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그렇단 말이지?
신분을 숨기고 들어온 맹룡대.
그래. 인정한다.
우습게 봤다.
산월마림의 고기 방패.
개나 소나 다 받아주는 무력 부대.
그런 생각으로 지원했다.
듣기로도 그리 힘든 곳이 아니었고.
맹룡대가 힘들어지는 것은, 교룡관의 2년 훈련과정을 끝내고 산월마림으로 갔을 때.
생환율 오 푼.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곳으로 보내지는 고기방패.
그럼에도 자신이 있었다.
산월마림에서 살아남든지, 아니면 중간에 맹룡대에서 몸을 빼든지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자신이.
목적은 단 하나였다.
하무백.
그 교관을 만나는 것.
그는 자신의 우상이었으니까.
사파.
강자존의 법칙이 최우선인 세계.
줄곧 그곳에서 나고 자라왔다.
그랬기에, 사파제일존인 할아버지가 우상이었다.
그러나.
혈교와 마교와의 전쟁.
그곳에서 나타났다 스러진 수많은 강자들.
사파제일존이 조부였기에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알게 된 최강의 무인이 하무백이다.
강자를 우상하는 것은 사파의 무인이라면 당연한 일.
그래서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 강자는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호천단.
정천맹주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천맹 최강의 무력 집단 중 하나인 그곳의 단주였기에, 하무백을 만나는 일은 요원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
그런데.
작년.
그가 좌천되어 교룡관이라는 곳의 교관으로 갔단다.
그것도 맹룡대.
개나 소나 다 들어가서 고기방패로 희생당하는 곳.
그곳의 일반 교관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그의 행보.
관심이 있었기에 꾸준히 귀를 기울인 덕이다.
그곳에서 그가 이룬 일은 가히 전설이라 해도 될 만한 일이었다.
하투제와 동투제에서 맹룡대 생도들의 성과는 물론이고.
팽가와 하오문까지.
그랬기에 더욱 그를 보고 싶어졌고.
맹룡대라면 방법이 있었기에.
과감히 사고를 쳤다.
그렇게 맹룡대에 들어왔다.
할아버지에게 듣기로 하무백의 기감은 가히 귀신 같다 하니.
기물 하나를 슬쩍 해서 나왔다.
칠채봉환(七彩封봉環).
일곱 빛깔을 내는 한 쌍의 아름다운 팔찌다.
아름다운 외양과는 다르게 양팔에 하나씩 차면 사용자의 내공을 완벽하게 금제하는 기물.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른 고수는 금제할 수 없었지만.
그 정도 고수는 전 강호를 통틀어도 얼마 없었다.
아니,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의 내공을 금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물이었다.
보통은 생포한 고수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물이다.
이보다 더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무공을 금제하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스스로 양팔에 채웠다.
내공을 금제하기 위해.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무백의 기감에 정체를 들킬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맹룡대에 들어온 지 삼 개월이다.
일단 목적은 이뤘다.
바로 눈앞에서 하무백을 봤으니까.
역시 강자의 위엄이 흘러넘치는 엄청난 무인이었다.
그리고.
'지독했지······.'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굴렀다.
수련을 마치고 구토를 한 것이 몇 번이던가.
정말 지독한 인간이었다.
스스로 내공을 금제한 것이 후회될 정도로.
밤마다 손목을 얼마나 바라보았던가.
당장 칠채봉환을 풀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기물이라 쉽게 풀 수 없지만 열쇠까지 챙겨왔으니.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난 지금.
자신은 맹룡대 최하위였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생도들은 조금씩이나마 내공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기물의 금제를 당한 자신은 새로이 익히는 무공의 내공도 금제 당하고 있었으니까.
오로지 외공만으로 다른 이들의 수련을 따라가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타난 하무백.
그가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뭐, 뭐지?'
허나 착각이었나?
찰나의 시선이었으니까.
사실 그런 시선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하무백이 지켜보고 있기에 훈련은 더욱 힘들게 진행이 되었으니까.
덕분에 하무백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오늘의 힘겨운 훈련도 끝이 났다.
그녀는 잔뜩 지친 기색으로 허기를 달래러 갔다.
'오늘은 서각으로.'
교룡관에서 버틸 수 있는 또 하나의 낙.
담룡각 음식의 수준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거기에 네 곳의 담룡각마다 나오는 식단이 달랐고.
미리 식단을 알아두고 취향에 맞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그녀가 오늘 향한 곳은 담룡서각이다.
와룡대와 잠룡대의 연무장과 가까운 곳.
그렇게 담룡각의 입구를 지나치는데, 잔뜩 지친 다섯 생도와 툭 부딪혔다.
그들 역시 상당히 지친 모습.
헌데.
부딪히자마자.
막 사과를 하려는 찰나.
"에이 썅.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이건 또 뭐야? 더럽게 생긴 년이."
바로 면전을 향해 날아오는 욕설.
언제 이런 욕설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미, 미안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과했다. 지친 나머지 앞을 제대로 못 보고 부딪힌 건 그녀였으니까.
"목소리가 아깝네. 그딴 얼굴에 그런 목소리라니."
불쾌한 표정의 사내는 여전히 그녀를 모욕하고 있었다.
잔뜩 지친 벽이겸은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저렇게 못생긴 년이 자신과 부딪혔으니까.
게다가 무복을 보니 맹룡대다.
와룡대나 잠룡대와 달리 통일된 무복이 없었으니 단번에 알아본 것.
"맹룡대라니. 쯧. 하긴 그렇게 생겨 먹어서야 기루에서 몸도 못 팔 테니 모르겠군. 젠장."
그렇게 말한 벽이겸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 홀로 남은 그녀.
공야휘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 새끼가 지금 뭐라 지껄인 거지?'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을 저 빌어먹을 놈에게 들었다.
물론 지금 그녀의 용모는 못생기기 이를 데 없었다.
작은 눈. 들창코. 두꺼운 입술. 얼굴 가득한 곰보 자국까지.
거기에 혹시 몰라 가슴도 단단히 동여맨 상태.
그럼에도.
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저런 안하무인인 새끼라니.
"휘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안 들어가고?"
그녀와 같은 조원 동료가 다가왔다.
"아, 들어가야지."
공야휘연이 담룡각을 옮겨 다닐 때마다 함께 해주는 고마운 동료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가 앉았다.
아까 부딪힌 이들과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
그럼에도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똑똑히 들렸다.
"젠장. 밥맛 떨어지게."
"맹룡대에서 여기까지 기어 오고 지랄이야."
계속된 고된 훈련에 짜증이 잔뜩 난 와룡대 일 조는 그것을 갑자기 나타난 맹룡대 생도들에게 풀고 있었다.
"저렇게 생겨 먹고 잘도 낯짝을 들고 돌아다니는군."
"그러게. 양심이 있으면 면사라도 쓰고 다녀야지. 젠장."
모욕적인 언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래도 엉덩이는 쓸 만해 보이던데?"
"그럼 네가 어떻게 해보던가."
"미쳤냐?"
계속되는 조롱과 모욕.
그럼에도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에 열중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연. 네가 참아야 해."
담룡서각을 떠나며 동료인 진연심이 말했다.
그녀는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 맹룡대에 들어온, 많지 않은 여생도 중 하나였다.
"알아. 약해빠져서 참지 않아 봐야 더한 모욕만 당한다는 걸."
공야휘연의 말에 진연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것들은 대체 뭐야?"
진연심은 맹룡대 일 년차 구 조의 정보통이었다.
교룡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 만큼 아는 것도 많았다.
"와룡대 일 년차 일 조. 신진팔문 쪽에서도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 모여있는 조야. 그래서 저렇게 막 나가도 말리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야."
공야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재미있는 내기를 하고 있지."
진연심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해주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
"아, 아. 그 내기?"
이미 진연심에게 대강 들은 적이 있었다.
"응. 그런데 걸린 게 제법 크지."
당시 흘려들었기에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뭔데?"
공야휘연이 슬쩍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쉬지 않고 그 내용이 흘러나왔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그렇단 말이지?'
공야휘연의 두 눈이 빛났다.
아무래도 금제를 잠깐 풀어야 할 때를 결정한 것 같았다.
하무백이 하투제의 판정관으로 나올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활을 꺼내야겠네.'
***
공야장천은 자신의 서재에서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이게······."
서재 한쪽에 놓아둔 작은 상자들.
그중 한 상자가 비어 있었다.
이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서책을 보며 잠시 눈을 돌리다가 본 것이다.
어째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
상자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여, 선반의 먼지 모양이 다른 것과는 살짝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상자를 들어보니.
가벼웠다.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칠채봉환이······."
공야장천의 서재에 드나들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나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댈 만한 사람은.
"휘연이로구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설마 칠채봉환마저 챙겨갔을 줄이야.
공야장천은 서둘러 문인백송을 찾았다.
"네?!?"
깜짝 놀라는 문인백송.
당연했다.
만약 그녀가 스스로 칠채봉환을 착용했다면.
아무리 하무백이라 해도, 그녀의 내공을 감지하지 못할 테니.
기감으로 찾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아가씨가 단단히 계획을 세운 모양입니다. 만환신면(萬幻神面)에 칠채봉환이라니······."
문인백송이 난감한 듯 말했다.
"후우. 이 아이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아무래도 아가씨의 방을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공야장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과년한 여인의 방을 뒤지자는 말인가?"
그녀가 사라지고 석 달이 넘는 시간.
그 방을 정리하는 전속 시비 말고는 들어간 이가 없었다.
"칠채봉환까지 가져가실 정도로 준비하셨다면 분명 무언가 흔적이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실 가장 먼저 행했어야 할 일입니다."
애초에.
공야휘연이 사라졌을 때.
문인백송이 제일 먼저 주장한 일이었다.
공야장천의 완강한 반대로 행하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이제는 무슨 단서라도 반드시 찾아야 했다.
"후우, 알겠네. 단 그 아이의 어미와 함께하세나."
그렇게 공야장천은 며느리를 불렀다.
손녀의 방을 뒤지기 위해.
"사일자뢰궁(射日紫雷弓)도 없습니다."
궁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그녀에게 공야장천이 선물한 병기였다.
사일자뢰궁이 없다는 말에 공야장천은 오히려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독문병기는 챙겨갔다는 것이니까.
"다른 것은?"
"별다른 것은 없었습니다만··· 이것이."
그녀의 방 한 곳에 걸려 있던 일필휘지의 족자.
공야휘연이 직접 쓴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는 단 세 글자만 쓰여 있었다.
강자존(强者尊).
"흐음."
공야장천은 물끄러미 족자를 바라보았다.
***
하무백이 돌아오자 훈련은 더욱 힘들어졌다.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하루하루.
시일이 지날수록.
와룡대 이십 조의 실력은 늘어만 갔다.
다만.
하무백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와룡대 일 조를 확인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결국.
하무백은 다른 한 수를 꺼내 들었다.
맹룡대 칠 조에게는 사용하지 않은 수.
"모두 덤벼라. 내가 끝났다고 할 때까지. 멈추는 것은 없다."
하무백의 나직한 말.
그 말에 맹룡대 생도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무백이 멈추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대련이라니.
과연 쟤들은 오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룡대 이십 조 다섯 생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동시에 하무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치한 채.
하투제까지 앞으로 닷새가 남았다.
반드시 더 강해져야 했다.
퍽! 퍼퍼퍽!
"크아아악!"
"아악!"
다섯은 순식간에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온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끝난 대련.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다섯 생도들.
"끝났다고 안 했다."
하무백이 담담히 말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생도들.
"너희가 안 오면 내가 간다."
짤막한 말에.
비척비척 일어나는 와룡대 이십 조.
그 모습에 한설빙이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단주님. 진심이신가 보네. 저런 모습은 오랜만이네. 쟤들 복 받았어."
"네?"
한설빙의 중얼거림에 당진산이 끔찍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물론 지금은 지옥 같겠지만. 너도 한번 받아보면 알게 될걸?"
한설빙의 말에 당진산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한설빙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 참 좋은건데······."