이 모두 끝난 지금도 말해주지 않았다가는 한설빙의 원망이 더욱 커질 것이 보였기에.

하무백은 대강 요약해서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남궁유와 남궁후.

두 사람이 교룡관에 복귀한다면 대강은 알게 될 터고.

"미쳤군요. 남궁화현."

"전대가주까지."

한설빙의 탄식에 하무백이 보탰다.

"설마 그게 진짜일 줄은."

강호에 떠도는 흔한 호사가들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사람의 욕망은, 늘 상상을 초월하는 법이지."

하무백의 담담한 말에.

한설빙은 문득 자신의 사문을 떠올렸다.

빙천궁.

탁무전 그놈을 보면, 빙천궁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한번 가봐야 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슬쩍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저 인간마저도 호천단을 때려치우고 가족을 찾았는데.

자신은 아직도 사문에 가보지를 않았으니.

어쩌면 자신이 저 인간보다 더 무심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못 찾았다고?"

공야장천이 얼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해련의 군사인 문인백송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설마, 사해련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도 찾지 못할 줄이야.

"하오문 놈들이 비협조적이라고?"

"겉으로는 최선을 다하는 듯합니다만. 아무래도 지난번 그 일이 있다 보니······."

"쯧."

문인백송의 말에 공야장천이 혀를 찼다.

"나도 상당히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군."

그 말에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뜩이나 지난번 일로 하오문의 세가 약해진 상태에서.

사해련에서 손을 쓴다면, 개방에 대항할 정천맹의 정보조직을 스스로의 손으로 망가뜨리는 꼴이니까.

하오문도 아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저리 나오는 것일 테고.

"쯧."

다시 한번 혀를 차는 공야장천.

"군사."

"네."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이는 문인백송.

"실망했네."

짧은 말이지만,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문인백송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

"대체 왜 그런 건가? 사해련의 힘을 모두 동원했는데. 대체 석 달이 넘도록 그 아이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답답한 심정이 가득 담긴 물음이다.

공야장천은 그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가씨께서 사해련의 영역을 벗어난 듯합니다. 정천맹의 영역을 탐색하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에······."

하오문이 아닌 이상 정천맹의 영역을 마음 놓고 살피지를 못한다.

정천맹과 사해련이 서로의 정보조직에 대해 눈을 감아주는 것은 개방과 하오문.

딱 여기까지였으니까.

거지와 기루가 없는 도시는 있을 수가 없으니.

"그렇다고 정천맹에 알릴 수도 없습니다."

당연한 말.

"더군다나, 련주께서 아가씨께 선물해주신 그 기물 때문에······."

문인백송은 말끝을 흐렸다.

공야장천은 눈살을 찌푸렸고.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만."

씁쓸히 중얼거리는 공야장천.

그 아이가 답답해하기에, 마음 편히 주변을 둘러보라 선물해준 것이건만.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그 기물에 상관없이 그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기감이 뛰어나야 합니다. 기척을 정확히 느껴야 하니."

"어느 정도 수준으로?"

다시 묻는 공야장천.

"천하를 뒤져야 하니, 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호법들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하고. 실력이 떨어진다면 최대한 많은 수를 투입해야 합니다."

사해련의 호법이 정천맹의 영역을 들쑤시고 다닌다?

이건 정천맹에게 싸우자고 하는 소리다.

무수히 많은 사해련 무사들이 정천맹 영역을 다니는 것 역시 마찬가지.

"쯧."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문인백송은 그런 공야장천의 눈치를 살폈다.

답답하고 답답한 마음에 모든 수를 다 고려하다가 떠올린 하나의 수.

그것이라면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실현 가능성이 무척이나 희박했다.

"뭔가?"

그런 문인백송의 눈치를 알아차린 공야장천이 물었다.

"그··· 성공 확률이 무척 희박한 수이긴 합니다만······."

"말해봐."

지금껏 늘 같은 말만 반복하던 문인백송이다.

그의 입에서 다른 수가 나왔으니, 들어는 봐야 할 터.

"그, 하무백입니다."

그리고 튀어나온 대답.

공야장천은 문인백송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인간이 갑자기 왜?"

그렇게 묻고 있지만,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파 연합인 사해련의 련주라고 한다면 흔히들 폭급하고 무식할 거라 지레짐작하지만.

공야장천은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인물.

거기에 더해 냉정하기까지 했다.

그랬기에, 문인백송이 실패했다고 보고하고 있는데도 노성 한 번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라면 가능하니까요."

구태여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공야장천의 눈빛에서 그가 이미 자신의 의도를 읽었음을 파악한 문인백송이었으니까.

"그렇지. 그래. 그 인간이라면 가능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공야장천.

그의 실력, 거기에 그 괴물 같은 기감, 정천맹은 물론이오, 사해련의 영역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인간.

정말이지 딱 맞는 인간이다.

다만,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기에 공야장천이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문인백송 역시 그래서 지난번에는 떠올리지 못한 것이고.

"자네도 정말 몰리긴 몰렸군. 그 인간을 떠올리고."

공야장천의 말에 문인백송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가씨가 자칫 산월마림 같은 곳에라도 가셨다면 큰일이니까요."

문인백송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공야장천.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아이는 아니야."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하무백 그 인간은 지금 여전히 교룡관에 있나?"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부탁이라도 해봐야지. 쯧."

그렇게 사해련에서 무창을 향해 사람이 떠났다. 공야장천의 전서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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